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분과위 "경쟁체제 효과 분석에 한계"
정부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수서고속철도(SR)를 통합하지 않고 지금의 철도 공기업 경쟁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명확히 '경쟁체제'로 결론을 내린 게 아니라 판단을 유보한 것이어서 갈등의 불씨는 남았다. 공은 다시 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국토교통부는 철도 경쟁체제 평가를 맡은 '거버넌스 분과위원회'가 코레일·SR 경쟁체제 유지 또는 통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는 최종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19일 밝혔다.
코레일·SR·국가철도공단 노사 대표와 전문가, 소비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 '거버넌스 분과위원회'는 지난해 3월부터 1년 9개월간 코레일·SR 경쟁체제와 관련된 사안을 논의해왔다.
국토부는 "분과위 논의 과정에서 두 회사 경쟁으로 국민 혜택이 늘었기 때문에 경쟁체제를 유지하자는 입장과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섰다"고 밝혔다.
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코레일 노조 대표위원은 최종회의를 앞두고 분과위원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결국 분과위는 코레일·SR 경쟁체제가 정상 운영된 기간이 코로나 발발 전 3년(2017∼2019)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석에 한계가 있으며,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SRT는 2016년 말 운행을 시작했다.
이윤상 국토부 철도국장은 "유보 결론이 나온 만큼 지금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비스 개선을 통해 미비점을 보완해 나가겠다"며 "코레일·SR 통합 여부를 언제, 어떻게 다시 평가할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선 철도 공기업 경쟁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경쟁'에 무게를 실은 발언을 내놓았다.
원 장관은 "나라별로 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해외에서도 철도 발전의 기본 방향은 독점에서 경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공공부문 내에서 건강한 철도 경쟁을 유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코레일과 SR 통합 논의는 1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이명박 정부는 당초 수서고속철도 운영을 민간에 맡기려다 반발에 부딪혔고,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 논란' 속 2013년 12월 SR을 출범시켰다. 코레일이 가장 많은 41%의 지분을 가진 자회사 형태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철도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워 코레일과 SR 통합을 추진하고, SR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했으나 통합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코레일과 철도노조 등 철도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통합을 주장하는 쪽과, SR·SR노조 등 경쟁을 통한 효율성 확보를 위해 분리된 채 두자는 쪽의 주장은 계속해서 팽팽하게 맞섰다.
통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경쟁체제 탓에 인건비, 설비비 등 연간 최대 406억원의 중복비용이 발생하고, 서비스가 이원화돼 이용자도 불편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KTX-SRT 간 승차권 변경이 안 되고 SRT와 일반열차 간 환승할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코레일과·SR을 통합하면 운행계획을 더 효율적으로 짜 전체 고속철도의 운행 횟수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쟁체제 유지를 주장하는 쪽에선 경쟁체제 도입 이후 코레일에서 KTX 마일리지 제도가 부활하고, SRT 운임이 KTX 대비 10% 인하되면서 이용자가 연평균 1천506억원의 할인을 받은 점을 내세운다.
또 SRT가 KTX보다 높은 선로사용료를 국가철도공단에 납부하면서 막대한 고속철도 건설자금 부채를 갚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고 강조한다.
KTX는 운송 수입의 34%를 선로사용료로 내지만 SRT는 운송 수입의 50%를 지불하고 있다. 코레일 독점일 경우 연간 선로 사용료는 5천억원이지만 경쟁체제일 때 7천500억원이라 고속철도 건설부채 이자(연간 7천억 원)를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가 2018년 이후 시행한 철도 공기업 통합 관련 연구용역만 4건, 용역 액수는 총 8억8천만원에 이른다.
통합 '유보' 결정이 발표되자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 "2년을 끌어온 논의 결과가 이렇게 엉뚱한 결론으로 향한 이유는 명확하다"며 "이미 추진 중인 철도 민영화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가속화하기 위한 포석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SR의 재무적 투자자들과 투자자금 상환 만기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SR은 코레일(41%)이 최대주주고, 나머지 59%는 사학연금공단(31.5%), 기업은행(15.0%), 산업은행(12.5%) 등 공적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코레일은 이들의 자금을 유치하며 투자 원금에 매년 5.6%씩 복리 이율을 적용해 주식을 코레일에 되팔 수 있도록 하는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는데, 내년 6월 만기가 도래한다. 만기 시 풋옵션 총액은 2천억원대로 추산된다.
만기 연장이 되지 않더라도 민영화에 대한 반발이 큰 만큼 정부는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출처 : 교통신문(http://www.gyotong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