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66/1009]임실任實치즈와 지정환 신부
추석 다음날, 논산에 사는 막내동생 부부가 명절인사를 왔다. 아버지를 모시고 임실치즈테마파크 나들이에 나섰다. 승용차로 10여분의 거리에 있는데도, 이곳을 처음 와보다니? 온갖 국화가 가든 전체에 만발하여 보는 이들의 얼굴을 환하게 하고, 가을하늘은 한껏 드높았다. 지난해까지 요란스럽게 치르던 ‘치즈축제’는 전대미문의 돌림병으로 취소되었으나, 연휴인지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스크만 안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화덕쿡’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려는데, 화덕피자는 1시간이상 기다려야 한 대서 고르곤졸라 피자와 까르보나라스파게티와 새우레조또를 시켰다. 이런 음식은 난생 처음 먹어본다며 막내동생 반색을 한다. ‘촌닭 동생’에게 뒤늦게나마 사줄 수 있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임실任實’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누구든 주저없이‘치즈’라 할만큼 ‘임실 치즈’는 전국적으로 홍보가 제대로 되어 있다. 오수獒樹의 의견義犬설화도, 구한말 이석용 의병장 이야기도,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의 일화가 숨쉬는 성수산聖壽山의 상이암上耳庵도 있지만, 임실치즈야말로 임실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우리 어릴 적 완전 ‘듣보잡’인 치즈가 언제부터 ‘임실 하면 치즈’가 됐을까?
점심을 하면서 아버지와 동생부부에게, 간간히 언론에도 비친 벽안碧眼의 지정환池正煥신부 이야기를 아는대로 들려드렸다. 시간이 없어 근처에 있는 ‘지정환홀’과 영상을 보지 못한 게 아쉬었기 때문이다.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하신다. “세상에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다 있구나” 검색을 하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얘기를 할 정도로 사전지식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한번 읽거나 보면 잘 잊지 않는 ‘내공’이 있어 가능한 일, 총기聰氣를 물려주신 부모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다음은 그 얘기의 전문이다. 예수, 석가, 공자님 말씀만 최고이고 중요한 게 아니다. 알아야 할 위인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들의 삶과 사상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시는 분도 많지만 누구라도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겠다.
1931년 벨기에의 귀족집안에서 3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고교시절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1959년 처음 입국하여 전주교구 전동성당 보좌신부가 되었다. 당시 김이환신부가 원래 그의 성인 ‘디디에’에서 ‘지池’를, 정의正義를 빛내라煥는 뜻으로 ‘지정환’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2016년 정부에서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하여 한국국적을 부여했다. 이로써 지신부는‘임실任實 지씨 池氏’가 된다). 61년부터 3년간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일하며, 당시 가난에 찌들은 농민들을 위하여 100헥타아르의 간척지를 조성하여 농민들에게 제공했다. 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가 되면서 부안농민들에게 했던 것처럼 산양의 젖을 치즈로 만들어 제공할 생각을 했다.
67년 부모의 유산 2000달러를 한국 최초의 치즈공장 설립에 아낌없이 썼다. 치즈를 생산하는데 시행착오도 많았다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농민들과 견학하면서 69년 처음으로 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임실치즈의 산증인, 산파産婆로서 임실치즈의 효시嚆矢가 된 것이다. 주변의 비아냥이나 질시를 이겨내지 못했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자 운영권과 소유권을 모두 임실주민협동조합에 100% 양도했다.
70년대에는 ‘정正의를 빛내라煥’라는 이름답게 유신체제 반대운동에 나서 추방위기에 여러 번 몰렸으며, 광주항쟁때에는 트럭에 우유을 몽땅 실고가 시민군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80년초 지병인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차 고국인 벨기에에 3년 있다가 84년 귀국,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공동체인 ‘무지개가족’을 설립, 운영했다. 2002년 호암상 수상상금 1억원을 쾌척 ‘무지개장학재단’을 만들었다. 2016년에는 지역산업진흥 유공자로 대통령 포장을 수상했다. 2003년 원로사목자로 추대되어 은퇴한 후 전북 완주에서 무지개재단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 2019년 4월 13일 향년 88세로 선종善終했다.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유족들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함으로써 신부의 대한민국을 위한 평생헌신의 정신을 기렸다.
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지정환 신부. 그 이름을 부르기에도 외경畏敬스러운, 최고의 신부를 우리는 가졌다. 인도가 테레사수녀를 가졌듯이. 어찌 존경스럽지 아니하겠는가. 위인 한 분의 삶과 사상이 세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지 않은가. 세브란스병원을 만들고 인술을 베푼 원씨 4대 가족는 너무 유명하여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나는 이런 위인을 또 한 분 알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을 만들어 물려준 민병갈 선생. 생전에 뵌 적이 있는 게 고마울 정도이다. 세상엔 참 공의 公義롭고 의로운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세상이 그나마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 아버지를 비롯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10여분 특강을 할 수 있어 내 자신이 대견할 정도로 좋았던 추석연휴. 새삼 대한민국의 발전과 농민들의 상활을 개선하려 애쓰신 지 신부의 영면을 빈다. 임실군은 곳곳에 ‘지정환신부 송덕비’를 세워드려도 부족할 일이지 않겠는가.
첫댓글 지정환 신부님의 중증장애인 무지개가족
목욕봉사를 30년쯤 했나보네요.
모두가 휠체어가 아니면 거동을 못하는 분들만
모여살지요.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고있지만 마음은 무지개가족에 가있습니
다.정말 대단한 신부님이지요.
평생을 봉사만하다가 가신분
소록도 두 수녀님도 멋지시지만 지정환신부님도 더 멋진 성인 같으신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