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얘기에서, 지성은 에고에 대한 답이 아니라
사실상 에고가 정제된 것임이 분명해집니다.
옳습니다.
400대로 측정되는 지성은 의학과 기술 분야에서의 엄청난 성취와 함께,
과학으로 표현되어 사회를 이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성은 양날의 칼입니다.
지성은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것을 막아줄 수 았지만,
또한 핵부기와 독가스를 발명해 낼 수도 있지요,
400대는 여전히 형상과 낮은 힘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분자든 개념이든 말입니다.
한계는 형상 자체 속에 내재해 있고
헝상의 한계는 그것을 정제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섭을 통해서만 피할 수 있지요,
그래서 형상 너머로 가고자 소망하는 이들은
전통적으로 '영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비선형적 영역에 의지합니다.
사람이 낮은 힘(force)을 넘어 힘(power)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겻은
완고한 에고가 끈질기고 한껏 강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형상은 많은 노력을 요하는 반면,
힘의 은총은 엄청난 과제를 수월하게 성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힘의 독특한 성질이지 그것의 양이 아닌데,
왜냐하면 힘은 정량화할 수 있는 것의 영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 힘은 과정 속에서 소진되지 않고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촉매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면 공적인 삶에서 "미안합니다."라는 사소한 한 마디가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지를 보십시오,
대부분의 전쟁은 탐욕, 증오, 혹은 자부심의 수준으로 측정되는 의식 에너지 장에서 발발합니다.
자부심에 대한 해독제는 겸손함인데,
이는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허영과 가식을 포기하고 현실적 평가를 고려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겸손함의 이로움은 그것이 나중에 자멸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
'얼굴에 계란을 맞는 ' 수모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경손함이란 사실 한계와 매개 변수들에 대한
정확하고 현실적인 평가와 앎을 뜻합니다
이렇듯 지성은 부너확하지 않습니다.
지선은 보다 앞선 영적 앎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그릇된 도구일 뿐이지요
명석한 지성은 자체의 한계를 알게 되고 그래서 자신의 밖에서 답을 구합니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것을 최첨단 과학에서도 볼 수 있는데,
지금 과학은 의식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과학은 의식의 본성에 관한 이해 없이 의미 있는 진보를 이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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