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飛燕(조비연)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장 날씬한 여인이 있다.
바로 ‘
나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명 趙宜主(조 의주) 대신
趙飛燕(조비연)으로 불린 여인이다.
그녀는
중국 사대미인 중의 하나로
꼽혀왔는 데
여기서는
그녀와 함께 한 成帝(성제)의 후궁이었던 반첩여의
이야기도 함께 해보기로 하자.
여색을 밝혔던
성제 劉鷔(유오)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사방으로
유람을 다니 던 어느날 良阿公主(양아공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공주는
歌女(가녀) 수 명을 불러 노래 하고
춤을 추게 했다.
그 중
유달리 고운 목소리와 빼어난 춤솜씨를
가진 여인이 눈에 띄었 다.
성제는
환궁한 후 공주에게 그 여인을 보내
달라고 했다.
이렇게
온 여인이 바로 조비연 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飛燕(비연)’ 즉 ‘나는 제비’라는
별명은 어떻게 붙게 되었을까?
성제가
太液池(태액지)에 큰 배를 띄우고
즐길 때의 일이다.
성제는
조비연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시랑인 馮无方(풍무방)
에게 笙(생)을 불어 반주를 하게 했다.
배가 태액지의
한가 운데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광풍이
불어 그녀가 휘청거렸다.
황제는 급히
그녀의 한쪽 발목 을 붙잡았는데 춤의 삼매경에
빠진 그녀는 춤추기를 멈추지 않더니
성제의
손바닥 위에서 너울너울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그녀를 ‘비연’ 즉 ‘나는 제비’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래 성제에게는
황후 허씨가 있었고 班婕妤(반첩여)라는
후궁도 있었다.
반첩여는
미모와 덕성을 갖춘 것은 물론 詩賦(시부)
에도 뛰어났다.
성제는
이런 반첩여를 매우 총애했으나 조 비연이
온 뒤에는 그녀에게로 마음이 옮겨갔다.
조비연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바로 趙合德
(조합덕)이다.
조씨자매는
차례로 성제를 모셨는데 성제는 다른 후궁들은
쳐다보지도 않았 다.
조씨자매는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그치지 않았다.
황후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이들이 갑자기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은
조씨자매가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흉계를 꾸몄다고 생각했다.
당시 장안에
떠돈 노래에는 ‘燕飛來 啄皇孫(연비래 탁황손)’라는
가사가 있었다.
‘제비가 날아오더니
황손을 쪼았더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조씨자매가
흉 계를 꾸며 황손을 해한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그러나
성제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 했다.
오히려 이즈음
엉뚱한 소문 하나를 듣게 된다.
후실인 반첩여가
황후 허씨와 짜고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후궁들을
저주하고 임금을 중상모략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을 믿은
성 제는 격분해서 황후의 인수를 회수하고 長信宮(장신궁)에
유폐시켜버렸다.
그러나 이 또한
임금의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조씨자매가
반첩여를 무고한 것이었다.
성제는
반첩여를 불 러 ‘네가 후궁들을 저주하고 황제를
중상했느냐’고 직접 심문했다.
황제의
추궁에 대해 그녀 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만일 귀신에게
지혜가 있다면 폐하를 저주하는 일을 반드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귀신에게
지혜가 없다면 주술을 시행해도 일에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귀신 따위가
어찌 황제를 해칠 수 있겠느냐는 이런 현명한 대답으로
반첩여는 큰 화를 모면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성제는
반첩여에 대한 의심을 풀고 황금 100근을
하사했다.
이렇게 반 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옛날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처지가 아니었 다.
총명한 반첩여는
허황후의 말벗이 되겠다고 자청했고 성제의 곁을
떠나 황후에게로 갔 다.
거기서 시를
지으면서 세월을 보냈으니 이때 지은
시가 怨歌行(원가행)이다.
이 시는
자 신을 총애하던 성제의 사랑이 점차 조비연에게로 옮겨가면서 쓸쓸해진
자신의 처지를 철 지 난 가을부채에 비유하는 내용이다.
새로 자른 제나라 흰 비단이
희고 깨끗하기가 서리나 눈 같네 재단해서 합환선을 만드니
고르게 둥근 것이 보름달과 같네
님의 품과
소매를 나들며 흔들리며 미풍을 일으켰지만 늘 두려운 것은
가을이 와서 산들바람이 더위를 앗아갈까 함이네.
대나무 상자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세 애틋한 정은 도중에
끊어지고 말았네.
한편 황후와
반첩여를 몰아낸 조비연은 황후의 지위에 올라
趙皇后(조황후)로 불리게 되었 다.
이렇게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한 비연은 세상에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성제 가
조비연의 치마폭에 싸여 보낸 세월은 겨우 10년, 성제는
어느날 조합덕의 침상에서 급사 했다.
성제의 죽음에
조합덕이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조합덕은
불안했다.
자신이 믿었던
황 제가 갑자기 죽었으니 과거 그녀가 황후와
여러 후궁들에게 저지른 악행으로
보복을 받을까
두려웠던지 그녀는 독주를 마시고
자결했다.
성제가 죽고
王莽(왕망)이 정권을 잡았다.
조합덕이 자결한 뒤
언니 조비연의 신분은 계속 하락하여 庶人(서인)이
되었고 걸식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그녀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와 달리
황태후의 말벗이 되어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반첩여는 성제가
죽은 뒤 그의 무덤을 돌보는 정절을 보였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40여 세의 나이로 처 연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성제와 비연,
합덕 두 자매의 성애생활을 묘사한 소설로 한대에 伶玄(영현)
이라는 작가가 지 은 ≪飛燕外傳(비연외전)≫이 있다.
이 소설이 나온 뒤
중국에는 궁중생활의 성애를 폭로하 는 소설이
계속 등장하게 되었다.
[출처] 趙飛燕(조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