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지방은 ‘선진국’ 아니다 김강한 기자 입력 2021.07.09 03:00 울산시 남구의 한 석유화학공단에서 근로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울산시 남구의 한 석유화학공단에서 근로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2년 전 독일 남서부에 있는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SAP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 기업이지만 SAP는 독일 시가총액 1위 기업이다. 한국의 삼성전자, 미국의 애플처럼 독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다.
SAP를 찾는 사람은 이 회사의 본사가 주민 1만5500여 명이 사는 소도시 발도르프에 있다는 사실에 처음 놀란다. 그런데도 SAP가 인력난을 전혀 겪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같은 주에 하이델베르크대학, 카를스루에공대라는 걸출한 대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SAP나 바스프처럼 취업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많기 때문에 굳이 대도시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수한 인적 자원과 질 좋은 일자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지역 경제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SAP가 채용한 외국인 직원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와 이 지역에서 돈을 쓰면서 인근 상권도 크게 발달하고 있다.
SAP뿐 아니다. 독일 경제의 근간이 되는 메르세데스-벤츠·BMW·폴크스바겐·아디다스·머크·플레이모빌과 같은 대표 기업들은 각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서 지방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독일에선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기업과 대학, 지방 정부가 유기적으로 연계해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독일의 지역 간 경제 격차가 크지 않은 이유다.
반면 한국의 지방 경제 수준은 매년 뒷걸음질치고 있다. 최근 한 대기업 산하 석유화학 공장에서 만난 공장장은 “임금과 복지 처우가 높은 수준인데도 오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없다”면서 “결혼하기 전에는 지방에 근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결혼하고 나면 모두 서울로 근무지 이동 신청을 한다”고 말했다. 지방에 함부로 터를 잡았다가 서울로 영원히 진입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지역내총생산(GRDP) 비율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점유율이 51.9%다. 지방세입 규모도 수도권이 전국의 56.6%를 차지한다. 지난해 수도권 인구는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험에 놓인 시·군·구는 105개에 달한다. 잘사는 수도권과 못사는 지방의 격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