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두 인물의 캐릭터였다. 갱스터 조직을 일망타진 하기 위해 경찰 신분을 감추고 폭력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남자와, 그 반대로 경찰 내부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폭력조직의 멤버지만 경찰조직 내로 침투하여 경찰로 살아가고 있는 남자. 이 두 사람의 뒤바뀐 아이덴티티는 극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무간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디파티드]의 감독은 마틴 스콜세즈다. [비열한 거리]와 [택시 드라이버]로 이미 수십년 전부터 뒷골목의 폭력세계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야수같은 폭력성에 대한 탐구를 해온 감독에게, [무간도] 원작은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디파티드]는 원작 [무간도]를 잊어버리고 보면 매우 재미있게 만들어진 할리우드 범죄 느와르 영화다. 하지만 [무간도]의 비장미는 탈색되어 있다. 나는 마틴 스콜세즈의 장인의식과 힘 있게 주제를 밀고 가는 솜씨도 좋지만, [무간도]의 비장미가 더 좋다.
갱스터에서 경찰 내부로 침투시킨 범죄자 류건명(유덕화 분)과, 경찰에서 범죄세력 내부로 침투시킨 위장경찰 진영인(양조위 분)이 각각 정체성의 혼돈을 격는 과정이 에민하게 묘사된 [무간도]와는 달리, [디파티드]는 경찰조직과 조폭 조직의 외형적 세력 싸움에 더 힘을 치중하고 있다. 즉 캐릭터 내면의 심리묘사보다는 각각 적진에 침투한 경찰과 갱스터의 첩자들이 불러 일으키는 갈등과 위기에 힘을 더 쏟고 있다. 이것이 힘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 더 보편성을 갖고 관객들을 유인하려는 헐리우드적 전술이다. 마틴 스콜세즈의 뛰어난 장인의식이 빛을 발하고는 있지만, 정체성의 혼돈이라는 [무간도]의 중요한 테마는 [디파티드]에서는 사소하게 다뤄지고 있다.
2시간 30분이 넘는 런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마틴 스콜세즈는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하면서 이야기를 긴박감있게 끌고 간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경찰에서 갱스터 내부로 침투된 위장경찰 빌리로, 맷 대이먼이 갱스터에서 경찰 내부로 침투된 폭력세력의 첩자 콜린으로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뒤집힌 운명의 두 사람의 대결은 [무간도]만큼 정체성을 뒤흔든 심리묘사를 동반하지 않고 있다.
[무간도]가 경찰 보스와 그가 갱스터 조직 속에 침투시킨 위장경찰, 그리고 조폭 보스와 그가 경찰 조직 내부에 침투시킨 위장 조폭, 그 네 사람의 역학관계가 미묘한 갈등을 빚으며 전개되는 데 비해서, [디파티드]에서 경찰 보스의 위치는 매우 희미하게다뤄지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멧 데이먼 두 당사자 이외에는 갱스터 조직의 보스인 잭 니콜슨의 위치만 강조된다. 경찰 내부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위장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마틴 쉰 등 두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다르다.
[디파티드]는 철저하게 헐리우드적이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몸값을 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거장 감독의 솜씨가 잘 어우러진 영화이긴 하지만, 원작 [무간도]의 비장미를 뛰어 넘는 새로움은 없다. 정체성의 혼돈으로 삶의 본질 자체가 모호해진 두 인물의 갈등은 섬세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적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는 경찰 빌리의 모습만 여러 차례 강조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