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상에서 시작돼 특히 젊은 세대들이 즐겨 쓰는 `TMI`라는 단어는 `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의 약자다. 요즘 같은 정보 홍수의 시대에 나와 무관한 정보는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는 다분히 디지털 세대스러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도중에 그 뜻을 처음 알게 된 분들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우리는 한번 어떤 것을 알게 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다.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내가 알면 남도 알 거라 생각하는 착각은 그 어떤 고정관념보다 무섭다.
디지털 시대다. 햄버거 하나를 먹으려 해도 무인 기계로 주문하고, 역무원과 대면하는 대신 클릭 단 몇 번만으로 기차표를 끊을 수 있게 됐다. 카드가 없어도 휴대폰 속 앱카드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카드 발급과 같은 간단한 금융 업무 정도는 인터넷상에서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이렇게 디지털은 우리 일상 생활을 가히 혁신적으로 바꿔가고 있다. 하지만 몰라서 못 쓰고, 알아도 못 쓰는 디지털 기술이 과연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도 `혁신`이 될 수 있을까.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지식이 쌓여가는 `디지털 네이티브` 계층과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계층 사이의 `디지털 격차` 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광고 역시 이 같은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필자가 광고 업계에서 일을 시작하고 귀가 아프게 들었던 말은, `광고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광고가 절대다수를 상대로 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까닭에서다. 15초 남짓한 짧은 시간에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쉽고 강력한 하나의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혁신`적인 광고가 여기 있다.
1996년 칸 광고제 인쇄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볼보자동차 광고는 카피 한 줄 없는 광고로, `안전=VOLVO`라는 등식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 어떤 설명도 없지만 자동차 모양으로 휘어진 안전핀만 보고도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볼보 하면 누구나 `안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쉽고 강력한 하나의 메시지가 대중의 마음을 관통했기 때문이고,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굳어져 온 것임을 보여준다.
쉽고 단순한 것의 미덕은 시대 정신마저 관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이 가져온 현대인의 질병 중 하나가 `결정장애(햄릿 증후군)`라고 하지 않던가. `어디가지, 뭐 먹지, 뭐 살까…`. 지니의 요술램프 같은 검색창 하나면 다 되는 `추천`의 홍수 시대에 집집마다 붙은 맛집에 대한 추천보다도, 확실한 비추천이 더 매력적인 정보로 다가올 정도이니 실로 TMI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너무 많은 정보와 옵션이 오히려 결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디지털`이라는 용어가 우리 일상 생활 속에 등장한 지 십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디지털이 뭐냐고 물었을 때 한마디로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디지털 노마드`와 함께 생겨난 신부류인 `디지털 문맹`.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공기처럼, 내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며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아날로그, 디지털 시대를 함께 경험한 기성세대 간의 간극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지식의 저주`가 떠올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 그 이면은 복잡하더라도 쓰는 사람 입장에선 쉬워야 한다는 디지털의 본질과 보편적 가치를 담은 KB 국민카드의 `디지털 이지 라이프(Digital Easy Life)` 캠페인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챗봇 `큐디`편에 출연한 배우 박서준은 카드 생활이 궁금할 때마다 KB국민카드의 인공지능(AI) 상담사인 챗봇과 대화한다. 가수 크러쉬는 소파에서 `간편심사 톡`으로 편하게 카드를 발급받는다. 이렇듯 디지털을 잘 아는 사람도, 디지털을 잘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어디서든 막힘 없이 쉽게 디지털의 혜택을 누리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 쓰는 방법도, 접근성도, 서비스도 사용자 입장에서 더 쉽고 단순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진짜 앞선 디지털이자 최고의 디지털 기술이 아닐까?
돌아가신 법정스님의 방에는 옷가지 몇 벌, 책상, 책 몇 권이 전부였다고 한다. 필자도 그렇게 단순하게 살고 싶어진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지만 시작해봤다. 그 중에 하나가 `낯설게 보기`다. 집을 둘러보며 낯설게 보기를 하고 있노라면, 쓸모없고 쓸데없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름다운가게에 2~3개 박스의 옷가지와 물품을 모아 기부하기 시작하자 인테리어 효과가 덤으로 따라왔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이지&심플 라이프`다.
`완성이란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수많은 광고인은 `더 뺄 것은 없을까`를 고민한다. 광고는 어떻게든 더 넣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더 빼려는 자가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이기도 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진정한 이지라이프를 누리고 싶다면 `심플&이지(Simple & Easy)`를 기억할 것! 광고도 인생도 어차피 마인드 게임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