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내리쳐도 한 틈도 허락하지 않는 꽁꽁 얼어붙은 텃밭에 朔風을 이겨내고자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푸른 잎을 틔운 봄동과 시금치,
형편 없이 웃자라 시들은 쑥 덤불 속에서
앙증스러운 새파란 싹을 틔우는 쑥들을 바라보며 빨리 훈훈한 봄바람이 이들을 맞이해 주기를
바라며 얼마나 긴 겨울을 보냈었던가.
이제 헐벗은 두릅나무에도 움이 트니 그날도 머지않았다.
나는 보건소에 들어가 두 대의 자동 혈압계 앞
대기의자에 앉아
치사한 우월감으로 돼먹지 않은 選民意識에 젖어 있는 '니도 사또 나도 사또들'이 출현해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 참새는짹짹, 오리는 꽥꽥, 까마귀는 까악까악, 비둘기는 구구 그러면 제비는 어떻게 울까요"라고 방영하는 국영 TV를 보며 차례를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재고 일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서너 번 재고 일어나고, 傍若無人한 사람은 혈압계가 이상하다며 정상 혈압이 나올 때까지 측정하겠다고 아예 웃통을 벗으며 대기 중인 사람 보란듯이 혈압계를 두드린다.
혈압을 낮추려면 겸손해야 하는데 겸손도 그냥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의 덕을 배워야 한다.
오래살려고 혈압 재로 왔다가 혈압 올라 하직인사도못하고 혈압으로 저 세상 갈 것 같아 혈압 낮추려고 두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후문으로 동래중학교에 운동하러 들어간다
동래중학교 정문 큰 향나무 옆에 '전통의 동래, 미래의동량'이라는 글귀를 새긴 교훈석이 있고
그 언젠가 본 것같은 후문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는 ' 바르게 걷자 ' 라는 교훈석이 있다.
이 두 교훈석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 참되고 부지런하여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 라는 큰 돌이 정문에 가로로 놓여 있었다고 기억되는데
내가 학생들을 데려 오기 위해 여러 학교 정문에 기다리며그 학교 교훈석에 새겨진 글귀를 유심히 보았기 때문에
이건지저건지 긴가민가 헷갈렸지만 아무래도
교사 개축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전통의 東來, 미래의棟樑 ' 이라는 글귀는 너무 어렵다.
' 바르게 걷자 ' 는 '걷는자는 걷는거만 생각한다'
라는 뜻인가 너무 함축적 표현이라 좀 그렇다.
후문 옆 잘 지어진 정자에 드러누워 담배 한대
피우며 앞을 보니 실내체육관 및 테니스장 이용 주민들이 고급 차를 타고 들락날락 거린다.
갑자기 눈에 거슬릴 뿐만아니라 순순히 받아 들여지지 않아 꽁초를 땅에 버리고 발로 비벼댔다.
2004년 신축한 도서관인 청람관 옆에 2009년 개축한 실내 체육관인 송백관은 높다란 천장에
샤워실 등 부대시설이 멋있게 갖추어져 있지만
내게는 月謝金이 서너 달씩이나 밀려 자주 불려다니던 축축한 추억이 가슴에 스며 있는 곳이다.
온종일 지척지척 겨울 바다에 비가 내리더니
고깃배가 일으킨 흰 물이랑이 사라지듯이
펜스 위에 나란히 앉은 기러기들도 떠나고 없다.
겨울바다를 좋아했던 마누라도 가버리고
친구들의 얼굴도 모두 삼켜버린 겨울바다
내 가슴 한 귀퉁이도 겨울바다에 침몰된다.
그 겨울엔 을사년스러운 바람과 더불어 비가 자주 왔다.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임시직으로 일하는 창고 보조원이 힘들어 그만 두겠다고 한다.
박봉에 고생한는건 맞다. 근데 이정도 노력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더벌수있다는 생각이들어 그만둔다면 그만 두라
진정한 효도는 어머니 곁에서 간병하기 보다는
다소 힘들어도 활기차게 꿈을 펼치는 자식이 되는거다
무기력하게 살기 힘들어하며 지친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는 모습은 슬프고 어둡다
영양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한 땅에는 명품 소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사람도 고생을 많이 해야 큰 사람이 된다.
멋진 남자는 용기,결단력,책임감,배려,인내심 다섯가지를 갖고 있지만 최후의 승자는 결국 남들이 참지못하는것을 참아내어 살아 남은 사람이다.
학교 도서관이 지역주민에게 개방된다는 보도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司書에게
" 책이 외부로 대출이 됩니까? " 라고 하니
" 여기에 오셔서 보세요 " 라고 언짢은 투로 대답한다.
나는 도서관 개방이라는 의미를 이해 못하는
이 사서가 할 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걱정되어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대여섯 권을 뽑아 뒤적이다가 아무데나 꼽아 두기를 반복했다.
운동장으로 가는 복도 교무실에 젊은 여선생이 보여 내내 궁금했던 학교 성적을 알고 싶어
" 제가 이 학교 18회 졸업생
김욱곤 인데 학적부를 떼어 주세요 " 라고 하니 졸업생 명부를 보더니 그런 학생 없다고 한다.
이 선생님이 옛날옛적 졸업생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조금은 당황했을테고 더구나 한자로 쓰인 이름들을 읽기에 어려우리라 여겼지만 나는 혹시나
월사금이 미납되어 졸업생 명단에 빼버렸다 싶어 순간 아찔했다.
" 저 아직 이 학교 다닐 때 유일한 여선생인 강소희 선생님도 기억하는 데요"
졸업생 명부를 받아 金郁坤이란 이름을 찾어 주었다.
다시 명부를 살피더니 1,2,3학년 성적이 기록된 서류를 복사해 준다. 성적을 보자마자 떠 오른 얼굴은 나에게 시립도서관에서 많은 도움을 준
성지 국민학교 38회 같은 반 허 ㅇㅇ 이다.
이 친구는 서울에서 같이 자취를 하며 반찬이라곤 간장 한 종 바리로 " 야 ㅇㅇ아! 쌀밥의 단백한 맛을 즐겨보자 " 라고 하며 끼니를 때웠다.
내가 낙향한 이후로 서로가 바빠 연락을 끊고
지내왔는데 그때야 EBS에서 본 기억이 났다. EBS에 연락해 물어니 방송에 출현
하고있는 선생님이 맞고 여의도 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한다. 오랜만에 연락해 옛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친구의 성품이 무던해 여자학교가 맞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번인가는 남새스러워 체육관으로 가지
않고 지금은 테니스코트이지만 그당시는 잡초와 잡목으로 우거진 덤불이었던 이곳에서 넷 잎 클롤버를 찾았지만 ' 내 복에 무슨 행운을 갖겠다"라고 하며 바닥에 벌렁 누워 푸른 하늘 떠가는 흰 구름만 세고 있었다.
텃밭에 심어진 고추밭 사이사이에 심겨진 상치,쑥갓, 청경채 치커리 등을 보니 쌈 즐기는 선생님의 얼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