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난격별성) 初發心時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生死般若常共和 (생사열반상공화) 理事冥然無分別 (이사명연무분별) 十佛普賢大人境 (십불보현대인경) 能仁海印三昧中 (능인해인삼매중) 繁出如意不思議 (번출여의불사의) 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衆生隨器得利益 (중생수기득이익) 是故行者還本際 (시고행자환본제) ?息妄想必不得 (파식망상필부득) 無緣善巧捉如意 (무연선교착여의) 歸家隨分得資糧 (귀가수분득자량) 以陀羅尼無盡寶 (이다라니무진보) 莊嚴法界寬寶殿 (장엄법계실보전)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오늘 <법성게> 강의 하는 시간입니다. 우선 3면을 펴 주십시오. 3면을 보시면 어제 한 <화엄경 약찬게>가 나오는데 거기 보면 첫 줄에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법성게>라고 하는 것이 뭐냐?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에 대한 내용을 그 순 내용만 따서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에 내용만을 추려서 노래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선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하는 경에 설명을 조금 듣고 들어가시면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화엄경>은 어제 말씀 드린 거와 같이 60권 화엄, 80권 화엄, 40권 화엄, 180권으로 된 3본 화엄 3가지 종류의 화엄경이 있고, 그 밖에 10권 또는 2권 3권 여러 권이 있어서. 이백여 권의 화엄경이 있는데. 그런 <화엄경> 이름을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라 한다 이 말씀이죠.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 경의 내용을 아주 요약하고 압축해서 붙이는 것입니다. 그럼 180권이든지 200권이든 간에 거기에 설명 되어져 있고 거기에 포함된 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그럼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게 뭐냐? 지금까지 이걸 해석을 하기를
大대라고 하는 것은 우주 전체와 같다. 이렇게 설명해요. 그래서 대는 최다 전체. 또 方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전체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부분부분 따로따로 모가 나게 독립되어 있는 것. 전체 속에 하나하나 분리 되어있고 저 홀로 떨어져 있는 게 있죠. 그것을 方방이라 그런다. (모방 방). 그래서 전체 속에 부분. 이걸 方방이라 그러고.
廣광이라 하는 것은 그 하나하나 독립이 되어 있고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 저 홀로 떨어져 있고 저 홀로 독립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고. 서로서로 응용이 돼서 많은 작용을 일으킨다 이래가지고. 廣광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작용을 말한다 그래요. 예를 들면 불이 있고 물이 있는데. 불과 물이 다른 것은 方방인데, 그 불과 물이 서로 작용을 일으켜서 그 쓰임새,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성취시키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廣광이라고 한다. 方방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하나 모습이 떨어져 있는 형상과 같다. 상으로 봐요. 관상이라는 상자가 있는데. 나무목변에 눈목한거. 相상하는 모양이 물의 모양 다르고 돌의 모양 다르고 사람의 모양 다르고 相상이라. 그 相상이 方방이고. 또 이 廣광자는 그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것이 서로 어울려서 작용을 일으킨다 이래가지고 廣광을 용도. 작용이라는 용자를 써서 용이라 그런다. 그래서 이것을 最相用최상용이라 한다. 大方廣대방광은 바로 最相用최상용이다 이렇게 본다.
그럼 大대를 비유로 말하면 전체 지구덩어리. 땅덩어리 전체를 大대라 그러고. 方방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땅덩어리 안에도 돌도 있고, 사람도 있고, 물도 있고, 불도 있고. 그 여러 가지가 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方방이라 그러고. 또 廣광이라 그러는 것은 모습은 달라도 서로서로 땅이 흙이 없으면 물이 안되고. 불이 없으면 물이 작용이 잘 안되고. 서로서로 어울려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그것을 끝없이 광대무변하게 일어난다 하여 廣광이라 설명을 한다.
그럼 왜 大方廣대방광을 이렇게 얘기를 하느냐? 그 밑에 부처불자가 있다. 부처님이 있는데 <화엄경>에서 말씀하신 부처님이 있는데 그 부처님 중에는 전체에 해당하는 大佛대불이 있다. 또 부처님이 있는데. 그 부처님 중에는 하나하나 저 홀로 있는 方佛방불이 있다. 전체의 땅덩어리와 같이 나타나는 부처가 있고. 또 돌이면 돌, 사람이면 사람, 물이면 물, 불이면 불로 나타나는 부처가 있는데. 그 부처님이 方佛방불이다. 서로서로 협력을 해서 큰 것도 적은 것이 되고, 적은 것이 큰 것도 되고. 이쪽에서 들어가서 저쪽으로 나오고, 저쪽으로 들어가서 이쪽으로 나오고. 이렇게 서로 화합과 작용을 일으키는 廣佛광불이 있다. 이것이
大方廣佛대방광불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계시는데 大佛대불, 方佛방불, 廣佛광불이 계신다. 이게 大方廣佛대방광불이에요. 그러면 그 부처님이 뭘 하는 분이냐? 華嚴화엄을 해요. 華嚴화엄을. 華嚴화엄이라는것은 꽃피워서 장식하는게 華嚴화엄이다. 대불 방불 광불이 서로서로 나타나가지고 만행화를 피운다. 만가지 공덕을 꽃을 피워요. 지혜의 꽃, 자비의 꽃, 신통의 꽃, 수 없는 그런 좋은 꽃들을 피워서. 온갖 세계를 온갖 중생을 아름답게 웅장하게 꾸며준다. 이게 華嚴화엄이다.
그럼 <화엄경>이라고 하는 경은
大方廣佛대방광불이 온갖 세계를 華嚴화엄하는 내용을 말했다 해서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다.
부처님은 화엄을 하는 분이시다.
華화라는것은 만가지 공덕과 만가지 신통을 꽃처럼 피워요. 피워서 여러 가지 좋은 것을 만들고 이룩하고 꾸며서 다 성취하는 것을 嚴엄이라 그런다. 莊嚴장엄한다. 거룩하게 만든다. 이런 뜻이다.
그래서 이것이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런 말이다. 이러한 經경이 있는데 이러한 經경을 연구를 한다.
연구를 해서 그 많은 내용을 간략히 간추려서 노래한 것이 <법성게>이다. 그럼 이 법성게는 전부 30구절이에요. 그러면 한 구절에 7자씩 이니까 30x7=210자입니다. 그럼 한 200여권 되는 <대방광불화엄경>을 30구 210자로.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노래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원래는 華嚴一乘法界圖화엄일승법게도라고 하는 그림이 있었어요. 華嚴화엄은 바로 부처님과 중생이 다 하나로 조화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라는 一일자하고 수레라는 乘승자를 써서 一乘일승이라 그런다. 그럼 一乘일승에 나타나는 法界법계가 있는데 그 法界법계를 그림으로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것을 華嚴一乘法界圖화엄일승법계도라는 도표가 있습니다. 그 도표를 먼저 그려놓고. 그 도표의 노선에 따라서 詩시를 지은 것이 <法性偈>법성게이다. 法性圖법성도에 맞춰 지은 시가 法性偈법성게이다. 그러니까 法性詩법성시가 되는데 이 법성에 대한 시는 法性법성에 대한 圖도에서 나왔다. 이렇게 보면 된다. 그림을 도표로 그렸는데 그 도표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 된다.
처음에는 그림이고. 그 다음에는 그 그림의 위치에 따라서 이 법성에 대한 이 시를 배열을 시켜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럼 이것을 누가 만들었느냐? 신라신대에 <의상대사>라는 분이 만들었다. 의상대사는 신라시대에 서기로 625년에 탄생하셔서. 702년에 열반을 하셔서. 78세를 사셨는데. 이분은 경주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고향이 경주겠죠? 성은 김씨다. 어느 기록에는 박씨라는 말이 있는데 김씨가 맞다 라고 합니다. 신라에는 왕족이 박,석,김. 삼성이 있다. 박씨, 김씨, 석씨. 이때는 그 왕성이 박씨에서 김씨로 넘어가는 때이다. 625년에서 702년 이 사이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이런 분들이 왕위를 마치고 김춘추 그 분이 등극을 해서 태종무열왕이 된다. 그래서 박씨에서 김씨로 넘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을 때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 이외에 설,최,이. 또 삼성이 있다. 설씨, 최씨, 이씨. 이런 것이 신라의 귀족 6성이다. 박석김설최이. 이 분들이 그 당시에 상층부 문화를 형성하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승려들 스님들은 모두가 박석김설최이 이 분들이다. 원효스님만 해도 설씨고 대 부분이 김씨 박씨. 자장스님만 하더라도 김씨다. 신라 불교는 불교가 정치 교육 문화를 인도했던 시대고. 고려불교는 불교 유교가 공존하던 시대고. 조선 불교는 유교가 지배를 하고 불교가 탄압받던 시대다. 의상스님이 어릴 때 출가를 해 가지고. 37세 되던 해. 서기로 661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간다. 668년 43살 때. 7월 15일 날. 그 법성도와 법성게 저술을 완성한다. 그래서 의상스님의 스승 되는 지연법사한테 완전히 인정을 받는다.
그러니까 37세에 중국 가서. 43세에 법성게를 완성을 해요. 그러면 한 7년간 한 6년간, 6~7년간 공부를 해서 이루어 졌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한 대학원 공부하고 박사학위 논문처럼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도표를 그리고. 거기에 시를 붙이고. 의상스님의 나이 43살 때 서기로 668년 7월 15일 날. 이것이 중국에서 이루어 진다. 거기다 시를 다 붙이고 이런다. 그리고 의상스님은 671년 47세에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37세에 중국가서 47세에 우리나라로 돌아오니까 햇수로는 11년이요 만 10년 동안을 중국서 <화엄경>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영주 부석사를 중심으로 해서 그 많은 일을 한다. 영주 부석사는 676년에 창건한다. 671년에 귀국해서 676년에 부석사를 짓는데. 그 부석사의 역사는 통도사가 646년에 지었으니까 꼭 30년 후에 창건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화엄 사찰로서는 영주 부석사가 아주 그 역사가 깊다. 676년에 지어진 그런 사찰이다.
그 후로 화엄 10찰이라 해서. 화엄을 중심으로 하는 대찰을 10군데 이상을 창건한다. 그래서 해인사라든지 범어사라든지. 학성스님이 계신 청도 옥천사<現 용천사> 같은 곳도 화엄사찰 중에 하나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교화를 한 대표적인 분이 의상대사이다. 원효스님도 계신데 <원효스님>은 의상대사보다 나이가 8살 위다. 의상대사는 625년에 탄생을 했는데 원효스님은 617년에 탄생을 했다. 그러니까 의상보다 원효가 8세 선배다. 그런데 이 원효 의상이 같은 시대에 있었다는 게 굉장한 이 분들에겐 행복이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서로 같은 시대에 있어야 서로 탁마가 되고, 서로 협력이 되고, 서로 자극을 받아서 굉장하다. 의상스님은 참 행복한 분이다.
중국에는 중국 화엄학을 대성한 완성한 <현수 법장>이라는 분이 있는데. 현수 법장하고 같이 공부를 했는데. 이 분은 언제 태어났냐 하면 643년에 태어났으니까. 625년에 태어난 의상보다는 18살이 후배이다. 중국 화엄학의 완성자로 본다. 그러니까 중국에는 현수법장이 있었고. 한국에는 원효대사가 있었다. 그 당시에 의상이 대단한 고승으로서 화엄학을 우리나라에 넓히고 이것을 신앙화 했다. 그리고 영주 부석사에 가보면 중국에 있던 선묘아가씨가 용이 되가지고 우리나라로 따라와서. 선묘아가씨가 의상대사를 사모하다 사모하다 원을 세워가지고 호법용이 됐다. 법을 지키는 용이 된다. 부석사를 짓도록 자기가 바위가 됐다. 그래서 선녀바위가 지금도 부석사 법당 옆에 가면 있다. 그래서 부석이라. 그게 선묘아가씨가 바위 된 것이다.
참 이상하죠. 신비하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바위가 되나. 바위를 또 가만히 보면 적어도 몇 만 년 전에 생긴 바위인데. 천 몇 백 년 전에 선묘아가씨가 어떻게 저런 바위가 될 수 있었을까? 이것이 과학과 신앙의 차이이다. 그 바위를 지질학적으로나 현재 물질로 분석을 해 보면은 천 몇 백 년 전에 있었던 바위가 아니고. 상당히 오래 전에 있었던 바위다. 이것이 현대 과학의 지식이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화엄삼매. 화엄의 원리에서 보면은 그게 다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길이 또 있다. 이것이 바로 불가사의한 또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세계를 다 성취해야 그게 완전한 성취인 것이다. 이게 바로 大方廣대방광이다. 大대도 있고 方방도 있고 廣광도 있어야 된다. 그 하나하나 지식만 있는 건 方방 하나뿐이다.
그런데 方방은 밑으로는 大대가 있어야 되고 위로는 廣광이 있어야 되는데 이게 딱딱 떨어져만 있지 합쳐서 융화가 될 줄 모르니까 大方廣佛대방광불이 안되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는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렇게 됐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또 의상대사는 그런 선묘아가씨와의 일화, 설화가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고. 그리고 또 일상 수행면에서는 단적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평생 수건을 쓰지 않았다. 수건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 있다. 수건을 사용하지 않는다. 목욕을 하거나 세수를 하거나 수건을 안 쓴다. 왜 안 쓰나? 여기에는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내가 수건을 쓰면은 내 몸에 있는 물과 때가 수건으로 옮겨 간다. 그러면 그 옮겨간 때를 또 빨기 위해서 또 때가 옮겨간다. 그럼 그 때를 또 하기 위해서 또 옮겨간다. 이게 끝없이 자꾸 펼쳐져 나간다.
그런데 내 몸에 있는 때를 내 몸에서 그냥 말려 버리면. 다시 옮겨 가지 아니하고 그냥 없어진다. 이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자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또 괴로움 주고 괴로움 주고. 이 괴로움이 끝없이 돌아다니는 거다. 그런데 나에게 있는 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내 몸에서 싹 없애 버리면 그것으로 끝난다. 그런 의미가 있다. 그 때라는 게 그냥 먼지 몇 개가 아니라.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 번민. 이런 것이 있는데 이걸 다른 사람에게 자꾸 호소하고 전해줘 가지고 또 고통 주고. 그 사람은 그 고통 못 이겨서 또 다른 사람에게 또 주고 또 주고. 이래서 알고 보면 몰라 그렇지. 저 강북사람이 뭐 어떻게 만들어 놓은 거에 강남사람이 얻어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그렇다.
그러니까 저 부산 사람이 아주 괴롭게 올라와가지고 운전 잘 못하는 바람에 서울 사람이 얻어 터지는 경우도 많고 이게 알고 보면은 저 강원도 있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고통을 서울 사람이 당하는 게 많고 이게 화엄법게다. 그래서 화엄 법게에서 보면은 북쪽소가 풀을 먹으니까 남쪽 소가 배가 부르다. 이런 말이 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신화 같고 허무 맹랑한 소리 같은데 그게 사실이다. 남산 기우하니 북산 하우라. 남산에 구름이 뜨니 북산에서 비가 내린다. 이게 전부 대방광의 원리이다. 그런걸 알기 때문에 의상 대사는 내 몸에 있는 물과 때를 수건에 옮기지 않고 내 몸에서 말려버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말라. 이 물기운이라는 것도 저도 한 번 해 봤는데. 오래가는 게 아니라 금방 마른다. 마르는데 그 마를 동안에 못 참아 가지고 여기저기다 자꾸 발라서 옮긴다.
그런데 의상대사는 그 만큼 자기 수행에 철저했고. 또 화엄 10차를 건설할 정도로 교화라든지 교육에 충실했고. 또, 김춘추의 아들이 30대 문무왕 법민이다. 그 분이 임금이 되가지고 신라의 왕성을 아주 굉장히 튼튼하게 쌓으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의상대사가 그것을 하지 말라 했다. 정치를 잘 하면 초야 목에 있더라도, 초야에 띠로 지붕을 덮은 그런 초가집에서 정치를 해도 왕성이 튼튼하고. 정치를 잘 못하면 구중궁궐에 있을지라도 나라가 위태롭다. 그러니까 백성을 괴롭히면서 그런 그 왕성을 크게 쌓지 말아라. 이러니까 그 말 한 마디에 왕성을 높이 쌓으려는 계획을 취소해버렸다. 그 만큼 그 당시 조정에서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 존경도가 높았다. 이런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화엄경에 대한 말씀과 의상대사가 법게도를 짓게 된 그 연유 배경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법성게라고 하는 이것이 어떻게 형성 ?는가. 30구 210자를 하나하나 보죠.
제일 첫 번째 구절이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어경
이게 노래다. 여기서 法으로 시작해서 佛로 끝난다. 그림도 그렇게 되어 있다. 복판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법성도 그림이. 복판에서 시작해서 복판으로 끝난다. 그림이 사각으로 되어 있는데 사각이 또 이중삼중으로 있어서 전체 54각을 형성한다 법성도라는게 아주 치밀하게 계획이 되어 있다. 전체로 보면 하나인데 고 부분적을 보면 고 부분적인 사각이 또 많다. 이게 최방이 있다 이런 얘기다. 부분적으로 달라도 전부 통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廣광이라고 그러는데 전체를 佛불로 본거다. 불은 전체적인 佛불이있고 부분적인 佛불이 있고 다 통하는 佛불이 있다. 이것이 大方廣佛대방광불이다. 大佛대불, 方佛방불, 廣佛광불.
이 佛불은 근본적으로 華嚴화엄을 해요. 좋은걸 자꾸 만들어서 건설하고 이룩하고 통용시킨다. 거기에 원리를 法性법성이라 한다. 그 원리가 현실로 나타나면 佛불이다. 그러면 法性법성중에도 또 분류를 하면 法법이 있고 性성이 있는데 法법은 현재에 나타난 모든 현상을 法법이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선 萬法만법이라 한다. 크게 여러 가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하는 형형색색 모든 소리를 다 法법이라 그런다. 그런데 그 法법에는 다 근본을 이루고 있는 性성이 있다. 비유로 말하면 性성이라고 하면 물의 습기, 습도와 같고, 法법이라고 하면은 바다도 되고, 강도 되고, 구름도 되고, 얼음도 되고, 이슬도 되는 그걸 法법이라 한다. 그런데 法법은 萬法만법인데 性성은 한 性성이다. 이게 法性법성이다.
그래서 이 본질과 현상 또 이런 말로도 표현을 한다. 그래서
性성하면 우리 몸의 생명과 같은 것이고. 法법하면 이목구비라든지. 사지, 육신, 오장육부. 이런 신체의 부분적인 조직과 같은 거다. 이게 法性법성이다. 그런데 이게 圓融원융하다. 圓融원융해. 시작이 바로 끝이고 끝이 바로 시작이고. 부분이 전체고 전체가 부분이고. 안통하는 것이 없는걸 圓融원융이라 한다. 법과 성이 無二相무이상이라. 圓融원융해서 두 가지가 아니다. 이게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이다. 현상과 본질이 원융하게 다 통해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면 한가지냐? 한가지는 아니에요. 저것이 다르고 이것이 다른 게 相상이거든? 그러니까 왼손과 오른손이 틀리죠. 둘은 둘이에요. 그런데 왼손의 생명과 오른손의 생명이 또 둘이 아니라. 또 둘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걸 어렵다고 그런다. 분명히 머리하고 발하고는 틀리거든? 둘이다. 둘이지만 머리 생명 다르고 발 생명 다른 게 아니야. 하나요.
그래서 이걸 가르쳐서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이런다. 이래 놓으니 무슨 소리가 저런 소리가 있나. 희안 하다. 어렵다 한다. 이렇게 원리적인 얘기를 하면 어렵다 한다 불교가. 둘이면 딱 부러지게 둘, 하나면 앗쌀하게 하나지. 뭐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둘이냐. 이걸 어렵다 하는데. 사실 어려운 게 아니고 진실이다. 진실. 다 이세상은 동서남북이 둘이거든요. 하나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하나란 말이오. 동서남북이. 우리 사지육신이 여러 가지라. 여러 가지인데 그게 여러 가지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하나다 이 말이오.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다. 圓融無二원융무이. 圓融원융해서. 발이 아프면 머리도 아프고 머리아프면 배도 아프고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라는거다. 그러니까 이 圓融無二원융무이를 알고 살면. 하나이면서 전체로 살고. 전체이면서 하나로 산다. 이게 화엄철학이다. 하나는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이면서 전체다. 전체이면서 또 하나지. 뭐 하나를 떠난 전체가 없다. 이게 圓融無二원융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인생을 달관하는 거다.
諸法제법은 不動부동하야 本來寂본래적이라. 모든 현상은 수없이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그 근본 본질로 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안 일어난 것이다. 이게 不動부동이다. 본래 고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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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꽃香이 흘러가는 길목 원문보기 글쓴이: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