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함께
손 원
스타(star)란 대중들로 부터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또는 장성 계급인 별을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릴 때 어른들은 우량아를 보고 "그 놈, 장군감인데"라고 했다. 좀 커서는 누가 물으면 "커서 장군이 될래요"라고 했다. 물론 인기 있는 연애인이나 운동선수도 좋지만 그 분야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기에 예견도 어렵다. 반면에 겉모습으로 보아 우량아는 장군감으로 보아도 무난하다. 어려서 누구나 한 두 번은 장군감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군이란 단어에 익숙해 져 누구나 장군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커 가면서 장군의 꿈은 멀어져 간다. 장군의 모자나 견장에 빛나는 별은 TV로만 볼 수 있는 선망의 대상이일 뿐이다. 군 입대를 하면 쉽게 장성을 뵐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먼저 군대를 다녀 온 선배들에 의하면 군 생활 3년 간 장성을 대면한 적이 없었고, 사단장을 먼 발치에서 한 두 번 봤을 뿐이라고 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요즘 똥별 운운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스타는 흔치 않을 뿐더러 존경받는 선망의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나와 군과의 인연이라면, 20대에 보병 부대에서의무복무를 했고, 50대 후반에 국방부에 파견근무를 했다. 국방부 파견근무시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2015.10.2. ~ 10.11.)지원을 위한 파견 이었다. 이 대회는 4년마다 개최되며 당시는 6회째로 117개 나라에서 7천여명의 군인선수와 임원들이 참가해 24개 종목에서 기량을 겨루었던 군인올림픽이었다. 나는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조직위 선수촌부장을 맡았다. 조직위는 국방부 산하로 위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예비역 4성장군 이었고, 사무총장은 현역 소장, 그 아래로 2본부, 9개 지원부서가 있었다. 부서장은 현역 대령과 중앙 및 지방정부에서 파견 온 3~4급 공무원들로 구성되었다. 조직위 사무실은 국방부 울타리 안에 있었다. 조직위가 문경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국방부에서 약 15개월을 근무한 샘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국방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 곳에는 장병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시설도 있어서 현역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구내식당, 목욕탕, 헬스장, 이발소 등이었다. 목욕탕은 장군용은 별실이었고, 대령 이하는 같은 탕이었는데 다만 탈의실은 대령 전용이었는데 조직위 부서장은 대령급 예우를 받았다.
군은 계급사회다. 나는 육군 병장 출신으로 상대가 장교출신이면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제대 후 30년만에 군 조직에서 대령급 예우를 받 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니 엄청난 신분상승인 샘이다. 하기사 고 노무현 대통령은 상병으로 제대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니 군과 사회는 별개일 수도 있지만 어쨌던 어깨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았다.
조직뮈 간부들은 위원장(4성), 사무총장(2성)과 한 공간에서 근무하였고, 함께 식사도 자주했다. 가끔 반주라도 나오면 위원장님이 한 잔 씩 권했다. 조직위 성격 상 군의 장성급, 정관계의 고위인사와 식사할 일이 많았다. 행사 개막 D-100일 날 만찬이 생각 난다. 그 날은 행사의 성공을 위한 다짐의 장이기도 했다. 참석한 장성들의 별을 합치면 15개쯤 되는 듯 했다. 병장출신으로 민간인이 그렇게 많은 장성들과 자리를 함께한 것에 우쭐해졌다. 특히 위원장님을 비롯한 장성들이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현역 때 근무했던 부대는 사단직할대의 하나인 의무근무대였다. 의무근무대는 8개 특과병과 중의 하나로 의무지원 부대다. 근무대장은 소령으로 사단장의 의무참모였다. 당시에 근무대장 관사에 전담병 한 명이 배치되어 사사로운 일까지 챙겨주었다. 사병입장에서 보면 소령만 되어도 대단 해 보였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장교출신이라면 주눅이 들었고, 영관급 출신이라면 신분 높은 어른으로 보이기도 했다. 제대 후 잠시나마 별들 속에서 지내긴 했지만 장교를 보는 나의 눈높이가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필요 시 조국을 위하여 큰 역할을 할 그들을 여전히 예우함은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 대회는 군과 관의 협력으로 추진한 빅4 규모의 올림픽이었다. 군의 인력과 시설을 최대한 활용한 저비용 행사로 치러졌다. 몇 개월 앞서 비슷한 규모로 치뤄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의 6천억보다 훨씬 적은 천7백억원이었다. 군 숙소를 선수촌으로, 기존 경기장을 그대로 활용하였을 뿐만아니라 차량도 군용차량을 이용하였다. 문경, 괴산, 영천으로 분산된 선수촌과 8개 시군의 경기장이었기에 운영상 어려움은 최선의 행정력으로 해결해야만 했는데, 군인의 기획력과 운영능력이 돋보여서 전문행정인 마저도 감탄할 정도였다.
불굴의 투지와 사명감이 깃든 군인정신은 불가능이란 없어 보였다. 군 조직에 파견 된 일반공무원도 그들의 추진력을 배운 소중한 기회였다.
군 조직은 경직되고 상의 하달이란 당초의 생각과 달랐다. 어떤 조직보다도 따뜻한 인간미가 있었고, 상대의 부족을 채워주어 상생하는 조직이었다. 예비역 대장이신 위원장님께 보고와 결재 받을 일이 많았다. 위원장실에 들어가면 위원장님이 일어나서 맞이하고, 영접의자에 앉게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셨다. 훌륭한 인품으로 대면해도 부담감이 없고 편안했다. 가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항상 인자하시고 지혜로우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닮은 분으로 각인되었다. 도청으로 복귀하며 헤어졌지만 훌륭하신 인품을 잊지 않고 있다. 가끔은 서로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2023. 2. 17.)
첫댓글 김상기 장군님, 참 훌륭하신 분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군대 시절 감히 볼 없었던 장군들과 근무를 하며 그들의 장점을 잘 보면서 느낀 점을 잘 묘사했습니다. 나도 공무원을 하면서 장군으로 진급하는 중학교 동기의 취임식에서 많은 스타를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