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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리온 뮤직 원문보기 글쓴이: 구름밭
가수 이미자님은 1959년 나화랑 작곡의 <열아홉순정>이라는 노래로 가수를 데뷔했다. 그 당시 박춘석 작곡가는 인기 있는 작곡가였다.
60년대 초 MBC인사동 스튜디오에 인사 차 들린 박춘석씨에게 MBC제작 간부가 이미자를 소개하면서 "무명가수인데 노래 참 잘해요." 하였는데, 박춘석씨는 동감은 했으나 다른 조건이 별로라면서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1964년도 백영호 작곡가가 <동백 아가씨> 라는 노래를 이미자님께 주어 취입하게 하는데 하루 아침에 난리가 났다. 온통 장안을 휘쓸고 전국을 강타하는 대힛트를 치게 되었다.
졸지에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가난했던 그녀에게도 갑자기 부와 명성이 동시에 찾아와 집도 장만하고 차도 사게 되는 행운이 찾아왔던 것이다. 무려 35주가 인기 챠트 1위를 지켜 나갔던 것이다.
이때 이미자님과 박춘석님의 콤비가 탄생하는 계기가 서서히 잉태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부인 육영수 여사께서 흑산도의 어린이들을 군함에 태워 서울 구경을 시켜준 일이 신문의 사회면에 크게 보도되었다.
신카나리아가 충무로에서 운영하는 다방에서 정두수 작사가와 박춘석 작곡가가 그 신문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이 <흑산도 아가씨>였다.
그리고 이 노래 를 부를 가수를 이미자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인기가 높아 지방공연이 잦은 이미자씨를 만나야 노래 연습을 시킬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이미자씨를 불렀는데 그녀는 지방공연을 마치고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녹음 스튜디오에 황급히 나타난 것이었다.
박춘석 작곡가는 그녀에게 악보를 건네주니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연습 없이 녹음에 들어가자는 것이 아닌가? 설마 하면서도 그렇게 하여 녹음이 시작 되어 끝마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박춘석은 그제서야 이미자의 음악적 천재성을 알게 된 것이다. 즉석에서 <흑산도 아가씨> 외 4곡을 바로 소화해 내고 녹음을 마쳤던 것이다. 박춘석 작곡가는 마음속으로 이미자를 영원한 콤비로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흑산도 아가씨>를 발표하여 일주일도 안 되어 전국을 강타하는 대힛트를 치게 되었다. 애절한 그녀의 목소리는 한반도를 흔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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