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 시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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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합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lily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 소개 .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예술부락 시 '묘정(廟廷)의 노래' 발표 학력 도쿄 대학교 상대 중퇴 수상 2001년 금관문화훈장
서시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는 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성(性)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튼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병풍(屛風)
그 방을 생각하며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의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 歷史일지도 모른다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나의 입 속에는 달콤한 意志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 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자유를 위해서 혁명은
눈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풀
풀이 눕는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사 령 (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벗이여,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여편네의 방에 와서 바다의 물결 작년(昨年)의 나무의 체취(體臭)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起居)를 같이해도 고민(苦悶)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起居)를 같이해도
열두 개의 빈 의자
빵을 굶어가며 마련한 새 의자 한밤중 신발을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리고, 쪽창으로 들어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어떤 모습이든 그들은 의자에 앉아 그가 초대한 손님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마아케팅 그러니까 모란이다 모란이다 모란 모란...... 그리고 또 하나 있는 것 같다
모 르 지?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무렵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꽃잎(一)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꽃잎(二)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싫은 노란 꽃을
폭포(瀑布)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석류
어두운 방 안에 화로만 달구어져 젖빛으로 젖어올 새벽을 기다리는데 그 밤 누가 온다고 할머니와 나는 화롯가에 앉아 있고 지난 가을 따 놓은 석류는 반닫이 위에 얌전히 놓여 있다 잿더미를 뒤적이면 툭 튀어나와 빨갛게 익어가던 잉걸 그해 봄 붉은 불길 속으로 까맣게 마른 할머니를 보내놓고 어린 나는 그 겨울밤을 떠올렸다
십년도 더 전에 늙은 아버지 대신 벌초 가서 술과 포 대신 붉게 익은 석류 한 알 놓고 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혼자 산에 두고 돌아오는 길 입술을 깨물고 삼킬 수 밖에 없는 쓰고 달고 비리고 신맛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그러나 너의 얼굴은 번개처럼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사랑의 戀奏曲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번은 이렇게
불을 끄고 누웠다가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나는 잠시 아름다운 統覺과 調和와 永遠과 歸結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오히려 그러한 不屈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활이여 생활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調和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오오 사랑이 추방을 당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이 있거든 불러보라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와는 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두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외양만이라도 남과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자기의 裸體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할 反逆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미 인 --Y 여사에게
미인을 보고 좋다고들 하지만 미인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미인일까
미인이면 미인일수록 그럴것이니 미인과 앉은 방에선 무심코 따놓는 방문이나 창문이 담배연기만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렷다
謀利輩
言語는 나의 가슴에 있다 나는 謀利輩들한테서 言語의 단련을 받는다 그들은 나의 팔을 支配하고 나의 밥을 支配하고 나의 慾心을 지배한다
그래서 나는 愚鈍한 그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덱거를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 生活과 言語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친밀해진 일이 없다 言語는 원래가 유치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유치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謀利輩여 謀利輩여 나의 化身이여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무렵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벧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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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 ( 시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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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합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l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