애 물 단 지
김 영 숙
날씨가 풀려 산길을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양지쪽 산자락에 드문드문 땅을 일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보니 땀을 흘리며 고랑을 만들어 밭두둑을 쌓기도 하고 평평하게 땅고르기도 하고 있었다. 나도 저런 내 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다 주인이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그늘진 귀퉁이로 자갈투성이에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내버려진듯한 곳이 눈에 띄었다. 한나절이나 걸려 돌을 주워내어 타원형으로 담을 쌓고 잡초도 깨끗이 뽑아내니 손바닥만한 예쁜 밭이 만들어졌다. 행여 주인이 나타나 달라고 하면 반납하면 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씨도 뿌리기 전에 내 소유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즐거웠다. 길을 가다가도 아는 사람만 만나면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데도 내가 만든 밭 자랑을 하며 언제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할아버지께서 지나 가시다가가 그곳은 자두 밭주인이 토란을 심는 곳이라며 노는 땅이 있으니 담배나 한 갑 사주고 가지라고 했다. 따라 가보니 은행나무 숲이 우거진 약간 산등성이라 건너편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농사는 뒷전이고 산비탈에 피어난 복숭아꽃만 보더라도 벌써 반 본전은 건진 듯 했다. 약간 그늘져 있기도 하고 땅도 파보니 푸석푸석한 청석이 자꾸 나와 기름진 곳은 아니었다. 큰 은행나무 밑의 편편한 곳엔 온 다리에 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산꼭대기에서 나무둥치를 끌고 내려와 쿳션으로 옥수숫대를 얹어 알프스의 소녀에 하이디가 앉았을법한 긴 의자도 만들었다. 연장도 몇 가지 갖추어 숨겨 놓고 종묘상에서 권하는 씨앗 종류는 다 사다가 주변의 조언을 받아가며 난생 처음으로 씨를 뿌렸다. 새가 쪼아 먹는다고 검은 비닐을 구해와 덮기도 하고 낙엽 썩은 거름을 얹어 주기도 하며 큰 나뭇가지들로 울타리까지 쳐놓고 보니 지난번보다 제법 근사한 밭모양이 잡혔다. 그리고는 싹이 나오나 싶어 해가 기울면 커피와 돗자리를 챙겨 밭을 찾았다. 하루의 해와 달이 교대하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시간에 바람소리를 들으며 숲에 혼자 앉아 시간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감정이었다. 한참을 코끝에 와 닿는 봄 향기와 나뭇잎들이 옹알이하는 소리에 취하다 보면 숲이 파도가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추기도 하고 어린 날 고향 뒷동산의 밤나무 숲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어둑어둑해지면 시 한 수 읊으며 지천으로 깔린 쑥과 돌나물을 뜯어 산을 내려오면 왠지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기도 했다.
주변의 밭들은 다 연둣빛으로 물결을 이룬지가 오래 되었는데 내 밭만은 통 소식이 없어 뭔가 잘못 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씨 뿌려 싹 안 나는 법 없으니 진득하게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래도 너무 한다 싶어 호박은 아예 모종으로 사다가 그 위에 겹쳐 심고 고추, 가지 모종도 하고는 흙을 살짝 들추어보니 병아리 눈뜨듯이 노란 싹이 소복이 올라오고 있었다. 흙을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주의가 생각나 싹이 눈치 챌까 봐 얼른 도로 덮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와 한동안 가보지도 못했다.
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기에 며칠 간격으로 집에서 10분정도의 거리를 땀을 뻘뻘 흘리며 물통으로 날라다 주기도 하다가 일기예보의 비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상추와 쑥갓이 파릇파릇 돋기 시작하자 식구들에게 한번만 가보자고 사정을 했지만 남편은 손바닥만한데 나물 몇 가지 심어 놓고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지 마라며 첫 마디에 거절을 했고 아들놈도 엄마 땅도 아니면서 너무 좋아하는 것 같으니 안 봐도 뻔하다고 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보여 주어야겠기에 주변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에게 내 텃밭에서 한 턱 낼 터이니 주말 오후에 다들 모이라고 했다. 사서 하는 고생인지라 불평도 못하고 열명 남짓의 저녁밥을 지어 산으로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왼 종일 준비해 짊어지고 텃밭으로 안내했더니 코팅해 붙여 놓은 팻말만 한번 쳐다보고는 밥만 축내버렸다. 오월이라도 밤이 되니 으스스 추워졌다. 다들 시골출신들이라 신문지 한 장에 불을 붙여 주변에 흩어진 나뭇가지들로 모닥불을 피웠다. 빙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옛날 얘기도 하다가 연기가 자꾸만 피어올라 산불신고가 들어와 단체로 붙잡혀 가겠다며 서둘러 내려왔다. 그리고 내 자식 내가 귀엽듯이 내 텃밭도 그런가보다 싶어 이젠 모든 사람에게 텃밭 자랑은 접기로 했다.
땅이 좋지 않은듯해 홍삼찌꺼기를 얻어다 땅속에 묻었다가 거름으로 내기도 했지만 실력 부족인지 호박넝쿨과 피망만 무성하고 다른 채소들은 통 자라질 않는다. 거기다가 씨가 고르게 뿌려지질 않아 쏟아 부은 듯이 빽빽하다가 듬성듬성하다가 엉망이었다. 그래도 대소쿠리에 새싹비빔밥 하기에 적합한 상치, 부추, 쑥갓을 뜯어 싱글벙글하며 내려오니 어떤 아주머니께서 차를 주차하시다가 아주 감격적인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소쿠리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더니 기가 막히는지 뒤 트렁크를 열고 방금 얻어오는 것인데 한집이라도 실컷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태라고 했다. 오는 길에 농사지은 거라며 단골 미장원에도 좀 내려주고 식구들에게도 첫 수확한 것이라며 식탁에 올렸더니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날씨도 덥고 바쁜 일로 뜸하다 등산길에 들렀더니 어느새 잡초랑 키가 맞먹어 있었다. 맨손으로 풀을 좀 뽑았더니 온몸으로 풀독이 번져 피부과를 다녀오며 애첩과 별장은 있는 그날부터 애물단지라더니 아름답기만 한 소유는 결코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씨앗과 모종 값에 병원비까지의 투자에 비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올봄 내 열정을 쏟은 채소들을 농사 그거 아무나 짓는 거 아닌 것 같다며 즐겁게 나눌 것이다. 그리고 “텃밭에게 삶을 물었더니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는 팻말처럼 한 계절이었지만 삶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있으며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란 걸 배운 듯 하다. 그 기다림이 꼭 오리란 보장이 없어 소멸해 가는 시간의 등을 바라보며 살아갈지라도...
어젯밤 천둥번개와 소낙비가 무색할 만큼 아침햇살이 반짝인다.
가을이면 노오란 은행잎이 소복이 깔릴 내 텃밭이 무사한지 또 걱정이다.
첫댓글 씨 뿌리면 새싹이 돗고 재미 있는 소일꺼리를 만들었군요. 재미 있습니다.
문장이 아주 유려해서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애첩과 별장도 애물단지라니 늙으면 그렇지만은 아직 젊으신 분들이 취미가 다양할 수록 좋지요.단독주택인 저의 집은 마당이 전부 체소와 화초들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