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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창작 연구 스크랩 * 김수영 시인 ( 시모음 )
은하수 추천 0 조회 876 16.03.05 14: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수영 시인 ( 시모음 )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 소개 .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예술부락 시 '묘정(廟廷)의 노래' 발표

학력 도쿄 대학교 상대 중퇴

수상 2001년 금관문화훈장

 

 

 

 

 

서시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는

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성(性)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튼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병풍(屛風)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
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그 방을 생각하며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의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 歷史일지도 모른다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 속에는 달콤한 意志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 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풀이 눕는다
비가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사 령 (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여편네의 방에 와서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이렇듯 소년(少年)처럼 되었다
흥분(興奮)해도 소년(少年)
계산(計算)해도 소년(少年)
애무(愛撫)해도 소년(少年)
어린놈 너야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
네가 무어라 보채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성을 내지 않는 소년(少年)

바다의 물결 작년(昨年)의 나무의 체취(體臭)
그래 우리 이 성하(盛夏)에
온갖 나무의 추억(追憶)과
물의 체취(體臭)라도
다해서
어린놈 너야
죽음이 오더라도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나는 점점 어린애
태양(太陽)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죽음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언덕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애정(愛情)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사유(思惟)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간단(間斷) 아래의 단하나의 어린애
점(點)의 어린애
베개의 어린애

고민(苦悶)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고
너는 내 눈을 알고
어린놈도 내 눈을 안다

 

 

 

열두 개의 빈 의자


가난뱅이 고흐는 의자를 열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한 번도 앉지 않은 팔걸이가 달린 의자들
파이프를 얹어둔 낡은 밀짚의자는
내 방 구석에 걸려 있다

빵을 굶어가며 마련한 새 의자
그는 누구를 기다리며 의자를 비워 두었을까

한밤중 신발을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광부를 위해
어두컴컴한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농부를 위해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를 위해
창을 열듯 제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는
해바라기를 위해

그리고, 쪽창으로 들어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그 자신을 위해?

어떤 모습이든 그들은 의자에 앉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그를 에워싸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초대한 손님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의 쓸쓸함이 부른 손님들인 것이다

 

 

 

마아케팅

 
비니루, 파리통,
그리고 또 무엇이던가?
아무튼 구질구레한 生活必需品
오 注射器
2cc짜리 國産슈빙지
그리고 또 무엇이던가?
오이, 고춧가루, 후춧가루는 너무나 창피하니까
고만두고라도
그중에 좀 점잖은 品目으로 또 있었는데
아이구 무어던가?
오 도배紙 천장紙, 茶色 白色 靑色의 모란꽃이
茶色의 主色 위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천장지
아니 그건 천장지가 아냐(壁紙지!)
전장지는 푸른 바탕에
아니 흰 바탕에
엇걸린 벽돌처럼 삘딩 창문처럼
바로 그런 무늬겠다
아냐 틀렸다
벽지가 아니라
아냐 틀렸다
그건 천장지가 아니라
벽지이겠다
더 사오라는 건 벽지이겠다

그러니까 모란이다 모란이다 모란 모란......

그리고 또 하나 있는 것 같다
주요한 本論이 네 개는 있었다
비니루, 파리통, 도배지......?
주요한 本論이 四項目은 있는 것 같다
四項目 四項目 四項目......(면도날!)

 

 

 

모 르 지?
新歸去來 5

                      
李太白이가 술을 마시고야 詩作을 한 理由,
모르지?
구차한 문밖 선비가 벽장문 옆에다
카잘스, 그람, 쉬바이쪄, 에프스타인의 사진을 붙이고 있는 理由,
모르지?
老年에 든 로버트 그레브스가 戀愛詩를 쓰는 理由,
모르지?
우리집 食母가 여편네가 외출만 하면
나한테 자꾸 웃고만 있는 理由,
모르지?
그럴때면 바람에 떨어진 빨래를 보고
내가 말없이 집어걸기만 하는 理由,
모르지?
함경도친구와 경상도친구가 外國人처럼 생각돼서
술집에서는 반드시 標準語만 쓰는 理由,
모르지?
五月革命 이전에는 백양을 피우다
그후부터는
아리랑을 피우고
와이샤쓰 윗호주머니에는 한사코 색수건을 꽂아뵈는 理由,
모르지?
아무리 더워도 베와이샤쓰의 에리를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모르지?
아무리 혼자 있어도 베와이샤쓰의 에리를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모르지?
술이 거나해서 아무리 졸려도
의젓한 포오즈는
의젓한 포오즈는 취하고 있는 理由,
모르지?
모르지?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번 늬가 없어 설워한끝에
억만걸음 떨어져있는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주는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인의 여자를 보지않고 산다
나의 생활이 원주 우에 어느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무렵
나는 또하나 다른유성을 향하여 달아날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꽃잎(一)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꽃잎(二)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싫은 노란 꽃을  

                  

 

 

 

폭포(瀑布)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석류  

 

어두운 방 안에 화로만 달구어져

젖빛으로 젖어올 새벽을 기다리는데

그 밤 누가 온다고 할머니와 나는

화롯가에 앉아 있고

지난 가을 따 놓은 석류는 반닫이 위에

얌전히 놓여 있다

잿더미를 뒤적이면 툭 튀어나와

빨갛게 익어가던 잉걸

그해 봄 붉은 불길 속으로

까맣게 마른 할머니를 보내놓고

어린 나는 그 겨울밤을 떠올렸다

 

십년도 더 전에 늙은 아버지 대신 벌초 가서

술과 포 대신 붉게 익은

석류 한 알 놓고 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혼자 산에 두고 돌아오는 길

입술을 깨물고 삼킬 수 밖에 없는

쓰고 달고 비리고 신맛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십사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사랑의 戀奏曲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冥想이 아닐 거다

 

 

 


구슬픈 육체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統覺과 調和와 永遠과 歸結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不屈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天上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 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海底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막대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들이여

調和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세계는 그러한 무수한 간단(間斷)

오오 사랑이 추방을 당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관악기처럼
우주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구름의 파수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와는 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山頂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두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妻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詩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裸體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할 反逆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미 인

--Y 여사에게

                         

미인을 보고 좋다고들 하지만

미인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미인일까

 

미인이면 미인일수록 그럴것이니

미인과 앉은 방에선 무심코

따놓는 방문이나 창문이

담배연기만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렷다

 

 

 

謀利輩

                                     

言語는 나의 가슴에 있다

나는 謀利輩들한테서

言語의 단련을 받는다

그들은 나의 팔을 支配하고 나의

밥을 支配하고 나의 慾心을 지배한다

 

그래서 나는 愚鈍한 그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덱거를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

生活과 言語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친밀해진 일이 없다

言語는 원래가 유치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유치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謀利輩여 謀利輩여

나의 化身이여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번 늬가 없어 설워한끝에
억만걸음 떨어져있는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주는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인의 여자를 보지않고 산다
나의 생활이 원주 우에 어느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무렵
나는 또하나 다른유성을 향하여 달아날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벧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일팔구삼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외국인의 종놈,관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가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일본영사관,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망건,장죽,종묘상,장전,구리개 약방,신전,
피혁점,곰보,애꾸,애 못 낳는 여자,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커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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