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회든 현대의 사회든 우리 인간은 새로운 미디어를 창출하고 그것을 이용하며 발전시켜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회사에 나가서 혹은 학교 가정에서든 인터넷으로 정보를 접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또한 지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혹은 오락을 위해 책을 읽으며 차 안에서 혹은 가정에서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듣기도 한다. 이처럼 미디어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아 막대한 위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뿐 아니라 그러한 생각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매스미디어는 우리와 단순히 가까이 있는 친구일 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즉, 인지와 통찰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이렇게 우리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뿐더러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조, 형식과 내용을 변화 시키며 패러다임을 구축하기도 한다.
매스미디어는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알려주어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하며 갖가지 정책비판들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기도 하며 이미 일어났던 각종 정보를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 등을 한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는 긍정적이니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정확한 정보 확인도 없이 특종만 앞세우다가 오보를 하게 되어 개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대중의 말초적 욕구에 의존하여 저질적인 컨텐츠를 양산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범하거나 비판적이고 신중한 시각을 견지하지 못하는 등 부정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다.
2005년 최대의 사건은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다. 황우석의 과학적 성과가 잇따라 발표됨에 따라 언론은 황우석 신화 만들기 체제를 구축해왔다. 조선일보의 김철중 기자는 황우석을 그에 대한 미화와 찬양으로 신문 지면을 채웠다. 언론과 국민은 이처럼 황우석이라는 타이틀의 권위의 무게 아래 놓여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시작하였고 객관적 비판적 검증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에 도전하려했을 때 언론과 국민이 황우석 죽이기라며 그토록 강하게 반감을 표출한 것을 보면 객관적인 안목을 상실한 맹목적 애국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나는 검찰조사 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의 주제를 다룬 ‘100분 토론’을 보았다. 그 때 난자 기증 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수영 이사, 인제대 의대 교수, 조선일보의 김철중 기자,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의 토론이 시작되었다.이 토론을 보면서 미디어를 이욯하고 수용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그에 발맞춰 언론인은 전문성과 정확하고 사실에 입각한 정보 전달은 얼마나 강화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조선일보 김철중의학전문 기자]
인간배아 복제를 통해 난치병 치료에 쓰이는 줄기세포를 만들어 세계적 생명공학자로 우뚝 선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黃禹錫·51) 교수의 일상은 또 다른 의미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그는 현재 35평형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대중 목욕탕에 들렀다가 국선도 수련장을 찾아 1시간 정도 명상한 뒤 6시 반에 출근하는 일상이 18년째다.
19일 서울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황 교수는 “쉴새없이 밀려오는 축하전화와 인터뷰 요청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오늘 새벽 목욕탕에서도 인사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365일 달력에는 3가지 요일이 없다. 토요일·일요일·공휴일에도 연구실에 출근, 연구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실험에 매달린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미국 시애틀에 머무를 때도 하루 50달러도 안 되는 허름한 모텔에서 묵었다. 주최측인 미국과학진흥원(AAAS)에서 특급호텔을 예약해뒀지만, 함께 간 연구원들과 지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제까지 국제학회에 갈 때도 일반석(이코노미석)만을 고집했다. 수의학과 후배인 이병천 교수는 “여러 도시를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항상 제일 싼 비행기를 탄다”며 “미국 2개 도시 학회를 들렀다 오는데 비행기로 8개 도시를 거쳐 다녀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로 많은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 국제특허 출원이 이어졌다. 특허의 지분은 로열티 수익과 직결된다. 하지만 황 교수는 특허 지분의 60%를 서울대학교에 넘겼다. 나머지 40%도 이번 실험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황 교수 지분은 ‘제로(0)’다.
그가 40여명의 연구원을 이끌며 ‘광우병 안 걸리는 소’ 등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매년 약 20억원. 정부와 산업계로부터 더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지만 그는 그 이상을 일부러 마다한다. ‘풍요 속에 나태가 온다’는 삶의 철학 때문이다. 그는 “미국 과학자들이 나보고 ‘당신은 이제 돈방석에 앉게 됐다’고 축하해줬는데 특허 소유권을 학교에 넘겼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그는 연봉을 묻자 “내가 관리 안 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수의과학대학측은 황 교수의 연 총수입이 본봉 6000만원에 연구 수당 등을 합쳐 8000만원 정도 된다고 전했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18년 전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을 때, 친구와 함께 강화도 전등사에서 예불을 드린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매월 한 번 찾아가 새벽 4시에 예불을 드리고, 이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이번에 미국 가기 3일 전에도 전등사를 찾아 400배를 올렸다.
그는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나의 연구의 철학적 배경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여성의 난자를 이용해 복제 배아를 만들고, 이것으로 다른 환자의 난치병을 완치시킨다는 것이 생명을 이어가는 윤회의 완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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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의 결실은 국내 각 분야 최고들이 모인 ‘드림 팀’과 그 팀원들의 희생 정신에 크게 힘입었다. 지난 2002년 말 어느 날 황 교수는 서울대병원 문신용 교수, 한양대의대 황윤영 학장, 미즈메디 병원 노성일 이사장 등에게 조찬회동을 제안했다. 이들은 국내 산부인과 분야의 명망가들로, 황 교수와는 학회 등을 통해 안면을 터놓은 사이였다. 이들은 황 교수의 연구 취지를 듣고 의기투합했다. 문 교수는 연구의 총 진행을 맡고, 황 교수(황윤형)는 여성의 난자 제공을 책임졌다. 노 이사장팀은 복제 후 줄기세포를 키우는 기술을 제공했다.
하지만 사이언스지에 등록할 저자 명단을 제한할 수밖에 없게 되자 윤현수 박사 등 노 이사장팀은 자기들의 이름을 빼라고 했다.
황 교수는 “과학자로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업적의 논문에 자기 이름을 빼달라는 것은 보통 희생 정신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황교수는 자신이 부탁을 하다시피 해 이들의 이름을 올렸다며 다시 한 번 이들의 희생정신을 평가했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 전의 이 기사를 보면 매스미디어를 통해 얼마나 왜곡된 정보를 무책임하게 제공하였 는지 그리고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비판의 기능이 무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이다. 이 처럼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황우석 신화와 성역을 만들어 왔다.
올해 2월 황우석 교수가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알려지자 국내 언론은 ‘영웅의 탄생’을 보도했다. 당시 각 언론들은 ‘황우석 교수, 난치병 치료 길 활짝 열어’, ‘줄기세포 연구는 인류의 희망’, ‘농민의 아들 난치병 치료의 영웅 되다’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며 황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단 하나의 대안인 것처럼 호도했다.
이런 보도는 당장이라도 난치병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는 환상과, 한국이 세계 최강대국에 곧 진입할 것 같은 과장된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황우석 교수는 단순히 훌륭한 과학자를 넘어서 ‘단군이래 최대의 기회를 한민족에게 선사할’ 구국의 영웅으로 자리매김 되기 시작한다. 황우석 교수와 난치병 환자들과 만남이 부각되면서 이러한 기대감은 더욱 부채질됐다.
신문, 인터넷, 지상파 방송..이런 매체들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주의를 언론이 먼저 주도하고 비판적인 감시 기능 조차 마비된 상황에서 국민의 정서에 편승하는 태도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