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남긴 1950년대 영화 평론을 중심으로, 그가 살았던 명동 일대의 풍경과 전후 한국의 문화생활상을 추적한다. 짧은 생애 속에서 박인환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시와 영화 너머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일종의 탐사 역사 에세이다.<편집자주>
인제 박인환문학관 [사진=오동진]
1955년 한국에서 개봉된 <모정>은 한자와 영어 제목이 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모정은 慕情이다. 그리워할 ‘모’이다. 영어 제목은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이다. 사랑은 많이 빛나는 무엇, 정도이다. 한자로는 다소 처연하며 서정적이고 영어로는 다소 반짝거리는 느낌이다.
영화 분위기는 영어 느낌처럼 찬란하다가 나중에는 쓸쓸한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1949년을 배경으로 한 두 연인의 이야기이며 남자는 유부남, 여자는 미망인이다. 남자 마크는 신문기자이고 여자 한수인은 의사이다. 남자는 미국인, 여자는 미국 군인 아버지와 홍콩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성이다.
한수인 역으로 나온 제니퍼 존스는 원래 좀 까무잡잡한 것으로 유명했던 스타이다. 나중에는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1957)의 여주인공으로 나왔다. 그때도 이국적이었다. 이 영화 <모정> 주연 역으로서 적격이었다. 남자 마크 역은 당대의 스타였던 윌리엄 홀든이다. 그의 출연작 <선셋 대로>(1950)는 아직도 걸작 반열에 올라 있다.
영화 '모정' [사진=다음DAUM]
시인 박인환도 이 영화 <모정>을 봤을 것이다. 그의 성정, 취향상 이 영화를 안 봤을 리 없다. 안 좋아했을 리도 없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니면 사라진 것일까. 영화에서 두 남녀는 실로, 미친 듯이 사랑한다. 둘은 홍콩 해변으로 가서 바위 뒤 어디,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곳, 모래사장에서 뜨겁게 키스를 나눈다. <모정>은 컬러 영화지만 헨리 킹 감독이 이 해변 장면만큼은 흑백처럼 찍었다. 일몰 가까운 해변이기도 해서 어둡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인의 농염함이 실로 불타오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하얀 원피스 스타일의 짧은 수영복을 입었다. 남자는 팬티 차림의 반라로 몸이 좋다. 둘은 담배를 서로 문 채 담배에서 담배로 불을 붙인다. 담배와 담배처럼 둘은 그렇게 키스를 시작한다. 1950년도 안 됐던 때인 만큼 해변에서 벌였음직한 남녀의 정사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랬을 것으로 암시된다. 그건 프레드 진네만의 1952년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버트 랭카스터와 데보라 카가 하와이 해변에서 철썩이는 파도를 맞으며 모래 위를 뒹굴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1950년대의 남녀들은 서로 살을 맞대기 위해 해변을 자주 찾았을 것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사진=다음DAUM]
<모정>의 마크와 한수인의 사랑은 찬란했지만, 그 끝은 슬픈 것이었다. 마크가 어느 날 수인에게 말한다. “한국에서 전쟁이 터졌소. 미국 본사에서 취재 지시가 떨어졌소. 한국에 다녀오겠소.” 그러나 마크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종군기자로 전선에서 죽는다. 둘이 항상 밀회를 나누던 언덕에서 여자는 남자가 훠이훠이 구릉을 넘어 걸어 올라올 것을 기다리지만 남자는 오지 못한다.
바로 그 남자, 마크를 돌려보내지 않은 1950년 한국전쟁. 그 직후의 궁핍하고 남루했던 남한 땅에서 박인환과 명동백작들은 영화 속 서구 남녀가 밀회를 나누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괜한 죄책감을 느꼈을까? 슬픔을 느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한가득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1949년 홍콩이 보여 주는 물질적 풍요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봐도 당시 홍콩은 부유함으로 실로 넘쳐 나는 곳이었다.
1957년 한국 홍콩 일본 3국 최초의 합작영화로 한동안 소실됐다가 오디오는 사라진 채 영상만 복원된 <이국정원(異國情鴛, 이국의 연인. 원은 원앙새의 원이다.)>에서도 홍콩의 풍경은 유럽 그리스나 이탈리아 로마를 연상시킨다. 그만큼 홍콩의 1950년대는 풍요로웠다.
우리는 정반대였다. <이국정원>은 홍콩 쇼브라더스가 투자제작을 하고, 일본 촬영감독이 찍은 작품이었다. 돈은 없고 오로지 인적 자원, 잘생긴 남자 배우가 넘쳐났던 가난한 나라의 한국에서는 김진규, 윤일봉, 최무룡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2021년 예술의 전당 등에서 뮤지컬 배우들과 악단을 동원한 동명의 ‘라이브 더빙 쇼’(제작 오동진)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사진=다음DAUM]
1955년 박인환은 가장 많은 영화 글을 남겼다. 영화평을 썼고 좌담을 기록했으며 당시 정부의 영화 수입 정책, 심의 시스템에 대해 분개하는 글을 남겼다. 2025년 현재 국내 영화산업의 정책, 시스템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살풍경한 모습들을 그려 냈다. 시대의 오류는 반복된다.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푸른사상刊, 맹문재 엮음) 164쪽에서 그는 이렇게 일갈하고 있다. “영화를 수입하려면 공보처의 추천이 필요하고 상영되기 전에는 검열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문학 그대로 무궤도적이며 비문화적인 까닭에 <한국동란의 고아>나 <카스바의 사랑> 같은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955년 박인환은 <모정> 같은 신파 영화보다는 <내가 마지막 본 파리> 같은, 일종의 뉴로틱(neurotic) 영화, 뉴로티시즘의 경향을 띠는 작품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뉴로티시즘은 전후의 신경증적 질병이나 증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그림 등 1950년대 문화 전반에 나타났던 현상을 가리킨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그야말로 ‘리즈 시절’의 미모가 최고조였던 때의 작품이다. 종전 날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의 축제 분위기에서 우연히 키스를 주고받은 찰스(반 존슨)와 헬렌(엘리자베스 테일러)이 결국 결혼까지 이르지만, 나중에는 파국과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서사는 결국 홀로 살아남은 찰스의 회고담 같은 것이다. 일종의, 에릭 시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라이언 오닐, 알리 맥그로 주연의 <러브스토리> 같은 분위기이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를 보고 나서 김소동, 유두연 같은 평론가는 많이 울었던 모양이다. 박인환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 영화의 키워드를 그는, 자유로운 분방과 쾌락 그리고 파탄으로 꼽았다. 박인환은 1950년대에 있어 가장 냉철하고 분석적인 평론가였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한국의 영화계는 좀 더 빠르게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나간 시간을 두고 가정법을 쓰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 박인환이 타계하기 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위안 삼아야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파리를 봤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본 명동의 풍경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박인환은 시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전략)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지나간 날의 동화를 운율에 맞춰
거리에 화액(花液)을 뿌리자
따뜻한 풀잎은 젊은 너의 탄력같이
밤을 지구 밖으로 끌고 간다
(중략)
거리는 매일 맥박을 닮아 갔다
베링 해안 같은 나의 마을이
떨어지는 꽃을 그리워 한다
황혼처럼 장식한 여인들은 언덕을 지나
바다로 가는 거리를 순백한 식장으로 만든다
(하략)
오동진 영화평론가/ 뉴스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