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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교회 은퇴장로 유랑기 9
2023년
11월 4일(토) 양화진 (마실, 최수철 선생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절두산 순교 성지, (고래 설렁탕)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늦가을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순례한다. 아침 8시 출발, 11시 30분 서울 하늘주차장에 도착하여 우리교회 출신 최 선생님을 만나서 안내 받는다. 성수대교를 건너서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간다.
구한말, 고종의 시의이자 광혜원 2대 원장, 미국 북장로교회 의료선교사 헤론이 이질로 사망하자(1880) 조정에 외국인 묘지 터를 요구했다. 대원군 때 천주교도들을 절두 처형했던(1866) 양화진에 묘지터를 주었다. 알렌과 언더우드가 조정과 협상했다. 선교사와 가족 145분의 묘가 이곳에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교회가 소유권을 갖고 자원봉사자들이 안내하고 있다.
100주년 기념교회 봉사관에서 영상을 보며 오리엔테이션을 받다. 오늘 오후 2시 순례 신청한 분이 17팀이라고 한다. 각지역의 고등부, 대학생부 학생들이 주축이었다. 20명씩 조를 지어 가이드를 따라가는데 우리는 마지막 기타 조에 끼어 순례한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고 낙엽이 묘지 위에 구르고 있다. 묘지 사이의 좁은 길을 우리는 걷는다.
더글러스 B. 에비슨(Douglas B. Avison) 묘역을 먼저 만났다. 그는 세브란스 설립자 올리버 R. 에비슨의 아들이고 본인도 세브란스 의전의 소아과 교수, 병원장을 역임했다.
올리버 에비슨(어비신 Oliver R. Avison) 선교사는 제중원 제4대 원장, 1895 콜레라 퇴치에 공헌, 고종의 시의, 1899년 제중원에서 의학교육을 시작했다. 안식년에 미국에 가서 석유회사 중역 세브란스의 후원금을 얻어서 제중원을 남대문 밖으로 옮기고 병원을 세브란스로 개칭했다. 세브란스 의전과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연세' 통합에 기여했다. 그들은 미개한 나라에 현대의학을 심고 발전시킨 위인들이다.
호러스 언더우드 (원두우 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의 묘역 앞에 왔다. 4대 자손을 포함하여 7분이 매장되어 있다. 검정 오석의 묘비가 화려하다. 그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 항에 상륙했다. 그날을 개신교회의 한국 상륙일로 생각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안내자가 아펜젤러 선교사의 묘역을 설명한다.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 선교사는 감리교회 선교사로 언더우드와 함께 최초의 선교사였고 배제학당을 설립했다. 이곳에 부인 아들 딸의 묘가 있고 자신의 묘는 가묘다.
목포에서 성경 출판에 대한 회의가 있어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서천 앞바다에서 선박사고로 사망했다. 자신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허우적거리는 두 여학생을 구하려다 실종되었다. 검정 오석 비에는 언더우드의 기도문이 쓰여 있다. 그들이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에 상륙하며 드렸던 기도문이다.
메리 '플레처 벤튼' 스크랜튼 (서란돈) 감리교 선교사의 묘. 이화학당과 삼일소학당을 창립했다.
간호사로 한국에 와서 황해도 개성 여학교 교사로 일했던 루비 켄드릭 (Kendrick, Ruby Rachel) 선교사는 한국에 온지 8개월만에 맹장염으로 25세로 사망한다. 그의 묘비명에는 '나에게 1000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에밀 마르텔의 묘. 한성 법어 학교교장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인인 모양인데 선교사인지 확실치 않다.
어니스트 베델 (배설 Ernest Bethell) 묘 앞에 서있다. 그는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이었고 일제의 옥고도 치렀다.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장지연이 쓴 묘비문이 일제가 훼손한 채로 서있다.
언론인 단체에서 다시 세운 장지연의 '배설 묘비문'과 묘비가 서있다. '대한매일신보 사장 대영국인 배설지묘'
그는 한국의 독립과 언론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외에도 감리교 선교사로 독립운동과 한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민족의 은인, 호머 헐버트 (Hulbert, Homer Bezaleel) 박사, 대한제국의 애국가를 작곡한 프란츠 에케르트 등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쉬고 있다. 헐버트 박사의 비문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글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미개하고 주권까지 뺐긴 이 나라에서 교육, 질병퇴치, 계몽,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했다. 자유와 독립,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깨닫게 했다. 결국 이 나라를 찾게 하고 세계만방에 우뚝 서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선교사들의 묘가 잘 관리되고 존경 받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을 준다. 교회 앞 벤치에 앉아서 최선생님이 준비해온 다과를 나눈다. 우리는 이곳의 선교사들께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절두산 순교성지
양화진, '버들 꽃 나루'는 지형이 고개를 든 누에 같다고 '잠두봉'으로 불렸으나 병인박해 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절두 처형했기 때문에 '절두산'이라 부른다.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서 조금 걸으면 절두산 순교성지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성지가 이렇게 한곳에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1956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절두산 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을 벌이고 땅을 매입했다. 1967년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성당과 절두산 순교박물관을 완공했다. 이희태 교수가 설계했다.
흥선 대원군이 원래 천주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기 위해 프랑스를 이용하려 하기도 했고 그의 부인과 딸이 천주교 신자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1850-1860년 대에 서구열강은 조선을 넘보았고 천주교 신자들이 그 앞잡이라고 생각했다.
1866년 봄,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령을 내렸다. 프랑스 선교사 베르뇌를 비롯 12명 중 9명과 홍봉부를 비롯한 신자 수천 명을 새남터에서 처형했다.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범해 왔고 격퇴하자 강화도를 침공했다. .
그해 11월 프랑스 군이 퇴각하며 강화읍을 파괴했다. (병인양요)
(절두산, 전시된 사진)
격노한 흥선 대원군은 절두산에 형장을 만들고 천주교인 수천 명을 참수했다. '서양 오랑캐가 더럽힌 땅을 서학인의 피로 씻음이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1866년 10월 23일부터 절두산에서 처형을 시작하여 1867년 7.30일까지 절두 처형을 시행했다. 조정 기록에는 29명의 명단이 있다고 하고 '선참후계령' (먼저 처형한 후 보고하라)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에 200여 명이 처형 당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한강이 피로 물들고 잘려진 머리로 산을 이루었다'는 표현도 있어서 수천 명이 참수 당했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성인 시성기념 교육관
순교자에게 팔마를 주시는 예수님
십자가
형구 돌
'세상에 빛으로 오심'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기념성당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 있다. 병인박해 때 절두산에서 첫 번째로 순교한 가정, 세 사람을 형상화 했다. 최중태 작.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성인 김대건 신부상
대원군 척화비.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하려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전국에 200개 설치되어 있다 함.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과 절두산 순교박물관 (두 건물이 하나처럼 보이도록 설계를 부탁했다 함)
절두산 순교박물관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 종탑이 죄수가 쓰는 칼 형상이고 벽에 칼을 쓰고 있는 순교자 상이 있다.
기념성당의 본당. 의외로 아담하다. 자연 채광으로 조명이 은은하다.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복을 맞이하여 기념성당 지하실에 순교자 유해 안치실(경당)을 만들었다. 순교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포공항으로 입국 후 바로 기념성당 지하의 경당(성인 유해 안치실)에서 기도와 분향을 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교자들
순교자상
박물관 안의 그림. 반상의 장벽을 허물었다.
11월 11일(토) (산외 용두머리 한우타운) (소풍) 내장산 길, 산림 박물관,
11월 12일(주일) 선유도 배회, (미라벨) (황금 코다리)
12월 25일(크리스마스) (영광 일번지식당) 백수해안도로 (Red Hill Cafe)
2024
1월 1일(월) (영광 1번지식당,목사님 내외) 백수 해안도로 (Red Hill Cafe)
(서울 소바)
1월 6일(토) (대천항 새조개) (Cafe Ben) 개화예술공원 (서울소바)
1월 13일(토) (남당 수네집 가보자 새조개) (Sea & Coffee) 보령댐 방조제 준공비
(미라벨) (페이지 원)
1월 27일(토) (한오백년 추어탕) (cafe 909) 고인돌유적 고인돌 뮤지엄 (신덕식당)
1·월 28일(주일) (미라벨) 비응 마파지길 (우리떡갈비)
2월 3일(토) (한오백년추어팅) (강경 명란젓) 강경황산리 죽림서원(황산서원)
광석면 노강서원 노성면 궐리사 명재고택 (우리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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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죽림서원
11시에 장로님들을 만나서 추어탕. 사색당파. 노론과 소론의 격전지가 가까운 논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방문하기로 하다.
전혀 관심 없는 장로님들을 설득하여 강경읍 황산리의 죽림서원에 간다.
아직도 추운 겨울, 관광객도 관리하는 분도 없고 서원은 문이 잠겨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내부를 살핀다. 홍살문 뒤로 죽림서원의 외삼문이 보인다.
선조 때, 사림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황의 학풍을 따르는 영남학파(영남, 강원도 일부)는 동인이 (김효원이 한양 동쪽 건천동에 살았다) 되었고 이이의 학풍을 따르는 기호학파(경기와 호서 지방)는 서인(심의겸이 서쪽 정동에 살았다)이 되었다.
동인은 남인(이황의 제자 맥)과 북인(조식의 제자 맥)으로 나뉜다. 북인은 선조, 광해군 때를 지나 소멸한다.
서인은 숙종 때, 정권 잡은 서인의 남인에 대한 탄압에 관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노론(대표 송시열)과 소론(박세채, 윤증)으로 나뉜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장파를 노론으로, 윤증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를 소론으로 이해하면 쉽다.
죽림서원 이곳에서 노론의 송시열이 소론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에게 험한 말을 했단다. 노론은 소론을 틈만 나면 문다고 모기라고 했고 소론은 노론을 끊임없아 음모를 꾸민다고 빈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노론과 소론의 격전지를 여행하는 것이다.
1626(인조 4)년 '황산서원'으로 창건되었다. 1665(현종 5)년 '죽림서원'으로 사액서원이 된다.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다가 1965년 사우를 복원했다.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6분을 제향하고 있어서 '육현서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죽림서원은 크지 않은 규모이고 쓸쓸하게 보인다. 뒷쪽 건물이 죽림사라는 사우인 듯하다.
외삼문에는 '죽림서원', '유도문' 현판이 붙어 있다. 유도문이란 '유학의 도리를 따르는 문'이라는 뜻이란다.
담장 너머로 내삼문과 앞에 서재가 보인다.
내삼문과 강당, 헌장당. 강당과 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곁에 '죽림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겨울 정자는 을씨년스럽지만 노친네는 행복하다.
논산시 광석면 노강서원
홍살문 뒤로 노강서원이 보인다. 강경에서 광석면은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서원은 황폐하고 가림 건물을 씌우고 공사 중이었다. 9월이면 공사가 끝난다니까 다시 방문하려 한다.
외삼문과 동, 서재만 볼 수 있다. 노강서원은 1675(숙종 원년) 윤황의 학덕을 기려 김수항 등이 세웠다. 1682(숙종 8)년 사액서원이 되며 윤문거를 추배했다. 1723년 윤선거와 윤증을 추가하여 4인의 위패를 모셨다. 사적 제540호.
서원이 기호계이며 파평 윤씨의 대표적 문중서원이다. 서원철폐령에 살아 남았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강당은 보물 제1746호로 현존 서원 강당 중에 가장 크다고 한다. 소론의 대표 서원이다. 사당은 숭의사.
윤황 윤문거 윤선거 윤증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전학 후묘'식 배치로 17세기 말 서원건축의 대표적 양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동재 송덕재
서재 경송재
외삼문을 안쪽에서 본 것.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다.
논산시 노성면 궐리사와 명재고택
궐리사
논산시 광석면과 노성면은 인근에 있다. 노론과 소론의 격전지 노성면으로 간다. 그곳에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 제자들이 세운 궐리사가 있고 지척에 소론의 당수 윤증의 집, 명재 고택이 있다.
궐리사, 노론의 거두, 송시열의 제자들이 세운 노론의 사당,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궐리촌에서 이름을 따왔다. 현재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은 이곳과 오산, 두 곳뿐이라고 한다.
1687(숙종 13)년에 우암 송시열이 사당을 세우려 했으나 2년 후,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사망함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1716(숙종 42)년에 그의 제자들이 건립했다.
궐리사의 외삼문, 1717년 중국에서 구해온 공부자유상을 모셨고 1791(정조 15)년에 송조 5현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주희)의 초상을 추가로 모셨다. 1805(순조 5)년에 현위치로 옮겼다. 경내에 현송당(강당), 내삼문, 사우 궐리사, 모성재, 관리사, 문간채 등이 있다.
강당, 현송당, 문이 닫혀 있어서 담너머로 사진을 찍었다.
현송당
내삼문 뒤로 사우 궐리사가 보인다. 공자의 영정을 모셔 놓았고 제사드리는 곳.
궐리사의 남쪽 마당에 돌기둥이 있다. 궐리탑. 기단 위에 돌기둥이 서있고 옥개석 지붕이 있다. 궐리사의 표시물로 생각 된다. 1716년 궐리사를 세울 때 같이 세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둥의 몸통에는 '궐리' 라는 글자가 음각 되어 있는데 송시열 선생의 제자 권상하의 작품이라고 한다. 기단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고 맨 끝 별이, 공자가 탄생한 중국 곡부의 니구산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궐리탑에서 본 궐리사. 외삼문과 강당, 현송당, 뒤에 사우 궐리사가 보인다.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다.
마당에 서있는 공부자유상. 1717년 중국에서 구해왔다.
1791년 추가로 모신 송조 5현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주희)의 상. 성리학은 북송의 주돈이에게서 시작하여 남송의 주희(주자)에게서 완성된다. 그래서 주자학이라고 말한다. 송시열, 송준길 때에 이르면 주자학이 조선 성리학의 주류가 된다고 한다. 이때 주자학은 학문을 넘어서 종교가 된다. 불교의 선종사상을 유교적 입장에서 받아들였다. 글귀의 해석에 치중했던 과거의 유학과 달리 우주와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탐구하려는 철학적인 면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학문이 종교가 되었다.
(여러 자료들을 모았을 뿐 내가 이해하지는 못한다) 답사를 권한다. 독특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명재고택 (명재 윤증의 집)
재미 있는 것은 노론의 궐리사에서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구릉에 소론의 영수 윤증의 집이 있다는 것이다.
소론의 영수, 윤증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을 감시하려고 노론 송시열의 제자들이 언덕 위에 궐리사를 지었다는 풍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윤증의 집 사랑채에는 담을 만들지 않고 개방했다. 보려면 보시라고.
명재 고택의 사랑채, 아름답다.
사랑채의 누각에는 '이은시사'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떠날 때와 은거할 때를 아는 사람의 집'.
윤증은 소론의 영수였으나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한 학자였다고 한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 사랑채 누각에서 고전을 읽는 낭랑한 소리가 퍼져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명재 고택의 안채.
고택 앞에는 작은 인공호수가 있다.
삭막한 겨울 풍경도 아름답다.
호수의 반대편에는 노성 향교가 있다.
논산시 노성 향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탑정호 호숫가 찻집에서 노친네들이 차를 마신다.
2월 12일(월) (한오백년 추어탕) 로댐의 집 국립생태원 Ecorium (유정초밥)
국립 생태원 National Institute of Ecology 충남 서천군 마서면.
2월 29일(목) - 3월 2일(토) 남해안 여행 :
광양 홍쌍리 청매실농원, 여수 진남관 유물전시관 망해루 하멜 전시관
하멜 등대 케이블카(돌산공원) (여수 세끼 한정식) (디저트 카페)
여수 밤바다 (유탑 라마다호텔)/
남해 금산 보리암 (남해 사랑채정식) 거제 매미성
(장승포 삼오정 참숯숯불갈비) (거제 라마다 스위츠 호텔)/
(전주콩나물국밥 옥포아주점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 바람의 언덕,
거제 식물원 (순두부 백반집 갈비탕) (군산 서울 소바)
3월 16일(토) 구례 산수유 축제: (송이식당) (Cafe 지리산과 하나되기)
3월 23일(토) 무량사 광명식당(표고버섯 덮밥)
4월 10일(수, 선거일) 하동 벚굴식당 연곡사 (Page one)
4월 27일(토) (전주 장수버섯마을) 임실 덕치면 김용택 시문학관 ‘회문재’ (조각 커피집) (미라벨)
5월 4일(토) (산외 용두머리 항우타운) (소풍) 내장산
5월 15일(수, 석가탄일) (최종희 부뚜막) 내소사 (White Brick) 부안 도자기 박물관
선운사 도솔암 (유정)
5월 24일(금)-25일(토) 백령도 여행 (정태봉 문남철 이신웅 오수영)
심청각 (식당) 사자바위 중화동교회(1896) 백령 기독교 역사관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두무진 해안가 산책, (식당, 회) (호텔)
두무진 유람선 관광, 몽돌해변 전망대 (사곶 천연비행장)
(까나리 관광상품) (메밀칼국수 짠지떡) Korea Pride호로 인천.
(휴게소 오뎅우동)
6월 1일(토) (영광 1번지 굴비한정식) 백수해안 (Red Hill Cafe)
6월 6일(현충일) (공주새이학가든)(로타리 카페) 공산성 무령왕릉
6월 22일(토) (고산 미소) (O's Gallery) 오집사 내외, 장경애, 김영숙
8월 31일(토) (고산 미소) 전북도립미술관, 문복철교수 회고전
(시원 카페) (영화동 통닭)
10월 1일(화) - 2일 제천 배론 성지, 청풍호 유람선 (대장군 꿩요리)
(수안보 파크 호텔) 화양계곡 (경희식당) 법주사
(다향) (유정) (정태봉 문남철 이신웅)
10월 12일(토) 무주 (산들애, 능이 닭백숙) 리조트 곤돌라 탑승
(최종회 부뚜막 리버사이드)
10월 19일(토) (산외 용두머리 한우 타운) (소풍) 산내 구절초 축제
(유생촌)
10월 26일(토) (선운사 신덕 식당) 핑크 뮬리 (pink muhly)
11월 2일(토) 진안 운장산 오솔계곡 (토종닭백숙) (안단테)
용담댐 물문화원 (유정)
11월 23일(토) (한오백년추어탕) 백수해안 (레드힐 cafe)
(법성포 일번지 식당)
11월 30일(토) (익산 궁) 전북도립 미술관-이건희 컬렉션,
한국 근현대 미술 특별전 (황금 코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