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수영성 진휼청 주변 -
충청수군절도사가 있는 곳 오천의 영내에는 진휼청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관청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관내에서 굶어 죽는 백성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 중 첫번째 일이다.
밥굶은 백성을 구휼하는 맨 마지막은 진휼청에서 급식하는 일입니다. 이에는 일정한 절차에 따른다.
배고프다고 며필씩 굶어서 죽게 생긴 사람에게 밥부터 주지는 않는다.
맨 먼저 묽은 미음을 떠먹이고, 하루 이틀지나 기운이 생기면 좀 더 진한 죽을 주는 식으로 해서 마지막에 밥을 먹게 한다고 한다.
병원에서 금식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병원의 처방과 흡사한 방식이다.
밥. 그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으뜸인 것. 하늘 같은 임금님도 먹어야 하고, 부처님도 공양을 올리고, 하늘에 제를 올릴 때도 먹을 것이 첫째다.
사람이 며칠씩 굶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끔찍한 매우 끔찍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무시무시한 차마 말 못할 이야기들. 전쟁과 인육먹기이다.
<인육(人肉) 먹기>
1) 앞에 우리 사촌형님 수기 속에 나온 부분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1945년 여름 필리핀 마닐라 인근 열대우림 속에서의 일이다.
(日軍) 부대원들의 보급(행정, 보급 담당 장교)을 담당했던 형님의 생생한 이야기이다.
" 密林生活을 爲해서 내가 힘써 收集 搬入한 脫穀機와 여과기용 空드럼 통도 使用 한번 못한 채 거의 다 (미군의) 爆彈 洗禮로 無用之物이 되고 말았다.
數百名의 臺灣 靑年 勞務員들을 動員하여 나머지 軍需品을 등짐 지워, 溪谷上流의 密林을 蕃刀(번도)로 길을 開拓하며 輸送督勵하는데 遲遲不振할뿐 아니라 物量으로 보아 後退하여 들어 닥치는 數많은 部隊員을 먹여 살릴 方途는 漠然할 뿐이었다.
全員 玉碎 아니면 아사(餓死)가 豫見되었다. 오지로 오지로 基地를 이동하며 司令部 要員의 食糧만이라도 確保하려고 苦心도 많이 하였다. 건빵 箱子를 使役兵들에 運搬시켜 受領하여 보면 木箱子를 열고 안에 있는 양철통을 잘라 구멍을 내어 건빵을 빼어내고 돌덩이나 나무 토막을 代入하고 감쪽같이 箱子를 元型대로 못질을 하여 놓기 때문에 半打作 되기가 普通이었다. 一般部隊에 대한 補給이 全無狀態가 되자 기근과 熱病 等 軍士氣도 命令系統도 없이 支離滅裂되어 방황하는 隊員들 급기야는 我軍 敗殘兵사냥 弱肉强食의 人肉먹기, 小林隆中將을 爲始한 司令部要員들의 集團 아사 등 密林 속의 참상은 筆舌로 表記할 수 없는 地上의 生地獄 그대로였다.
密林上空에는 中斷없이 晝夜로 監視하는 美觀測機가 날고, 間間이 B24, 雙胴록히트機에 의한 密林 無差別 盲爆 燒夷彈 投擲이 恣行되는가 하면, 중장비로 密林 稜線에 大路를 開拓하며 侵攻해 오는 戰車의 零距離 射擊 等으로 불태우며 前進하는 美軍에 밀려 끝없는 後退를 强要當하여 生存 可能性은 全無狀態에 이르렀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 돌아온 형님의 삶은 거의 천사일생(千死一生)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2) 내가 직접 들은 인육 먹는 이야기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분의 이야기에서 이다.
( 1960년 대 초, 동네 사랑방에서 우연찮게 듣게 된 내용이다. 그분의 조카는 현재 국회의원임)
(한국전쟁 중)후퇴하는 강원도 산속에서 있었던 일이다. 붉은 고추밭을 보고는 정신없이 빨간 고추까지도 다 따먹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있던 전우는 아사직전의 상태에서 죽은 적 인민군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먹었다는 이야기와 자신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나중에 고추밭을 발견하고는 붉은 고추까지 다 따먹고 배를 채웠다는 부분과 인육을 먹은 전우는 그후 식곤증으로 잠에 곯아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3) 조선시대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참고로 내용 전체를 옮겨 본다. 바로 대전 인근 연산(連山) 현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신대기근과 인육먹기>
조선 현종 1670년 경술년과 이듬해 1671년 신해년 연 이태 동안 있었던 대기근은 역사적으로 가장 비참했던 시기이다.
그래서 머릿글자를 따서 <경신대기근>이라는 말이 남아서 전해져 올 정도이다.
출처 : 현종개수실록 24권, 현종 12년 4월 2일 계미 3번째 기사 1671년 청 강희(康熙) 10년
자식을 삶아 먹은 사건에 대해 집의 이단석 등이 아뢰다 (국역원문. 원본 보기)
집의 이단석과 장령 윤리가 전계를 거듭 아뢰니, 상이 따르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연산(連山) 땅에서 일어난 자녀를 삶아먹은 변고는 실로 고금에 없던 바로서 차마 들을 수도 차마 말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아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하늘에서 타고난 이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궁핍으로 인하여 극악한 죄를 저지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실로 절박한 기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본현이 진구하는 정치를 착실히 하지 않았음을 이것을 근거로 알 수가 있습니다. 해당 수령은 절로 그 죄가 있는 것인데, 우선 해조의 회계와 조정의 처리를 기다리느라 아직 논계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 달이 지났는데도 처분이 없으시어, 죄를 진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도록 임지에 있게 하니, 나라에서 형법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곳의 진구하는 정치가 한결같이 방치되고 굶주린 백성들이 받는 피해가 날로 증가되고 있는 사실을 생각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연산 현감(連山縣監) 윤민도(尹敏道)를 잡아다 추문하여 죄를 정하소서."
하니, 상(*上: 왕)이 따랐다. 또 아뢰기를,
"전에 없던 변고가 도내에서 일어났다면 도신(道臣)이 된 자는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허물을 가지고 인혐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마땅한데, 충청 감사 이홍연(李弘淵)은 연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범연하게 장계하여, 마치 예사로운 일로 보아 넘기는 듯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 한 도의 진구하는 정치가 허술할 것이라는 것을 또한 이 일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파직하소서."
하니, 상이, 우선 무겁게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그 뒤에 금부가 조율하여, 윤민도는 고신을 삭탈하였다.
【자녀를 삶아먹었던 사람도 곧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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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執義李端錫、掌令尹理申前啓, 上不從。 又啓曰:
"連山地子女烹食之變, 實是古今所無, 不忍聞、不忍言之事也。 愛子之心, 人皆有之, 雖是蠢頑之類, 豈無同得之天, 而猶且自陷於窮凶極惡之地者? 實由於飢饉之所迫, 則本縣賑政之全不着力, 據此可知。 當該守令, 自有其罪, 而姑待該曹之回啓, 朝家之勘律, 尙未論啓矣。 今過屢月, 未有處分, 至令負罪之人, 久在任所, 邦家失刑, 莫此爲甚。 其賑政之一任抛棄, 飢民之日益受害, 尤不可不恤。 請連山縣監尹敏道, 拿問定罪。" 上從之。 又啓曰: "無前之變, 出於道內, 則爲道臣者, 所宜驚惕引咎之不暇, 而忠淸監司李弘淵以連山事, 泛然狀聞, 有若視之尋常者然。 其一道賑政之踈漏, 亦可推此而知, 請罷職。" 上命姑先從重推考。 其後, 禁府照律, 敏道奪告身。
【子女烹食人, 亦旋致斃云。】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8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구휼(救恤)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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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전쟁과 대기근의 참혹함은 일러 무엇하리오!
'"총알은 총구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밥심에서 나온다 " 라 는 말이 참으로 진리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쟁과 먹거리 :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다 실감할 화두인 것이다.
(2024. 8.12(월) 카페지기 자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