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이라 중추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북두성 자로 돌아 서천을 가리키니/ 선선한 조석 기운 추의가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서 들리구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백곡을 성실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들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일 공생한다/ 백곡이 이삭 패고 여물들어 고개숙여/ 서풍에 익은 빛은 황운이 일어난다
백설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다래/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볕 명랑하다/ 안팎 마당 닦아 놓고 발채 망구 장만하소/ 면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 이삭 콩가지요/ 나무군 돌아올 제 머루 다래 산과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아람도 말리어라 철대어 쓰게 하소/ 명주를 끊어 내어 추양에 마전하고/ 쪽 들이고 잇 들이니 청홍이 색색이라
부모님 연만하니 수의도 유의하고/ 그나마 마르재어 자녀의 혼수하세/ 집 위에 굳은 박은 요긴한 기명이라/ 댑싸리 비를 매어 마당질에 쓰오리라/ 참깨 들깨 거둔 후에 중오려 타작하고/ 담뱃줄 녹두 말을 아쉬워 작전하라/ 장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젓 조기로 추석 명일 쉬어 보세/ 신도주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받아 본집에 근친 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웃 반물 치마 장속하고 다시보니/ 여름 동안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금년 할일 못다하여 명년 계교 하오리라/ 밀대 베어 더운갈이 모맥을 추경하세/ 끝끝이 못 익어도 급한 대로 걷고 갈소/ 인공만 그러할까 천시도 이러하니/ 반각도 쉴새 없이 마치며 시작느니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1786~1855)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8월령'으로 추분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을 76구로 묘사하고 있다. 음수율은 3·4조와 4·4조가 주축이며, 2·4조, 3·3조, 2·3조 등도 약간 등장한다. 이 가사의 형식은 월령체(月令體)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계절에 따라 이루이지기 때문에 문학작품에서도 12개월의 순서에 따라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월령체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나 농가월령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풍월을 읊는 대신 실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파고들며 사회적인 반성의 폭로로 방향을 바꾸었다. 양반문학의 일부 진보적인 경향이 월령체를 빌려서 장편의 서사시를 이룩한 것이다. 따라서 농가월령가는 조선 후기에 대두하던 리얼리즘의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다.
추분은 백로와 한로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로 양력 9월 23일 무렵이다.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이날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속(申洬)이 펴낸 <농가집성(農家集成)>과 이 책에 포함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등에 의하면, 이 무렵의 시절 음식으로는 버섯 요리가 대표적이며, 추수에 힘써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각종 여름 채소들과 산나물 등을 말려서 겨울철을 위해 비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