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동무들이 생각이 난다.
가재잡고 물장구치며 놀던 친구들이었다.
초등학교를 멀리 다녔다.
봄이면 상큼한 길을 걸으며 다녔고, 여름에는 즐길거리가 많았다.
가을에는 감나무 홍시를 따 먹으면서 다녔다.
겨울에는 눈길에 미끄럼을 타면서 다녔다.
벌써 50여년 전의 일이다.
우리 동네에는 약 20여 가구가 살았었다.
동무는 4명이었다.
지금 한 명은 온두라스로 이민을 갔고, 한 명은 돼지 농장을 한다.
그리고 한 명은 산림에 관한 일을 하고, 나는 목사가 되었다.
옛날이 그립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 마음 속에 옛날의 기억들이 소중히 박혀있다.
그 정서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생각해 본다.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면 과연 이 세상에 있었던 일들이 그리워질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팠던 순간들도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도 그리워진다.
다시 보고 싶지 않던 사람들이 왜 그리워질까?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 함께 했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놈이 그놈이었다.
그냥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찬송가 가사에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내용이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숨가쁜 나날이었다.
어릴적부터 그랬다.
어떻게 지내왔나 생각해 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지금...
세월에 쫓기며 살아온 인생 같다.
세월을 다스리라고 했는데, 쫓기며 살아온 것 같다.
이제 세상을 좀 살았으니 세월을 다스리면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더욱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오래세월 훈련을 받았다.
처음에는 모르고 훈련을 받았고, 깨닫고난 후에는 이것이 훈련이었구나 라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고 난 후에도 또한 어려움은 많이 있었다.
어찌보면 이 세상 끝날때까지 겸손하라고 훈련은 계속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렀고, 광야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끊임없는 전쟁을 해야만 했다.
물론 주님의 간섭은 있지만 그 몫은 사람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고 주님이 허락하긴 범위 안에서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달려가야 할 것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
우리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가신다.
낙심하지 말고 힘차게 달려가자.
예수 이름으로 충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