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시 치마저고리의 멋
이정자
나는 지난 한 때 한복을 즐겨 입고 출근하고 학생들 앞에 선 적이 있다. ‘씨실과 날실’에서 나온 개량한복이다. 개량한복은 뭣보다 치마가 편리하다. 통치마에 길이도 적당하다. 예쁘게 수도 놓여 졌고 고급스럽고 품위 있게 디자인 되었다. ‘씨실과 날실’ 제품은 일반적으로 시장에 나와 있는 기성 개량 한복과는 차별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자인, 재질, 공정과정 등에서 그렇다. 봄, 여름, 가을, 겨울용까지 지금도 장롱에 자리하고 있다. 봄에 입는 것은 실크옥색치마에 남색저고리이고 여름엔 하얀 세모시치마저고리이고 가을엔 자색이고 겨울엔 예로우 계통이다.
긴 방학을 제외하면 학기 계절이 계절인 만큼 춘추복을 즐겨 입은 기억이 난다. 모두들 보기에 좋다고도 했다. 그간 잘 입지 않았는데 금년 가을엔 그 한복 실크치마저고리를 입고 외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난다. 옷도 장롱에 한철도 아닌 여러 해 동안 갇혀 있어 답답할 테고 바깥세상도 구경하고 싶을 게다. 9월이면 그 옷을 입고 모임에 가야겠다.
지금까지 꾸준히 즐겨 입는 옷은 여름용이다. 하얀 세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가면 대부분 한번 눈길을 주는 것을 느낀다. 이 옷을 입으면 나 자신부터 조신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언행에서부터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다. 옷이 언행까지 좌우지하는 격이다. 자연적으로 귀부인이 된다. 타인의 시선을 받게 마련이다.
지난 어느 해는 여름에 귀한 집 자제분 약혼식이 있었다. 그래서 세모시 치마저고리를 갖추어 입고 간 적이 있다. 마침 상대편 자리에도 나처럼 초대받아 온 또 다른 분이 나와 같은 세모시 치마저고리를 갖추어 입고 온 분이 계셨다. 그래서 그 자리가 자연스레 더 친근감이 갔다. 물론 화려하게 갖추어 입은 고운 한복차림의 주인공과 주빈들도 있었지만 그 보다 은은한 멋을 풍기는 세모시치마저고리가 한결 돋보인다고들 했다. 역시 옷이 고운 날개이고 분위기를 품위 있고 아름답게 한다.
연륜이 더해가면서 더욱 타인의 시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지금은 주로 부부 함께 초대 받아 갈 때만 치마저고리 한 벌을 갖추어 입는다.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외출할 때는 일반주름치마에 하얀 세모시저고리만 받쳐 입는다. 이것이 내가 즐겨 입는 여름용 외출복 중의 하나이다. 그 하얀 세모시치마저고리도 치마는 잘 입지 않아 아직도 새것인데 저고리는 거의 낡아간다. 그래서 명년쯤에는 새것으로 하나 더 장만해야 될 것 같다.
요즈음은 시원한 인견이 다양한 디자인과 칼라로 많이 나와서 이 또한 여름용 옷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몇 년 전 부터는 시원한 칼라의 인견 원피스에 하얀 세모시저고리를 즐겨 입는다. 느낌부터 산뜻하고 시원하다. 치마만 바꾸어 입으면 모시저고리 하나로 몇 벌의 옷을 대용하는 편이다. 뭣보다 모시는 산뜻하고 시원해서 좋다.
모시 중에도 한산모시가 으뜸이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만드는 한산모시는 여름 전통 옷감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한산모시의 재배과정, 제사(製絲)과정, 제직(製織)의 기능을 통하여 만드는 장인(匠人)을 ‘한산모시짜기’란 명칭으로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하였으며 그 후 2011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 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시의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보면 눈물겹도록 가슴이 저리다. 어느 시인은 어머니의 그 수고로 자식 공부시켜 오늘의 자기가 된 것에 대한 사모의 시를 절절히 읊기도 했다. 그 시인이 정년퇴임 기념논문집을 준비할 때 그 시집에 대한 작품론을 필자가 쓰기도 하였다. 그런 인연이 있기도 하여 한산모시하면 특별한 애정을 느낀다.
필자도 어릴 때 큰댁에서 모시를 하는 것을 보기는 봤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과 잠자는 것과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것과 실을 가늘게 손톱으로 뜯고 앞니로 곱게 뽑고 무릎에 문질러 꼬아서 가늘게 만드는 것 등을 그냥 신기하게 보기만 했다. 그분들의 수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냥 부인네들의 일과로만 생각했다. 그 때엔 ㅡ.
모시는 보통 7세에서 15세까지 있는데 10세 이상을 세모시라 한다. 곧 숫자가 높을수록 최상품이다. 세모시는 나라에 바치는 공물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우리의 가곡 중에 <그네>가 있다. 김말봉 작사 금수현 작곡이다. 고등학교시절 음악교과서에서 배운 노래이다. 즐겨 부르곤 했다. 그 가사에 ‘세모시’가 나온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 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이를 읽어보면 바로 시조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2절은 종장까지 잘 갖추어진 시조형식임을 알 수 있다. 김말봉 선생님은 소설가(1901~1962)이지만 이렇게 훌륭한 작사가로도 이름을 남겼다. 193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망명녀(亡命女)>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인간의 애욕 문제를 다루었으며 작품에 <밀림>, <찔레꽃> 등이 있다. <찔레꽃>은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노랫말에 시조가 많다. 지금도 시조형식을 빌려서 노랫말을 많이 짓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 ‘가고파’ ... 등은 시조가 노랫말이 된 것이다. 애창하지만 그 가사형식이 시조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우리의 시조 또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서에 젖어 노래 가사로 애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설가 김말봉 선생님이 저리 멋있는 노래가사를 남기셨듯이, 노산 이은상 선생께서 저 훌륭한 노랫말들을 많이 남기셨듯이 우리도 장르를 초월하여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 한 수쯤 읊으며 우리가 즐겨 입는 옷으로 나만의 노랫말 한두 편쯤 남겼으면 하는 바람을 이 순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