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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May 21st Saterday:
Today is the Sketch Day at the Chiljang-ri, Ansung City with Saterday Painter Association Members
오늘은 안성 칠장리로 한국토요화가회 스캐치 가는날
아침 09:15 am 압구정 현대 백화점 공영 주차장 출발 -
83km 1시간 10분 걸리는 안성 칠장리( 부근의 칠장사 절있음).
극락마을!
점심은
닭백숙( 13,000 원 : 평소 최대 10,000 원보다 쎄다~ ㅎ).
오늘도 예외 없이 맑고 계절좋은 5월중순.. 야외 그늘에서 그림그리기 무척 좋은날입니다!! 목적지 안성 칠장리 도착하니 주위 한적하고 조용한....마치 시간이 정지한 시골동네( 마을 이름 : 극락마을) 입니다.. 일년중 이맘때가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입니다 ( 아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 시를 다기 봅니다!! 젊을때는 감흥없던 시가.. 나이 드니 새삼 좋아집니다.)
점심는 누룽지 백숙 13,000원이었는데.. 오랜만에 토종닭에 맛있는 백숙과 누룽지를 양도 풍족하게 나와서 모두들 흡족하게 잘 먹었는데.. 서울에서 멀지도 않아서 친구들과 다시 올려고 전화번호도 챙겼습니다!
오늘은 내가 가볍게 주대찬조를 해서 시원한 막걸리도 부담없이 서너잔 주위분들과 건배하면서....
동네가 작아서 사진 찍는 시간도 짧았다.. 그래도 이쁜 동네와 집등을 카메라에 담고.. 1시쯤 시작하여 파스텔 10호 3시반쯤 일찍 마쳤다...
4시에 작품 품평회때 멋진 작품들 챙기고 소개도 합니다
칠장사를 가보려 했으나...이곳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서 이곳 동네와 칠장서 사찰만 아래와 같이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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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인터넷 검색한 정보 임의적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김영랑의 모란아 피기까지
1934년 《문학(文學)》지에 발표, 1935년 간행된 《영랑시집(永郞詩集)》에 수록되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소월(金素月)이 진달래꽃을 이별의 징표로 형상화한 것과는 달리 영랑은 모란을 봄의 절정, 즉 봄의 모든 것으로 상징화하면서 삶의 보람, 삶의 목적을 거기에 귀일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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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리
Chiljang-ri, 七長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리(里)이다.
낮은 산과 고개가 많아 골짜기가 많다.
칠장리의 지명은 마을 남서쪽에 있는 준령에 신라 삼국통일 전 7세기 중엽에 자장율사에 의하여 개기하였다는 칠장사가 있고 그곳에 도를 닦는 칠현인이 있었던 까닭에 1914년 당시 칠장사 사찰의 명을 빌어 칠장리라고 불렀다.
자연마을로는 극락마을, 신대마을, 산직마을이 있다. 극락마을에는 광종 23년(972)에 혜소국사가 태어났으며, 당간 지주 등이 있어 불연이 많은 곳이라 하여 극락이라고 이름 붙였다.
신대마을은 칠장천이 가까운 곳에 새롭게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새터말이라고 한다.
칠장사가 있는 산직마을은 칠장산, 칠현산이 맥을 이루는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산직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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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七長寺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는 칠현산에 바짝 등을 기대고 안겨 있다. 앞으로는 철따라 바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창한 숲에 고색창연한 칠장사가 포옥 싸여 산도 절도 빛이 난다.
칠장사(漆長寺)라고도 불렸던 칠장사(七長寺)의 전설 또한 생명력이 있다.
고려 때 혜소국사(慧炤國師)가 일곱 도적을 제도하니 이들은 일심정진해 도를 깨달았다. 이 덕에 칠현산이 되고 칠장사가 되었는데, 한때 칠현사(七賢寺)라고도 불렀다.
임진왜란 때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혜소국사비의 신통력에 혼비백산해 돌아갔다.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를 이곳에 은둔시켜 백정 출신 도인을 탄생시키고 민중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모두가 부처의 정신이 살아 있는, 아름답고 통쾌한 전설이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 수도하고 입적한 고려 때 고승 혜소국사가 현재 비각이 있는 자리에 홍제관(弘濟館)이라는 수행처를 세웠고, 현종 5년(1014) 크게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불교가 억압을 당하던 무렵 1674년, 세도가에게 절을 빼앗겨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운을 겪었다. 얼마 후 거사 초견(楚堅)이 절을 찾아 중수했다.
고려 말 왜적의 피해가 극심할 때 충주 개천사에서 보관하던 나라의 사서(史書)를 이곳 칠장사로 옮겨 8년간 비장해 소실을 면한 일이 있다.
조선 선조의 부인 인목대비는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자 당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하여 칠장사를 원찰로 삼고 자주 찾았다. 그때 인목대비가 쓴 『금광명최승왕경』 10권 1질과, 자신의 한스런 심정을 토로한 시가 친필 족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전해오고 있다.
금강산 유점사에는 인목대비의 친필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이 전해온다고 한다.
손때가 묻지 않아 절로 감동이 이는 칠장사는 찬찬히 눈여겨봐야 할 보물들이 많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인 철당간이 절 입구에 서 있고,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인 사천왕상이 압도한다. 진흙 소조로 만든, 빛바래고 상처투성이인 사천왕상을 시멘트로 덧입히지 않고 그대로 놔둬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역시 오랜 풍상을 겪은 대웅전(보물 제2036호)이 힘찬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대웅전 오른쪽에는 봉업사터에서 옮겨온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좌측 언덕 위로는 보물 제488호인 혜소국사비가 있다. 이 밖에 절 입구에 14기의 부도와 절 뒤에 있는 수많은 부도가 칠장사의 면면을 말해주고 있다. 화려하고 번잡스런 것은 모두 피해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철당간지주:
칠장사 주차장에서 조금 못미처에 14층의 철제 원통 당간지주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한다. 지름 50㎝ 정도인 원형 철통은 현재 14층으로 11.5m가 남아 있지만 본래는 28층이었다고 한다. 그 위에서 칠장사를 알리는 깃발이 나부꼈을 터이니 장관이었을 게다.
당간지주를 지탱하고 있는 지주석은 매우 소박하고 단아하다. 지주석 사이에 견고하게 끼여 솟아 있는 이 당간은 풍수설에 관련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칠장사의 지형이 마치 배 모양과 같은 형국이어서 이 당간을 돛대에 비유해 세웠다는 것이다. 땅도 사람 몸과 같이 허약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이 허약한 부분을 보(補)해주기 위한 방법으로 탑을 주로 세웠는데, 칠장사 당간이 그런 전설을 지니고 있다.
철당간은 전국을 통틀어 몇 안 된다. 그 중 충북 청주 시내의 용두사터 철당간과 계룡산 갑사의 철당간이 유명하다. 청주 용두사터 철당간은 조성년대와 철통의 척수가 새겨진 명문이 있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칠장사 철당간은 조선 중기 작품으로 밝혀졌으나 명문은 없다. 초파일 때면 연등이 환하게 주위를 밝힌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이다.
소조 사천왕상:
전통사찰에 들어서면 대개의 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게 사천왕1)상이다. 불이문을 지나 절 가장 가까이에서 통과하는 문이 사천왕문이고, 여기에 절을 수호하는 동서남북의 신장으로 양쪽에서 2구씩 사천왕상이 자리잡고 있다.
칠장사 사천왕문도 그와 같은데, 사천왕상은 매우 다르다. 그 거대한 사천왕상이 진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이라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또한 정교하고 웅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사천왕상은 모두 악귀 위에 걸터앉았거나 악귀를 한쪽 발로 짓누르며 힘센 두 팔을 당장이라도 휘두를 듯 치켜들고 있다. 손에는 무기를 들었거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비파나 창을 들기도 했으며 얼굴에는 한껏 위엄이 차 있고, 왕방울 같은 두 눈으로 무섭게 쏘아보고 있다.
그러나 사천왕이 단지 무섭기만 하대서야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짐짓 무서운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속내는 한없이 부드러운 게 사천왕이다. 절 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말고 경건하게 참배하고 가라고 짐짓 경고하는 한편, 부처님 뵈러 오는 사람들이 신통하고 방통해 그들 곁에서 외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사천왕상을 찬찬히 뜯어보면 두 눈은 부릅뜬 듯하지만, 양 볼과 허연 이를 드러낸 입에는 비어져 나오는 미소가 감돌고 있다. 당당하게 여유를 보이고 있으며, 한편으론 해학미 넘치는 친근감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보관, 정교한 무늬의 갑옷을 입고, 더러는 부드러운 천의(天衣)를 나부끼며 절문을 지킨다.
이러한 칠장사 사천왕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일반적인 모습 중 매우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다만 세월의 풍화는 어쩔 수 없는 듯, 빛바랜 채색은 창연해 보이나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에 상처가 나 있어 안쓰럽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이다.
대웅전:
보물 제2036호인 대웅전의 건립년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조선 중기에 중창되고, 16세기에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고종 14년(1877)에 중건된 대웅전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빛바랜 단청이 고색창연하다. 새것을 덧씌우는 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칠장사 대웅전은 말해준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곱다.
대웅전 기단은 장대석을 5단으로 쌓았고, 원형의 초석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 집이다. 단정하면서 견고하고 장중한 무게감을 주는 것이 맞배지붕의 특색이다. 이러한 형식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소규모 사찰 대웅전에 거의 공통으로 등장한다. 아담한 절이 힘차게 느껴지는 눈맛을 주기 때문이다. 높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대들보가 그대로 앞뒤의 기둥에 걸리게 하였으며, 채색은 불화와 연화문으로 하였다.
법당 안에는 원만한 상호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특히 인중이 길고 윗입술이 약간 들린 본존불의 모습은 그저 위엄 있는 얼굴이 아니라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얼굴이다. 문수·보현 보살이 양 옆의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고, 본존 후불탱화와 지장탱·신중탱·칠성탱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탱화의 화기(畵記)는 모두 조선 고종 말년의 것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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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
백숙은 한자로
흰 백(白)에 익힐 숙(熟)으로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을 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힘, 또는 그렇게 만든 음식'이라는 뜻이다.
소, 돼지, 말, 잉어, 도미 같은 고기가 모두 백숙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맑게 끓이는 육류로는 닭이 가장 맛있어 흔히 닭으로 백숙을 만들다 보니 백숙 하면 닭백숙을 떠올리게 되었다.
닭백숙은 닭을 푹 고아서 그 국물에 찹쌀과 마늘을 듬뿍 넣고 끓인 죽이다. 닭을 오래 끓여낸 국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닭의 영양소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맛이 좋고 영양가가 많은 음식이다.
조상들은 복날이 아니더라도 여름철이 되면 하루쯤 날을 잡아 가까운 사람들끼리 얼마씩 추렴해서 뒷산 계곡을 찾았다. 잠시 더위를 잊고 피로도 풀며 영양 보충이나 하자는 뜻에서였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한 다음 시원한 나무 밑에 둘러 앉으면 커다란 솥에 삶아낸 닭백숙이 김을 무럭무럭 내며 등장하고, 굵은 소금에 꾹꾹 찍어가며 닭살을 발라 먹고 나면 미리 불려둔 찹쌀을 넣고 죽을 끓여 알뜰하게 한 솥을 다 비워냈다.
복날 물가에서 백숙을 끓여 먹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 지금도 이름난 계곡에는 닭백숙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즐비하다.
고소한 누룽지백숙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약재인 황기나 대추, 밤 등을 넣은 한방백숙이 인기인데 그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이 바로 누룽지백숙이다.
백숙은 원래 고기를 먹고 나서 찹쌀을 넣어 죽을 끓여 먹는 것인데, 아예 물에 불린 찹쌀을 압력솥 밑바닥에 깔고 닭고기를 얹어 삶아낸 것이 누룽지백숙이다. 닭 국물이 밴 누룽지는 쫀득하면서도 고소해 찹쌀죽보다 맛있는 별미로 통한다.
닭백숙과 삼계탕의 차이
삼계탕은 닭과 함께 황기, 밤, 은행 등 몸에 좋은 다양한 식재료를 넣고 끓인 음식이다.
닭백숙은 다양한 재료를 넣지 않고 닭에 물만 넣고 끓인 음식이다.
두 음식 모두 고기를 먹고나서 죽을 요리해 먹는 것은 다르지 않다.
첫댓글 작문들 또감사합니다 ~모란이피기까지 모란이지기까지 모란꽃을그려봐야하는데 쌩하니 그냥 지나 갑니다 ㆍ실력부족 탓으로 ㅎ ᆢ수고하셨습니다
박선생님 감사합니다 ^^
세월은 흘러가도 떠도는 인생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