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여옥(麗玉)의 파장(波長)
그대여, 그대여! 침상엔 골풀 방석이 깔리고 쟁반엔 생선이 있구려.
북쪽에는 착한 형이 살고 동쪽엔 어린 여동생이 살고 있소.
밭에는 푸릇푸릇한 기장과 마늘, 술단지엔 거품이 동동 뜨는 탁주.
기장 먹을 수 있고 탁주 마실 수 있으니 그대여, 그대여, 살만하지 않은가요.
머리 풀고 강물로 내달리면 결국 어떻게 되겠소? 착한 형과 어린 여동생이 구슬피 울겠지요.
公乎公乎(공호공호),
님아, 님아,
提壺將焉如(제호장언여).
머리 풀어헤치고 호리병 꿰차고 어딜 간단 말가.
屈平沈湘不足慕(굴평심상부족모),
굴평(屈平)은 심수(湘水)에 빠져 죽어도 뒤따르는 이 없었네,
徐衍入海誠爲愚(서연입해성위우).
서연(徐衍)은 바다에 뛰어 들어도 어리석은 짓 되었고.
公乎公乎(공호공호),
님아, 님아,
牀有菅席盤有魚(상유관석반유어).
돗자리 편 상 위의 소반에 고기도 있고 .
北里有賢兄(북리유현형),
북쪽 마을에 어질기만 한 형도 있고,
東鄰有小姑(동린유소고).
동쪽 이웃에 이쁘기만 한 누이 있고.
隴畝油油黍與葫(농무유유서여호),
밭에는 기장과 마늘 넘실넘실거리고,
瓦甒濁醪蟻浮浮(와무탁료의부부).
술 단지엔 막걸리 가득 담아져 있어.
黍可食(서가식),
기장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
醪可飮(요가음).
막걸리도 실컷 마실 수 있거늘.
公乎公乎其奈居(공호공호기나거).
님아, 님아, 어찌 살지 못한다 말인가.
被髮奔流竟何如(피발분류경하여),
머리 헝클어진 채 물살에 떠내려가니 어쩔 줄 몰라,
賢兄小姑哭嗚嗚(현형소고곡오오).
착한 형도 어린 누이도 엉엉엉엉 울기만 하는구나.
―‘공후의 노래(공후인·箜篌引)’ 이하(李贺·790∼816)
*公乎公乎(공호공호) : 님이여 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님이여 라는 영탄에는 낭만성이 전제된다고 볼 때, 여기서는 님이 빠져죽으러 가는 급박한 상황인 것이다.
*公(공) : 님, 혹은 그대.
*如(여) : 간다는 뜻이다.(如. 往也(주야).)
*屈平沈湘(굴평심상) : 굴원이 상수에 빠져죽다.
*徐衍入海(서연입해) : 서연이(돌을 지고) 바다에 빠져죽다.
*床有菅席盤有魚(상유관석반유어) : 이것은 菅席 床有 盤有魚(관석 상유 반유어)로 왕골 돗자리 펴놓은 밥상 위에 생선이 있다.
*北里有賢兄(북리유현형) : 賢兄의 賢은 관용으로 쓰는 접두어이다.
*東鄰有小姑(동린유소고) : 小姑(소고)는 시누이이다. 지금 이 시의 화자는 바로 白首狂夫(백수광부)의 妻(처)이기 때문에 시누이라 쓴 것이다.
*隴畝油油(농무유유) : 밭에 곡식이 넘실넘실 대는 모양.
*黍可食(서가식) : 黍(서)는 여기서는 기장밥.
*醪可飮(요가음) : 막걸리를 마시다.
*其奈居(기나거) : 그 어찌 산단 말이오의 뜻이 되나 그러면 의미가 모호해진다.
*被發奔流(피발분류) : 머리카락 헝클어진 채(술병 꿰차고) 떠내려가네
*竟何如(경하여) : 끝내 어찌할 줄 모르고, 이것은 아래 賢兄小姑와 연관지어 볼 때 백수광부의 처의 상황이다.
*哭嗚嗚(곡오오) : 엉엉하고 울부짖다.
*공후(箜篌) : 악기의 역사에서 현악기는 수렵시대 사람들이 활시위에서 나는 소리에 착안하여 궁현악기(弓絃樂器)를 만들어 썼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공후는 인류사 최초의 현악기 형태로 후로 하프(Harp)로 발전하였으며 또한 궁현악기에 야자열매나 호리병박 등의 공명통과 지판(指板)이 붙인 류트족의 악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거문고를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아주 작다.
*箜篌引(공후인) : 고대 악부(樂府)의 곡조 이름.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시작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고조선의 나루지기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불렀다는데, 이 짤막한 노래를 모티프로 중국 시인들이 살과 뼈를 붙인 노래가 수십 편에 이른다. 여옥의 파장이 실로 길고 깊었다.
시는 원시에 상상을 보탠다. 굴원이나 서연처럼 이 시의 주인공 역시 세상의 혼탁을 비관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목숨까지 버린단 말인가. 파장은 이백에게도 흘렀다. ‘과연 노인은 익사하여 바다로 표류해 갔지. 큰 고래 흰 이빨이 설산처럼 높았으니 노인이 그만 그 사이에 걸려들었지.’(‘공무도하公無渡河’) 모두가 죽음의 문제를 다룬 주술 같은 화두를 이백은 보다 현실적인 비극미로 형상화했다.
그대여, 그대여! 술병 들고 어디로 가려 하오?
상강에 빠져 죽은 초나라 굴원(屈原)은 동경할 필요 없고, 돌 지고 바다로 들어간 주나라 서연(徐衍)은 정말 어리석었소.
✵이하(李贺·790∼816)의 자는 장길(长吉),허난(河南) 푸창(福昌) 사람이다. 당나라 중기 낭만주의 시인이다. 당현종 개원 연간에 태어났으며 짧디짧은 26년을 살았으나 시단에 200여수의 가작을 남겼다.
이하는 당나라 개국시 추증한 정왕(郑王) 이량(李亮, 당고조의 여덟번째 삼촌)의 8세 손이나 태어날 당시 집안은 이미 몰락했다. 이하가 7세 일때 한유와 낙양 명사(名士) 황보식(皇甫湜)이 찾아왔는데 이하는 바로 붓을 날려 <고헌과>(《高轩过》, 한유가 장안성내의 신동을 찾아갔고 신동의 능력을 시험했으며 신동의 문제를 발견하는 일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시를 써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18세가 되지 않아 머리가 희게 되었다. 많은 유명 시인들이 같은 시기에 활약하고 있었고 새로운 파별(流派)을 만들고 있을 때 유달리 독특한(独树一帜) 스타일을 만들었다.
당시의 대표중 이백, 두보, 왕유를 제외하고 ‘시의 귀신’(诗鬼)이라 불리는 이가 바로 이하(李贺)이다. 그의 명구 ‘하늘이 정이 있다 해도 하늘도 늙는다오’(天若有情天亦老 천약유정천역로)는 그 누구도 대구를 짓지 못했다. 200년후 송나라가 되어서 시인 석연년(石延年)이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완벽한 대구인 ‘달은 한이 없는 듯 하며 달은 늘 둥그렇다’(月如无恨月长圆 월여무한월상원)을 지을 수 있었다.
이하는 중당에서 만당으로 시의 스타일이 바뀌는 기간의 대표자이며 이백, 이상은과 함께 ‘당대삼리’(唐代三李)라 불렸다. 그의 시 대부분은 시기를 잘 만나지 못한(生不逢时) 스스로를 한탄하고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는 내용이며 이상, 포부에 대한 추구를 표현했다. 당시 번진할거, 환관의 전권과 백성이 받은 잔혹한 착취 등을 모두 어느 정도 반영했다. 그의 작품은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자주 신화전설을 응용해 옛것으로 지금의 것을 비유(托古寓今)했다.
사람들은 그를 ‘이태백은 선재(仙才)이고 장길(长吉)은 귀재(鬼才)”라고 말했다. 이하는 굴원, 이백 다음으로 중국문학사상 또 한명의 극찬을 받는 낭만주의시인이다. “黑云压城城欲摧(흑운압성성최: 검은 구름이 성을 덮으니 성이 무너지려 한다)”, “雄鸡一声天下白(웅지일성천하백 : 수탉이 한 번 우니 천하가 하얗다)”, “天若有情天亦老(천약유정천역로: 하늘이 정이 있다 해도 하늘도 늙는다오)” 등 천고의 명구를 남겼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5년 02월 21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