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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에 대한 마귀의 세 번째 시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귀는 인간 내밀한 곳에 은밀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는 권력 욕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습니다.
니가 내게 한 번만 절을 하면 천하 만국을 너에게 주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마귀는 잠시 예수님을 떠났고, 예수님 3년 후에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달리셨을 때 나타나서 한 번 더 유혹을 합니다.
네가 사람이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십자가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나 그는 준엄한 심판을 받았고 그리고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권력욕,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 이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또 그것이 분출될 때는 매우 강렬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심리학자 머슬로우는 욕구 피라미드를 이론을 말하면서 제일 하층에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또 사회적 소속감의 욕구, 존중 욕구, 제일 마지막에는 자아 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이 존중 욕구 안에 우리는 이 자리에 대한 욕구, 어떤 직위, 어떤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구, 권력의 자리에 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이 다른 사람에게 먹힌다. 내가 한마디 하는데 사람들이 움직인다.
어떤 공동체를 내가 주도할 수 있다. 세상을 내 한 손에 넣고 주무를 수가 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누구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욕구는 존재합니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면 우리는 즉시 이런 욕구의 단계로 올라가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 권력욕은 마치 마약과 같습니다. 한 번 맛을 보면 이게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잘 마약도 처음에는 모르지만 그걸 한 번 두 번 먹고 나면 이제는 내 의지가 컨트롤을 할 수 없는 단계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권력의 이 권력욕에 잘못 뛰어들면 붙들리면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또 불행하게 되기도 하고 비참한 꼴을 당하기도 알면서도 한 번 이 맛을 들인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게 인간의 아주 내면에 있는 강력한 욕구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고사성어에도 권불 10년 화무 12롱 권력은 10년을 못 가고 붉은 꽃은 10일을 넘지 못한다 그런 뜻입니다. 이 권력의 무상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권력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 인생을 갈아넣어서 어느 정도냐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 자기 자식도 버리고 형제도 죽이고, 또 옛날에 친구를 친구가 정적이 되면 없애면서 짓밟으면서 그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겉으로는 리더십의 옷을 입고 사명감의 옷을 입기도 하고 역사를 위한 봉사라는 명분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권력을 휘두르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 얼마가 되는가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지고 뭐 가령 우리 역사에 세종대왕 같은 분들 그런 분들은 어쨌든 역사에 기여를 했잖아요. 이순신 같은 분들 아마 이순신 장군 같은 권력으로 올라가라고 하면 여기에 갈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워낙 고난이 많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권력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떤 그 계층 구조를 다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간의 욕망은 처음에는 그 자리에 순수한 의도로 갔다가도 금방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지배,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의 맛을 보고 변질되기가 일쑤입니다. 언젠가 그들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고 그들의 모습은 비참하고 초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권력의 전모입니다. 마귀는 그 권력욕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는 그 권력욕으로 그걸 자극해서 예수님을 유혹한 거예요.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어요.
딱 한 번만 내게 전하라 그러면 내가 이 천하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다른 복음서에는 내게 넘겨준 자기에게 그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확실히 주겠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하나님 잊어버리고 내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
얼마나 매력적인 유혹입니까? 예수님 예수님이니까 이것을 단호하게 거절했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겠어요? 딱 한 번만 하나님 모른다고 하고 그냥 굽신 절 한 번 하면 우상에게 절 한 번 하면 프랑스 대통령 자리를 주겠다. 그걸로 모자라면 미국 대통령 자리를 주겠다 그러면 아마 여기 거의 90 9%는 갈등할 거예요.
그죠?
갈등 안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그러네요. 이게 여러분 얼마나 매력적인 요구인지 모릅니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이면 세상을 얻게 된다. 로또 플롯 머신, 슬롯 머신 같은 유혹입니다. 딱 눈 감고 한 번만 하나님을 잊어버려 그리고 그러면 대박 나 그리고 난 다음에 다시 믿으면 되지 이런 요구와 같습니다. 오랜 노력, 오랜 과정 십자가 다 필요 없이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모든 것을 얻게 해주겠다.
오늘 마귀가 그 조건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권력의 자리에 가고 리더십을 얻게 되는 것이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뭔가 공동체를 위해서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있는 자기 그 욕망, 욕망에 이끌려서 하나님을 버리고 신앙과 진리를 버리고 얻으라고 하는 그 마귀의 유혹에 우리는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딱 특별히 딱 한 번만이라고 하는 이런 달콤한 유혹이 주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 자체를 부정하시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사용 방식입니다.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서야 한다는 거예요. 타인을 굴복시키는 힘의 리더십, 사람을 조정하는 교활한 영향력, 사람을 수단으로 쓰는 비인간적인 방식을 예수님은 거부하셨어요.
천국은 그런 리더십이 아닙니다. 섬김과 사랑,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으면 힘의 자리에 가면 이런 천국의 방식을 발휘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딱 한 번 타협하고 들어가면 그다음에는 그 노예가 돼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내가 어떻게 얻은 권력인데 또 정통성이 없으니까 늘 불안하니까 섬김보다는 폭력으로 섬김보다는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헤롯 대왕은 정통성이 없는 대왕이었어요. 이방인으로서 로마 당국과 사바사바 해서 유대의 왕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늘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기 자식도 죽이고 자기 부인도 죽이고 그랬습니다.
프랑스의 대혁명 얼마나 지금 프랑스 대혁명 하면 얼마나 이상적인 사건입니까?
그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가 프랑스에 오게 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좋은 의도를 가지고 혁명이 시작이 됐지만 그들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들은 그 전 왕정보다 더 선했는가 그렇지 않아요.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은 나중에 마치 자기가 신인 것처럼 행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도 단두대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게 권력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힘은 이 권력은 힘이 아니라 폭력이 아니라 섬김으로 작은 자가 돼서 남을 남의 종이 돼서 그들의 발을 닦아주면서 행하는 그런 리더십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너희 중에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이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길이고 리더십입니다. 오늘 사순절을 맞이해서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 이 말씀을 한 주간 동안 묵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길은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또는 이웃을 배반하고 얻는 어떤 권력이 아니라 어떤 힘이 아니라 단호하게 그것을 끊어내는 용기와 결단입니다. 우리가 가진 힘을 남을 지배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지배 권력 그러니까 대통령이나 큰 자리에 가는 것만 권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남을 지배하고 싶은 그 욕망은 우리의 일상에서 나타나요. 그래서 이 완장 하나만 차면 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회에서도 그러고 학교에서도 그러고 옛날에 우리 요즘은 한국이 관공서에 가면 너무 친절한데 우리 어릴 때 기억은 제일 무서운 분들이 면석이 일반 서민들이 우리 시골 같은 서민들이 가서 접하는 일선의 공무원인데 그분들의 눈에 밖에 나면 안 되는 거예요. 다 그분들이 얼마나 불친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그게 작은 작은 것이라도 힘의 자리에 갔을 때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부당하게 또는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왜곡된 권력욕이에요. 우리도 여기 프랑스에서도 많이 경험하죠. 언제 체류증 하러 갔을 때 저도 17년 동안 체류증을 했어요. 17년 동안 그래서 하도 그게 힘들어서 언제든지 체류증이 안 나오는 날 나는 파리를 떠난다. 하나님 뜻을 알고 근데 17년째 나와버렸어요. 그래요. 어떻게 지금 30년 넘게 살게 됐는데 가서 보면 그거 그 체류증 창구에 앉아 있는 분은 사실은 힘의 서열로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이 제일 무서워 그 사람의 그 펜대 하나의 내 일련의 운명이 걸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1년에 한 세 번을 간 거예요. 세 번을 약속 잡으러 가고 또 갔더니 서류 모자란다고 또 가고 또 해세피스 받으러 받아가지고 와서 다음 또 받으러 가고 네 번 갔네.
하여튼 그렇게 하면서 이제 괴롭히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그냥 써줘도 될 텐데 그날 부부싸움을 했나 이 사람이 어떨 때는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이 그날은 막 문제가 돼 그럴 때 이제 이 조그만 권력이거든요. 그런 거 하나 가졌을 때 그리고 더 이제 재미있는 것은 그분들이 정통 프랑니스인도 아니고 우리 같은 에트롱제 외국인들인데 자기도 그 과정을 겪었을 텐데 같은 마음으로 어쨌든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어떻게든 하여튼 내 느낌에는 어떻게든 하나라도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게 이제 부당한 그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거예요. 또 그래서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거나 어떤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내게 어떤 위치가 주어지면 최대한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섬기려고 하는 자세로 나가야 됩니다.
그러라고 그거 준 것이고 그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신이에요. 또 우리가 섬김의 자리에 갈 때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된다는 거예요. 섬김의 자리에 갈 때 또 섬기는 사람을 어떤 사람은 또 자기 밑에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멸시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것은 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거예요. 크고자 하는 자는 더 작은 자가 되고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자는 더 낮아진 자세로 서로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그 공동체는 천국이 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영광을 약속했어요.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영광. 그런데 그것은 일시적이고 썩어질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은 영원한 영광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영광. 그런데 그 영광은 이렇게 슬롯 머신 같이 한 번 딱 당겨서 한 번 딱 타협하고 얻는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 끝에서 얻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부담스러운 거예요. 마귀는 예수님에게 썩어질 영광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마귀에게 한 번만 절하면 십자가 안 져도 되지 않느냐 예수님은 본인의 마지막을 알고 계셨어요. 죽음을 향해서 가고 계셨어요? 십자가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아셨어요?
그런데 마귀가 그걸 알고 지금 유혹하는 거죠. 십자가 없이 딱 한 번 절하고 타협하고 이 영광을 얻어라.
여러분 얼마나 달콤한 유혹입니까? 십자가는 너무나 예수님에게도 힘든 것이었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어라. 아버지요 할 말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게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기가 마셔야 될 그 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알고 계셨어요. 마귀의 말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말인지 몰라요.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지 몰라요. 한 번만 타협하면 그 잔 마시지 않고도 세상을 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마귀를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하여 쓰되 주 너희 하나님께만 경보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느니라.
여러분 주님은 영광을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십자가 끝에 있는 영광을 주님은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선택하셨어요. 우리에게도 영광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 후에 그 헌신의 고난 후에 충성의 고난 후에 얻게 되는 썩어지지 않는 영원한 영광.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이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십자가 메시지를 사라지게 하고 영광만을 얘기하게 하는 거예요. 그저 예수 잘 믿으면 병들지 않고 아무 고생 안 하고 하나님이 축복해서 잘 되게 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앞에 십자가가 있어요. 우리가 감당해야 될 사명의 십자가 우리가 짊어져야 될 십자가가 있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일을 감당한 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에게 끝없이 유혹을 합니다. 십자가 지지 말고 고난 당하지 말고 딱 한 번만 타협하고 마이도 아니야 딱 한 번만 그리고 영광을 얻어라 우리도 흔들려요. 이번에 한 번만 잘 마귀 말 듣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그렇다고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뭐 외면하실까?
저는 외면은 안 하신다고 봐요. 우리가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죄가 있는데 또 육신이 약해서 마음은 온니로되 육신이 약해서 쓰러질 때도 있는데 너 이번에 쓰러졌으니까 너는 다시는 기회가 없다.
우리 하나님 그러실 분 아니에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뭘 아끼고 뭘 기회를 안 주시겠어요. 그러나 이게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안 돌아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는 요 순간이 내 인생의 내 인생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을 해요.
다시 돌아올 수 있죠. 한 번 우상에게 절하고 또 세상과 타협하고 진리를 버리고 다음에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죠. 그러나 값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때 내가 비록 이것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고 큰 손해를 봐도 특별히 하나님과 관계된 신앙과 관계된 부분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취하지 않겠다 하면서 그 신앙의 결기를 한 번 딱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목하신다 이런 말씀이에요. 다시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러시진 않으시겠지만 하여튼 표현을 하자면 저런 애가 있었네 저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인생이 된다 이런 말씀이에요. 그 순간 우리는 그 순간을 만들어야 됩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기서 타협했더라면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길을 갈 수 없어요.
우리가 이런 순간을 포착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은 어떤 부분은 매우 유연해야 됩니다. 율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정제하고 다른 사람을 재단하고 막 정말 바늘 한 뜸 들어갈 자리에 없을 만큼 아주 빡빡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고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어요. 어떤 부분은 아주 유연하게 톨레랑스를 가지고 대해야 될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부분은 저렇게 여유 있고 저렇게 유연하고 똘레랑스가 있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단호해야 될 부분이 있다 이거예요.
어떤 부분이냐?
하나님과 관련된 부분이에요. 그것은 프랑스인이나 한국인이나 관계없어요. 누구든지 이 부분은 우리가 양보할 수 없어요. 단호해야 되고 엄격해야 되고 철저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타협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우리 교회가 그것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어요.
가령 지금 어떤 나라는 설교 시간에 동성애를 성경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설교를 하면 그게 법에 저촉돼서 감옥에 가야 돼요.
언젠가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시다. 이렇게 설교하면 목사가 감옥에 가는 날이 와요. 이미 그런 일들이 여기저기 시작되고 있어요. 프랑스도 이미 그런 법들이 통과됐기 때문에 언젠가 제재가 올 수도 있어요. 성경에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우리가 믿는 절대적 기독교의 진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할 때 하나님을 부인하라고 할 때, 우리는 그때 단호하게 목숨을 걸고라도 비록 고난을 그 일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절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들은 훨씬 더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이 좋아요.
하나님은 일편단심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의 날에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주님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열국을 다스리는 축복을 허락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날에 받는 영광 그것이 세상에서 한 번 타협하고 누리는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십자가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권세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유혹에 혹시 속고 있지는 않습니까? 딱 한 번만 타협해 십자가 지지 말고 고생하지 말고 얻어 내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우리는 이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이제 섬김 이 십자가의 도 그 하나님 나라의 이 윤리를 잘 알아서 열심히 섬겨 마더 테레사 같은 이런 분들 있잖아요. 열심히 우리가 교회에서도 섬기고 밖에서도 섬기는데 어느 날 이 섬김으로 인해서 추종자가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순간이 오고 영향력이 생기고 어느 날 그 영향력으로 인한 만족감과 쾌감이 올 때가 있어요.
이게 처음에는 예수님처럼 섬겼는데 어느 날 그거 괜찮은 거예요. 이게 자기도 모르게 무감각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어느 날은 그 영향력이 타인에 대한 통제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는 주의해야 돼요. 섬김이라는 아주 고귀한 이 가치가 또 하나의 새로운 옷을 입고 권력욕의 또 다른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지배자가 아닌 섬기는 자로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