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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휘두른다는 건 정말 더러운 일이다!'
천호는 가슴 깊이 한탄했다
자신이 가르치고 자신을 따르는 이가송과, 그에게는 친 혈육보다
더한 정사청... 한쪽은 자신을 따라 제왕성과 맞서고 또 한쪽은
제왕성의 장녀 단리장영의 편에서 칼을 휘두르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 그들 둘 뿐이겠는가!
열 네 명의 후기지수 모두들 자기 가문과 문파의 각양 각색의
이해에 엇물려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결국 심신 양면으로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지지나 않을지..
"처음엔..."
긴 침묵을 깨고 천호가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
"나 혼자서 제왕성주에게 개인적인 빚만 청산하다 죽던지 운이
좋아 살아난다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살아가려 했소"
천호가 한을 뿜어내듯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칼을 잡고 칼바람이 이는 강호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소. 모든 것이 얼키고 설켜 내 개인이라는 존재는 사라
지고 나중에는 내가 누구인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리
게되는 곳이 강호인 것 같소"
정사청이 묵묵히 잉어들이 일으키는 연못의 파문을 응시했다
'나는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작은 파문이 가슴속에서도 따라 일고 있었다
다시 천호의 목소리가 파문 속으로 젖어 들었다
"그렇게 미로 한 복판에서 길을 잃고 나면 멈출 수도 없이 끝
까지 가야 하는 곳이 또 강호가 아닌가 싶소. 지금 나 자신 미로
한 복판에서 빠져 나올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소.
그 미로 속 어느 한 귀퉁이에서 정공자와 내가 적이 되어 서로
의 가슴에 칼을 겨누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칼이란
게 원래 그런게 아니겠소. 그땐 아무 미련 없이 날 찌르시오.
칼을 든 사람들끼리 정의니 협의니 하는 것은 애초에 부질없는
소리라오. 상대를 베고 살아 남은 자가 바로 정의가 아닐런지...."
묵묵히 연못을 응시하는 천호의 옆모습에서 처절한 고독의 냄새
가 풍겨져 왔다
그 지독한 고독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정사청은 옆에 있는 사내에게서 진정한 강자의 냄새를 맡았다
처절한 고독 속으로 녹아들어 고독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이 아는 한 진정으로 강한 사람들이다
한중광 사부가 그랬고 광승인 광해 대사가 그랬다
옆에 있는 이 사내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기에 오만하기 짝
이 없는 백도무림의 후기지수들이 그를 두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 사내의 말대로 미로 속 어느 한 귀퉁이에서 서로 칼을 겨누
는 입장이 되어 마주친다면.... 그리고 이가송과도 그렇게 마주치
게 된다면.....!
'정말 더러운 일이군!'
정사청은 자신이 차고 있는 칼을 쳐다보았다
한중광에게서 익힌 무당검과 광승에게서 익힌 소림의 검이 밖으
로 튀어나오고 싶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천호 오라버니!"
두사람의 상념을 깨며 소혜가 울상이 되어 천호에게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오 소혜!"
숨을 몇 번 고른 소혜가 서둘러 말을 했다
"한영! 한영 아저씨가 말없이 혈영의 본거지로 떠나려 하다 화영
언니에게 들켜서 지금 언니가 울고 매달리며 난리가 났어요. 어
서 오라버니가 좀 말려 주세요"
천호와 정사청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한영이란 사람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혈영이란 곳은 이
미 예전에 한영이 몸담고 있던 흑유부가 아니었다
혼자 가게 둘 수도 없는 일이고 혼자 가더라도 살아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제 저녁 은하전장 장주 하주명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은하전장에서 은밀히 조사한 사실들과 한영이 알고 있던 사실들
을 분석하며 한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혈영은 기존의 여러 살수집단들을
규합하여 탄생된 또 하나의 암흑의 세력이었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상상외로 세력이 컸고 지금 현재도
무섭게 세력을 확장 중이었다
최근에는 장강수로연맹도 그들의 세력하에 들어간 것으로 짐작
되어 좌중을 긴장 시켰다
이 상태대로라면 그들은 조만간에 무림을 뒤흔들 또 하나의 세
력으로 등장 할 것이다
그런 저런 사실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총단이 위치한
곳이 옛 흑유부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한영의 얼굴로 모
든 시선이 모아졌다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한영이 결국 단신으로 그곳
으로 잠입할 결정을 내렸고 아무도 몰래 떠나려던 것을 그의 행
동을 미리 예상하고 있던 조화영에게 제지당한 것 같다
"언니!"
벽쪽으로 향한 채 허공만을 응시하는 한영 곁에서 울고 있는 조
화영에게로 소혜와 천호 일행이 들어섰다.
소혜가 조화영을 부축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동안 천호는 물끄러
미 한영과 조화영을 응시했다.
소혜와 함께 자신을 찾아다니며 천방지축으로 행동했던 조화영
의 얘기를 소혜를 통해 많이도 들었고 또 조화영과 한영의 인연
에 대해서도 소혜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한영을 향한 조화영
의 눈빛과 눈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잠시 밖으로 나와 주시겠소?"
천호가 나직히 말하자 방안에 있던 모든 시선이 긴장으로 물들
며 천호와 한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조화영도 얼른 눈물을 거두고 천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천호에 대한 선입견은 대마왕이나 마찬가지였다
풍림방에서 괴한들을 도륙하던 신도기문과 철도정의 그 무서운
칼을 가르친 사내가 바로 이 사내이기에 같이 지내는 동안 그
대책 없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천호에게 만은 항상 두려움이 깃
든 눈빛으로 대하였다
그녀가 아는 천호라는 사내는 말이란 걸 싫어하는 사내였다
가만있던지 아니면 행동하던지
그리고 그 행동은 칼과 관련된 것이었다
잔뜩 긴장한 시선으로 조화영도 소혜와 함께 뒤따라 나왔다
은하전장 장원 한 곳에서 천호와 한영이 마주했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여 멀찍이서 둘을 바라보았다
"한영대협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생각을 조금 바꿀수는 없
겠소?"
천호가 조용히 한영의 의견을 물었다
"대협께서도 어제의 모임에서 나온 결론으로 충분히 짐작하겠지
만 혈영이란 곳은 예전에 대협이 있던 곳이 아니오. 그곳은 어느
누구도 혼자 갔다가는 살아 돌아 올 수 있다는 장담을 하지 못
할 것 같소 그러니 좀더 계획을 세운 후 우리들과 같이 가도록
합시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여러분들과는 별도로 나 혼자 가야 할
길이오"
한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지가 않소!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남자라면 혼자의 길이란
없는 거요. 그건 무책임한 일이오"
천호의 억양이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장공자 역시 소혜 아가씨를 두고 홀로 자신의 길을 떠
나지 않았던가요"
천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요! 그래서 그 그리움의 강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힘드는
지 잘 알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오."
한영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 자신 이 년이 넘는 기간동안 학처럼 야위어 가던 소혜의 모
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겉보기에는 천방지축으로
날뛰지만 정에 약하고 모질지 못한 조화영 역시 자신이 떠나고
나면 예전의 소혜처럼 시들어 갈 것이다
하지만 흑유부에서 자신을 내 쫓아 보내던 부주의 눈빛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소! 그게 내 운명인가 보오"
천호가 눈빛을 굳혔다
"좋소 그럼 내기를 하나 합시다"
한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천호를 쳐다보았다
"내 칼을 삼 초 동안만 받아낸다면 혼자서 가게 해 주겠소"
'너무 하는군!'
한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면서부터 특급 살수로 키워져 온 자신이다
두령이라는 사내의 칼이 무섭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삼초안에 자신을 제압 할 수 있다고는 수긍 할
수 없다
서서히 호승심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좋소 삼초 안에 패한다면 장공자 말대로 하지요"
천호와 한영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천천히 긴장감이 피어올라
은하전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멀찍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있던 모든 사람들도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특히 조화영과 소혜는 새파랗게 질린 채 두 사
람을 쳐다 보았다
"오라버니"
소혜가 울상으로 천호를 불렀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온 마음을 지배했지만 자욱히 피어오르는
사내들의 투혼에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한영의 몸에서 칼날 같은 기운이 은은히 퍼져 나왔다. 그 예기는
이제껏 보아온 한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고도의 지옥 훈련을 거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기운을 속으로 갈무리하고 밖으로는 한 자루의 칼만이 드러나
보였다
서서히 한영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그 날카로운 기운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조화영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두 사람의 결투를 한 장
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짐작만 하고 있던 두령이라는 사내의 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
회였다. 그리고 그 칼에 한영이 무릎을 꿇는다면 그를 혼자 사지
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제발 삼초안에 꼼짝 못하고 쓰러져라!'
조화영은 두손을 맞잡고 기원했다
'정말 가능할까?'
한영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정사청 역시 조화
영과 비슷한 눈빛으로 두사람을 쳐다보았다
사제 이가송을 비롯한 백도무림의 앞날을 지고 갈 인재 모두에
게 칼을 가르치고 그동안 이런저런 얘기 속에서 들은 그 칼이
얼마나 강할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 없지 않았지만 고도의 훈
련을 거친 흔적이 역력한 저 한영이란 사내를 단 삼초 안에 꺽
는다는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슬쩍 곁에 있는 이가송을 쳐다보았다
'이녀석은!'
정사청이 눈빛이 기광을 발했다
이가송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무슨 뜻인가? 이 녀석의 표정은!'
다시 주위에 있던 신도기문과 철도정 그리고 영호성의 얼굴도
한꺼번에 쳐다보았다
이가송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한없이 느긋하고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두령과 한영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삼초가 아니라 단 일초 안에라도 자기
들 두령이 한영이라는 사내를 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가송을 포함한 후기지수 네명의 표정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두고보면 알겠지!'
정사청이 얼른 고개를 돌려 한영과 천호가 서있는 곳으로 시선
을 모았다
한영에게서 날카롭게 피어오르던 예기가 이제는 완전히 자신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모두 사라지고 한영의 흔적은 대기의
일부가 된 것처럼 눈으로는 뻔히 쳐다보면서도 그가 어디에 있
는지 짐작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태가 되었다
'저것이 살수의 무공인가!'
모두들 멀쩡한 눈을 깜박거리며 한영의 흔적을 찾았다
분명히 천호와 좀 떨어진 곳에 한영이 서 있는 것을 쳐다보면서
도 몸으로 느끼는 한영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주대낮에 만인현시하에서 저러할진대 어둠이라도 깔렸다면 어
떨까? 굳이 어둠같은 큰 장막이 아니더라도 낙엽 한 잎 이라도
떨어져 내린다면 그 한 잎 낙옆 뒤로 완벽하게 은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앗-"
누군가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졌다
멀쩡히 눈을 떠 주시하고 있던 한영의 신형이 푹 꺼져 버렸다
그와 함께 천호의 모습도 흐릿하게 대기속으로 흩어졌다
쉬익-쉭-
몇번의 칼바람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주위에 둘러선 사
람들의 눈에 다시 들어왔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길게 베어진 상의 사이로
맨살이 훤하게 드러난 한영이 망연자실한 채 천호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허억-"
다시 한 번 누군가의 입에서 헛 바람이 새어나왔다
얼마 전 은하전장에 쳐들어온 괴한을 두령이라는 저 사내의 도
는 거의 저런 각도로 그들을 두동강 내어 버렸다
은하전장 식솔들 중 누군가가 그때의 끔찍했던 장면을 떠 올렸
던 것이고 폭죽같이 피보라가 터져 나오며 양단되어 무너지는
주검을 같이 떠 올린 것이다
다행이 이번 상대는 육신이 동강나지 않고 입고있던 상의만이
동강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멍하니 바라보던 눈들이 다시 한 번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하루하루
되세요
무슨 일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저도궁금합니다,
굿
감사합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아 갈증나요, 즐독하구 있는데 넘 짧아요
3편씩 부탁할게요,,,,,, 부탁해요~~~~
즐독 ㄳ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