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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해질 때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로 옮겼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제1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5,1-6; 21,1-3
그 무렵 1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21,1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해 주시니,
2 사라가 임신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러 주신 바로 그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3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의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사악의 믿음>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8.11-12.17-19
형제 여러분,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9-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영성체송
바룩 3,38 참조
우리 하느님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사람들과 함께 사셨네.
오늘의 묵상
대공황 때에 미국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여덟 살 난 아들은 서로에게 줄 성탄 선물에 관한 대화를 나눕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들은 받고 싶은 선물을 서로 그림으로 그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성탄 전야에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멋진 자동차를,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아들을 위하여 많은 장난감을 그려 주고받았습니다. 서로 그림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가운데,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엄마는 왜 저에게 선물을 달라고 하지 않으세요?” 그러면서 아들은 자신이 그린 선물을 내놓았습니다. 위에는 ‘아빠’와 ‘엄마’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아들의 손을 꼭 쥔 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큰 글씨로 ‘나의 가족’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 성탄 뒤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에 따라 맏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러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하느님께서 그들의 맏아들을 살려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자 바쳤던 이 예식을 통하여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 아기 예수님께서 선물이심을 깨닫습니다. 예언자 시메온과 한나도 아기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시작을 인식하고, 이를 찬미가로 노래합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 활동은 먼저 가정 안에서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단순하지만 때때로 심오한 방법으로 문제의 핵심에 이르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 예화의 아들도 아기 예수님께서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가족의 삶에서 서로 지킬 것들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사랑을 강조합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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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은 석탄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곳>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20-12-27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 루카 2,22-40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가정의 구성원은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 아드님의 양부, 이렇게 셋입니다. 어마어마한 집안입니다. 이렇게 세 분이 모두 엄청난 분들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세 분이 가정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모두 무엇이 되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그릇입니다. 예전에 철로 금을 만들려는 등의 연금술이 성행했는데, 어떠한 재료에 그렇게 변형될 수 있는 촉매제와 결합하는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그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 우선 사람이 어떻게 변하고 성장하고 완성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석탄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석탄의 원소 구성은 매우 2차원적이기에 불안정하고 다이아몬드의 탄소 원자는 3차원적으로 매우 결속력 있게 뭉쳐져 있습니다. 2차원적인 분자구조를 변형시켜 3차원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석탄도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3천℃ 이상의 열과 3만 기압 이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우선 3천도의 열과 3만 초고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 대부분 물질은 이 열과 기압을 버텨낼 수 없습니다. 지하 200km 이하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일을 해냈습니다. 1955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탄소를 이용해 인공다이아몬드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공다이아몬드는 현재 유리 칼이나 다른 금속재를 깎는 연마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자연산보다야 그 아름다움과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흑연과 같은 것으로 보석과 버금가는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고 있기는 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석탄으로 태어납니다. 하느님 자녀의 모습을 잃었지만, 그 가능성만은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다시 하느님과 닮아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열과 압력이 필요합니다. ‘열은 은총’이고 ‘압력은 진리’입니다. ‘은총은 사랑이고 진리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은총과 진리가 인간 분자구조를 바꾸기 위해 생성하는 힘은 ‘믿음’입니다.
항상 예로 드는 것이지만, 늑대에게 자란 아이를 생각해봅시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는 아직 석탄의 상태입니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는 아직 인간이라는 믿음이 생성되지 않았기에 인간이란 분자구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아직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는 이상 그 아이는 절대 두 발로 걷는 일은 없습니다. 몸만 인간이지 본성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늑대 가운데 살고 있다면 절대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늑대라는 믿음을 이미 실현하였기에 행복합니다. 인간 눈으로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인간에게 발견된다면 인간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과 가르침, 즉 은총과 진리가 3천℃, 3만 기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아이는 바뀌지 않습니다. 분자구조를 바꿀 믿음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발견된 늑대에게 키워진 이 아이들은 인간이 되지 못한 채 그 스트레스로 사망하였습니다. 머물기는 하되 그들의 믿음을 바꿔줄 사랑과 가르침이 그 정도를 채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인간이 되려면 그 아이들의 친부모와 버금가는 사랑과 가르침을 지닌 공동체를 만나야 합니다. 그 공동체가 3천℃의 사랑과 3만 기압의 가르침을 가졌다면 그 공동체의 모든 인간은 반드시 자신들이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공동체가 이 아이들을 참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석탄을 보석으로 만드는 그릇입니다.
이런 면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를 참 인간으로 만들어줄 부모를 만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내가 낳은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는 이유가 이것일 것입니다. 믿음을 생성할 온도와 기압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 손에서 큰다면 그곳에서 머무는 것은 그저 허무한 고생일 뿐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석탄에서 보석으로의 새로운 창조가 이뤄지는 공동체이고 그래서 부모는 이 세상의 작은 하느님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가정은 이보다 더 나아갔습니다. 어머니가 하느님을 낳은 어머니란 믿음을 지니신 분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 위의 단계가 있다면 바로 성모 마리아가 그런 분이십니다. 여기서 실제로 새로 태어나는 분은 예수님이라기보다는 요셉 성인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가 여보, 또 아버지라 부르는 그 분위기에서 산다면 요셉 성인도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 부모가 자녀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강한 자녀들 속에서는 그 사람이 부모라도 자녀들의 믿음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믿음으로는 자녀가 부모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 안에서 보석의 가능성을 보아야 하고, 교회는 새로운 가정으로서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 자녀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합니다. 교회 자체가 자신을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면서 신자들 가정에서 자녀를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가정이 참 인간이 태어나는 곳이라면 교회는 참 하느님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인간의 자녀들을 하느님 자녀로 만들 수 있는 온도와 압력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새고 있다면 막아야 합니다. 성가정은 한 가정의 믿음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교회 또한 어떤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그 온도와 압력을 품을 수 있는 수준이 안된다면 그 가정이나 교회는 누군가를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 고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머물기만 한다면 석탄과 같은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만드는 다이아몬드 제조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돌보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바르톨로메 무리요 작 ‘성가정’, 1650,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