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프랑스어: Gilles Deleuze, 1925년 1월 18일 ~ 1995년 11월 4일)는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작가이다.
1960년대 초부터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들뢰즈는 철학, 문학, 영화, 예술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저작들을 썼다.
가장 인기를 누린 책들은 펠릭스 과타리와 함께 쓴 《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1972년)와 《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2》(1980년)가 있다.
Deleuze said of Spinoza that he was the Christ of philosophy.
들뢰즈는 스피노자에 대해 그가 철학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Gilles Deleuze called Spinoza the "Christ of philosophy" because he believed Spinoza was a figure who, like Christ, was both a figure of philosophical redemption and a radical thinker who broke with the "Mosaic laws of philosophy".
For Deleuze, this meant Spinoza had achieved a pure plane of immanence, free from transcendent ideas like God or finality.
Spinoza is seen as a revolutionary figure who provided the foundation for a philosophy of immanence and who also championed reason over dogma.
Spinoza or Nietzsche are philosophers whose critical and destructive powers are without equal, but this power always springs from affirmation, from joy, from a cult of affirmation and joy, from the exigency of life against those who would mutilate and mortify life. For me, that is philosophy itself.
Gilles Deleuze
《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글 : 이유진
들뢰즈·과타리는 혁명적 시민들이 왜 금방 보수화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몰두했다.
“왜 인간들은 (…)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울까?”
“대중들은 파시즘을 원했다. 설명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 어떤 해법, 그 어떤 혁명의 길이 있을까?” 두 사람은 자본주의의 함정과 해법을 규명하려 했다.
19세기 자본주의 초기를 살았던 마르크스와 달리, 들뢰즈·과타리는 1960~70년대를 거치며 자본주의의 정점인 신자유주의를 경험했고, 사람들이 이해타산보다 ‘무의식’의 욕망 구조를 따른다는 점에 주의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의 톱니가 돼 복무하는 이유는 ‘부채’를 갚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왜 정신분석이 비판의 대상이 될까?
태어나자마자 아이들은 이미 ‘사회 기계’의 부품으로 존재하고, 사회와 직접 연결된다는 것이 들뢰즈·과타리의 통찰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핵가족 삼각형’ 속에 부모의 사회적 지위, 혈통, 재산 따위를 삭제하고 핵가족 관계의 문제로 봉합했다.
이 책의 부제가 ‘자본주의와 분열증’인 것도 정신분석학 비판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는 ‘분열자’를 배제하고 ‘유순한 주체’만 허용한다.
분열자는 노동자로서 상품이 될 수 없는, ‘오이디푸스 구조’에서 해방된 무의식이며 따라서 자연의 흐름에 가장 가까이 있는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혁명의 길”은 무엇일까? 도망, 벗어나는 것이리라. “이제는 자본에 대한 자발적 예속에서 도주하여 분열증으로서의 우리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이다.”
(김재인 박사학위 논문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
들뢰즈°과타리의 책 《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을 번역한 김재인 박사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1968년 5월 혁명(운동)에 대한 응답이며 자발적 예속에 대한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68운동 또는 혁명
1968년 5월 혁명
시위대의 구호
Il est interdit d'interdire !
It’s forbidden to forbid!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1968년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운동을 의미한다.
20세기 후반 서구권에서 일어난 사회 변동 중 가장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넓은 의미에서는 1960년대 초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일련의 전 세계적 사회 운동을 의미하며, 보다 좁은 의미로는 1968년 5월~6월 사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일어난 대학생 주도 소요 사태를 가리킨다.
학술적으로는 후자의 의미로 쓰일 때도 많지만, 대중적으로는 전자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던 기성세대는 68 운동에 동의하지 않았고 68 운동의 당사자들도 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 자유주의, 아나키즘 등 여러 사상적 다양성 때문에 점차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1968년 11월에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68 운동의 종식을 공약하는 리처드 닉슨이 승리하고, 1968년 6월에 열린 프랑스 총선에서도 드골파 정당이 압승을 거두며 68 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미국 한정으로 68 운동은 1972년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나 1972년 대선에서 이들의 지지를 받은 조지 맥거번이 참패하고 이후 정국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흘러가며 대학생 운동권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된다.
단기적으로 68 운동은 실패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서구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왔다.
학제 시스템의 개혁, 보수적 사회 분위기의 자유화, 성 해방론의 등장, 환경주의의 주요 정치 사상으로의 대두, 특히 유럽과 미국 사회를 수백 년간 지배해 온 기독교 이데올로기가 점차 붕괴하고 세속주의가 정착하는 등 그 여파는 엄청났다.
이를 두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68 운동의 유산을 해체하겠다는 정치가는 많지만, 그 정치가 본인조차도 68 혁명이 몰고 온 다양성의 가치가 없었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것"이라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68 혁명이 서구 사회에 몰고 온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으며, 그것이 서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논의만이 역사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