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엉뚱한 돌 팔매질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또 걱정하게 만들었다. 소위 ´신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와중에서 이 경선의 두 선두후보 가운데 한 사람은 북핵 문제의 ´리비아 식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운운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한나라당이라는 정당은 물론 대권을 노리는 후보들이 북핵 문제의 실체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북핵과 리비아의 핵 사이에는 공통된 해결 방식이 거론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하여 계간 <시대정신> 2004년 봄 호에 게재했던 필자의 글을 아래에 첨부한다. 관심 있는 분들이 읽어 보도록 권유한다.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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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24호 (2004년/봄) 李東馥 [전 국회의원/전 명지대 교수] 북한 핵문제, 리비아식 해결 가능성은 있는가?
1. 문제의 제기 -- 핵 확산의 현주소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탄과 핵융합을 이용하는 수소탄으로 대별되는 핵무기는 바로 이 무기가 갖는 가공한 파괴력 때문에 사실은 보유하더라도 결코 사용할 수 없는 “저주받은(doomsday) 무기”가 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된 것은 일본을 상대로 사용된 단 2 발뿐이다. 1945년8월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폭탄 리틀보이(Little Boy)와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 폭탄 팻맨(Fat Man)이다. 각기 단 한 발의 폭탄으로 히로시마에서는 7만여명, 그리고 나가사키에서는 2만여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고 13만명과 5만명이 평생 치유되지 않는 ‘원폭병’ 환자가 되었다. 두 도시는 물론 일순에 폐허가 되었다. 이 2 발의 원자탄의 위력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8월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그리고 원자탄의 위력에 놀란 여러 나라 사이에는 치열한 핵무기 개발 경쟁이 진행되어 결국 5개의 공인된 ‘핵보유국(Nuclear Club Countries)’ (1967년 이전에 핵무기 보유국이 된 나라들)을 탄생시켰다. 미국 외로 구 쏘련(지금은 러시아), 영국, 프랑스 및 중국이 그 나라들이다.
1945년 이래 생산된 핵폭탄의 총수는 12만8천 발이다. 이 핵 폭탄의 55%(약 7만 발)는 미국이, 43%(약 5만5천 발)는 구 쏘련이 생산했다. 그러나, 일단 핵무기 보유에 성공한 ‘핵보유국’들은 곧 그들이 보유한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저주받은 무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핵무기의 파괴력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핵무기가 일단 사용될 경우 이에 대한 보복과 응징은 오직 핵무기 사용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어서 핵무기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핵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그 결과 쌍방이 모두 함께 멸망하는 참화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위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두 가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첫째로는 ‘핵보유국’들이 보유 핵무기의 추가 생산을 제한할 뿐 아니라 이미 보유 중인 핵무기를 감축하고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철폐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둘째로는 ‘핵보유국’의 숫자가 이미 공인된 5개국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막을, 즉 “핵 비확산”의 필요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첫 번째의 필요성에 부응하여 미․쏘 두 핵 강대국 간에는 1960년대부터 우선 ‘전략무기제한협상(SALT 1․2단계)’이 시작되어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1․2․3단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12만8천 발의 기 생산 핵무기들은 지금 3만발로 감축되었다(2003.2.4 현재). 이 3만 발 가운데 10,729 발을 미국이, 18,071 발을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1,200 발을 영국․프랑스․중국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 미국이 보유한 핵폭탄 가운데 7천 발이 ‘전략 핵폭탄’이고 1,600 발이 ‘전술 핵폭탄’(이 가운데 800발이 ‘실전용’)인 반면 러시아가 보유한 핵폭탄은 그 가운데 5천 발이 ‘전략 핵폭탄,’ 1만여 발이 ‘전술 핵폭탄’(이 가운데 3,400발이 ‘실전용’)이었다. 미․러 양국은 2단계 ‘전략무기 감축조약’에 따라 2003년 말까지 보유 ‘전략 핵폭탄’을 각기 3,500 발과 3,000 발로 줄이게 되어 있었고 앞으로 3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정’에 의거하여 이를 다시 각기 1,500 내지 2,000 발로 줄이려 하고 있다. 2002년5월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합의․서명한 ‘모스크바 조약(SORT)’는 양국이 작전배치 하는 ‘전략 핵폭탄’의 수를 2012년까지 1,700-2,000 발로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두 번째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핵 비확산’ 체제를 만들어 냈다. 1970년에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그 것이다. 이 조약은 ‘핵보유국’에게는 ‘핵 비보유국’에 대한 일체의 핵무기 관련 기술 및 물질의 제공을 금지하고 또 ‘핵 비보유국’에게는 그러한 기술 및 물질의 획득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조약은 ‘핵 비보유’ 조약 당사국들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 체결을 의무화하고 있다. 조약 제3조4항에 의거하여 모든 ‘핵 비보유국’들은 “조약 당사국 지위 발효 수 180일 이내에 IAEA와 안전조치협정 체결 교섭을 개시하고 교섭 개시 후 18개월 이내에 협정 체결을 완료하여 발효시켜야 한다.” 2000년9월 현재 187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75년4월23일자로 이 조약에 가입하고 그 해 11월14일자로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다. 반면 북한은 1985년12월12일자로 NPT에 가입하고 1992년1월30일자로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지만 1993년3월11일자로 NPT 탈퇴를 선언한 뒤 그 해 6월11일자로 ‘탈퇴 유보’를 선언했다가 2003년1월30일자로 이 ‘탈퇴 유보’의 ‘철회’를 선언하고 이 해 4월30일자로 ‘탈퇴’를 발효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NPT라는 국제적 ‘핵 비확산’ 체제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이 되려는 일부 ‘핵 비보유국’들의 노력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이 같은 ‘불법적’ 노력의 결과로 3 개의 ‘비공인 핵보유국’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이 그들이다. 이들 세 나라는 1960년대 초 구 쏘련의 핵무기를 몰래 반입하려다가 미․쏘 간의 위험천만한 미사일 위기를 불러일으켰던 쿠바와 함께 지금도 NPT 비가입국으로 남아 있다. 그 밖에 1989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6 발의 우라늄 원자탄을 제조․보유하기에 이르렀던 남아연방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1991년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고 그 뒤 50여 핵 관련시설에 대한 150여 회의 ‘사찰’을 수용함으로써 핵을 포기하는 나라가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노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위 ‘불량국가(Rogue States)’들에 의한 핵무기 획득 시도가 그 것이다.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및 북한이 문제의 ‘불량국가’들이었다.
특히 1990년 와해된 구 쏘련이 보유했던 방대한 핵 능력에 대한 통제가 이완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핵 확산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불량국가’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유일한 저항수단으로 자살폭탄 공격을 선택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물론 2002년9월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납치한 여객기를 이용하여 수천 명의 인명을 희생시키는 전대미문의 테러를 자행한 뒤 테러에 대한 공포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이다 등 국제적 테러 조직들이 이들 ‘불량국가’들과 제휴․연계하여 핵무기를 입수하는 가공스런 위험이 현실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미국 주도하의 국제적 ‘핵 확산’ 금지 노력은 최근 이들 ‘불량국가’들에 의한 핵무기 획득 노력을 저지하는 데 집중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노력의 하나가 1990년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원점에서 맴돌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 노력이다. 급기야 2002년에는 그의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Speech)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이란․북한을 싸잡아 ‘악의 추축국(Axis of Evils)’이라고 일컫고 2003년에는 제2차 이라크 전쟁을 벌여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러는 가운데 지난 해 12월20일 외신은 충격적 소식을 알려 왔다. ‘불량국가’의 하나였던 리비아가 하루 전인 19일 “그 동안 추진해 오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계획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이 날 관영 JANA 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리비아가 모든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같은 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은 리비아가 “그 동안 대량살상무기 생산을 추진해 왔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이를 즉각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으며 그 직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도 블레어 수상의 발표 내용을 확인하면서 리비아가 그 같은 결정의 일환으로 “자국이 보유한 모든 주요 무기들에 대해 국제사찰 요원의 검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돌연한 상황 전개는 그 자체가 충격적이었지만 그와 함께 국제적으로 이 같은 리비아의 결정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선례’가 될 수는 없느냐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관하여 외신은 카다피 자신이 12월22일 미국의 CNN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비록 특정국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들도 리비아처럼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기 바란다”고 말함으로써 북한의 핵 포기를 종용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와 함께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백악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들도 리비아의 모범을 따르기를 희망한다”는 기대감을 피력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수상은 22일 기자들에게 핵개발 문제에 관해 “북한도 리비아를 본받아 국제사회에 협력해야 한다”고 말해 부시 대통령의 기대감에 화답했다. 그 뒤, 특히 2월25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2차 6자회담을 앞두고, 미국쪽에서는 북핵 문제의 ‘리비아 방식 해결’을 수용하라는 대북 압력을 배가하고 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 차관보는 2월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책세미나 만찬연설에서 “리비아의 핵폐기 선언에서 보여준 것처럼 북한도 주권국가로서 그 같은 ‘선례’를 행동에 옮기면 리비아의 경우처럼 북한의 국익에도 틀림없이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중국 방문 도중의 존 볼턴 국무부 군비통제담당 차관은 26일 “북한도 WMD 자진 폐기를 선언하고 외국 사찰단으로 하여금 자국의 WMD 폐기를 검증하도록 허용한 리비아의 ‘선례’를 따르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작금의 상황은 당연히 하나의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핵무기 포기라는 이번의 리비아의 선택이 북한에게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다. 이 글을 통하여 필자는 북한의 경우와 리비아의 경우가 갖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이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해 보려 한다.
2. 북한과 리비아의 핵 문제 -- 공통점과 차이점
리비아의 이번 ‘포기’ 결정은 핵무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체의 ‘대량살상무기’를 그 대상으로 망라한 것이다. 여기에는 핵무기 외로 화학 및 생물무기와 운반수단으로써 사정거리 300km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을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는 핵무기 이외의 다른 ‘대량살상무기’들은 검토의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왜냐 하면, 북한의 경우에도 핵무기 외로 화학․생물무기와 미사일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동안,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가장 초미의 급선무로 대두되어 있는 것이 핵문제이고 그 밖의 다른 ‘대량살상무기’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우선순위 면에서 부차적 문제로 제켜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에 이들 다른 ‘대량살상무기’들의 문제가 당장 현안문제로 부각되어 있지 않고 핵문제만이 우선 분리되어 현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리비아 방식의 북한 적용 여부 문제는 핵문제에 국한하여 검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탄 개발이 주종을 이루어 왔다. 플루토늄 폭탄 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북한의 핵문제에는 다음의 3 개의 차원이 있다. 첫 번째로는 ‘과거’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의혹이다. 1984년부터 1994년까지 가동한 영변소재 5천kw 용량의 ‘흑연감속형 원자로’에서 이미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분량이 얼마나 되고, 또 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가지고 이미 원자탄을 개발․제조하여 보유 중인지의 여부와 보유 중이라면 과연 몇 발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현재’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의혹이다. 1994년10월21일자 미․북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에 따라 ‘건식 보관’의 형태로 ‘동결’되어 있던 8,100여 개의 ‘사용후 연료봉’이 작년 중에 ‘재처리’되었는지의 여부와 ‘재처리’되었다면 여기서 추출된 플루토늄의 분량이 얼마나 되고 그 플루토늄을 가지고 제조한 폭탄이 있는 지의 여부와 그렇게 추가적으로 제조한 폭탄이 몇 발이냐는 의문이다. 세 번째로는 ‘미래’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문제이다. 건설 도중 중단되었던 영변과 태천 소재 5만 및 20만kw 규모의 새 흑연로들의 건설이 재개되었느냐의 여부이다.
CIA 등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1994년 이전에 7-22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하여 1-2 개의 조잡한 원자탄을 이미 생산하여 보유 중이라는 입장을 공식화시켜 왔다. 이에 더하여 북한은 2002년10월 모든 핵물질과 시설에 대해 1994년10월부터 시행되어 오던 ‘동결’ 조치를 일방적으로 해제했고 그 뒤 특히 ‘건식 보관’ 중이던 8,100여 개의 ‘사용후 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완료했을 뿐 아니라 가동이 중단되었던 5천kw 용량의 흑연로의 가동을 재개했다고 주장해 왔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8,100여 개의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를 완료했다면 북한은 이를 통해 25-3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가로 확보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3-4 개의 나가사키형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그리고 5천kw 용량의 흑연로를 정상적으로 가동한다면 연간 6kg 정도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가사키형 원자탄을 1 개 정도 만들 수 있는 분량인 것이다. 북한은 작년 중반부터 북한이 보유하는 핵 능력에 관하여 ‘핵 억제력’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사회로 하여금 북한이 이미 사용가능한 형태로 핵무기 체계를 완성시켰다고 믿도록 하는 데 급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에는 새로운 국면이 추가되었다. 북한이 플루토늄 폭탄에 추가하여 우라늄 폭탄 개발도 아울러 추진하고 있다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초 북한의 비밀 핵개발 의혹은 플루토늄 폭탄에 국한된 것이었고 그 때문에 1994년10월21일자 미․북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플루토늄 폭탄 개발을 저지하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플루토늄 폭탄 개발에 관련된 북한의 일체의 핵 시설과 물질이 제네바 합의에 의하여 ‘동결’되어 있는 상황 하에서 미국은 북한이 이번에는 우라늄 폭탄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첩보를 입수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2년10월초 북한외무성의 실력자로 알려진 강석주 제1부상은 부시 미국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켈리 국무부 아․태 차관보를 상대로 북한은 “우라늄 폭탄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보다 더 강력한 무기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폭탄 발언을 터뜨리는 사태가 전개되기에 이르렀었다.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은 북한의 그 것과는 내용이 크게 다르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는 플루토늄 폭탄 개발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라늄 폭탄 개발에 국한되었다는 사실이다. 플루토늄 폭탄의 원료인 Pu238은 천연 원소인 우라늄 연료(U235)가 우라늄 안에서 연소(‘핵분열 연쇄반응’)되는 동안 다른 동위원소인 U238이 핵분열 없이 변성되어 생성하는 인조 원소인 플루토늄 동위원소 중의 하나이다. 플루토늄 가운데 Pu238만이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이 Pu238의 함량이 90% 이상인 플루토늄만이 폭탄의 원료가 된다. 플루토늄은 원자로가 있어야만 생성되고 또 생성된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함으로써만 분리․추출된다. 요컨대, 플루토늄은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이 있어야만 획득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우라늄 폭탄은 ‘핵분열 연쇄반응’ 물질인 U235라는 동위원소의 함량이 93% 이상인 우라늄을 원료로 하여 제조한다. 자연상태의 우라늄의 U235 함량은 0.7%임으로 이를 ‘저농축’하여 U235의 함량을 3%로 높인 것은 발전용 원자로의 연료가 되며 이를 ‘고농축’하여 U235의 함량을 93% 이상으로 높인 것이 우라늄 폭탄의 원료가 된다. 따라서 우라늄 폭탄의 원료인 ‘고농축(Highly Enriched)’ 우라늄은 원자로나 ‘재처리 시설’이 없이 얻어지는 것으로 이를 얻기 위한 ‘고농축’ 공정에는 ‘원심분리’ 방식․‘가스분사’ 방식․‘전자자장’ 방식의 세 가지가 있다.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원심분리’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우라늄 ‘고농축’에 의한 우라늄 원자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북한과 달리 리비아는 기술인력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핵무기는 물론 그 밖의 화․생 무기나 운반수단(미사일)의 확보를 자체 개발보다는 리비아가 가지고 있는 재력을 이용하여 외국으로부터 ‘밀수입’하는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주공급원은 파키스탄이었다. 최근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오랜 기간 동안 리비아․이란․시리아․북한 등과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관련 기술을 가지고 비밀 거래를 해 온 사실을 적발해 냈다. 칸 박사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여러 지역에 ‘핵기술 암거래 시장’을 형성하고 이란과 리비아, 그리고 북한 등에 우라늄 원자탄 설계 기술과 함께 말레이지어 등 제3국을 제작 기지로 활용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우라늄 ‘고농축’용 설비(원심분리기)를 비밀리에 공급해 온 사실이 들어 났다.
3. 정치․경제적 배경의 차이 -- 핵문제와의 함수관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을 국호로 하는 북한과 ‘사회주의인민의 리비아 아랍국(Great Socialist People´s Libyan Arab Jamahiriya)’라는 국명을 갖는 리비아가 갖고 있는 최대의 공통점은 두 나라가 모두 절대권력을 한 손에 장악한 독재자에 의하여 통치되는 독재국가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북한의 ‘창업주’인 김일성으로부터 통치권을 세습한 그의 아들 김정일이, 리비아는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가 문제의 독재자들이다.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위원장 겸 인민군 최고사령관인 동시에 헌법상 국가 위에 군림하는 초국가주권적 조직인 조선로동당 총비서라는 직함으로, 그리고 카다피는 정부조직의 어떠한 공식 지위도 없이 다만 군최고사령관 겸 ‘혁명의 지도자’라는 호칭만으로 각기 그들의 절대적 독재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CIA의 2003년판 ‘세계각국 편람’에 의하면, 면적은 북한이 12만㎢, 리비아가 176만㎢이고 인구는 북한이 2,250만명, 리비아가 550만명이다. 그러나 토지의 경우 북한은 경작가능지역이 전체 면적의 14%인 반면 리비아는 1%에 불과하다. 개간된 토지는 북한이 14,600㎢인 반면 리비아는 4,700㎢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북한은 리비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산업자원이 고갈되어 있는 북한과는 대조적으로 리비아는 1959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석유생산과 적은 인구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이다. 리비아는 그 동안 사회주의와 시장 경제체제를 혼합․운용하면서 석유수출 대금수입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공업화와 지하수 개발을 비롯한 경제개발을 촉진하는 것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다. 구매력 지수로 2002년도 GDP는 북한이 223억불, 리비아가 337억불이고 인당 국민소득은 북한이 1천불, 리비아가 6,200불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은 북한이 전무한 반면 리비아는 2001년11월 현재 원유가 일일 142만 바렐, 천연가스가 연간 62억㎥로 원유생산이 국내 총생산의 30%, 총수출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입은 북한이 각기 8억불, 13억불(2001년)인 반면 리비아는 각기 118억불, 63억불(2002년)을 기록하고 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가 그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한 반이스라엘․반미․반영 노선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이단아’의 행보를 선택함으로써 리비아를 ‘불량국가’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리비아는 가입하고 있는 국제기구(ABEDA, AfDB, AFESD, AL, AMF, AMU, CAEU, ECA, FAO, G-77, IAEA, IBRD, ICAO, ICRM, IDA, IDB, IFAD, IFC, IFRCS, ILO, IMF, IMO, Interpol, IOC, IOM, ISO, ITU, NAM, OAPEC, OAU, OIC, OPEC, PCA, UN, UNCTAD, UNESCO, UNIDO, UPU, WCO, WFTU, WHO, WIPO, WMO, WToO)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개방된 나라였다. 리비아의 국제적 고립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을 심화시킨 끝에 1986년4월 미국에 의한 트리폴리의 카다피 숙소 폭격과 1988년과 1989년에 발생한 팬앰 및 UTA 여객기 공중폭파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이로 인한 유엔안보리의 경제제재와 미국에 의한 ‘테러 지원국’ 지정 등으로 리비아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었다. 카다피로서도 더 이상 ‘이단아’의 행보를 고집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카다피는 그 동안 리비아가 보호하고 있던 1999년4월 팬앰 여객기 폭파 혐의범 2명을 인도하고 팬앰기 희생자 270명의 유가족들에 대해서는 27억불, UTA기 희생자들에게는 1억7천만불이라는 거액의 보상에 동의하는 등 방향전환을 시작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영국의 블레어 수상이 2002년9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정권에 대한 경제지원 중지와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제의하는 서한을 카다피에게 보냈다. 카다피는 무가베 정권에 대한 경제지원 중단은 쉽사리 수용했으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는 한 동안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의 ‘존재’를 ‘시인’하고 이의 ‘폐기’ 검토 용의를 표명하는 답장을 블레어 영국 수상에게 보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영국은 미국의 부시 정권과의 공조를 통해 추진한 리비아와의 후속 막후 협상을 통해 작년 12월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 및 국제적 ‘검증’ 수용 선언을 유도해 낸 것이다.
이 같은 경위는 이번 리비아의 결정은 경제적 고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다피의 아들로 그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셰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가 지난 13일 미국 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회견에서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는 패키지 협상의 결과였다”면서 “미국과 영국이 리비아를 하나의 ‘선례’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리비아의 속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24년만에 미국 외교관을 리비아에 복귀시키고 미국 석유회사들이 리비아 재진출을 서두르고 있으며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영국의 블레어 수상도 “리비아가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한다”는 전제하에 “리비아의 국제사회 복귀” 지원을 시사하는 등의 화답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리비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북한은 1990년 이후 사실상 국가파산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나라다. 그 동안 북한에서는 식량부족으로 2-300만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기아를 피하기 위해 두만강을 밀항하여 중국의 동북 3성에서 불법 체류자가 되어 있는 수십만 북한주민들 가운데 행운을 잡은 수천명이 천신만고 끝에 남한행에 성공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남한과 미국 및 EU 여러 나라들, 그리고 유엔 산하와 그 밖의 국제기구와 자선단체들이 제공하는 식량과 비료, 그리고 현금지원으로 겨우 정권의 연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리비아와 달리 북한에는 아무런 부존자원이 없어서 경제적인 자립기반이 극도로 취약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북한의 경우 북한이 외교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핵문제와 북한 경제 사이에 존재하는 함수관계이다.
문제는 북한이 리비아처럼 핵을 포기했을 때 그 것이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의 경제적 ‘연명’은 외부로부터의 경제원조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고 이 같은 경제원조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공갈카드’화하고 이를 이용하는 ‘벼랑 끝(Brinkmanship) 외교’로 외부세계로부터 ‘갈취’해 낸 것이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여 북한의 손에서 ‘핵’이라고 하는 ‘공갈카드’가 사라지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그 경우 그 동안 북한에 제공되던 외부세계로부터의 경제원조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리비아에 비해 4배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리비아와는 달리 그 경우 아무런 자립경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960년대 이후의 한국경제처럼 이 경우 북한경제가 살아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면적 시장경제와 개방화․국제화, 그리고 민주화를 수용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다. 왜냐 하면 그러한 선택은 필연적으로 김정일 정권․김정일 체제의 도태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의 가상의 차원에서, 북한이 김정일 정권의 정권안보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유독성이 제거된 내용의 경제원조를 제공받는 것을 대가로 핵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을 때 그 뒤에는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핵이라고 하는 ‘공갈카드’가 북한의 손에서 사라진 상황하에서 북한이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개방화․국제화․민주화를 거부하고 오히려 외부세계로부터의 경제원조를 북한동포들에 대한 전근대적 독재 탄압체제를 유지․강화하는 데 이용할 경우 국제사회가 그러한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를 무조건 계속할 것인가의 여부는 의문의 소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그러한 경우에는 가뜩이나 건망증세가 심한데다가 자극성 있는 뉴스거리를 쫓아다니는 국제여론 사회에서 핵 카드가 없는 북한은 머지않아 망각의 존재가 될 소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북한이 리비아의 ‘선례’를 따른다는 것은 비단 북한의 핵무기 개발 내용을 공개하고 이의 폐기를 수용하며 NPT 체제에 복귀하여 IAEA 사찰을 수용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뿐 아니라 화학․생물 무기의 ‘실체’를 공개하고 폐기하며 이에 대한 검증을 수용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북한은 미사일 분야에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를 받아들여 대포동 등 ‘장거리 탄도탄(ICBM)’ 개발을 포기하고 SCUD와 로동 등 중거리 유도탄도 사정거리를 300km 이내로, 탄두 중량을 500kg 이내로 줄이라는 MTCR의 제한을 수용해야 한다. 미국은 이에 더하여 북한에게 비무장지대 가까이에 전진 배치하여 남한의 서울을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는 장사정포들의 후방으로의 재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이 같은 조치를 포괄적으로 받아들여 리비아의 ‘선례’를 따른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실현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3. 북한 핵 어디로 가는가?
북한은 2002년10월초 평양을 방문한 켈리 미국 대통령특사에게 우라늄 ‘고농축’에 의한 우라늄 폭탄 개발 계획의 ‘존재’를 ‘시인’한 뒤 한반도의 핵 위기를 증폭시키는 조치를 연달아 일방적으로 취하기 시작했다. 영변 등지의 핵 시설과 물질에 대한 ‘동결’을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IAEA 사찰관을 추방하며 5,000kw 용량의 흑연감속로의 가동을 재개하고 ‘건식 보관’ 중이던 8,100여 개의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에 착수했다고 주장했다. 2003년1월30일에는 ‘탈퇴 보류’ 상태에 있던 NPT 탈퇴를 다시 선언하여 4월30일자로 이를 발효시켰고 6월에는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 완료를 선언했으며 이 무렵부터는 ‘핵 억제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금년 1월에는 미국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와 미 국무성의 전 대북교섭특사가 포함된 민간 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 그들이 ‘핵 억제력’이라고 일컬은 영변의 일부 핵 시설과 물질(?)을 이들에게 공개하는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미국과 북한 간에 작년 4월에는 베이징에서 중국이 참가한 ‘3자회담’을, 그리고 작년 8월과 지난 2월 및 6월에는 역시 베이징에서 한국과 일본 및 러시아가 추가적으로 참가한 ‘6자회담’의 제1차ㆍ제2차ㆍ제3차 회담을 여는 등 ‘다자방식’에 의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노력은 두 가지 상황 때문에 그 전도가 밝지 않다. 첫째로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핵무기 개발 계획에 대한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법에 의한 완전한 폐기(CVID)”를 우선적으로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 소위 ‘동결 대 보상’ 원칙과 ‘일괄타결․동시해결’ 방식을 앞세워 미국에 대해 북한이 요구하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 보상조치’의 ‘우선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 사이의 간극이 메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상황이다. 둘째로는 북한이 다시 말을 바꾸어 우라늄 폭탄 개발 사실을 부정할 뿐 아니라 2002년10월 켈리 특사에게 문제의 우라늄 폭탄 개발 사실을 ‘시인’했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는 상황이다.
제2차 ‘6자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인 ‘일괄타결․동시해결’ 방식은 구체적으로는 ‘1단계 조치’로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이 ①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②정치적․경제적․군사적 제재를 해제하며 ③북한에 중유와 전력을 지원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여기서 특유의 말장난으로 듣는 이들을 현혹시켰다. 북한이 말하는 ‘동결’이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실험하지도, 이전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도 포기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말장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은 동시에 “최종적으로 미국과 국교가 수립될 때 핵을 포기”하되 “그 때까지는 필요한 최소한의 ‘핵 억제력’을 유지하며 다만 이를 증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아울러 표명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 억제력’이란 ‘1994년 이전에 확보한 종전의 보유물’과 ‘2003년에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지난 2월10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주목을 요하는 사실을 공개했다. 즉, 북한과 제2차 ‘6자회담’ 개최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이 주장하는 ‘동결 대 보상’ 원칙을 ‘인정’”했고 “제2차 6자회담에서 (북한과) 공동협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제2차 ‘6자회담’ 석상에서 중국이 핵문제 해결 방안에 관하여 미국의 입장보다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이 이와 같은 이상 제2차 ‘6자회담’의 전망은 어둡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그 같은 북한의 입장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2월4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북한이 과거에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시 무엇인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고 또 그들이 계속 준수했어야 하는 합의로 회귀하도록 하기 위한 재정적 보상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우리가 분명히 밝히는 것은 ‘동결’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라면서 “‘동결’은 ‘제거’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동결’을 추구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못을 박았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켈리 차관보는 2월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대북정책 세미나 만찬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임하는 미국정부의 2대 원칙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번복할 수 없는 방법에 의한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폐기와 다자 차원의 외교적 해결”이라고 강조하고 “일부에서는 6자회담이 미․북간 양자회담에 의하여 대체되거나 보완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제2차 ‘6자회담’은 예정했던 일정을 하루 연장하여 나흘 동안 계속되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리비아가 이번에 포기 결정을 한 우라늄 ‘고농축’에 의한 우라늄 폭탄 개발 문제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북한의 대표단장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우라늄 ‘고농축’ 계획의 ‘존재’ 자체를 완강히 부정했기 때문이다. 김계관은 심지어 재작년 10월 평양에서 미․북간에 오갔던 얘기는 북한의 강석주 제1부상이 켈리 미 국무차관보에게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가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We are entitled to have a nuclear program)”고 말한 뒤 “우리는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가지고 있다(We have a weapon more powerful than that)”이라고 덧붙이자 켈리 차관보가 “그 말은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을 의미하는가”라고 물은 데 대해 강 부상이 “판단 여부는 당신들에게 달려 있지 우리가 일일이 해석까지 해 줄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결국 미국측에서 통역의 문제로 북측의 얘기를 오해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은 최근 파키스탄과 리비아에서 전해지고 있는 상충되는 보도 내용 때문에 신뢰성의 문제를 제기해 주는 것이었다. 파키스탄으로부터의 외신보도에 의하면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주역이었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그 동안 “핵무기 제조를 위한 우라늄 고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설비 및 다른 장비들과 핵무기 제조기술”을 “국제 암시장 조직을 통해 이란, 리비아, 북한 및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 밀수출”했으며 그 과정에 “13회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전면 ‘시인’하고 ‘사과’하는 ‘서면 진술서’를 파키스탄 정부에 제출했고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2월4일 이를 근거로 칸 박사의 그 동안의 공헌을 참작하여 그의 ‘사면 요청서’를 수리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파월 미 국무장관은 2월6일 “핵 기술의 최대 암거래 조직은 이제 붕괴되었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칸과 그의 네트워크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북한은 이 같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2차 ‘6자회담’ 석상에서 우라늄 ‘고농축’ 계획의 ‘존재’를 여전히 부인했고 이 같은 부인이 먹혀들지 않자 이번에는 그들이 말하는 ‘핵동결’은 “평화적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포기하는 것도 포함된다”던 그 동안의 입장표명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식어해 버리고 이제는 “우리가 말하는 ‘핵동결’은 ‘군사적 목적’의 핵 활동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평화적 목적’의 핵 활동은 포함시킬 수 없다”는 새로운 주장을 폄으로써 문제의 우라늄 ‘고농축’이 사실로 판명되더라도 그 때 가서는 이것을 “평화적 목적의 핵 활동”이라는 억지를 부리겠다는 의도를 들어냈다. 이 같은 우라늄 ‘고농축’ 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신뢰성의 차원에서 그 밖의 다른 문제에 대한 토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6개 참가국들은 제2차 ‘6자회담’ 마지막 날인 2월28일 우여곡절 끝에 7개 항목으로 된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의장성명’에 담겨진 ‘합의사항’은 고작 “핵문제 및 관련된 관심사를 다룸에 있어서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 것과 “대화과정을 계속한다”는 것, 그리고 “전체회의 준비를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한다”는 것 등이었다. 다음 회의를 금년 2분기 내, 즉 4월에서 6월 사이에 개최한다는 것도 “원칙적 합의”에 그쳤고 ‘실무그룹’도 구성 원칙에 합의했을 뿐 그 임무는 앞으로 “외교 경로를 통해 결정”하기로 ‘합의’하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합의된 것이 없었다. ‘의장성명’ 내용에도 “아직 차이점이 남아 있다”는 표현을 담고 있지만 사실은 이 ‘의장성명’ 내용 그 자체에 대한 6개 참가국들의 해석이 각기 동상이몽이기 때문에 모양은 비록 한 개의 ‘의장성명’이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여섯 개의 ‘의장성명’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 참가국들은 그들이 논의해야 할 ‘핵문제’의 ‘성격’과 ‘범위’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제 이 문제는 각국의 ‘차석대표’들이 참가하는 ‘실무그룹’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되었지만 ‘전체회의’와 ‘수석대표 모임’에서도 타결시키지 못했던 이 핵심문제를 ‘차석대표’들이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결국 북한의 핵문제는 미의회도서관의 래리 닉시 박사가 연초에 예견했던 것처럼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연말에 있을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까지 ‘6자회담’의 전체회의와 실무그룹 모임을 몇 차례 “가다/서다”식으로 반복하는 선에 머물러 있게 될 전망이 더욱 유력해 진 것이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 대표들은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에 “예상보다 진전된 것”이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북한측은 “이번 회담의 유일한 성과는 우리와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라고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번 회담은 북핵문제 그 자체의 해결에는 아무런 진전을 이룩하지 못하면서도 모든 참가국들이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다. 회담 참가 6개국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각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회담 결과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선 중국은 회담의 결렬을 막고 회담을 계속한다는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주최국으로써의 체면, 즉 멘쓰를 세웠을 뿐 아니라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는 11월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몰입되어 있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핵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당분간 ‘6자회담’이라는 ‘외교의 장’에 묶어놓음으로써 북한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면서 야당인 민주당으로부터의 정치공세의 예봉을 비켜갈 수 있는 논거를 확보했다.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계속 거론하고 이를 이유로 대북 경제제재 논의를 확산시켜 심화일로의 국내여론의 보수성향에 영합할 수 있게 되었고 러시아는 ‘무임승차’를 만끽하면서 한반도 문제 당사국 지위를 고수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당분간 이번 베이징 회담의 최대의 수혜자는 김정일의 북한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파국 없이 적어도 당분간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핵문제’를 국제사회를 농락하고 협박하여 외부로부터의 경제원조를 확보하는 ‘공갈카드’로 활용하는 ‘벼랑 끝 외교’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핵문제’로 인하여 조성된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역으로 이용하여 김정일 정권의 독재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북한 특유의 동원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민족공조’ 공세로 남한사회의 ‘친북․좌경’화와 한미 안보동맹의 파괴를 책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반면, 남한의 노무현 정권은 북한을 계속 베이징 ‘6자회담’ 프로세스에 묶어두기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유로 국내외의 ‘퍼주기’ 시비를 아랑곳함이 없이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의 대북 ‘뇌물공세’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제2차 ‘6자회담’ 이후의 북한 핵문제의 향방은 어찌 될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최근 워싱턴에서 한국의 조선일보와 미국의 AEI(기업공공정책연구소) 공동주최로 열린 한․미 대북정책 세미나 미국측 참가자들의 발언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세미나에서 미국측 발표자들과 토론자들은 대부분 ‘6자회담’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함께 전례 없이 공공연하게 북한 붕괴론을 거론하는 특징을 보여 주었다. 폴 브래켄 예일대 교수는 “김정일이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간 길을 가고 있다”면서 “북한의 붕괴로 북한의 핵개발이 중단될 경우 주변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보다 이득이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조세프 윈더 KEI(한국경제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루마니아 식으로 붕괴하는 것이 어째서 나쁘냐”고 반문했고 캐럴 랭카스터 조지타운대 교수는 “현재의 대북원조가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것인지 북한정권의 수명연장을 돕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마커스 놀란드 IIE(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국제적 지원이 중단된다면 북한정권의 교체 가능성은 첫 해에 40% 높아지고 2년 이내에 정권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며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에 대해서는 협력적 포용정책을 써도 붕괴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견해를 제시했고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선언할지 모른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든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던지 아니면 북한의 핵 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제2차 베이징 ‘6자회담’의 결과는 북핵문제가 리비아 방식으로 해결될 전망은 거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었고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결은 결국 김정일 정권의 향배와 직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최근 리비아와 파키스탄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태 진전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해 주고 있다. 파월 미 국무장관의 말대로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대부’인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 핵 기술 암거래 시장’이 붕괴됨에 따라 북한이 추진하던 두 가지의 핵무기 개발 방식 가운데 우라늄 폭탄 개발계획은 북한이 리비아처럼 공개적으로 포기하지 않더라도 결정적인 차질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끝]
[이동복 전 명지대 교수]http://www.dblee2000.pe.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