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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우회 스크랩 (수성구여행) - 양희지 선생을 모신 오천서원
무철 양재완 추천 0 조회 128 17.06.29 10: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천서원은 조선 성종 때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대봉(大峰)양희지(楊熙止)를 추모하기 위해

1744년(영조20)에 건립된 것으로 대구지역의 23개 서원 가운데 4번째로 건립되었다.

 

원래는 지금 위치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지점인 파령골에 있었다.

1868년(고종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고, 190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당호를 무릉재라고 하였다.

1971년 유림총회의 의결로 사당을 신축하여 오천사라 하고 오천서원으로 바꾸었다.


대봉 선생은 평안도 중화 출신으로 1474(성종 5)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특히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남달랐다 

 

오천서원은 야트막한 야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2개의 영역으로 분리 배치되어 있다.

좌측으로 외삼문(外三門), 강당(講堂), 제수청(祭需廳)이 일곽(一廓)을 이루고 있으며

강당 우측에 제향공간(祭享空間)인 사당이 한단 높게 토장(土墻)으로 둘러싸여 일곽(一廓)을 이루고 있다.
강당의 출입과 사당의 출입이 외부에서 별도로 진입할 수 있게 분리되어 있으며,

향사(享祀)시 활동에 편하도록 강당 우측에 협문(夾門)을 두어 사당과 연결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파동 화성파크뷰아파트 건너편에서 오천서원으로 가는 길



오천서원 가는 길



오천서원 가는 길



오천서원



오천서원



오천서원



중화(中和) 양씨(楊氏)의 시조는 양포(楊浦)이다.
중화양씨(中和楊氏)는 고려 고종때 정승을 역임하고

당악군에 봉해진 포(浦)를 시조로 한 본관이 중화이다.
5세손 원격(元格)이 이조판서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8세손 희지(熙止1439~1504))는 대사간과 관찰사, 도승지를 거쳐 한성부우윤에 올랐다.



오천서원



사당인 오천사(梧川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전퇴(前退)가 없는 홑처마 맞배지붕의 3량가구 건물이나 제대로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다



 양희지를 추모하는 비석 5기



오천서원



오천서원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가운데 2칸 마루를 두고 좌우에 방을 배치한 전형적인 강당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건물 앞쪽과 마루 뒤쪽에 퇴를 두었고 우측 온돌방은 마루와 4분합 들문을 두어 공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였고

좌측 온돌방은 우측과 달리 쌍여닫이문을 설치해 두었고 마루 앞쪽에 4분합 들문을 설치하여

폐쇄된 마루를 구성한 점은 남부지역 강당평면에서 보기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오천서원

현재 매년 음력 3월 16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오천서원



중화(中和) 양씨(楊氏)의 시조 양포(楊浦)의 단(檀)



오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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