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좀 봐 줄래요?”
안애의 요청에, 세탁기가 설치 된 다용도실로 걸음을
옮기는, 몇 걸음 동안 세탁기에 발생 했을 문제와 문제가
있을 경우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한다.
지난 수요일, 간단한 공사 때문에 세탁기의 전기코드와 급수
호스를 분리 해 이틀 동안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살짝 벗어 난
곳에 두었다가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설치 한 것이, 같은 주
금요일.
전원코드와 급수호스를 연결하고 전원 버튼을 눌러 동작
여부 까지 확인하는, 그 과정까지 이렇다 할 사항은 별반
없었지 싶은데, 세탁기를 잠시 옮기는 과정에서 충격이나
흔들림 으로 인하여,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어떤 오래 된
부속품이 마침내 한계치에 이른 것일까. 암튼,
지난 3일간 세탁을 못했고, 만약 a/s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 거라면 a/s 가 안 되는 토, 일요일 이 끼어있는 상황
이고, a/s 기사가 월요일 아침 일찍 와주는 상황이 아닌 간격
까지 감안하면 일주일 가까이 빨래를 못 하는 상황이니, 제발
별 탈 없는 가벼운 증상이어야 할 텐데.
빨래가 일주일가량 미루어지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남자아이 둘이 있는 가정에서 쏟아지는 빨래의 양은 생각
보다 많다. 물론 세탁기가 고장 날 것을 대비해 두, 세벌
이상의 옷을 준비해 두긴 하지만, 일주일가량이나 빨래가
미루어지면 그러한 대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탁기는 엘시디 창에 -DE- 라는 에러코드를 띄우고 어떤
조치를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늘 드는
생각인데, 왜 이런 에러코드는 한글로 표기 되도록 만들지
않을 까 싶은 것이다. 물론 제조단가라든지 하는, 당면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전제품의 엘시디 창에 뜨는 모든 에러코드는
제발이지 한글 표기를 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체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한글로 에러가 표기 된다면 “세탁기 좀 봐 줄래요?” 보다는
“세탁기에 급수문제가 생겼대” 정도가 될 것이고 그 부분이
달라짐으로 하여, 안애 에게 일어나는 에러코드 판독 또한 한결
수월 해 질것이고, 판독이 쉬우면 대처하기도 수월 한 것이니,
그것만 으로도 가정의 평화, 그 근처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요소
들의 절반 이상은 사전차단이 가능 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미국인 들이 쓰는 가전제품에 한글로 에러코드가 표기 된다면
그들 가정이 얼마나 복잡해지고, 따라서 얼마나 난폭해 지겠는 지를
말이다.
어쨌거나 코드를 만들어 둔 것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a/s 접수를
할 때도 일일이 증상을 설명하기보다는 에러코드만 읽어 주면
되니까 말이다. (안애도 코드를 기호로 표기 해주었으면)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경우 ARS를 이용 하는 것 보다 인터넷이 더
편하고 갑갑함도 덜 하다. 검색창에, [세탁기 에러코드 DE]를
입력하고 나열된 게시물 중의 하나를 읽어보니,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았거나, 문 틀림, 휨, 따위의 경우에 뜨는 에러코드 라고 한다.
세탁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문과 틀 사이에 작은
이물질이 붙어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동작스위치를 누르니 잘 돌아간다.
안애 에게 원인과 결과를 알렸다. 그리고 덧 붙여 빨래가 문틈에
끼이게 되면 같은 증상이 일어나니 참고 하라며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내용을 알려 주었고 덧붙여 세탁기 문틈 사이에 낀 이물질은
브래지어에 달린 철사 같다고 말해 주었는데, 표정으로 보아 안애는
철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하긴, 나 역시 딱히 철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철사가 있었어?- 정도의 반응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괜스레 들었다.
다음 날, 안애는 여전히 빨래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애의
말에는, 더 이상 빨래가 미루어지면 정말 곤란하다는 압력이
있다. 이 압력은 이해해야 한다. 아니, 이해차원이 아니라 아예
녹여 없애야 한다. 이 압력에 맞서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되도록 이면 즉시, 세탁기 앞으로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엘시디 창은 IE 라는 코드를 보여준다. 이 코드는 몇 번 다루어
본 바 있는 코드라 나름 가벼운 안심을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코드에는 약간의 헷갈림이 있는데, LE 인지 IE 인지 퍼뜩 분간이
안 가는 표기법 때문이다.
IE 면 자가 처리할 수 있는 증상 이지만, LE 면 수리 기사 방문을
요하는 유상비용발생 코드다. 우선은 IE 에 해당하는 처리를 해
보았다. IE 는 주로 급수에 문제가 생겼을 때 뜨는 코드로서, 물은
정상적으로 나오고 있는지, 수도꼭지의 물이 세탁기로 잘 들어가고
있는지를 체크하면 된다. 일단 수도꼭지의 물은 정상. 다음은, 세탁기에
연결된 급수호스를 분리 한 다음 급수구 쪽의 이물질 여부를 확인하고
이물질이 있다면 수돗물을 이용해 이물질 세척을 두어 번 해 주면 해결
되는 다소 간단한 에러다.
정상 작동 확인.
다음날 아침, 집에서 끓인 곰탕에 밥을 먹으며, 곰탕은 한번
준비해 두기가 조금 번거로워서 그렇지, 한번 끓여 두기만 하면,
여자들에게 있어 참 편리한 음식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곰탕은
여자들 에게 참 편리한 음식인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여자들 에게 있어 곰” 까지 말했을 때 ‘곰’과 아직 발음 되지 않은
‘탕’ 사이로 안애의 말이 파고들어왔다.
“세탁기 안 되던데!”
안애의 말인즉, -세탁기가 여전히 작동을 하지 않아서 아직도
빨래를 하지 못 하고 있으니, 밥 먹고 난 뒤 이따 세탁기 다시
좀 봐 주세요- 하는 것이겠지만, 같은 상황을 반복하여 듣는,
남자의 귀에는, - 아니, 세탁기가 여전히 저 모양이고 빨래가
엉망인데, 지금 밥이 넘어가? 그딴 거 하나 제때 제때 해결
못해? - 하는 식으로 해석 된다.
이는 말하는 파장과 듣는 파장이 달라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 이다. 이 상황에서 먼지 하나의 무게가 살짝 보태어
지면 지진과 해일을 동반하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가끔은
비슷한 상황에서 먼지가 아니라, 수박만한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빨래에 관련한 문제이니 만큼, 먼지 하나 일으킬까 싶은
동작으로 반응한다.
밥 먹고 하라는 안애의 말을 밀어내고, 막 김치를 집을 예정이던
수저를 국그릇 위에 내려두고 세탁기 쪽으로 갔다. 이전의 처리과정
중에서 뭔가 빠뜨린 부분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인데, 사실 IE코드는
동작초기 부터 발생하는 에러가 아니라, 급수에 관련 된 문제이기에
처음에는 정상작동 하다가 급수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동작을 멈추는 것이라, 10여분 가까이 지켜보며 정상작동 여부를 확인
해야 하는데 이전의 처리 과정에서 그 과정을 빼 먹은 터라, 세탁기의
전원버튼을 누르고 온 뒤 기다리는 시간동안 중단 된 밥을 먹었다.
세탁기 앞에서 더디게 가는 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한 내 자신에 대해 대견해 하며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세탁기의 전자음이 울렸다. 오작동 시에 내는 알림 이다.
급수쪽의 물을 잠그고 세탁기에 연결 된 호스를 분리하여
다시 한번 급수구 부분을 꼼꼼히 확인했다. 이물질 없음,
IE 코드가 뜨는 이유를 예측 할 수 없음. 사실 아주 간단한
문제라도 일단 한번 복잡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문제는
정말로 복잡해진다. 이건 애초부터 간단한 문제였다. 그런데,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곳? 세탁기가 아무런 탈 없이 작동하던 시점과
현재의 시점을 나란히 놓고 달라진 상황을 찾아본다. 아무리
샅샅이 찾아도 전원코드를 빼고 낀 것과, 급수호스를 빼고 낀 것
외에는 없다. 일단 전원은 들어오니, 남은 건 한 가지. 급수 호스
밖에 없다. 세탁기만 보던 시야에 세탁기의 호스가 잡히고 이어
호스의 양 끝에 붙어있는 체결부분이 들어오고 체결부분의 빨간
색상이 매직아이처럼 떠오른다. 체결 되는 양쪽 끝 부분의
색상이 빨간색 이어서 무심코 빨간색 급수구 쪽에 체결 했던
것인데, 빨간색 쪽은 온수다. 그제서야 세탁기도 찬물, 따신물을
가린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어째서 호스 쪽을 진작 살펴 볼 생각을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 해
보았는데, 아마 이미 경험이 있는 코드 였던 터라 이전의 처리방법
에만 매달려 경험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 판단되었다. 이전의 경험을
믿고 맹신이나, 확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 하나를 경험목록에
덧 붙여 두었다.
급수 호스를 파란 쪽으로 연결하자, 세탁기는 그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작동하고, 안애의 빨래는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복귀 하였다.
빨래를 너는 안애의 표정으로 보아 “여자들 에게 있어 곰”에서 잘린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은 어떠한 내용이었는지
등등의 궁금증은 안중에도 없음이 분명 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여자들 에게 있어 곰”까지의 말도 아예 듣지 못 했는지도 모른다.
원래 여자들 이란, 세탁기가 고장 났을 때는 아무것에도 관심 없고
어떠한 것들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첫댓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장면들이 그려지고, 안성기씨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나오는(남자주인공도 안성기씨) 단편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안성기씨 팬인가 봅니다~ ^^
특별히 그 사람 팬은 아닌데요. 그냥 읽다보니 그 사람 목소리가 연상됐어요. 아는 배우가 다양하지 않아서...
영화 시나리오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 왔더니...주인공이 안성기씨.ㅎㅎ
남자2님 참 자상하시네요~^^
어떤 부분이 '자상' 하다는 오해를 하게 했는지... ;;;
글 전체에서 느껴져요.....
우와...세탁기 안되는데요...그러면 as불러...하던 남팬인 지는 각성해야겠습니다
아이고~ 무슨말씀을요..;;;
저는 제가 다 하는데.....자상하신 남자2...부럽사와요...ㅎㅎ
자상한 '남자' 는 더러 있어도
자상한 '남편'은 아마 없을걸요..
저도 그런 '남편사람' 입니다...;;;
머..글만 보고 자상? 어림없는소리.
단편이래서 봤더니.. 중편이네.
ㅎㅎ 제목 바꿀까요?
4편은 언제 나오나용ㅡㅋ
남편도 몰라요~ ^^;
ㅎㅎ 잼있습니다 ...
빵만 사시면 되겠네요~ ;;;;
(아.... 내 글에 달린 댓글에, 댓글 달기란 왜 이리 어색한 것인지...;;;)
어색함을 떨쳐버리게 점심 때 곰국 한 냄비 565번지로 공수해 주~~~~오.
응답하라!!
그래서 곰국은 잘 먹고 있나?
회장님 글에 답글도 안하고 ....
팀장님 한티 삥 뜯겼슴다 ㅠㅠ
세탁기의 냉수와 온수 호스를 바꿔 연결한 사건(?)이 글재주가 많은 이에게는 매우 훌륭한 글감이 되었네요
곰과 아직 발음되지 않은 탕 사이에 안애의 말이 파고 들었다 이 부분에서 햐아~ ㅎㅎ
세심한 지적? 감사합니다 ^^
솔직히 말하면 길어서 읽다 말았음.... ^^;;
이상하게 컴터로는 긴글이 안 읽어 지더라구용...
시간날때 프린터 해서 보겠슴당 ㅎ
기냥 읽지마 싱글하고는 아무연관 없슴 ;;
솔직안해도 진짜 길다....픽션가트믄 길든말든 끝까지 고~하겠지만 저눔의 세탁기 하나가지고...
글쟁이는 역시 잘 쓴다.어떤 화두라도 쉽게 소화할것 가튼...
짱요환! 아가씨에게 명령조로 윽박지르지마..
전 지시와 복종 말고는 모르는데
, 다음 부터는 이런 댓글 달지 마이소
기사님 댓글도 길어서 읽다 말았어요.
길어서 반성... ㅠㅠ (장팀장님은 평생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