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제게도 '오십견'이 찾아왔습니다. 매일 걷지만 스트레칭을 자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물리치료를 받는데 선생님이 오십견 치료에 쉬운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자꾸만 어꺼를 돌려주고, 늘려주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아플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치료가 된다고 합니다. 심할 때는 마취하고 어깨를 늘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오십견인데 60이 넘어서 왔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몸도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로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의 오십견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믿음이 약해지고, 의욕이 없고, 불평과 불만이 늘어나고, 기도 생활 보다는 세상의 일에 더 관심이 가지게 됩니다. 몸의 오십견은 증상이 있고, 불편하여서 치료받지만, 신앙의 오십견은 증상도 느끼지 못하고, 불편함도 느끼지 못해서 점치 심해지게 됩니다.
신앙의 오십견을 치료하기도 쉬운 방법이 없습니다. '회개'가 최고의 방법입니다. 회개란 어딘가로부터 빠져나오는 것, 이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갈구하고 찾는 회개에 있으며,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갈구하고 찾는 회개에 있으며, 어딘가로부터 빠져나온다는 것은 그동안 하느님 사랑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래의 지향을 어지럽히는 자유롭게 되는 회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키며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단죄했던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잡으로 다녔던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체험은 하느님의 뜻을 갈구하고 찾는 회개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닭이 울자,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 사도는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눈물은 무질서한 충동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회개였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상실에 대한, 고통에 대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강대국들의 위협 앞에 두려워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때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확실히 가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졌던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이 내릴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납니다. 알이 깨어지는 아픔이 없이 병아리는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힘들고 어려운 일은 있었습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절망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고, 장애물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품는 것도 우리의 선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양의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진흙탕에 빠질지라도, 옷이 더러워질지라도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에 안주한다면, 섬기려 하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많이 아는 될 것입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