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stise와 Chasdise”
chastise의정의: 1. to criticize someone severely: 2. to punish someone, especially by hitting them: 3. to punish or criticize someone strongly: ...
Chastise는 1. 어떤 사람을 심하게 비판하다 2. 어떤 사람을 특별히 채찍질함으로 벌을 주다. 3. 어떤 사람을 강하게 벌 주거나 비판함의 뜻이다
chastise의 어원: 한국어<꾸짖다>는원래<짖다>와 같이 르완다어kuziza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짖다>와 달리<윗사람이 아래사람을 질책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Chasdise는 성직자라는 말이다.
이는 본래 성직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꾸짖고, 질책하고, 째찍질하여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도록 하여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직무이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요, 성직자의 의무요, 사명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러한 꾸짖음과 질책을 받아 들일 교인들도 찾아보기 힘들거니와, 그렇게 전하는 성직자도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고,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목사의 설교가 명 설교요, 그러한 교회가 부흥하는 명품 교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성직자요, 거짓 목자요, 거짓 교사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 그들 중 대부분이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이는 참 복음이 아니요, 참 설교가 아니며, 참된 성직자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노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으로서 그들은 줄곧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며 그 백성의 회개를 외쳤다.
세례요한과 예수님 사역의 첫 메세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다.
오늘날의 진정한 선지자로 일컬어지는 데이빗 윌커슨의 ‘비통함을 구하는 기도”라는 꾸짖고 절규하는 설교를 들어 보았는가?
그는 오늘날의 안일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교인들의 삶을 지적하면서 그렇게 살면 여지없이 지옥행이라고 사정없이 꾸짖었다.
그는 그 당시 뉴욕과 미국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이 자기의 설교를 5분 정도 들으면, 양심에 가책이 오고 너무 힘들어 회개는 커녕 더욱 완악하여져서 설교를 끄고 자기를 비판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18세기 초반 미국의 제1차 영적대각성 운동의 선구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이란 설교에서 그 당시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하였다,
이처럼 어느 시대이든지 개혁과 부흥의 시대에는 한결같이 회개와 거룩함에 대한 촉구와 진리의 말씀에 의한 질책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참된 성직자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지금의 성직자들을 향해 주님은 그 당시 성직자들이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회 칠한 무덤이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짖고 계신다.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갔더니 목사들이 많더라는 말을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는 주님의 음성을 자신과 자신들의 양들이 듣게 될 확률이 높음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제사장의 사명은 양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제사장들은 양의 육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배 불리고 살찌우고 있으니 말이다.
시대는 변해도 Chasdise의 사명과 직무는 Chastise임을 아는 자가 참된 성직자요, 그 꾸짖음과 질책을 달게 받아 들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참 주님의 제자이다.
천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다.
킹덤 빌더즈 전두승 목사
L..A 글로리 교회
하나님의 리콜운동
첫댓글 전목사는 방언교 추종자인데 악령의 방언을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 방언교 신학
아멘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