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집과 땅이 논란이다. 집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곳이요, 땅은 식(食)을 해결하는 필요한 생존수단이다. 인간은 일찍부터 동굴, 흙, 나무, 풀 등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수렵과 채취로 먹을거리를 얻었다. 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다. 최근에는 집과 땅은 거주공간이나 먹을거리가 아니라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바닷물고기는 짝짓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집을 살피고 영역(땅)도 마련한다. 딱 그 만큼이다. 원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짓고 가꾸어 짝을 유인한다. 대표적인 생물이 봄의 전령사 주꾸미이다. 조개나 피뿔고둥(소라) 껍데기로 집을 마련하고 알을 낳는다. 주꾸미는 낙지, 문어처럼 머리에 발이 달려 두족류로 분류한다. 머리가 다리와 몸 사이에 있으며, 여덟 개의 다리 가운데 입이 있다. 얕은 바다에 모래와 흙이 섞인 갯벌에서 새우류, 작은 게들, 조개류 등을 먹고 자란다. 남도에서는 득량만, 서남해 섬과 섬 사이, 칠산바다 갯벌에서 많이 서식한다. 우리 지역 외에도 전라북도 곰소만 일대, 충청남도 홍원항과 천수만 일대, 인천지역 경기만 일대에서도 잡힌다. 주꾸미 잡이를 하는 어민들은 겨울철에 김 양식을 하고 봄철이면 주꾸미를 잡아 생활한다. 서해로 올라오는 봄꽃소식과 함께 주꾸미가 어시장에 올라오면 상춘객들의 눈과 입이 즐거웠다. * 다산은 ‘죽금어’를 좋아했을까 『자산어보』는 ‘준어’(蹲魚)’, 속명은 ‘죽금어’(竹今魚)라 했다. 그리고 ‘크기는 0.4~0.5척을 넘지 않는다. 형상은 장어(章魚)와 유사하나, 다만 다리가 짧아 겨우 몸길이의 반을 차지한다’고 했다. 여기서 장어는 문어를 말한다. 주꾸미를 소개한 내용은 다른 해양생물 소개내용과 비교할 때 매우 짧고 내용도 단순하다. 그 만큼 흑산에서 많이 어획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도 흑산도에서 주꾸미는 귀하다. 정약전의 동생 다산이 유배 생활을 한 강진 도암만은 주꾸미가 많이 서식한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 ‘어명고’에는 ‘쥭근이’라 했다. 그리고 두 종이 있는데 ‘조개껍질 속에 살아서 이름이 패소(貝鮹)이고’, 다른 하나는 ‘말리면 모양이 거미와 같아 지주소(蜘蛛鮹)’라 했다. 조개껍질에 사는 것은 산란기에 주꾸미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지만 ‘지주소’는 명확하지 않다. 전라남도에서도 쭈끼미, 죽기미, 쭈끄미 등으로 불린다. 김려는 『우해이어보』에 고지는 큰 팔초어(문어)와 작은 팔초어(낙지)를 닮았으며 ‘일어서서 머리를 들고 흰 장삼을 입은 늙은 중과 같으며 머리를 숙이면 농가에서 타작할 때 쓰는 높은 평상과 같다’고 했다. 가까운 종으로 단고지, 쌍두낙제, 육각문어, 포고제 등이 언급되지만 딱히 주꾸미를 지칭하지는 않았다. * 낙지보다 비싼 주꾸미 그동안 낙지 대신 먹는 것이 주꾸미였다. 낙지는 귀하고 주꾸미는 흔했다. 요즘 주꾸미 값는 낙지보다 비싸다. 이젠 바뀌었다. 낙지보다 주꾸미가 더 귀하고 비싸다. 이렇게 몸값이 오른 것은 주꾸미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틈을 중국산, 태국산, 베트남산이 차지한다. 1960년대 말 인천 어시장에서 주꾸미 한 쾌(20마리)에 250원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1킬로그램에 5천원이었다. 지금은 성어기에 3만원대, 귀하면 4만원을 호가한다. 이렇게 주꾸미 몸값이 오르니 덤으로 주던 것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충무김밥에 딸려 나오는 맵게 무친 주꾸미도 다른 재료로 바뀌었다. 어민들은 주꾸미를 잡는 방법으로 ‘소라방’이라는 어구를 많이 이용한다. 최근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조 조개껍질 등을 매달아 사용하기도 한다. 소라방은 60여 센티미터 간격으로 피뿔고동이나 피조개 껍질을 달아서 만든다. 그물로 설치해 잡는 방법도 있다. 안강망, 낭장망, 형망 등으로 수 톤에서 10여 톤에 이르는 주꾸미를 잡기도 한다. 낚시로는 9월, 10월, 11월 사이에 많이 잡는다. 인천에서 시작해 삼천포까지 서해와 남해의 가을낚시는 주꾸미 낚시이다. 낚시로는 어민들보다 생활낚시인이나 전문낚시인들이 주로 잡는다. 가을철이면 서해와 남해 대부분의 낚싯배가 출항하는 포구에는 20여 명을 태운 배가 수십 척에서 백여 척 조업에 나선다. 심지어 개인 레저보트와 제트스키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주꾸미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주꾸미낚시는 2010년 오천항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2011년 안면도와 홍원항으로 확대되었다. 지금은 가을철이면 서해와 남해 전 해안의 낚싯배가 주꾸미잡이에 나선다. 봄에는 산란을 해야 하고, 가을에는 어린 주꾸미이다. 주꾸미 어획량이 줄어드는 것을 놓고 어민들의 알밴 주꾸미 잡이와 낚시인의 가을 주꾸미잡이 책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쪽이나 주꾸미잡이를 금지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다만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낚시인들이 잡아야 할 양과 시기, 어민들이 잡는 어획량과 잡는 방법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 지역별로 주꾸미의 서식환경을 파악해 금어기를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 잔인한 사월, 주꾸미 짝짓기가 두렵다 주꾸미 한 마리가 품고 있는 알은 400개 정도이다. 수산물치고 산란한 알의 숫자가 적다. 주로 4, 5월에 산란을 하고, 어민들은 3, 4월에 집중적으로 잡는다. 그리고 자원보호를 위해 금어기는 5월부터 8월 사이이다. 알배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식탐, ‘알배기’라며 호객하는 상인, ‘알배기주꾸미축제’라는 이름으로 홍보하는 지자체 등 모두 주꾸미가 두려워하는 것들이다. 주꾸미는 소라나 조개 껍데기에 알을 낳고 나뭇잎으로 입구를 막는다. 소박하다 못해 친환경이다. 이를 알아차린 어부는 빈 소라를 줄에 엮어 바다에 던져 놓고 알밴 주꾸미를 유인한다. 주꾸미는 소라껍질에 신방을 차리면 어부는 소라를 엮은 줄을 걷어 올려 주꾸미를 잡는다. 이것이 ‘소라방’이라 하는 ‘주꾸미단지’ 연승어법이다. 전라남도에 장흥, 강진, 고흥에서는 겨울에 함평, 영광 등은 봄에 많이 한다. 서해에서는 안강망, 저인망(끌망)을 이용해 잡는다. 가을철에는 낚시로 잡는다. 4월은 주꾸미에게 잔인한 달이다. 알을 낳고 종족번식의 소명을 해야 하는데 바다에 알을 낳기 전에 밥상에 먼저올라간다. 오죽하면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했을까. 사정은 낙지도 마찬가지이다. 낙지는 여름부터 가을에 산란을 한다. 주꾸미나 낙지의 산란을 위해서라면 ‘가을 주꾸미, 봄 낙지’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 주꾸미, 보물을 건져 올리다. 주꾸미는 여덟 개의 다리마다 엇갈린 두 줄의 빨판이 있다. 부드러운 다리 살에 붙어 있는 빨판은 쫄깃쫄깃해 씹힘 맛이 있다. 빨판은 단순히 식객들의 식욕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쭈꾸미는 한 번에 4백 개에서 5백 개의 알을 소라껍질 속에 낳고 100여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부화시킨다. 이때 빨판은 끊임없이 알을 어루만지며 산소를 공급하고 이물질을 닦아 낸다. 그리고 충청도 안흥량에서 주꾸미 빨판에 붙어 올라온 도자기를 건져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몇 척의 고선박과 한양으로 올리는 각종 보물과 귀한 식재료 등이 발굴되었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도 주꾸미 덕에 만들어졌다. 주꾸미 잡이를 하던 어민의 소라방에서 알을 낳은 주꾸미가 입구를 막아 놓은 청자였다. 주꾸미는 낙지처럼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살짝 데쳐 먹는 것이 으뜸이다. 채소나 돼지고기를 넣고 함께 볶아낸 것은 어른만 아니라 아이들도 좋아한다. 먼저 몸통 안에 먹통과 내장을 제거하고 다리를 뒤집어 안에 입까지 잘라낸다. 그리고 굵은 소금으로 조물조물 주무른 다음 씻어낸다. 빨판에 붙은 갯흙과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더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다면 밀가루로 조물조물 해서 씻어내면 된다. 봄에 들판에 돋아나는 돌나물, 냉이, 달래 등 봄나물과 곁들이길 권한다. 봄이 짧아지고 여름으로 바로 갈 기세다. 밥상에서라도 봄을 붙잡아보자. 주꾸미는 눈 밑에 금테가 선명한 것이 좋다. 최소한 냉동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중국산은 몸통에 상처가 많고 색깔이 누렇다. 국내산은 매끈하며 검은 색을 띤다. 살아 있는 주꾸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중국산은 보호색 기능이 약화되어 있다. 국내산도 살이 통통하고 손가락을 눌렀을 때 탄탄하고 몸통 색깔이 진한 것이 싱싱하다.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연구지원센터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