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 성경에서 모든 사건들과 내용들이 모두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사건 중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성경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표현하고 있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에서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사건이 가장 십자가 사건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약에서 그리고 사사기에서 가장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입다가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인신제사'로 드리는 사건입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려는 모리아 사건과 입다가 무남독녀인 자신의 딸을 인신제사를 한 내용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지만 그 사이의 두 사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모리아산에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번제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그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만으로 충분하게 받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지만 입다는 하나님께 자신의 딸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자청하여 하나님께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에 돌아갈 때 만나는 첫 번째 사람을 '인신제사'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 당시 세속종교의 타락한 인신제사의 모습을 입다가 행하는 것입니다. 묘하게 비슷해 보이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를 드러냅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전쟁 승리를 받기 위해 무엇인가 큰 것을 드리겠다고 남의 생명을 함부로 거론합니다. 하나님께 타인의 생명을 가지고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입다는 설마 딸을 그렇게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노예 한명쯤 죽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를 얻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을 업긴여기며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는 입다를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사건과 입다의 무남독녀 인신제사 사건이 비슷해 보이지만 둘의 차이는 번제를 드렸나 안드렸나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과 입다의 마음을 아셨고 기다리셨고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영적 전쟁을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자신의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 가운데 자신의 딸을 버려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서 입 밖에 내놓은 말이니 자존심이 걸려 결국 딸을 '인신제사'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나의 서원, 나의 다짐, 나의 결단은 늘 실패하고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다짐했다고 결단했다고 100%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겠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100% 원하시는 하나님께 10%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10%의 겉모습 안에 있는 100%의 마음을 찾으십니다. 매번 결단하고 다짐하였지만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를 지어도 그 안에 마음으로도 충분히 여기시고 사랑 안에서 '교제'하고 싶어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그래서 우리에게 위로하시고 다시 세워주시고 존중해주십니다. 예수는 내 힘이요 나의 기쁨 내 참 소망 그 이름의 생명이 내 삶의 이유라 예수는 내 힘이요 나의 기쁨 내 참 소망 그 이름의 생명이 내 삶의 이유라 오직 주만 따라갑니다 오직 주만 높임 받으소서 내 평생에 그 이름을 그의 선하심을 세상에 노래합니다 그 이름의 크신 능력 영원한 생명이 내 삶의 이유라 (내 삶의 이유라 찬양 중...)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