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번째 월요편지 - [봄과 여름 사이]라는 특별한 계절
6월 6일 아침, 가족 여행을 온 제주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이틀은 날씨가 좋았는데 여행 마지막 날 비가 내립니다. 아직 장마 기간은 아닌 것 같은데 느낌은 장맛비 같습니다. 장마는 언제 시작되는지, 지금은 봄의 끄트머리인지 아니면 여름의 문턱인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그러면 그 정의는 어떻게 될까요? 정확한 정의는 월요편지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 기상학적으로 꽤나 복잡합니다. (2022.9.26자 월요편지)
기상학적으로 여름의 시작은 “9일간 일평균기온의 이동 평균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간 후 떨어지지 않으면 그 첫날”부터이고 여름의 끝은 “9일간 일평균기온의 이동 평균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뒤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의 전날”까지입니다.
이런 정의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여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지역마다 시기가 각기 다릅니다. 서울의 평균 4계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봄은 3월 중순부터 5월 25일경까지 2개월이고, 여름은 5월 25일경부터 9월 말까지 4개월이고, 가을은 9월 말부터 11월 22일경까지 2개월이고, 겨울은 11월 22일경부터 3월 중순까지 4개월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 3개월이라는 도식이 깨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봄과 가을은 2개월이고, 여름과 겨울은 4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봄은 너무 짧고 가을은 그리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4계절을 구분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24절기가 있습니다. 선조들이 농사와 관련된 계절 흐름을 24가지로 구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4절기가 중국 베이징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라 서울과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2023년 입춘은 2월 3일이고, 입하는 5월 6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계절 감각과는 맞지 않습니다. 보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가 궁리를 해보니 24절기를 한 달 반 정도를 늦추면 대충 맞는 것 같습니다. 즉, 절기를 3개 정도 늦추면 됩니다.
2023년 봄과 여름 절기는 입춘(2.4), 우수(2.19), 경칩(3.6), 춘분(3.21), 청명(4.5), 곡우(4.20), 입하(5.6), 소만(5.21), 망종(6.6), 하지(6.21), 소서(7.7), 대서(7.23), 입추(8.8)입니다.
이를 3개씩 늦추자는 말은 예를 들면 입춘 날짜를 우수, 경칩, 춘분 3개 절기를 늦춰 춘분 날짜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2023년 입춘은 춘분 날짜인 3.21, 입하는 하지 날짜인 6.21이 됩니다.
이렇게 2023년 봄과 여름 절기를 보정하면 입춘(3.21), 우수(2.19), 경칩(4.20), 춘분(5.6), 청명(5.21), 곡우(6.6), 입하(6.21), 소만(7.7), 망종(7.23), 하지(8.8), 소서(8.23), 대서(9.8)로 날짜가 바뀝니다.
이제 우리의 계절 감각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런데 기상학적 관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 3개월이 아니라 봄 2개월, 여름 4개월, 가을 2개월, 겨울 4개월입니다.
따라서 입춘부터 시작한 봄의 절기는 입춘(3.21), 우수(4.5), 경칩(4.20), 춘분(5.6)까지이고, 청명(5.21), 곡우(6.6)는 여름 절기에 속하게 됩니다.
어제 6월 6일은 원래 절기로 하면 망종(亡種)으로 씨를 뿌린다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미 씨는 다 뿌린 후이니 절기가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정된 절기로는 곡우입니다. 곡우(穀雨)는 '곡식 곡(穀)' 자와 '비 우(雨)'자가 합쳐져 탄생한 절기입니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곡우의 의미를 잘 표현한 속담으로는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가 있고, 반대의 경우를 표현한 속담으로는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6일 곡우, 제주에 비가 내리는 것은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제주는 풍년이 들 것 같습니다. 사실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24절기이지만 가끔 뒤져보면 선조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1년을 4계절로 나누지 말고 6계절로 나누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는 봄이라 부르기에는 간혹 너무 덥고, 여름이라 부르기에는 어제처럼 서늘한 날도 있습니다. 요즘을 기상학적으로는 여름이라고 칭하지만 계절 감각으로는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닙니다.
저는 봄 3개월 중에 기상청으로부터 봄의 자격이 없다고 판정받은 마지막 1개월을 별도로 다루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절명을 별도로 만들고 싶지만 우리 인식과 멀어질 것 같아 인식 안에서 만들었습니다.
계절명은 <봄과 여름 사이>입니다. <봄과 여름 사이>하니 아무런 연관도 없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와 그 영화의 OST가 떠오릅니다. 무엇과 무엇 <사이>라는 것은 넉넉함과 관대함이 느껴집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것인지 저것인지를 강요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정치적으로 보수입니까 아니면 진보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곤 하지요. 사실 어떤 때는 보수이고 어떤 때는 진보인 사람도 있고, 젊었을 때는 진보이고 나이 들면 보수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보수와 진보 사이>입니다’라는 표현을 쓰면 어떤 느낌이 날까요? 좀 모호하게 느껴지나요? 아니면 여유가 느껴지나요?
<봄과 여름 사이>는 봄이라 하기에는 좀 늦었고 여름이라 하기에는 좀 이른 그런 시기를 표현하는 계절명으로 제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한 달이 봄과 여름이 오버랩되어 있으면서도 독립된 것처럼 느껴져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2023년 계절과 보정된 절기를 구분해 보았습니다.
2023년 <봄>은 2023년 12번째 주부터 20번째 주까지 총 9주입니다. 날짜로는 3월 20일부터 5월 21일까지입니다. <봄> 속에는 4개의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입춘(3.21), 우수(4.5), 경칩(4.20), 춘분(5.6)입니다.
2023년 <봄과 여름 사이>는 2023년 21번째 주부터 24번째 주까지 총 4주입니다. 날짜로는 5월 22일부터 6월 18일까지입니다. <봄과 여름 사이> 속에는 2개의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청명(5.21), 곡우(6.6)입니다.
2023년 <여름>은 2023년 25번째 주부터 38번째 주까지 14주입니다. 날짜로는 6월 19일부터 9월 24일까지입니다. <여름> 속에는 6개의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입하(6.21), 소만(7.7), 망종(7.23), 하지(8.8), 소서(8.23), 대서(9.8)입니다.
2023년 <가을>은 2023년 39번째 주부터 46번째 주까지 8주입니다. 날짜로는 9월 25일부터 11월 19일까지입니다. <가을> 속에는 4개의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입추(9.23), 처서(10.8), 백로(10.24), 추분(11.8)입니다.
봄과 여름 중간에 <봄과 여름 사이>라는 계절을 만들었듯이 가을과 겨울 중간에도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계절을 만들었습니다.
2023년 <가을과 겨울 사이>는 2023년 47번째 주부터 50번째 주까지 4주입니다. 날짜로는 11월 20일부터 12월 17일까지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 속에는 2개의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한로(11.22), 상강(12.7)입니다.
마지막으로 2023년 <겨울>은 2023년 51번째 주부터 2024년 11번째 주까지 13주입니다. 날짜로는 2023년 12월 18일부터 2024년 3월 17일까지입니다. <겨울> 속에는 6개의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입동(23.12.22), 소설(24.1.6), 대설(24.1.20), 동지(24.2.4), 소한(24.2.19), 대한(24.3.5)입니다.
참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벚꽃이 피면 봄이고,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라고 하면 여름이었고, 단풍이 들면 가을이고, 눈이 오면 겨울이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이 벚꽃을 몇 번 볼 수 있을까, 이 단풍을 몇 번 볼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곧잘 나누곤 합니다. 2021년 어머님과 벚꽃 구경을 하면서 이 벚꽃을 몇 번이나 더 볼까 생각했는데 그 벚꽃이 마지막 벚꽃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시간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절기와 계절의 변화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저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곡우>를 생각하였고 <봄과 여름 사이>라는 특별한 계절을 만들어 냈습니다.
6월 5일 시작하여 11일 끝나는 이번 주는 2023년의 23번째 주이고, <봄과 여름 사이>라는 계절의 3번째 주입니다. 이 <봄과 여름 사이>는 내주면 끝나고 다다음 주부터는 <여름>입니다.
6월 18일 끝나는 이번 계절 <봄과 여름 사이>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6.7. 조근호 드림
첫댓글 동감입니다.
봄꽃 여름사이에 서있는 기분.
온갖 꽃들은 봄이라서 피고지는데
기온은 28ㅡ30도씨를 오르내릭다가도
밤엔 "양들의 추위" 라는 이름이 붙어서
7ㅡ8씨까지 떨어지고....
아마 서양의 절기와 비슷하네요.
3.21일 봄은 시작. ... 아직도 봄속에 있음이 축복입니다. 오늘도 해피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