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그냥 경계인 것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 가장 좋습니다.
사량思量으로 계획을 세워 무엇이 되게 하기에 앞서
오직 믿고 맡김으로써
진리의 근본 원천으로부터 샘이 솟아나게 하십시오.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누구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체험을 하게 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무한한 능력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에게 저절로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체를 다 놓고 가다 보면
자동적으로 무심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에 무심이 되니까
오히려 다 뚫리게 됩니다.
사방이 다 뚫리면 모든 것이 다 들어옵니다.
반면에 경계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면
우선 내가 움직일 수 없으니
전체를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내게 다가오는 경계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이미 닥친 경계를 거부하는 것은
더 더욱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어떤 경계라도
올만한 까닭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비록 그 인과관계의 전말을 내가 모른다 해도
거기엔 반드시 내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으로써
경계를 겪게 되는 것이니 일단은 내 탓입니다.
고로 다가온 경계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할 뿐 더러 거부한다고
거부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경계라도
맑은 거울에 비친 풍경을 보듯이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있음으로써 경계가 있고,
그 경계마다 내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는다면
차라리 그 경계 앞에서 숙연해 질 일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경계란 내가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거부할 게 아니라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를 길잡이로 삼아
한 단계 더 발전해 보리라.’고 한다면
그는 이미 수행자입니다.
그는 보다 더 높은 차원을 향해
크게 발걸음을 내디딘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싫은 경계가 있고 좋은 경계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잘못된 것 잘된 것이 뚜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계가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과거·현재·미래를 다 종합해서 본다면
잘못된 것 잘된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행자의 입장에서라면
잘못되고 잘되고 조차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내 사량思量으로 보니까
싫고 좋고 잘되고 잘못되고 가 있을 뿐입니다.
잘 될 것이다 안 될 것이다 하는
판별을 하게 되는 것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경계가
다 나의 진화를 돕는 길잡이라고 한다면
잘못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잘되고 못되고는
내 사량思量일 뿐 경계는 길잡이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경계는 그냥 경계인 것입니다.
경계를 그렇게
거울에 비친 풍경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처럼 자연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엔 근심 걱정도,
초조와 불안도,
분노와 회한도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이니
어찌 자연스럽지 아니하리오.
거기엔 자만심도 우월감도
붙을 자리가 없을 터이니
어찌 자유스럽지 아니하리오.
다만 행동 그 자체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게 일체의
사량 분별이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오로지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 찬 행동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마다에 사량으로 토를 달고
분별로 색을 입히려 합니다.
이것은 누구 탓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다,
이것은 불운한 일이다,
이것은 내가 잘나서이다,
못나서이다.… 그럽니다.
참으로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계마다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고 해도
다가올 게 안 오고
이미 닥친 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쉽게 벗어날 일도 그 사량思量 분별 때문에
더욱 얽키고 섥키어 나를 옭죄게 됩니다.
내 행동만 시들해지게 만듭니다.
내 생명의 에너지만 손상을 입게 됩니다.
태양이 내려쬡니다.
바람이 붑니다.
비가 쏟아집니다.
그래도 나무는 자라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태양이 너무 뜨겁다고 원망하지도 않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탓하지도 않습니다.
폭우가 쏟아진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나무는 그럴수록
제 뿌리에 의지해서 제 뿌리의 힘을 믿고
역경을 헤치며 자랍니다.
나무의 생명 에너지는
다만 자라는 행동 그것에 충실 할뿐입니다.
내 생명의 원천,
그것만을 믿고 가십시오.
사량思量분별을 놓고 오로지 생명에너지로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막혔던 샘이 터져 용솟음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저 무한량의 에너지가
그대를 가득 채우고 넘쳐흐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잘되고
잘못되는 경계 따위가 걸리적 거리겠습니까?
경계는 그냥 경계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일이다.
2024년 07월 16일 오전 05:41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