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세계엔n 스크랩 기말고사 및 프레젠테이션 준비 - 불고기와 맞출 와인은 뭐가 좋을까?
권종상 추천 0 조회 47 11.11.21 15:35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이제 좀 있으면 기말고사 치르고, 이번 학기도 갑니다. 일요일 아침의 여유는 그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바쁜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제 강의는 두 번 남았습니다. 다음주엔 치즈와 와인의 매칭에 관한 강의가 있고, 그 다음주엔 디저트 와인에 대한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와인과 음식 페어링에 관한 실제 지식을 총평하는 테스트가 있게 되고... 그리고 그 다음주면 이번 학기도 끝납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쉬운 게 아니긴 합니다. 마음 써야 할 곳이 한두가지 더 있다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만, 애초에 이걸 시작했던 이유는 아내와 어머니의 권유의 힘이 컸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와인에 대해 깊게 알고 싶었던, 그런 열망도 있었습니다. 또 여기서 쌓게 되는 지식과, 이것을 통해 쌓게 되는 스펙이 혹시 훗날 내가 진짜 하고 싶어하는 것들 - 예를 들어 늘그막에 와인 카페를 하나 연다던지, 혹은 틈틈히 와인 관련한 책을 쓴다던지 - 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구요.

 

기말고사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하는데, 뭐 좀 특이한 걸로 준비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뭐, 사실 이걸 특이하다고 보는 자체가 이젠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음식에 와인을 맞추는 걸 프로젝트를 삼으려 하는데, 이런 배경이 되는 것도 알고 보면 국력입니다. 때로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마켓과 그 안에 있는 서점-일반적으로 서점에서는 음반을 파니까 - 을 찾는 미국 사람들을 봅니다. 이들이 주로 사는 것은 K-Pop 음반입니다. 우리 음악이 그들의 정서를 파고 든 것은 이미 꽤 오래전 일입니다. 그리고 웃기는 일이지만, 이 동네에서 미국 학생들과 말다툼이 붙는다면, 한국말로 욕해오는 학생들을 많이 봅니다. "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미국 아이들. 이곳에서 꽤 성적좋은 공립학교들은 한인학생들이 정원의 1/4 을 채우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현상들도 생깁니다.

 

제가 준비한 건 불고기와 맞출 와인입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는 진판델이었지만, 이번엔 뭔가 이태리 와인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워싱턴주 멀로를 맞춰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게 한다면, 어쩌면 '미국 워싱턴주에 이민 온 한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징'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상징성 때문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꼼수성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불고기야말로 김치와 더불어 당연히 '한국을 상징하는 가장 확실한 아이콘'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어떤 와인을 맞춰야 좋을 것인가 하는 건데...

 

마침, 어머니께서 누군가가 산에서 캔 송이버섯도 나눠주시고, 또 아이들 생일도 얼마전에 둘 다 지났고 해서(지호와 지원의 생일은 겨우 닷새 차이가 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고기를 해 먹기로 하고, 송이버섯을 잘 씻어 엷게 썰었습니다. 아, 향기 그윽한 송이버섯 보니 피노느와 생각이 엄청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이걸 시연할 때 송이를 썰 일은 절대 없기에, 피노 생각은 싹 접어버립니다.

 

일단 원칙은 이렇습니다. 고기의 기름기 정도와 태닌의 농도는 서로 밸런스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불고기는 일단 우리가 기름지게 굽지는 않습니다. 만일 갈비라고 한다면 당연히 태닌이 강한 시라나 카버네 소비뇽을 맞추는 것이 원칙이라고 봐야 합니다. 불고기는 양념도 그렇지만 굽는 과정에서도 그릴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팬 프라이' 혹은 '스터 프라이' 형식을 갖춰야 하고, 그렇다면 역시 그릴 음식에 맞는 시라와는 다른 와인을 맞추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판델을 생각해 봤습니다. 상대적으로 태닌의 농도는 낮고, 알콜이 높기 때문에 느껴지는 당도는 불고기에서 느낄 수 있는 당도와 매치가 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다시 생각해 본 것이 이태리산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였으나 그 가격이 황당하여 다시 생각해보니 리파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빠스꾸아의 리파소를 맞춰 봤습니다.

 

리파소는 아마로네를 만들고 남은 껍질을 재발효 시킨 거죠. 물론 발폴리첼라 와인을 만들 때 거기에 더하는 것이긴 합니다. 침용되는 태닌의 양을 생각하면 이게 불고기와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비교적 높은 알콜, 그리고 음식에 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도 분명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그런 면에서, 처음에 맞춰 본 세이지랜드 멀로는 태닌의 양에서는 분명 불고기의 기름기를 압도하지만 나름 델리킷한 향이 불고기 특유의 부드러움과 잘 어울리고, 워싱턴 산 멀로가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을 보여주기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와인이지만 문제는 뭔가 탁 살아나는 개성 없이 편안하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감상도 들어서 고민중입니다. 아무래도 불고기에 후추를 좀 더 뿌리고 진판델을 맞춰 보는 것이 정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아직 맞춰보진 않았지만, 이른바 '넌 트레디셔널 페어링' 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고기지만, 여기에 과감하게 화이트를 맞춰보는 거지요. 카비넷 프라디카츠바인이나 워싱턴주 리즐링을 맞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에게 다시 불고기를 해 달라고 우겨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불고기는 적절한 소금기와 당도가 있는 만큼, 그 달콤함은 고기 요리에 숨겨진 달콤함과 그라데이션을 이룰 수 있고, 소금기는 서로 컨트라스트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뭐, 파이널라이징까지는 앞으로 세 주 남았으니 그동안 고민 많이 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위해 적지 않은 고기와 와인이 소비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예상도 해 보구요.

 

아, 숙제와 기말 준비가 이렇게 즐거운 적은 없었어.

 

 

시애틀에서...

 

 

 

 

 

 

 

 

 

 

 
다음검색
댓글
  • 11.11.21 17:24

    첫댓글 행복한 고민.. 고민도 행복하게~~~
    부럽습니당. ^.^

  • 작성자 11.11.21 20:31

    푸하하하하... 저는 이게 학점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입니다.

  • 11.11.22 08:05

    즐겁게 많이 고민하시고 답 가르쳐주세용.
    저도 숙제 하나 해결하게... ㅋㅋㅋ
    먹는 게 쵝오로 아름다워~~~ ><

  • 11.11.22 11:26

    맛나겠당....^^ 한국산 선운산복분자 산매수가 젤 어울릴듯 하네요....!!

  • 작성자 11.11.23 12:41

    아멘!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