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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미도리, 사녀, 칠녀, 팔녀
사녀와 팔녀도 본래 살던 골판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풀숲에 숨어있었다.
이 공원은 캣맘들이 드나들며 주기적으로 사료를 주기 때문에 길고양이들이 어지간해서는 사료가 놓인 근처에서 어슬렁거릴 뿐 새나 실장석을 사냥하러 다니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사료그릇 주변을 영역으로 삼고 선점한 것은 중성화 수술을 받기 전의 두어마리의 고양이에게서 태어난 자식 고양이들과 손자 손녀 고양이들의 무리로 낯선 냄새가 나는 유입 고양이들은 거칠게 공격해서 쫓아내고 있었고 또 고양이들이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장난삼아 사냥을 하기도 하는 동물이라 사녀와 팔녀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양이까지 가지 않더라도 참새처럼 작은 새들도 자실장인 사녀에게는 매우 위험한 천적이었고 자실장보다 더 작은 엄지인 팔녀까지 가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나마 그 동안에는 버려졌을 때 자실장들의 몸에 범벅이 된 운치와 토사물의 역겨운 냄새 때문에 다른 위험한 동물들이 접근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오염물들이 바람에 씻겨 냄새가 다른 들실장들 수준으로 옅어진 덕분에 사냥감이 될 위험성이 많이 올라갔다.
미도리의 자들 중 영리하기로 육녀와 쌍벽을 이루던 사녀였기에 지금 자신들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고 위험한 상황에서 팔녀를 미끼로 던지고 도망치거나 비상식량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일회용에 불과할 뿐이라 궁극적으로는 닝겐에게 길러지지 않으면 살아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미도리나 다른 자매들이었다면 [닝겐은 당연히 귀여운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는 데스웅] 하고 생각했겠지만, 영리한 사녀는 [전 노예닝겐도 와타시타치를 버렸는데 다른 닝겐노예들이 쉽게 와타시타치를 키워줄 리가 없는테치]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자신이 키워지는 방법은 팔녀를 이용해서 자신의 영리함과 우수함을 어필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미도리의 목표가 새 주인을 찾아 다시 사육실장의 지위를 되찾고 전 주인을 후회하게 만든다는 것이라 공원의 현명한 실장석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길가에 골판지 하우스를 두었기 때문에 사녀와 팔녀도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잔디밭 근처에 숨어있었다.
꼬박 하루를 고민한 끝에 사녀는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내고 음흉하게 팔녀를 꼬드겼다.
[팔녀챠, 혹시 탁아라는 걸 아는 테치?]
팔녀는 탁아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녀로부터 탁아라는 말을 듣자 어째서인지 위석에 저장된 정보가 마치 직접 경험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레치레치! 아는레치! 들분충들이 닝겐의 편의점 봉투에 와타시타치를 넣으면 닝겐이 와타시를 섬기는 레치! 그러면 와타시는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되는 레치! 아와아와한 목욕을 하고 우마우마한 스테이크를 먹는레치! 예쁜 분홍색옷도 받는레치!]
[맞는테치. 역시 현명한 팔녀챠는 잘 알고 있는 테치. 팔녀차라면 알고 있겠지만, 와타시타치처럼 연약하고 가련한 레이디들은 이런 험한 들생활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테치. 그러니 와타시타치는 닝겐들에게 키워져야 하는 테치.
와타시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테치. 저기 잔디밭에 앉아있는 닝겐들이 보이는테치카?]
사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어느 젊은 부부가 너댓살쯤 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나와 도시락을 펼쳐놓고 있었다. 부부는 각각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아이는 태블릿으로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사녀는 그 가족의 돗자리 귀퉁이에 놓인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팔녀 이모토챠는 저기로 들어가는 테치. 저 안에 조용히 숨어있으면 닝겐들의 집으로 가서 사육실장이 되는테치!]
팔녀는 사녀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해서 이미 사육실장이 된 듯이 기뻐서 퐁퐁 뛰었다.
[정말 좋은 생각인 레치! 사녀오네챠, 저 닝겐들이 가기 전에 빨리 가는 레치! 빨리빨리 레치!]
팔녀가 사녀의 앞발을 꼭 붙들고 잡아당기자 사녀는 당황해서 팔녀를 떼어냈다.
[아닌테치. 가는 것은 팔녀차 혼자테치. 보다시피 와타치는 발이 불편해서 움직이기 힘든테치. 만약 닝겐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들키면 팔녀챠까지 큰일나는 테치. 그러니 먼저 팔녀챠가 탁아에 성공하면... 와타시의 일은 그 뒤에 생각하는 테치...]
조금 쓸쓸한 듯이, 머뭇거리며 말을 맺는 사녀를 보고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해준다고 착각한 팔녀는 솔직히 구더기 사건 이후로 사녀에게 앙금이 남아 껄끄러웠으나 그동안 괜히 사녀 오네챠를 오해해서 미워했다고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사녀의 앞발을 꼬옥 붙들고 진심을 담아
[그럼 와타시가 먼저 가서 사육실장이 되는 레치. 사육실장이 되면 닝겐노예에게 명령해서 반드시 사녀 오네챠를 데리러 오는 레치. 그러니 기달려달라는 레치! 약속인 레치!]
하고 말하고 닝겐 가족을 향해 아장아장 뛰어갔다.
사녀는 당연히 팔녀가 인간의 가방 안으로 숨어들거라고 생각했지만, 팔녀는 가방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도시락 쪽으로 갔다. 도시락 안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너무 맛있게 났기 때문이다.
도시락통은 엄지인 팔녀가 숨어들기에는 좀 높았으나 옆에 휴대용 티슈와 뭉쳐진 호일 등이 있어서 그걸 계단처럼 밟고 도시락통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팔녀가 들어간 칸은 하필이면 비엔나 소세지 야채볶음이 있는 칸이었다. 제대로 보면 도시락통에 실장석이 숨어들었다는 것을 바로 알겠지만 팔녀는 크기가 작은 엄지였기 때문에 웹서핑에 정신이 팔려서 곁눈질로 대충 반찬 위치만 보며 포크로 콕콕 찍어먹는 가족이 보기에 팔녀의 갈색 곱슬머리는 통통한 비엔나 소세지처럼, 녹색 옷과 구두는 브로콜리나 피망처럼, 뽀얀 뺨은 볶은 양파처럼 보여서 팔녀가 반찬통 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지 못했다.
팔녀는 케찹소스에 볶아진 비엔나 소세지를 한입 베어물고 전날 먹은 구더기쨩보다 더 짭쪼름하면서도 새콤달콤하고 고소한 고기맛에 렛츙♡하고 빵콘했다.
한편, 팔녀의 이런 모습은 사녀에게는 사각지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인근 쓰레기장에서 자들에게 줄 밥을 구해서 돌아가던 들실장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젯스... 저 분충들이 또 일내는 데스. 이러다 공원 실각데스. 도대체 어떤 인분충이 저런 분충들을 이 공원에 보낸데스까!]
들실장은 예견된 위험에 발을 동동 굴렀으나, 저 분충 일가와 연관되어 일가실각한 동족들이 여럿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말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만약 팔녀가 도시락통에 완전히 들어가기 전에 들실장이 뎃스뎃스! 하고 인간가족을 불러 주의를 환기시켰다면, 아니면 차라리 그 장면을 보자마자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들실장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사이에 팔녀는 도시락통 안에 들어가버렸다.
팔녀가 도시락통 안에 들어가고 얼마 후, 사녀는 팔녀가 충분히 가방 안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소풍온 가족 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닝겐상, 닝겐상, 와타시를 보는테치! 와타시, 분충이 닝겐상의 가방안에 기어들어가는 걸 본 테치! 빨리 확인해보라는 테치!]
하고 일러바치면,
팔녀를 발견한 인간이
"우왓! 정말로 분충이 가방안에 숨어있잖아! 고마워, 영리하고 착한 자실장아. 네 덕분에 분충의 탁아를 막을 수 있었어. 답례로 널 우리집 사육실장으로 모시고 싶은데 우리에게 널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니?"
하고 자신을 데려가 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차라리 사녀가 조금 늦게 행동을 개시했더라면, 앞으로 있을 일을 보고 그대로 되돌아가 풀숲에 들어가 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가족을 향해 가면서도 행복회로를 돌리며 테프프프 웃고 있던 사녀는 눈 앞의 일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최악의 타이밍에 인간의 앞에 도착해버렸다.
인간의 시점에서 보자면.
제일 먼저 소세지 볶음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아이였다.
만화영화를 보며 좋아하는 소세지를 포크로 콕 찍어서 입안에 넣은 아이는 순간적으로 입안에 든걸 웩 뱉어버렸다.
"엄마! 이거 이상해!"
"응? 오늘 아침에 만든 건데..."
모자의 대화를 듣고 남편이 어디, 하고 손을 뻗어서 소세지를 집어 입에 넣었다. 정말로 마치 숙변이 썩은 듯한 냄새가 나서 에페페 하고 삼키려던 것을 뱉어내며 포크를 이용해서 도시락통을 끌어당겨 안을 보았다.
그랬더니, 작은 엄지실장 하나가 포크에 갈색 곱슬머리가 한웅큼 엉켜서 레챠레챠 화를 내고 있었다. 도시락통 안에서 똥도 쌌는지 적갈색 소스가 묻어있어야할 소세지 볶음의 일부가 암녹색이다. 아마 자신과 아이가 먹은 것이 이 실장석의 똥이 묻은 소세지일 것이다.
아내는 당황해서 물통을 찾아 아이의 입을 헹구게 했고, 남편은 화가 나서 포크로 엄지실장을 콱 찍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발이 뒤틀린 자실장 하나가 발밑에서 테치테치 거리고 있는데 아마 이놈의 자매인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체실장 한마리가 데스데스 하고 이쪽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하는 게 보이는데 저건 아마 어미겠지.
남편은 발아래서 테치거리는 자실장을 밟아 뭉개고, 엄지실장이 꿰뚫린 채인 포크를 가지고 성체실장에게 가서 일단 한번 걷어찬 후 성체실장의 주둥이에 그대로 포크를 박아넣었다. 성체실장이 억울함을 호소할 겨를도 없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한들 링갈을 켜지 않은 인간 가족에게는 닿지 않았겠지만.
비스듬하게 꽂힌 포크가 성체실장의 언청이입을 관통해서 뒷목으로 뚫고 나왔고 팔녀는 낯선 성체실장의 입천장과 목구멍 사이쯤에서 레... 레... 하고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고 있었다.
"이 분충새끼가..."
남편은 격분한 상태로 성체실장의 뒷머리를 뽑고 옷을 찢어 독라로 만들었으나 아이가 보고 있을터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아이가 걱정되어 서둘러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아이도, 남편도 너무 고약한 냄새때문에 입안에 들어온 것을 삼키지는 않고 바로 뱉었기 때문에 큰탈은 생기지 않았고 이 가족은 조용하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저 구청에 항의전화를 하고 지인에게 이야깃거리로 말해준 정도로 그쳤다.
그럴 터였다...
그러나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그 에피소드를 어느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고 그 글을 실장석 때문에 소개팅을 망치고 소중한 한정판 운동화까지 못쓰게 된 한 청년이 읽으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 청년은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될 정도로 격하게 항의전화와 민원을 반복해서 넣었으나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지 못하자 실장석 뿐만 아니라 구청에 대해서도 분개해 있었고 그 가족의 이야기가 적힌 글을 읽자 자신이 항의했을 때 구청에서 제대로 실장석들을 구제했더라면 저 가족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내용의 글을 원글 링크와 함께 자신이 아는 모든 커뮤니티에 올렸다.
대부분 게시판에서는 큰 반향 없이 지나갔으나 어린아이가 공원에 가족소풍을 갔다가 실장석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지역 맘까페의 심금을 울렸고, 맘까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이 사건을 이슈화하며 단체로 구청 환경과에 항의하는 전화를 했고 인맥을 통해 구청장에게까지 압박을 가했다.
결국 구청은 예산과 실장석 구제업체의 스케줄, 해당공원의 실장석 개체수를 고려하여 구제업체와의 협의 끝에 일주일 뒤로 예정된 인근 공원의 일제구제일에 추가금을 내고 이 공원도 함께 구제하기로 했다.
특히 이 공원의 경우에는 실장석들의 개체수가 적고 다른 공원에서 이주해온 영리한 실장석들이 많으므로 위석탐지기를 이용하여 특히 꼼꼼한 구제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보통 실장석 구제까지는 민원, 예산확보에서 업체와의 계약까지 두달이상 걸리게 마련인데 인근 공원의 구제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데다가 해당 구제업체가 혼쾌히 동시구제를 수락한 덕분에 이번 구제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첫댓글 분충일가 나비효과 지리구욘
빨리 다음편도 올리는데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