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도자미술의 꽃 -금동대향로
백제 금동 해양로는 능산리고분군(사적 제14호)과 나성(사적 제58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사비)시대의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특히 능산리 건물지의 발굴은 지난 72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 고고학계의 최대의 성과로 꼽히고 있는데 이 향로외에도 금동 광배편(光背片) 일괄과 금동 방울, 금동투조 장식판 등 금속제품 70여점과 유리구슬, 수정 등 옥제품 3백여점, 칠기류, 회화목(灰火木)구슬 등 목제품 10여점, 각종 토기와 기와류 70여점 등 모두 4백 50여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그 많은 유적중에서 금동대향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일 뿐아니라, 역사학자에서 도자공예가들, 그리고 금속 공예가들과 일반인들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부여 박물관 팀은 백제권 문화유적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충청남도로부터 용역 의뢰를 받아 1993년 10월 능산리 고분군과 나성 사이의 8백여평에 대한 대한 발굴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백제시대 건물지 3기를 확인하고 이를 조사하던 중 공방(工房)터로 추정되는 제3건물지 중앙칸 서쪽에 마련된 길이 1백 35cm, 폭 90cm, 깊이 50cm의 竪穴에서 완형의 금동향로를 수습하였다.
1천 4백년전 백제 장인의 예술혼이 깃든백제 금동대향로의 정식 명칭은 금동용봉봉래산향로(金銅龍鳳蓬萊山香爐)(일명 博山爐)이다.
향로는 제3건물지 중앙칸 서쪽에 마련된 길이 135cm, 폭 90cm, 길리 50cm인 수혈에서 뚜껑이 열린채 몸통이 옆으로 누운 상태로 유리구슬, 화형장식(火形裝飾) 등 금동제품과 함께 출품되었다.
금동 대향로는 전체 높이 64cm로 뚜껑손잡이, 뚜껑손잡이, 뚜껑, 몸체 다리부분(받침) 등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향로의 뚜껑은 용과 용봉(龍鳳)으로 장식되었으며 향그릇에는 연화문(蓮花文)으로 양각, 받침대는 한마리의 용이 꼬리를 위로 한 채 우주의 삼라만상을 받들고 승천하는 형상으로 몸통을 떠받치고 있다.
이 금동향를 두고 백제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타인캡슐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단 한점의 유물이지만, 이 유물은 백제인의 예술적 수준은 물론 당시 음악과 사상, 금속공예의 기술수준, 풍속과 문화 전반을 들여 다 볼 수 있다.
이 금동향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 상단부뚜껑 장식에 있는 한마리의 주작이다. 주작은 백제의 중요한 예술적 테마일뿐 아니라, 현대적으로 말하면 國鳥와도 같은 것이다. 고구려가 삼족오를 숭상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인데, 백제 그들의 독자성을 주장하기 위해 주작(봉황)을 강조하였던 것 같다.
봉황조형 아래에는비파, 피리, 북, 현금, 소를 연주하는 5인의 주악상(奏樂像)을 배치하였고다. 이 다섯 악사는 금동대향로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데, 한명한명의 표정조차 살아있는듯 생생할 뿐더러, 그들의 악기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조선시대 편찬한 '악학궤범'에도 백제 음악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지금의 궁중음악인 '수제천'과 '정읍'의 원형이라고 한다.
그 아래에는 74개의 산봉오리와 18명의 사람, 그리고 100여가지의 온갖 형상들이 조화롭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18명의 사람들은 모두다 직업군이 다르다, 폭포수에 머리를 감고 있는 사람, 도를 닦는 듯한 사람,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 낚시 하는 사람, 기마 인물 상등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여흥을 보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물들의 모습은 더욱 더 다체롭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사자, 원숭이, 코끼리, 멧돼지, 개, 뱀을 물고 있는 거북이 등이 있다.
특히 코끼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서식하지 않은 동물임에도, 코키리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포함해서 매우 사실적으로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실제로 보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리고 백제는 성왕때 겸익이 뱃길을 이용해 인도에 가 불경을 구해왔으며, 분황국과도 교역했다는 분명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분황국은 지금의 캄보디아로 백제의 해양진출과 무역범위가 얼마나 넓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백제의 해양진출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이 금동 대향로가 그것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잇는 것이다.
몸통에는 24개의 연꽃잎이 3단으로 펼쳐져 있으며 각 연꽃잎과 그 사이에는 물고기, 가릉빈가(迦陵頻伽), 천인(天人) 등 각양각색의 신격화된 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한마리의 용이 살아 생동하는 듯한 형상으로 정확하게 균형을 잡으며 위의 몸통을 받들고 있고 하단에는 서운(瑞雲)과 인동(忍冬)이 소용돌이 치는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백제금동 대향로의 발굴을 통해 그동안 자료가 적어 실증하기 어려웠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밝혀줄 수 있는 귀한 자료를 얻은 것이다.
원래는 주차장으로 개발되어 시멘과 아스팔트 포장이 될 곳이었다는데, 그야말로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 통체로 사라 질 위기에서 기적처럼 백제의 역사가 부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