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天老師卜蟾灘(중천노사복섬탄)
不遇回車心自寒(불우회차심자한)
年靑初轍安昌家(연청초철안창가)
歲冬屢尋延慶壇(세동루심연경단)
心胸數起鞭撻情(심흉삭기편달정)
吐虹恒坐主山寬(토홍항좌주산관)
晩奉電話嚴肅聲(만봉전화엄숙성)
眷戀無盡得鳳鸞(권련무진득봉란)
섬강에 계신 중천선생님을 찾아갔건만
만나 뵙지 못하고 돌아서는 섭섭함이여
젊은 시절 사셨던 마을로 처음 가 뵙고
한 겨울에 낙향한 곳을 자주 찾아 가네
마음속에서 자주 일어나는 가르침을 받던 기억
집 뒤의 토홍산이 늘 간직하는 주산의 넉넉함이여
뒤늦게 선생님의 전화를 받자오니
아끼는 마음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얻었네
새해 세배를 드릴 겸 은사이신 중천 김충렬 선생님을 문막으로 찾아뵈려갔었다. 안동 후배에게 내려갔다가 중천선생님께서 고기를 잡수시고픈 뜻을 갖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강원도 문막으로 차를 몰았다. 댁에 계실 것이라는 후배의 말을 듣고 세배를 드릴 겸해서 약간의 육류와 과일을 준비해 섬강가에 복거하신 延慶堂에 찾아갔다. 스승님께서는 안 계시고 사나운 개만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육류는 다시 들고 오고 과일만을 전해드리라는 부탁을 이웃에게 하고 제천으로 돌아왔다. 저녁 늦게 중천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섭섭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시면서 내 건강을 걱정해주신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섬강의 안창리라는 곳을 찾아가뵌 적이 있다. 그때의 심정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이 나를 감쌌다. 이후 서울 평창동 시절 친구와 함께 방문했으나 댁에 계시지 않아 짧은 절구 하나를 남겨두고 걸음을 돌렸다. 마지막 구절이 "疑是三角一道人"(아마도 삼각산의 도인이 아니실런지)이었다. 다음날 선생님께서 차운하시어 나를 찾으셨다. 호랑이 같으신 분이 타과생을 찾으시니, 조교들이 혼비백산하여 나를 찾고 장차 벌어질 위기상황 때문에 나를 걱정해주었다. 불안한 마음에 연구실로 찾아뵈니,온아한 미소로 맞으시며 "이 시 자네가 쓴 것인가?"라고 물으셨다. 그 이후로 나는 자신을 얻어 한시를 자주 짓게 되었다. 물론 뒤에 다른 졸작시를 들였다가 감당할 수 없는 야단을 듣기는 했지만......
선생님 댁 뒷편의 산은 日傘峯이었는데, 중천선생님께서 吐虹山으로 명명하셨다. 그때 나도 동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