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자신에게 깊은 신뢰감과 믿음을 갖고 있는 죄수에게 예수는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선언한다. 여기서 언급된 '낙원' 파라데이소스은 '공원' '정원'의 뜻인 페르시아어 파르데스에서 유래된 것인데 칠십인역에서는 에덴 동산을 표현 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그래서 여기서 언급된 낙원은 사 51:3에 나오는 미래적 에덴 동산으로서 기쁨과 즐거움이 약속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낙원이 의로운 사람이 사후에 잠시 안식을 취하는 중간적인 장소로 이해되기도 한다. 참고로 신약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16:22-31과 고후 12;1-4은 죽은 의인들이 이미 낙원에서 주와 함께 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계 2:7의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은 부활 이후에 누리게 될 축복과 연관된다고 생각된다. 한편 '오늘'이라는 말은 구원의 즉각성과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며(2:11; 4:21; 5:26 참고), 죄인이 죽어가는 순간에 누리고 있는 믿음의 기쁨을 강조하고 그 기쁨이 죽음 이후에도 단절됨 없이 소유할 수 있는 것임을 확신시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낙원으로 -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낙원'이라는 말은 '세째 하늘'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고 이 표현이 유대인들의 '세째 하늘' 개념과 동일하지는 않다.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신비적 체험을 객관화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낙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데이손'은 페르시아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동산'을 뜻했는데 헬라어와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를 차용했다.
구약성경에서 '낙원'은 아담과 하와가 거주했던 에덴 동산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예수께서 회개한 강도에게 약속한 곳 또는 세상에서 신앙으로 이기는 자가 얻을 영생의 장소로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낙원'은 유대 랍비들의 견해와는 달리 구원받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바울이 경험한 환상과 계시는 너무도 신비로운 것이어서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들은 말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되는 신적 비밀이기 때문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구약에서 보여지는 봉인(封印)된 계시에 관한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바울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은 이유가 그 체험이 바울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는 타당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 바울은 묵시 문학이나 영지주의자들이 신비한 체험을 자세하게 진술하는 행위를 비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더 이상 그 환상에 대해 진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