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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에 핀 꽃
<2008 한국 안데르센상 동상 수상작> / 우은경
“할머니, 잠깐만요.”
봉사 온 아이가 내 머리를 감기다 말고 친구를 불러대지 뭐야.
“미진아, 바가지, 바가지 어딨어?”
“할미 눈 따거 죽겠어. 어여 햐.”
나는 재촉을 했어. 샴푸가 눈으로 흘러 들어가잖아.
“네, 할머니. 미진아, 빨리빨리!”
녀석은 마음만 급하지 손놀림이 영 서툴러.
“주현아, 여기!”
녀석 이름이 주현이 인가 봐. 봉사하러 오늘 처음 왔다지. 여자애가 저리 덤벙대서 어쩌누.
“할머니, 때 밀고 나니까 개운하시죠?”
“때는 고사하고 땀이나 씻겼으면 다행이여.”
나는 퉁바리를 주었어.
‘뭐어, 봉사 도장만 받으면 된다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참았어. 아침에 마당에서 본 뒤로 미운 털이 박혔거든.
“할머니, 이제 나가서 옷 입으세요.”
주현이가 미지근한 물 한 바가지를 내 몸에 부었어.
“이 봐.”
목에 걸고 있는 수건은 무엇에 쓰려고? 나는 주현이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어. 그런데 녀석은 벌써 다른 할망구 등을 밀고 있는 거야. 바쁘기도 하겠지. 봉사하는 애들 다섯이서 늙은이 열 댓 명을 씻기려니 정신이 없기도 할 거야.
할 수 없이 끙, 소리를 내면서 목욕의자에서 일어났어. 드나드는 문까지 그리 멀지는 않더구나. 조금씩 걸음을 떼어 보았지. 바닥이 갓 잡은 생선마냥 미끄덩거려서 기다시피 했어.
드르륵.
문을 열었어. 한 여름 바람도 맨몸에 닿으니 차네.
“할머니, 금방 갈게요.”
옷 입혀주는 아이도 바쁜 모양이야. 저 땀에 젖은 윗옷 좀 봐라. 문을 열고 있으면 목욕하는 할망구들이 추울 것 같아서 서둘러 바닥으로 내려섰지. 그 때, 얼음 재치 듯 발이 죽 미끄러졌어.
쿵.
벽이 빙글 돌더니 천장이 보이는 거야.
“할머니!”
“어머나, 피!”
“빨리 사무장님 불러와.”
나는 일어나려고 윗몸을 일으켰지.
“할머니, 괜찮으세요?”
옷을 입혀주던 아이가 달려와서 나를 끌어안았어.
“몸이 흠뻑 젖으셨네?”
아이는 화가 났는지 목욕탕 안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어.
“물기를 닦아드렸어야죠. 할머니가 미끄러지셨잖아요!”
발가락에서 흘러나온 피가 누런 장판을 빨갛게 칠하고 있었어.
“죄, 죄송해요.”
주현이는 백지장 같은 얼굴로 목욕탕 문을 붙잡고 서 있었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무 말도 못하더구나.
나는 그 아이를 멍하니 보았어. 눈앞이 어질어질 하더니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거야.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그만 눈을 감았단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무장과 치료사 목소리가 들렸지. 침대 바닥이 뜨끈한 걸 보니 치료실인 모양이야.
“엄지발가락이 꺾이면서 발톱 밑이 찢어졌어요. 다섯 바늘을 꿰맸어요.”
사무장이 숨이 차는 듯 말하더구나.
“연이 할머니가 심한 당뇨를 앓고 계셔서 피가 멈춰야 말이지요. 결국 수혈까지 하고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아물 때까지 조심해야 한대요. 치료사 님이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저런, 큰 일 날 뻔 했네요. 제가 잘 살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말하는 치료사 등 뒤로 주현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어. 주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구나. 사무장이 눈치를 챘는지 주현이 손을 잡아 내 앞으로 끌었어.
“연이 할머니, 이 아이가 할머니 병원 다녀오시는 동안 집에도 안가고 기다렸대요. 내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어요.”
나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이제야 마취가 풀리는지 발가락이 몹시 아파왔어.
아침에 마당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더구나.
햇살이 좋아서 꽃구경이나 하려고 마당에 나섰단다. 담장을 따라 자란 넝쿨에 빨간 장미가 한참 곱게 피었거든.
‘자광원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오늘이 일요일인가?’
신작로를 내다보았어. 나를 찾아 올 사람이 없는 것을 알면서 말이야. 그런데 잘 빠진 자가용 한 대가 길을 따라 들어오더구나. 말끔하게 차려 입은 여자가 차에서 내렸단다. 조망만한 얼굴을 반이나 가리는 검은 유리 안경을 썼는데 얼핏 보아 마흔 살은 되는 것 같았어.
‘내 딸 진주도 저 이 만한 나이가 되었을 텐데.......’
나는 우두커니 서서 여자를 보았어.
자동차 뒷문이 열리고 열 두어 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뛰어 내렸지.
“엄마, 진짜 두 시간만 일하면 봉사활동 여섯 시간 인정 해 주는 거지?”
“엄마가 전화 해봤어. 하고 도장 꼭 받아와.”
“알았어. 근데 우리 집 근처에 이런 데가 있었어?”
“미진이 엄마가 알려주더라. 미진이는 일요일마다 온다니까 오늘 만나겠네.”
“일요일마다?”
“너도 미진이처럼 봉사도 하고 그래. 방학 때만 숙제 때우려고 동동거리지 말고.”
“됐네요. 우리 할머니가 계신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또 와. 난 도장만 받으면 땡이야.”
아이는 엄마한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소풍 나온 것처럼 폴짝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단다. 여자는 마음이 안 놓이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차에 올라탔어.
발가락이 점점 더 욱신거렸어. 화가 치밀어 올라왔지.
“재수도 없지. 이레 만에 하는 목욕인데 하필……. 때도 시원하게 못 밀고 발가락이나 다치고. 으이구!”
나는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어. 고개를 돌려보니 사무장이 주현이를 데리고 나가고 있더구나.
하룻밤을 치료실에서 보내고 방으로 왔어. 엄지발가락 하나 다쳤는데 도무지 걸을 수가 있어야지. 혼자 방에서 떠다 준 아침밥을 먹었어. 말 한 마디 없이 밥 만 먹으려니 모래를 씹는 것 같아. 그만 숟가락을 놓으려는데 누가 방문으로 머리를 쑥 들이밀지 않겠어.
“할머니, 저 왔어요.”
주현이는 벌써 들어와 내 옆에 앉았어.
“식사하셨어요? 제가 물 드릴까요?”
주현이가 방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선반에 놓인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가지고 왔어. 억지로 넘긴 밥 때문에 목구멍이 답답하던 참이라 얼른 받아 마셨지.
침을 꼴깍 삼키며 나를 보던 주현이는 가방에서 큼직한 봉지를 꺼내 내 무릎에 올려놓았어.
“이거… 설탕 없는 사탕이거든요. 엄마가 그러는데 당뇨 있는 분이 드셔도 된대요.”
“됐다.”
나는 사탕봉지를 주현이 앞으로 밀었어.
“할머니, 정말 죄송해요.”
바짝 다가앉은 주현이가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단다. 눈 꼬리를 내리고 어리광을 부리는 녀석을 보니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 내리더구나. 하지만 한두 번 오고 말 아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어.
“어여 가!”
호두 알 같은 주현이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거렸어.
“할머니가 저 때문에 다치셨는데 어떡해요. 그거 다 나으시면 안 와요!”
주현이는 눈물을 훔치면서 방을 나섰단다.
나는 엄지발가락을 내려다보았어. 붕대가 친친 감긴 발가락을 보니 진주의 파랗게 얼었던 발가락이 가물가물 떠올랐단다.
그 때 내 딸 진주가 다섯 살 이었지. 딸 하나 낳고 일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와 서방을 잡았다고 했어. 어린 애를 두고 종일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도 시어머니의 시퍼런 서슬은 수그러들지 않았어. 견디다 못해 새 출발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단다. 짐을 싸놓고, 잠든 진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했지. 이불 밖으로 나온 아이의 발을 덮어 주려는데, 엄지발가락이 얼어 있었어. 그러고 보니 엄마가 돼서 양말 한 번 제대로 신겨 주지를 못한 거야. 울면서 아이 발을 주무르다가 그만 날이 새어 버렸단다. 시어머니가 욕을 퍼붓는 날이면 발목 잡힌 내 처지가 어찌나 답답했던지.
‘저 애도 그때 나처럼 답답하겠구나. 내 발가락 때문에......’
나는 주현이가 두고 간 사탕봉지를 만지작거렸어. 슬그머니 사탕 한 개를 입에 넣었단다. 박하 내음이 입 안에 퍼졌지. 진주가 커서 회사에 다닐 때, 월급을 받았다며 한 봉지씩 사다 주던 박하사탕 생각이 나더구나. 하긴, 흔한 것이 박하사탕이니까.
일요일이 되었는데 다친 발가락 때문에 목욕탕에 갈 수가 있어야지. 사무장한테 발에 비닐봉지라도 씌워서 씻겨 달라고 했더니 안 된대. 어제 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고 왔는데 늙은이라서 아주 아물 때 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나.
“킁, 킁”
몸에서 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더운 날에 방에만 있자니 땀을 좀 많이 흘렸게.
“할머니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 했지 뭐야.
“저, 들어 가도…돼요?”
주현이는 방문 밖에 서서 내 눈치를 살폈어.
“왜 또 왔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슬쩍 입가에 웃음이 번졌지.
“다른 할머니들은 오락실에서 비디오 보시던데 왜 혼자 계세요?”
주현이가 눈웃음을 치며 다가와 앉았어.
“할머니, 발가락에 붕대 풀었네요? 와, 다 나았나 보다.”
“실밥 풀었으니 다 나았지 뭐.”
“정말 요? 신난다.”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주현이는 뭐가 생각 났는지 가방을 뒤적거리더구나.
“할머니, 이거요.”
“화투 아녀?”
“시골에 계신 우리 할머니도 되게 무서우시거든요. 근데 아빠랑 화투 칠 때는 막 소리 내서 웃으세요. 할머니 웃으시는 거 보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화투 칠 줄이나 알어?”
“그럼요, 설날 어른들 치는 거 많이 봤어요. 잘 모르면 할머니가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웬 걸. 주현이는 알맹이가 뭔지 껍데기가 뭔지도 모르더라. 그래도 가르치며 치는 재미가 솔솔 하더구나. 이것저것 물어보는 주현이가 귀여워서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한 시간이 넘게 앉아 있었단다.
오락실에서 돌아 온 할망구들이 부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어. 너 나 할 것 없이 찾아 올 피붙이라고는 없는 처지니까. 나는 주현이가 손녀라도 되는 양 어깨가 으쓱했지.
“아가, 각설이타령 한 자락 들어 볼 껴?”
나는 기분이 좋아서 웅얼웅얼 노래를 불렀어.
“일 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이 자나 한 자나 들고나 보니 우리 딸 시린 발가락에 복숭아 꽃이 피어나네. 삼 자 한자 들고나 보니……”
“할머니, 노래도 잘 하시네요. 근데 노래가 되게 웃겨요.”
주현이가 재미있는 듯 깔깔거렸어. 진주도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까르르 웃었지. 제 발가락 어서 나으라고 내가 고쳐 부른 노래인 줄은 몰랐을 거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할머니, 저 그만 갈게요.”
시계를 본 주현이가 화투를 주섬주섬 챙겼어.
“가려고?”
“식사 잘 하시고 발가락 얼른 나으세요.”
주현이는 생글거리며 일어섰어. 나는 사물함에 넣어 둔 비닐봉지를 꺼내서 주현이 손에 들려 주었어.
“이게 뭐예요?”
“과자여. 집에 가서 먹어.”
일주일 동안 봉사자들이 사다 준 과자를 모아 둔 거야. 지난 주에 주현이를 울려서 보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거든.
“할머니……”
주현이는 말 없이 봉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씩 웃어 보였어. 나는 괜히 콧등이 시큰거려서 맨손에 코를 팽 풀었단다.
주현이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문 밖에 진주의 뒷모습이 아른거렸어.
“엄마, 식사 잘 하세요.”
언제나처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 아이였지. 날마다 식초로 씻기고 연 뿌리를 찧어 붙여주었더니, 파랗게 죽어 안쓰러웠던 진주의 발가락에 핏기가 돌아왔단다. 진주는 예쁘게 자라서 결혼 할 나이가 되었어. 그때 벌써 나는 당뇨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였고. 진주가 신랑감을 데리고 집에 왔던 날 나는 진주를 심하게 나무랐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을 아껴 줄 사람이 아니었거든. 진주가 결혼을 허락 해 달라며 울면서 애원했지만 나는 끝까지 반대를 했지. 그것이 평생 행복한 진주를 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여느 날처럼 집을 나선 진주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구나. 내 몸이 건강했다면 어떻게든 진주를 찿았을텐데…….
나는 물끄러미 엄지발가락을 내려다보았어. 길게 자란 발톱이 눈에 거슬렸지. 나는 바구니를 뒤져서 손톱깎이를 찾아냈단다.
‘이 상처가 저 애와 나를 엮어준 인연의 꽃이야. 꽃이 지면 저 애도 진주처럼 떠나겠지.’
잠자코 엄지발가락을 바라보았어. 낮 달처럼 하얀 새 살이 얄궂어 보였지. 나는 손톱깎이 날을 새 살에 대었어. 손톱깎이를 잡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지. 손가락에 힘을 꾹 주는 순간,
“연이 할멈, 무슨 짓이야!”
방에 들어서던 순분이 할멈이 소리를 질렀어.
발가락에는 이슬 같은 핏방울이 맺히고 있었지.
“저 할망구가 돌았나 봐.”
“사무장, 사무장!”
사무장이 달려오고, 치료사가 와서 내 엄지발가락에 다시 붕대를 감았어.
“연이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사무장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를 안았어. 나는 붕대가 감긴 발가락을 내려다 볼 뿐이었단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다음주에도 주현이는 오지 않았어. 나는 방에 오도카니 앉아 방문만 바라보았어.
조그만 상처는 그새 아물어서 치료사가 붕대를 풀어준다고 했지.
“그냥 둬.”
“연이 할머니, 이제 딱지 앉았으니까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어. 치료사는 한숨을 쉬며 돌아갔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문 밖에서 사무장 목소리가 들렸어.
“그래, 고마워요. 잠깐만, 할머니 방에 다 왔어.”
사무장이 들어와서 손 전화를 내 귀에 갖다 대었어.
“할머니.”
전화기 저 쪽에서 주현이 목소리가 들렸어. 나는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갔지만 아닌 척 했지.
“왜?”
“발가락 왜 그러셨어요?”
“.......”
“할머니 발가락 아파도 저 이제 안가요. 저 때문에 다친 거 아니잖아요.”
주현이는 매몰차게 말 했어.
“그려. 오지......마.”
주현이는 훌쩍이는 것 같았어. 나는 가슴이 미어져 전화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말았어.
‘한 두 번 오고 말 아이였는데 내가 그걸 잊었어.’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엄지발가락에 감긴 붕대를 천천히 풀어내었단다.
여전히 자광원에는 봉사하는 아이들이 찾아왔어. 나는 그 애들을 보지 않으려고 방에만 있었어. ‘할머니’하고 살갑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행여 정이 들까봐 겁이 났거든.
보름쯤 지난 일요일에 주현이가 방으로 찾아왔어. 마당에서 따왔는지 장미 꽃 몇 송이를 들고 있더라.
“왜 왔냐.”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어.
“이 꽃 예쁘죠? 할머니 드리려고 따왔어요.”
주현이가 내 앞에 앉아서 내 엄지발가락을 살폈어.
“우와, 완전히 나으셔서 정말 다행 이예요.”
“또 발가락 보러 왔냐?”
“할머니 발가락 다 나으신 거 사무장님한테 들었는걸요.”
나는 주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어. 주현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더라.
“제가 꽃 꽂아 드릴게요.”
주현이는 물이 든 컵에 장미꽃을 꽂아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놓았어. 그리고 뭘 하는지 창가에 서서 부스럭거렸지.
“정신 사나워. 앉아.”
“저 오늘 일찍 가봐야 해요. 친구랑 약속이 있거든요.”
얌전한 치마를 입어서인지 오늘은 제법 아가씨 티가 나는구나.
“내도 갑갑해서 나가려던 참이여.”
나는 먼저 나서서 신발을 신었어.
우리는 마당으로 나왔지.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
‘그려, 곱게 잘 크거라.’
나는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어.
“가거라.”
나는, 단발머리가 나풀거리는 주현이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단다. 그만 가슴이 먹먹했어.
스르르 다리에 힘이 풀리더구나. 나는 방으로 들어왔어. 무심코 창가를 보니 종이로 만든 작은 액자와 카세트테이프가 놓여 있는 거야. 삐뚤빼뚤한 액자 모양이 영락없는 덤벙이 주현이 솜씨야. 액자 속에, 방글거리는 주현이 얼굴을 보자니 살며시 웃음이 나왔지.
나는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었어. 코맹맹이 목소리가 흘러나오더구나.
“할머니, 있잖아요. 오늘은 사무장님한테 전화해서 할머니 어떠시냐고 물어봤어요. 전에는 할머니 발가락이 어떠냐고 물어봤거든요. 왠지 자꾸 할머니가 보고 싶은 거 있죠? 그래서 내일 할머니 뵈러 가려고요. 그런데 할머니는 제가 보고 싶어도 저한테 오지 못하시잖아요. 그럴 때 이 사진 보세요. 그리고 제 목소리 듣고 싶으면 이 노래 들으시고요. 참, 제가 할머니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니까 엄마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으면 눈물을 다 글썽거리더라니까요. 이 노래가요, 외할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였대요. 그래서 엄마한테 배웠어요. 들어보세요. 아, 아, 이제 노래할게요. 일 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오니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이 자 한 자나 들고나 보니 우리 딸 시린 발가락에 복숭아 꽃이 피어나네......”
아주 오래 전에 흘려 본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 나는 발가락의 흉터가 고마워 오래도록 어루만졌지. 못난 흉터가 세월의 향기를 간직한 꽃으로 곱게 피어나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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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다운글 감사합니다. 정이 넘치는 글 이여요~
동화라고 하는데, 저는 이글 장르를 솔직이 모르겠ㅅㅂ니다. 감사합니다 행구님.
바쁜 왜요?님이 올려주신 눈물 핑-도는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봉사활동이란게 봉사받는 사람을 더 슬프게 만드는일도 있지요......
저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읽으며 양심이 좀 찔렸답니다. 잘 지내시지요 낭개님?
이런 글 저두 쓰고파요. 어여 팔뚝이가 나아야 .....
더바님 시작만 하시면 거침없이 쓰실 겁니다. 팔뚝이가 좀 쉬셔야 한다고 조언을 하면 잘 들으시고 대신 글 구상을 그 동안 멋지게 하셔요. 어서어서 나으시길 빕니다.
이른 새벽 눈물이 흐르네요. 자식이 있어도 외로운 분들이 많으시지요.요즘 엄마 아프신데 병원 자주 못가서 마음이 아프네요.
저도 노모가 계셔서 마음이 아립니다. 바람꼭지님의 어머님 어서 완쾌하시길 빕니다.
저도 엄마와 어린 조카를 생각하며 작은 글을 쓴 것이 동화글 같긴한데요. 아직 미흡하여 언제 기회되면 정리하여 올려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