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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아리랑(2)
- 여강 최재효
‘이제 그 동안의 억지 연극을 마칠 때가 된 거야.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해. 지난 20년 세월은 생각하기도 싫어. 지긋지긋해.’
형욱은 아내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의 아내가
동욱은 싫었다. 집안에서 아내의 말이 늘 옳았고 회사생활을 충실히 한 대가로 자신
은 사회 물쩡 모르는 바보여야 했다. 물론 그런 아내 덕분에 두 딸아이들이 선진국
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고 형욱 자신도 외국에서 두 딸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말 수가 적고 매사 수동적으로 변한 형욱은 언제나 아내의 그늘에 가려 살아야 했다.
남편의 봉급, 심지어 수당까지 모두 챙기며 악착같이 집안 살림을 하는 아내를 두고
주위에서는 현모양처니 억순이니 하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교사답게 논리적인
언변과 행동으로 그렇지 못한 형욱을 늘 압박해 왔다. 그러한 아내 밑에서 형욱은
가정이나 회사에서 조차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조용한 사람이 되어갔다.
형욱은 그동안 아내와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이혼을 결심했지만 두 딸아이들과
사회적입장 때문에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 이제 때가 온 거야. 주변에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 호기가 찾아온 거야. 이때를 놓치면 난 평생 후회할 거야.'
“자기야,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 난 수지는 형욱의 등 뒤로 다가와 형욱을 꼭 안았다. 서울에
있는 남편도 자상한 편이지만 형욱보다 섬세한 면에서는 한 수 아래였다. 형욱은
수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보듯 하면서 조그마한 일까지 손수 챙겨주거나 수지
몰래처리해 주었다. 외국에서 배우자나 친정 그리고 친가 식구들과 떨어져 두 아이
들과 생활하는 각자의 처지가 어쩌면 두 기혼남녀의 자연스러운 혼외정사를 가능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지는 형욱의 다부지면서 넓은 등이 든든해 보였다. 형욱은 당장이라도 자신과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 가자고 하지만 두 아이들의 교육이 많이 남아 있는 관계
로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자신만 믿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수지
는 가슴이 아렸다.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 온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앞으로
두 아이들이 최소 대학까지 들어가려면 삼사년은 더 있어야 했다.
“앞으로 전개 될 우리들의 미래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봤어.”
“그랬어요?”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내 명의로 된 집과 약간의 부동산을 처분해서 보내라고
하려고.”
“그럼, 형욱씨 아내는 어디서 살라고?”
“육개월 동안 월세에 있으라고 하면 되지. 그것도 못 참으려고?”
“그 돈을 어떻게 하려고요?”
“이곳에 집을 사려고. 그래서 당신과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부부처럼
지내고 싶어.”
“형욱씨 아내는 어떻게 하고요?”
“그 여자에 대하여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당신과 함께 다정하게 있는
모습 보면 돌아가겠지.”
“너무 잔인해요.”
“난, 지금까지 그 여자에게 잔인하게 당해왔어. 이제 내가 반격을 할 때가 되었어.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어느 한편이 반대편의 의사를 억누르고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그 계약은 이미 백지장에 불과하게 되는 거야. 나와 그 여자 사이에 체결한
결혼 계약서는 이미 그 의미가 없어졌어. 그 여자나 나나 이제 혹이 어느 정도 떨어
진 상태이니 각자의 미지의 여정(旅程)을 개척해야지. 더 늦기 전에 말이야.”
형욱은 다시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었다.
“형욱씨, 담배는 건강에 안 좋대요.”
수지가 형욱의 입에서 담배를 빼냈다. 형욱은 수지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
고 마음에 들었다. 진작에 수지를 만나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그 남자는 참으로 복이 많은 남자로다. 결혼이라는
틀에 묶여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아온 나 같은 남자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야. 그러나 이제부터 내 여자가 되었으니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절대로.’
“형욱씨 나 추워.”
수지가 형욱의 가슴에 안겨왔다.
“그래? 우리 다시 연애할까?”
“어머? 금방 연애하고 또?”
“난, 자기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면서 자꾸만 당신의 뽀얀 살결을 만져보고
싶어 미치겠어.”
“자기, 아니 형욱씨는 정말 대단한 남자야.”
“서울에 있는 당신 남편은 어떤 남자인데?”
“그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냥 궁금해서......”
“그이는 형욱씨만큼 절륜한 정력도 없어요. 그냥 무조건 나를 좋아해요. 뭐랄까
일종의 집착이라고나 할까?“
“아니, 자신의 아내에게 집착을 한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기간 떨어
져 살아?”
“그건 그이의 고도의 인내성이 가능케 하고 있겠지요. 먼 훗날 자신의 좀 더 나은
생활과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기 위하여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거겠
지요. 형욱씨 아내처럼요.”
“만약 당신 남편이 이런 사정을 안다면 어떻게 할까?”
수지는 창밖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잠시 무슨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수지의 젖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형욱의 가슴에 전해지면서 다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마, 서울에 있는 남편이 이런 사실을 알면 그이는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자가 될
거에요. 심한 배신감을 맛보면서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갈 남자에요. 그이는.....”
“아닐지도 모르지. 그건 어쩌면 수지가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착각?”
“응, 심한 착각.”
“어째서요?”
“변함없는 사랑이니, 돈독한 부부애니 또는 절개니 하는 건 모두 시인이나
소설가 아니 먼 옛날 위정자들이 지어낸 개똥같은 것이지. 자신들의 추종자나
백성들을 훈육시키기 위해서 말이야. 세상에 변함없는 사랑이 어디 있어?”
“어머나? 형욱씨, 그럼 나도 언젠가는 형욱씨 아내처럼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 수 있겠네요?”
“바보. 사랑은 늘 보고 있어야 하고 항상 서로의 가슴을 보듬어 줘야해. 그리고
서로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 줘야 하는
거야.”
“서로의 자리?”
“응, 서로의 자리. 상대를 자신의 종속적인 물건으로 생각한다거나 하인 쯤으로
생각한다면 서로에게 불행이 초래 되겠지. 결혼한 남자는 남자대로 자신의
세계가 있는 거야. 그런 남자들을 자꾸만 가정에 속박시켜려 한다면 언젠가는
그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지. 기차 바퀴가 일정한 철로 위를 달리지. 인생도
그렇게 뻔 한 철로를 달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 단조로움은 결국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큰 불행이지.”
“그럼, 부부는 어떻게 살아가야 현명한가요?”
“부부는 서로를 인정해줘야 해. 남편은 아내와 자식 그리고 가정을 책임지지.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농경문화나 가부장적 사회, 즉 부계(父系)사회에서 당연시
되었던 것이고 모계(母系)사회로 변질되어버린 요즘은 여자는 남편과 동등
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불행의 씨앗이 싹트고 있어.”
“어째서요?” 수지의 큰 눈이 반짝거리며 형욱을 바라보면서 무슨 답이 나올지
궁금해 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중추적인 계층은 50년대 중반에서 70년 중반 사이
태어난 전후 세대들 인데 그들 대부분이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필해야 하는 아름다운 현모양처의 모습을보며 자란 세대들이야.
그런데 아내들이 직장에 다니고 남자들과 동등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부부
사이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고 있어. 여자가 직장을 다니는 것은 남편의
묵시적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거야. 남편이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해봐 어떤 여자가 가정을 깨면서 직장에 다니려고 하겠어.
그런데, 그런데 요즘에는 가정이 깨는 경우가 있어도 직장은 고수하겠다고
하는 아내들이 차차 늘어나고 있다는 거야.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분통 터지는 일이지. 자식들이 있는데 함부로 이혼을 결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일 부부 싸움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속으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중년의 가장들이 많아. 한마디로 가정으로부터 이탈해 겉도는 거지.”
수지는 조용히 형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색각하고 있었다.
“형욱씨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우리 언니들도 이제 와서 집에 들어앉아 살림
이나 하면서 인생을 썩히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주
형부와 싸운 다고 하는데 이제는 형부도 언니들도 서로의 일정한 영역을 인정
하면서 그냥저냥 산대요. 언니들도 미스 때부터 직장엘 다녔거든요. 내가
형부 입장이라도 화가 날 것 같아요.
집에 들어오니 늘 썰렁한 집안에 혼자 저녁 먹는 남자가 되어야 하니 누가
직장 다니는 아내를 좋게 생각하겠어요. 단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형부들이
아무 말 못하고 참고 사는 거지요. 그런 거 보면 직장 다니는 아내를 둔 남자
들은 참 불쌍해. 제대로 된 식사나 옷을 차려 입을 수 없을 테니. 언제가
형부를 보았는데 와이셔츠 카라에 때가끼고 옷도 다리지 않았더라구요. 언니
에게 뭐라고 하니까 언니는 되레 성질을 내면서남자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하더라고요.”
형욱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수지가 너무 예뻐 보였다.
“당신은 남자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구먼. 난 내 아내가 한국에 있을 때
당신처럼 남편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늘 미안한 생각에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면 내가 이렇게 나가지 않지. 그 여자는 지금도 아니 내가 죽을 때 까지
나를 물가에 있는 어린 아이 취급을 할 거야. 난 그런 그 여자의 정신 상태에
화가 나. 일주일 내내 우린 밥 한번 함께 먹어본 일이 별로 없었어.
아침은 나보다 더 빨리 학교에 나가고, 난 대충 우유 한잔에 식빵 구워먹고
나가면 그만 이야. 그 여자는 저녁 때는 각종 모임이나 연구과제 때문에 늘
밤 10시 넘어야 귀가하니 가정에 무슨 행복이 존재하겠어. 또 휴일이면 이런
저런 핑계로 집을 비우니난 휴일이면 늘 집지키는 강아지 였다구. 뼈다귀
하나 물고 그저 하루 종일 집이나
지키는 불쌍한 강아지.”
“형욱씨, 그만해요. 가슴이 아파요.”
“그래, 그만하자.”
“우리 술 한잔해요.”
“응, 그래. 오늘은 두 딸아이들이 모두 늦는다고 했어.”
수지는 언더락스 잔에 얼음을 채우고 형욱이 평소 마시던 헤네시를 7부쯤
채웠다.
“당신이제 내 취향까지 정확히 알고 있네. 하하하하......”
“형욱씨, 전 그래스하퍼 한잔 만들어 주세요.”
“응, 그래. 당신도 이제 칵테일에 전문가가 다되었어.”
“모두 형욱씨한테 배운 건데요?”
“하하 하하하......”
능숙한 손놀림으로 형욱은 쉐이커를 잡았다. 크림 드 멘트 그린, 크림 드
카카오 화이트, 크림을 각각 30 ml와 얼음 두 덩이 넣고 쉐이커를 멋지게
흔들었다. 녹색 술이
잔에 따라져 수지 앞에 놓여졌다.
“어머나, 예뻐라. 역시 형욱씨는 최고야.”
“칵테일만 최고야?”
“......”
“바보, 다른 것도 최고라며......”
“아이, 자기는 너무 야해. 호호호호호.......”
수지가 그래스하퍼(Grasshopper) 잔을 들고 까르르 웃었다.
“당신 그래스하퍼 서너 잔 마시고 메뚜기처럼 잘 해야해?”
“어머? 점점.”
“하하하하하......”
두 사람은 동시에 언젠가 형욱의 요구에 의해 포르노배우 젠나제임스의 야한
체위를 흉내 냈던 모습을 생각해 내고 즐거워했다. 홀리오이글레시아스의
부드러운 음성이 방안에 가득했다. 술이 적당하게 오른 형욱은 수지의 손을
잡았다.
“수지, 우리 춤 한번 출까?”
“네에.”
형욱이 수지의 백옥 같은 손을 잡고 블루스를 추었다.
“수지야.”
“네에?”
“나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거지? ”
"그럼요.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에요. 이제 저는 당신 없으면 단 하루도 살수
없어요. 정말이에요.“
“나도 마찬가지야.”
“형욱씨, 사랑해요.”
“수지, 고마워. 우린 죽을 때까지 절대로 이 마음 변하면 안 돼. 알았지?”
“네에. 저승 가서라도 형욱씨를 잊지 않을 거에요.”
“수지......”
형욱은 아랫도리에서 욕심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수지는 형욱의
그것이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자극하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거북 해 하지
않았다. 형욱의 손이 수지의 통통한 엉덩이를 애무하자 수지는 열기에 휩싸
이기 시작했다.
“수지, 나 준비된 거 같은데......”
“......”
두 사람만을 위한 침대가 자꾸 손짓을 하고 있었다. 형욱이 수지을 덥석
안더니 침대로 걸어갔다. 활화산이 된 두 사람의 몸짓이 격렬하면서도 부드
럽게 이어졌다. 형욱의 뜨거운 혀가 수지의 입안을 헤집고 다녔다. 형욱의
그것이 최대로 부풀어 오르면서 단단해졌다. 수지는 형욱의 요구대로 비디오
에서 본 젠나 제임스의 자세를 취했다. 마치 메뚜기 두다리를 잡고 있으면
방아를 찧는 모양새 였다.
"흑, 나 못살아. 형욱씨 나 좀 어떻게 해줘요.”
화산이 막 폭발하면서 수지의 교성이 집 바깥으로 퍼져 나갈 정도였다. 형욱의
열정과 정성이 수지를 열락으로 몰고 갔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