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례상 ‘투자/대여’의 기준은 문언적 표현이 아닌 실질적 성격
원금보장, 고정 수익률 있었다면 대여로 판단하는 것이 통상 법리
법리와 실질 조목조목 짚어 제대로 판단한 조범동 재판부
‘조국 사태’ 당시 사모펀드와 관련해 첨예한 논점들 중 하나는, 정경심 교수가 조범동에게 5억 원씩 두 차례 보낸 자금이 투자금이냐 대여금이냐의 여부였다. 대다수 언론은 이를 ‘투자금’이라고 몰아붙였고, 자금의 실질적 성격상 대여금이 맞다고 주장한 것은 필자를 비롯한 소수에 불과했다.
이것은 정 교수가 조범동의 요청에 따라 코링크PE가 설립되기 전인 2015년 12월 말에 5억 원, 코링크PE가 설립되고 1년 후인 2027년 2월에 추가로 5억 원을 보낸 것으로, 두 번 모두 정 교수만의 자금은 아니었고 정 교수와 동생 정 씨의 돈을 합한 것이었다.
검찰은 이 10억 원이 투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입장에서 이 자금이 투자금이어야 했던 이유는, 그것이 신기루 같은 ‘5촌 조카’ 프레임과 ‘가족펀드’ 프레임을 넘어서 정경심 교수가 코링크PE라는 회사를 ‘실소유’하고 ‘지배’했다는 주장의 유일한 근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 자체로는 기소할 근거가 없었다. 정 교수가 코링크PE의 경영이나 블루펀드 자금 운용에 관여했다는 증거나 구체적인 정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다른 혐의인 ‘업무상횡령’ 혐의 공소사실에다 이 ‘투자’ 주장을 끼워넣었다. 10억 원의 이자로서 코링크PE가 매월 정기적으로 860만 원을 보내준 것을 ‘업무상횡령’으로 기소하면서, 그것을 이자가 아닌 투자금에 대한 “최소 수익금”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사실 검찰 입장에서 ‘업무상횡령’ 혐의의 증명에는 투자보다는 ‘대여’로 규정하는 편이 혐의 입증에 더 유리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된 것이므로 ‘이자’로 규정하는 것이 논리 전개상 훨씬 무리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혐의는 코링크PE에서 매월 860만 원이 지급된 것을 문제 삼은 것이기 때문에 투자든 대여든 혐의 입증 자체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검찰에게 이 ‘투자’ 주장은 법정 바깥의 장외 언론플레이와 재판부의 유죄심증 형성에 중요했다. 정 교수가 코링크PE의 경영과 사모펀드 운용에 관여한 사실이 전혀 없었지만, 실제 진실과 별개로 가상의 ‘정경심 코링크PE 소유 지배설’을 여론과 재판부의 뇌리에 반복 주입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정 교수에 대한 ‘업무상횡령‘ 혐의는 1, 2, 3심 재판에서 일관되게 무죄로 선고되었다. 다만 1차 5억 원에 대해서만 조범동의 유죄라고 판단되었고, 설립 후 5억 원은 두 사람 모두 무죄였다. 같은 사건을 다룬 조범동 재판부의 판단도 동일해서, 조범동은 회사 설립 전 5억 원에 대해서만 ‘업무상 횡령’ 유죄를 선고받고 최종 확정되었다.
하지만 이 5억+5억 원의 자금 성격에 대해선 양쪽 재판의 결론이 달랐다. 정 교수 재판에서는 1, 2심 모두 ‘투자’라고 판단했고, 조범동 재판에서는 1심에선 ‘대여’로 판단하고 2심에선 ‘대여’쪽에 무게를 두면서도 ‘투자 성격도 있는 대여 계약’이라는 이상한 판단을 내렸다. (이 문제는 기소된 혐의사실도 아니고 재판에선 단지 ‘업무상 횡령’ 혐의의 성부를 가리기 위한 논증 단계의 일부였기 때문에,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는 이에 대해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양쪽 재판의 일치된 최종 결론인 ‘정경심 무죄, 조범동 유죄’ 결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앞서 썼듯이 정 교수 쪽 재판에서 이 10억 원을 투자로 판단한 것은 문제가 많고, 법정에서 실체가 없다고 확정된 ‘정경심 코링크PE 소유 지배설’을 엉뚱하게도 장외에서 부추기는 꼬투리가 된다. 따라서 이 부분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5억+5억 대여금의 경위
아래 대화는 앞서 정경심 교수 1심 판결문의 코링크PE 설립 부분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정 교수는 “2015년 11월 26일 집안의 장손이던 조범동의 집에서 열린 집안의 제사에서 조범동을 만났는데”, 이때 조범동과 정 교수 사이에서 ‘자산관리’와 관련한 대화가 오가고 조범동이 자신이 주식투자에서 유명한 “조 선생”이라며 자신의 책 2권을 선물한 즈음이다.
조범동은 2015년 12월 21일에 정 교수를 자동차 부품업체 ‘익성’의 서울 사무실에서 만나서 정 교수에게 좋은 투자 상품이 있다며 영업을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몇 차례 의견 교환이 있었고, 그로부터 10일 후인 2015년 12월 31일에 정 교수는 조범동에게 5억 원(정 교수 4억5천만 원, 동생 정 씨 5천만 원)을 전달했다.
이 5억 원 자금에 대한 정산은 14개월 만인 2017년 2월 24일에 있었다. 5억 원에 대한 수익금 4,900만 원을 지급한 것이다. 이전에 선 지급한 1000만 원이 따로 있었으므로, 월 10%의 수익률로 계산된 결과다. 이 정산 결과에 대해 정경심, 조범동 두 사람의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은 일관되었다. ‘5억 원을 1년 2개월간 사용한 이자 명목으로 총 5900만 원을 지급한 것’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정경심 교수와 동생은 기존 대여금 5억 원의 회수 없이 추가 5억 원을 더해 총 10억 원을 다시 대여했다. 이는 2016년부터 조범동이 정 교수에게서 여러 차례 연락하며 자금을 유치하려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였고, 총 5900만원의 이자를 정산한 것도 추가 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전인 2016년 9월에는 정 교수가 코링크에 직접 유상증자로 5억 원을 투자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정 교수가 거절해서 무산되기도 했고, 5억 원 상환 관련으로 만나자는 명목으로 만나자고 하고서는 실제로는 상환을 미루기도 했다. 또 정 교수와 동생이 상속 받은 강북의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추가 자금을 유치하려 노력했다.)
10억 원 대여 건에서는 동생 정 씨가 유상증자로 코링크PE의 지분을 사들이는 형식을 취했다. 코링크PE는 유상증자 형식으로 10억 원을 받고, 이자는 컨설팅 비용의 형식으로 월 정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 교수나 정 씨가 코링크PE의 실질적 주주로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외형만 그렇게 꾸민 것으로, 동생 정 모씨와 코링크PE의 일치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대여, 즉 차입으로 처리할 경우 코링크PE 입장에선 2억 5000만 원밖에 되지 않는 자본금 대비 차입금이 많아져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부담이 있었고(이 한 건만으로도 부채비율 400%), 정 교수와 동생 정 씨의 입장에서는 금융소득 합산 과세로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했다. 이에 따라 정 교수와 동생이 세금을 줄일 방법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절세’의 수단으로 유상증자에 컨설팅 계약이라는 방법을 고안한 것은 조범동이었다.
한편 조범동 일당은 이렇게 외형상으로만 꾸며진 정 교수 동생의 투자 지분을 전체 지분의 1%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1주당 가격을 200만 원으로 꾸몄다. 그 결과 자본금 2억 5000만 원의 회사에 외형상 10억 원을 투자한 셈인데 지분율은 0.99%가 된 것이다. (아래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정 교수와 동생으로부터 받아낸 자금을 조범동 일당은 제대로 투자에 썼을까. 조범동은 2015년 말에 받아낸 5억 원을 2016년 2월 코링크 설립 과정에서 일부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채무 변제 등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또한 2017년 2월에 추가로 받아낸 5억 원은 코링크PE의 사무실 임대료, 직원 월급 등 회사의 기본적인 유지 비용에 사용했다.
요컨대, 조범동은 투자를 한다며 정 교수를 설득해 자금을 유치했지만, 코링크PE라는 법인 설립과 유지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썼을 뿐, 그가 공언했던 ‘펀드 상품’ 등 외부 투자 등에 사용된 액수는 전혀 없었다.
한편 정 교수는 2018년 8월 28일에 이 대여금 합계 10억 원을 모두 상환 받았다. 그런데 이 시기 역시 코링크PE의 자금 사정은 여전히 정상적이지 않았다. 조범동은 정 교수의 상환 독촉을 받고 대여금을 상환하기 위해 코링크PE의 지배 하에 있었던 WFM으로부터 코링크PE가 13억 원을 대여하는 것으로 꾸미고서 횡령했다. (나머지 3억 원은 IFM 가구 구입, 세금 납부 등에 사용했다. 이 대여금 13억 원은 무자본M&A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발생하자 2018년 말부터 2019년 6월까지 4회에 걸쳐 WFM에 변제했다. 하지만 상환 사실과 별개로 대법원 판례에 따라 업무상 횡령으로 유죄 인정되었다.)
법리상 ‘대여’와 ‘투자’의 판단 기준
앞서 썼다시피, 이 총 10억 원이 투자였느냐 대여였느냐에 대한 결론은 정 교수 재판 1, 2심에서는 ‘투자’로, 조범동 재판 1, `2심에서는 ‘대여’로 판단했다.
제공한 자금이 투자냐 대여냐의 여부는 통상 형사재판이 아닌 민사재판에서 자주 다투는 쟁점이다. 이에 대한 법원의 민사 판례는 이미 일정하게 정립되어 있다. 계약의 문언적 내용이 어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정적인 수익금이 지급되고 원금이 보장되었다면 ‘투자’가 아닌 ‘대여’로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 정 교수의 1심 재판을 처음 맡았던 송인권 부장판사는, 재판부 교체를 당하기 전 공판에서 검찰을 향해 “민사 재판에서는 투자나 대여냐를 다툴 때 원금이 보장되고 일정 수익이 지급되면 대여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를 뒤집을 확실한 증거를 내달라”라고 주문했다.
2차 대여금으로서 동생 정 씨가 사들인 것처럼 꾸몄던 5억 원 어치 지분은 코링크PE의 자금을 코링크 직원들에게 대여하여 해당 지분을 사들이는 형식을 취해 정리했다.
동일 사건의 또다른 피의자인 조범동에 대해 같은 사건을 다룬 소병석 재판부의 판결은 정 교수의 1심 재판보다 6개월 빠른 2020년 6월 30일에 나왔는데, 그 판결 내용도 역시 송인권 판사의 판단과 같았다. 아래는 소병석 재판부의 판결문의 내용이다.
나) 자금 유치의 법적 성질 (1) 당사자 사이의 자금 유치 등 금전수수의 법률관계가 대여인지 투자인지는 당사자들이 사용한 용어에 구애받을 것이 아니고, 원금 보장하기로 하는 약정인지, 즉 동량의 금전을 반환하는 약정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니면 원금 손실의 위험을 전제하는 약정인지, 금전수수에 대가로서 원금과 기간 등에 기초한 이자를 지급할 것이 약정되어 있는지, 그 대가가 수익활동을 통한 결과를 일정비율에 따라 정산하는 과정에서 확정되도록 하는 약정인지, 금전제공자가 수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지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2) 앞서 든 증거 및 사실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정경심과 피고인이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투자, 수익률’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2015. 12.경 이루어진 자금 유치와 관련하여, 피고인과 정경심 사이에는 변제기에 원금을 보장하고 원금에 대한 대가로서 수익활동 결과와 무관하게 일정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일종의 금전소비대차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
보다시피 소병석 재판부는 대여든 투자든 “당사자들이 사용한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금 보장’과 ‘일정한 기준의 이자 지급 약정’이 있었는지를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판시했다. 이는 기존 법원의 법리와 판례를 잘 따른 것이다.
여기서 소병석 재판부는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기준을 추가로 제시했는데, “금전 제공자가 수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다시 말해 코링크PE의 경영과 펀드 운용에 관여할 수 있었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조범동과 정 교수의 대화 내용 전부를 재검토 해봐도, 두 사람 사이에서 경영 관여를 보장하거나 실제로 관여한 부분은 전혀 없다. 실제 이 재판부는 이 사실을 유의미하게 여겨 아래와 같이 적시하기까지 했다.
“정경심, 정ㅇㅇ가 코링크PE의 사업에 관여하였다거나,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했다는 정황은 기록상 나타나 있지 않다”
“정경심은 원금과 일정한 수익금 즉 이자를 반환받는 것 외에 피고인이 이를 가지고 어느 투자처에 어떠한 방식으로 투자하는지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