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가 나온 배경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로 토머스 쿤(Thomas Kuhn)의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이 책의 직접적인 지적 배경이 된 과학사·과학철학 분야를 넘어서
과학 일반, 철학, 역사 일반, 인류학, 사회과학, 페미니즘, 국가 정책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가 발간한 학술서 중 가장 널리 읽힌 책이었고,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총 1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국내에서도 두 가지 다른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대학생을 위한 과학 분야의 필독서와 스테디셀러로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1922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쿤은
1940년에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군사 연구 인력이 필요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는 3년 만인 1943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고,
곧바로 레이더 방해 전파 연구에 투입되었다.
1944년에 그는 영국으로 파견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폭격기의 효율을 연구하는 그룹에서 일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의 관심은 이 무렵에 이미 철학으로 기울어 있었다.
쿤은 고대 철학과 칸트에 매료됐으며,
이론물리학 박사 논문을 쓰던
1948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힘겨운 노력을 쏟고 있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쿤은 당시 하버드 대학교 총장 코넌트(James Conant)의 추천을 받아
1948년 봄에 하버드대학교의 주니어 펠로(Junior Fellow)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국방연구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코넌트는
전후 하버드대학교의 교육 개혁을 주도했는데,
그의 개혁의 핵심은
인문학 사회학 경영학과 같은 비(非)자연과학 전공 대학생에게
자연과학의 '전략과 전술', 즉 핵심 방법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코넌트는 원자 폭탄 개발 이후 미국의 미래가 이 교육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수업을 위해
코넌트는 쿤을 조교로 고용해서
『실험과학의 하버드 사례 연구(Harvard Case Studies in Experimental Science)』라는
교재를 편집하려 했고,
쿤은 이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로버트 보일(Robert Boyle)과 같은
과거 자연철학자들의 원전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에서는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윤리학이나 인식론과 같은 철학에서는
지금 보아도 상당히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때는 그렇게 '멍청해 보이는' 설명을 고수했는가라는 것이었다.
갈릴레오와 뉴턴에 의해서 완성된 고전물리학을 배운 사람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은 정말로 한심해 보일 정도로 어리석은 것이었다.
이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던 쿤은
1948년의 여름 어느 날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이
갈릴레오의 근대적 운동 개념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은 물체의 거리 이동만이 아닌 변화 일반을 의미했다. -
운동을 이렇게 파악하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이
그의 철학 체계 속에서 무척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17세기 갈릴레오의 물리학 사이에는
단순한 계단식 발전이나 오류의 교정이 아니라
개념적 변혁이 존재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1948년 여름에 쿤을 찾아온 깨달음은
과학의 발전을 누적적이거나 오류를 교정해 나가는 식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1950년대를 통해서 쿤은
역사학자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와 코아레(Alexander Koyré)의 연구로부터
과거의 사건은 과거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과학의 발전이 급격한 변혁으로 특징지어진다는 점을 더 분명히 할 수 있었다.
1956년 쿤은 버클리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1957년에 자신의 생각을 지동설-천동설의 전이에 적용시켜서
코페르니쿠스를 재해석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쿤은 코페르니쿠스를 '혁명적'이자 동시에 '전통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부동의 우주중심에 놓고 천체를 파악한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부정하고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 주장한 혁명가였지만,
동시에 수정 천구(天球)의 존재를 인정하고
원운동을 고수한 보수적인 성격의 사람이었다.
왜 코페르니쿠스에게서는 이렇게 혁명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이 다 발견되는 것일까?
코페르니쿠스는 1,300년가량 지속되면서 문제점을 누적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체계를 공부하고
그 천문학에서 가르친 대로 문제를 풀던 천문학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누적된 구체제의 문제점을 최초로 인식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즉 여기서 쿤은 과학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학자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들의 집합이며
- 그는 나중에 이를 '패러다임'(paradigm)으로 명명했다 -,
이러한 도구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과학 체계의 급격한 변혁이 일어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원운동의 조합을 통해 천체 현상을 설명하던 과거의 기술적 도구를 완벽하게 소화했지만,
지구 중심의 구체계로는
행성 운동의 기술에 한계를 느끼자
지구에 몇 가지 운동만을 도입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코페르니쿠스는
과거 체계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의 해법에는 과거 체계의 보수적인 성격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코페르니쿠스의 해법을 받아들인 케플러와 같은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가 고수했던 원운동의 속박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로운 우주관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 과학철학을 대표하던 과학철학자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 1882~1945)는
18권의 책을 엮어서
'통일된 과학의 국제 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olpedia of Unified Science)'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이 기획을 이어받은 편집자는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그 중 한권으로 선정했다.
쿤의 책이
논리 실증주의 통일과학 시리즈에 포함된 것은 무척 아이러니컬한데,
그 이유는
결과적으로 쿤의 책은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부수고,
통일된(unified) 과학에 대한 신념을 깨뜨리면서
통일되지 않은(disunified) 과학의 토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이전과 그 이후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과학 혁명의 구조 이전 |
과학 혁명의 구조 이후 |
과학철학의 기본은 실증주의 |
실증주의에 대한 의심(→구조주의) |
과학과 사회의 구분 |
사회 속의 과학 |
과학의 발전은 축적되는 연속적 발전 |
과학의 발전은 혁명적, 비연속적 발전 |
과학에서 관찰과 이론 간의 분명한 구분 |
과학에서 관찰과 이론의 상호 연결성 |
과학적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의 구분4) |
이 둘 사이에 구분이 불분명해짐 |
과학의 기반은 자연, 과학적 행위는 발견 |
과학의 기반은 패러다임, 과학적 행위는 과학자에 의한 구축 |
개별 과학자가 과학의 주체 |
과학자 사회가 과학의 주체 |
과학자들 사이의 자유 의사 소통이 전제됨 |
패러다임들 사이의 공약 불가능성이 강조됨 |
과학의 통일성 |
통일성 부재(과학의 비통일성) |
- 홍성욱(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