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안도 평양의 진산 금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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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22:31조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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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진산 금수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평양부의 진산은 부의 북쪽 5리에 있는 금수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금수산의 현재 지명은 모란봉이다. 명나라의 사신 당고는 그의 시에서 “모란이라는 신선 봉우리 우뚝 솟아 이 나라의 진산이 되었네. 내가 이제 부벽루에 왔다가 이 산마루에 오르니 흥이 그지없네”라고 하였고, 사도는 “말을 들으니 모란봉 위에 모란꽃이 벌써 늙었다네. 봉우리에 꽃 없다 한탄하지 마소. 봉 이름만으로 그대로 좋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보통강
을밀대는 금수산 꼭대기에 있는데, 평탄하고 훤칠하다. 옛 묵객들은 보이는 경치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감탄했다.
모란봉은 대동강 기슭에 있는 명산으로 그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해 천하제일강산, 즉 금수산이라고 하였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모란꽃 같다고 하여 모란봉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모란봉은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다. 대동강 동쪽 기슭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인데, 오랜 세월 동안 대동강 물에 부딪혀 이루어진 청류벽이다. 그리고 그 맞은편으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거의 남북 방향으로 능라도가 길게 가로놓여 있다. 능라도는 대동강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길이 2.7킬로미터에 둘레가 6킬로미터쯤 된다. 모란봉에는 고구려와 고려 때의 유적이 많다. 내성, 외성을 비롯하여 을밀대, 칠성문, 청류정, 부벽루, 전금문, 현무문, 동암문 등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금수산 자락 을밀대 부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을밀대는 금수산 꼭대기에 있는데, 평탄하고 훤칠하다. 대 아래층 안위에 누(樓)가 있어 이름을 부벽루라고 하는데, 보이는 경치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옆에 영명사가 있으니, 곧 동명왕의 구제궁이다. 안에 기린을 기르던 굴이 있는데, 후인이 비석을 세워서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굴 남쪽 백운탄에 바위가 있는데, 밀물에는 묻히고 썰물에는 드러난다. 이름을 조천석(朝天石)이라고 한다. 민간에 전하기를 ‘동명왕이 기린을 타고 굴속에서 나와 조천석에 올라서 천상에 주사하였다’고 한다. 이승휴가 “천상을 오가며 천정에 나아가니, 조천석 위에 기린이 날쌔도다”라고 한 것은 곧 이를 말한 것이다.
굴 북쪽에 춘양대가 있는데, 우뚝 솟아서 서쪽으로 관풍대 터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서남쪽에 누각 터가 있으니 이름을 다경(多景)이라고 한다. 경치가 부벽루와 더불어 서로 갑을을 다툰다. 서쪽에 높은 언덕이 있으니 이름을 봉황대라고 한다. 민간에 전하기를 ‘봉황이 와서 울었으므로 이름을 봉황대라고 한다’고 하였다.
평양을 둘러싼 평양성은 고구려 영양왕 8년(552)에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유리한 지형에 자리한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평원왕 28년(586)에 천도를 하였으며, 장안성 혹은 평양성으로 불렸다. 동쪽으로 대동강, 서쪽으로 보통강이 둘러싼 천혜의 요새지에 자리한 평양성의 대동문은 고구려 때인 6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나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지금의 대동문은 인조 13년(1635)에 개축하고 1852년에 보수, 1954년에 다시 수리한 것으로, 남한의 국보 제1호가 숭례문인 것처럼 북한의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기자가 도읍하였던 곳이며, 기자가 다스렸던 까닭에 9이(九夷) 중에서 풍속이 가장 개명(開明)하였다. 기씨가 1000년, 위씨 및 고씨가 800년 동안이나 도읍하였고, 한 나라의 중요한 진(鎭)이 된 지도 또한 1000년이 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방에는 아직도 기자가 만든 정전의 유지(遺址)와 기자의 무덤이 남아 있다. 나라에서는 기자의 묘 곁에 숭인전을 짓고, 선우씨를 기자의 자손이라 하여 전관(殿官)으로 삼아 세습시켜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중국 곡부(曲阜)의 공씨가 공자 묘를 받드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또한 평양은 산천의 형세가 기절(奇絶)하고 주몽 시대의 옛 흔적이 매우 많으나, 전해오는 말에 거짓이 많아 믿을 수 없다.
평양시내
대동강 옆으로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화려한 간판 없이 정돈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렇게 기록했지만, 여러 가지 기록들을 보아 고구려 때의 흔적이 가장 많은 도시가 평양성임에는 틀림이 없다. 평양성은 대동강변에 있는데, 대동강은 평안남도 대흥군 낭림산과 한태령에서 시작하여 황해남도 은율군 및 남포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대동강은 고구려 때는 패수 또는 패강이라 하였고, 고려 때는 왕성강(王城江)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 5대 장강(압록강ㆍ두만강ㆍ낙동강ㆍ한강ㆍ대동강)의 하나로, 길이가 450.3킬로미터에 달한다. 대동강의 주요 지류로는 덕천군 남양 일대에서 흘러드는 마탄강, 성천군 대양 일대에서 흘러드는 비류강,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과 평천구역 일대에서 흘러드는 남강과 보통강, 황해북도 송림시와 황주군 철도리 일대에서 흘러드는 황주천ㆍ재령강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평양의 진산 금수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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