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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법계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근본 목적은 개시오입開示悟入에 있다. 우리말로 풀이를 하자면... 부처님께서는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당신 먼저 도를 깨달아서 성불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다음에 일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과 같이 깨달아서 깨달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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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깨달아 열어 보이신 다음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도를 깨달아서 깨달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깨달을 오悟자, 들 입入자...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저 도솔천 내원국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마야부인
복중을 빌려가지고 인간 세상에 오셨어요.
오셔서는 궁중에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도 보여줬고 그것이 모두 허망하고 무상하고
실다움이 아니다. 는 것을 일러주고 가르쳐주기 위해서 당신이 출가를 하셔가지고
설산국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마야부인이 정반하고 결혼한 이후에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그러다가 마흔다섯살
되던 해에 오침 중에 인도 같은 나라는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에 한낮에는
활동을 할 수가 없어요.
모두가 한낮에는 그늘에서 쉬게 되어 있어요.
그냥 쉬려니까 지루하고 지겨우니까 낮잠을 자요. 그것을 오침이라 그래요.
마야부인도 오침 중에 꿈을 꾸었는데 도솔천 내원궁에 ‘호명보살’이라고 하는 분이
육아백상六牙白象, 이빨이 여섯 개가 달린 흰코끼리를 타고 오색서기를 타고 내려
오셔가지고 당신 오른쪽 허리를 뚫고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잉태를 했어요.
요즘의 우리나라는 그런 풍속이 없어졌어요.
사회가 발달하고 과학문명이 발달함에 따라서 의술도 발전을 해가지고 옛날에는 생사가
걸린 것이 출산이야.
그렇기 때문에 주로 첫아기는 시어머니가 아무리 편안하게 잘해줘도 친정어머니만큼
편안하고 만만하지를 안하니까 친정에 가서 몸을 풀었어요.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친정어머니 곁에 보다 병원이 안전하니까 전부 병원으로 다가요.
아마 연세가 높으신 노보살님들은 첫 출산을 친정에 가서 순산한 분도 아직 많이 계실 거예요.
옛날에 인도에도 누구든 간에 친정으로 가서 몸을 푸는 것이 하나의 전통적인 유래로
전해내려 왔어요.
마야부인도 왕비이지만 나이가 마흔여섯이나 잡수셨지만 첫 애기니까 친정어머니 곁에
가서 몸을 풀려고 친정으로 가시던 도중에 카필라성과 구리성
사이에 룸비니라는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은 누구의 소유냐 하면 마야부인의
친정어머니의 소유의 동산이야.
석가모니부처님의 외조모이시자 마야부인의 친정어머니 되시는 부인의 이름이 룸비니부인이야.
룸비니부인의 동산이기 때문에 그 동산 이름을 룸비니동산이다 그래요.
친정으로 가다 보니까 친정어머니의 동산이 있으니까 둘러보고 가고 싶으니까
그 동산에 연을 머물렀어요.
연은 가마입니다.
한문으로는 가마 연輦자이고 순수한 우리 소리말로는 가마다 그래요.
가마에서 나와 동산을 한 번 둘러보는데 그때 때마침 봄날이야.
무우수 꽃이 피어서 만발을 하고 무우수 꽃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을하니까
그 무우수 꽃향기를 흠향하기 위해서 그 꽃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오른손으로 꽃가지를
잡고 코로 가지고 오는 순간에 어머니의 허리를 뚫고 출생한 분이 우리 부처님이야.
성현이 이 세상에 출생을 하니까 대지는 여섯 가지 성스러운 모습으로 진동을 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지고 땅에서는 연꽃이 솟아서 발을 받들어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사방 칠보를 걸으셨어요.
사방 칠보라 하면 여러분들의 생각은 일곱 걸음인 줄 알지만 사방으로 칠보를
걸었기 때문에 4×7=28, 스물여덟 걸음을 걸으셨어요.
사방칠보四方七步는 어떠한 뜻을 담고 있느냐 하면...
삼계 이십오육, 삼계라는 세 자리 숫자와 삼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이십 오육,
스물다섯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하나의 그런 것 말고...
우리 지구상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태, 난, 습, 화...
이렇듯이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가운데는 이십오육의 중생들이 삼계를 무대로 생활하고
있는데 그래서 스물여덟 걸음은 삼계 이십오육 중생을 내가 다 구제하고 제도하겠다는
뜻이 스물여덟걸음에 다 담겨있어요.
일수지천一手指天 일수지지一手指地하시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르치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르치면서 사자후로 외친 말씀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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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다음에
이것을 불교를 모르는 이교도들은 부처님은 당신 혼자만이 이 세상은 하늘위에나
하늘아래나 가장 홀로 높다고 외치신 독선주의자가 아니냐?
그렇지만 부처님 당신 스스로가 하늘위에나 하늘아래나 오직 홀로 높다면 천상천하의
아독존 그렇게 하면 되는데 왜 오직 유唯자를 붙여 놓았느냐?
유아독존...
하늘위로나 하늘아래나 살고 있는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있어서는 오직 자기에게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의 본질이 체존체귀하고 가장 홀로 높다는 거야.
여러분! 여러분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더라도...
한 나라를 이끌어가자면 통치자가 있어야 돼요.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이 뽑은 대통령, 이 나라를
대표하니까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통치자야.
그렇지만 생명을 바꿀 수 있나요. 그것은 또 남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부부간에도 내가 낳은 내 자식하고도 생명은 바꿀 수 없어요.
나에게 있어서는 오직 나의 주인공, 내 생명의 본질인 체존체귀하고 홀로 높다는 거요.
이것은 무슨 말씀이냐?
일체 모든 중생들의 생명의 존귀함과 생명의 위대함과 일체 모든 중생의 생명은 다
평등하다는 것을 생명의 존엄성을 일컫는 말씀이오.
부처님 당신 혼자만이 체존체귀하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에게 있어서 자기의 생명이
체존체귀하고 홀로 높다는 거요.
조그마한 개미, 꼬물꼬물 기어 다니니까 하잘 것 없지요.
죽이니까 힘이 약하니까 죽지만 만약에 우리가 개미를 죽일 적에 죽을지 의사를 물어보고
또 우리가 의사가 서로 통한다면...
“개미야, 개미야 내 오늘 죽을 일이 있는데 네가 대신 좀 죽어줄래?”
“아이고, 예 감사합니다. 죽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할까요?
말이 안통해서 그렇지 ...말이 통한다면...
“미친놈, 웃기고 있네...^^
네가 죽을 것은 네가 죽지. 왜 내가 네 대신 죽어.” 그렇게 말할 것 아니야.
힘이 없고 하잘 것 없으니까 죽이니까 꼼짝없이 죽는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개미)하나 죽이는데도 생각을 해봐야 돼. 불자는...
조그마한 개미 한 마리의 생명의 본질 주인공이나 우리의 생명의 본질이나 생명의 본질은
평등하고 생명의 본질은 본래 하나야.
개개인의 업에 따라 덮어 쓰고 있는 육체 껍데기만 틀릴 뿐이지 개의 생명이나 소의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나 생명의 본질은 평등이야.
생명의 본질은 평등함과 동시에 생명의 본질은 본래 하나야.
인인개개인들 일체 모든 중생들의 시시각각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육체껍데기가 틀릴 뿐이야.
그러나 그 생명의 본질은 다 위대하고 체존체귀하다는 것을 설파하신 말씀이야.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이라..
‘삼계가 개고’이니 욕계, 색계, 무색계가 전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아당안지’하리라.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해주리라.‘는 선언을 하고이 세상에 오셨어요.
어떻게 해서 부처님 당신이 일체 모든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느냐?
진리를 몰라서 괴로움과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에게 오늘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모든 일들이 누가 주어서 내가 받은 것도 아니에요.
내가 스스로 지어 와서 내가 받는 내 인생이야.
이 이치만 알면 좋고 기뻐도 누가 감사할 일이 없어요.
내가 과거전생에 좋은 생각 잘 일으켜서 그 생각을 마음속으로 결정해서 행동한 것을
실천을 해서 복을 많이 지어 놓았기 때문에 오늘 내가 행복한 거야.
내가 지은 내 복에 의해서 행복하니까 누구에게 상대에게 감사할 일이 하나 없고 내가
스스로 자신 전생에 복 지어 와서 즐거우니까 감사하고 이러한 인과의 이치와 윤회의
사상을 바로 알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럽고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누구 하나 원망할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그런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잘 되면 자기 덕이고 못 되면 조상탓이다.
조상은 고사하고 잘된 사람치고 부모 원망하는 사람 하나도 없고 어렵고 힘든 사람치고
부모 원망 안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잘 된 자식 부모 원망 안합니다.
못된 자식 자기 업인 줄 모르기 때문에 부모 잘못 만나서, 자기가 복이 많았으면 부모 잘 만나지.
자기 없이 그것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 부모를 만나게 되는 거야.
우리는 내 업을 돌이켜 비추어 볼 줄 모르고 항상 남을 비추어요.
그것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여자들입니다.^^
어지간히 자기가 다 잘났거든.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적에 공부도 잘 하고 인물도 좋았는데 저 남자 만나서 내 인생이
이것이 뭐냐?
그 남자 누가 만나라 그랬어.^^
자기가 좋아 시집왔지.^^
자기 복이 그것밖에 안되니까 그런 남자 만난거야.
자기 복이 좋으면 왜 그런 사람을 만나겠어.
그러면서 친구하고 비교를 해요.
내 친구는 공부도 못하고 인물도 못났고 성격은 왈가닥인데 신랑 만나서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나는 뭐냐?
자기 복이 그거지..^^
이러한 이치를 일러주고 가르쳐줘서 누구 원망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면서
일일이 만족을 하는 거야.
이 세상의 최상의 행복은 만족에 있다.
여러분! 최상의 행복은 만족에 있습니다.
만족이 없는 행복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족의 반대는 뭐지요?
불만이지요.
불만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 번 손들어 보세요?
불행하지요.
행복하려거든 만족해야 돼. 만족...
만족하려니까 만족할 거리가 있어야 만족하지.^^
내 복이 그것인데 어떡할 거야.
그런 이치를 알면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일에 누구 원망할 일이 없고 만족하려거든
감사하세요. 감사해요.
감사하려니까 매일 잔소리나 하고 돈도 못 벌어 오고 술이나 마시고 내 인생 이렇게
망쳤는데 뭘 감사해요.
내 인생을 그 사람이 망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인생을 내가 망친건지도 몰라요.
내 업 때문에 상대가 안 되는지 몰라.
따져보니까 둘이 업이 똑같으니까 부부가 되는 거야.
동수정업同修淨業 중생이야.
같은 업을 같이 지어 와서 함께 닦을 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부가 된거야.
요즘 내가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대한민국 여자들 열 사람을 앉혀놓고 내생이
존재한다면 하는 조건에서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다는 조건에서 ‘지금 사는 남편하고 또 부부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라‘ 하면...
두 사람도 없대.^^
항상 올려다보고 사니까 만족 하지를 못해요.
내려다보고 살면 만족 할 일이 수두룩해요.
왜 우리는 불행하려고 올려다보려고만 사는 거야.
행복하도록 나보다 못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살면 지금 이렇게 밥 먹고 옷입고 부부와
아이들과 사는 것만 해도 만족하면 최상의 행복이야.
여러분은 만족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남편하고 다시는 남편 안하고 싶다.
내 복이 좋아야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지.
내 복이 그것밖에 안되는데...
에나 여기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부부는 내생에 100% 부부가 됩니다.
큰일 났지?^^
왜 부부가 되느냐 하면...
불교의 인연법으로 보면...
동석되면 500생 인생이요, 청법인연도 500생 인연이야.
오늘 여러분들이 대관음사 큰 법당에서 이렇게 앉아 있고 내가 이야기 하는 내 소리를 함께
듣는 이 인연도 500생 내의 인연이 모여 쌓이지 아니하고는 이루어 질수 없다는 거야.
그런데 항차(하물며)...
남남이 만나가지고 일생동안 한 솥에 밥 먹고 한 공간에 생활하고 찌지고 볶고 살면서 한 생의
인연을 더 맺었으니까 내생의 부부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야.
그런데 문제가 뭐가 있느냐?
남녀가 바뀌어야 됩니다.
90%이상은 바뀌어 집니다.
바뀌어 지는데 그때 가면 남자는 여자가 되고 여자가 돼요.
부부가 바뀌는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특히 대한민국은 여권이 한참 더 성장을
할 거야.
이조500년 남존여비 유학사상에 의해서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종이야.
실컷 데리고 살다가도 데려 살기 싫으면 칠거지악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쫓겨나도 입도
벙긋 못하고 쫓겨났어.
쫓겨 가지 않으려면 죽은 듯이 살아야 돼.
그렇게 600년을 경과해 온 거야.
지금 기껏 해도 여권이 성장을 해서 남자하고 평등하게 된 것이 2.30년 안됐어요.
앞으로 600년까지 가려면 여권이 얼마나 성장할 거야.
그 때 바뀌어 난다면 어떡할 거야.^^
몸을 바꾸어 내생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전부다 돈벌이는 기계밖에 안 될 거야^^
죽도록 생활전선에 나가 상사들 눈치 보며 한 달 벌어도 월급 한 번 못 받아보고 마누라
통장에 다 들어갈 거야.
거사님들 걱정하나도 하지 마세요.^^
내생에 가면 큰소리치고 살 거야.
그때 가서 죽도록 노동해서 돈 한번 마음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손톱 긴 마누라한테 안
긁히려면 지금 잘 하세요.^^
우리나라 노래 가사에 보면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하는 것이 남편 위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내생의 나를 위하는 거야.
가사백천만겁이라도 가사 백겁 천겁 만겁을 가더라도 소작업은 불무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은 바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인연해후시에는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과보를 한자수해요.
내가 지어 놓은 모든 행위에 대한 댓가를 내가 도로 돌려받게 되어 있어요.
지금 우리 인생은 누가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과거생에 일으켰던
생각의 그림자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한 업의 모습이 오늘의 내 인생이야.
오늘 여러분이 일으키는 미래 내생의 씨앗이 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을 하면
내생의 모습이 돼요.
내가 지어서 내가 받아요.
그렇게 하기를 시작 없는 옛적부터 육도문중을 돌고 돌다가 다행히 전생에 무슨 복으로
받기 어려운 사람 몸 받았어요.
사람 몸 받아도 불법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불법까지 만났습니다.
불법을 만나도 불법가운데 불법 아닌 외도가 더 많아요.
그런 것들을 일러서 부처님께서는 ‘사자신중에 충’이다 그랬어요.
‘사자 몸 가운데 일어난 벌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사자는 무수의 왕이기 때문에 뭇짐승이 도전해가지고 사자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사자는 오직 사자 몸에서 벌레들이 사자피를 빨아먹고 사자 몸을 괴롭혀요.
그와 같이 기독교, 아무리 성해 봐도 불교 앞에 없어질 종교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기독교 믿는 사람 많아도 괴로워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열심히 불교를 믿고 불교를 믿는 근본 목적은 자성을 증득하고 깨달아서
생사윤회를 영원히 해탈해가지고 내 영혼을 구제하고 제도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그렇게
되는 날까지는 육도윤회를 못 면합니다.
적어도 우리 불자들은 복을 많이 지어 놓았기 때문에 지어 놓은 복에 의해서 삼계...
욕계, 색계, 무색계 상계 이십팔천 천상에 가서 태어나면
천상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욕계, 색계, 무색계로 이루어져 있어요.
욕계에는 육욕천이라고 여섯 하늘세계가 있어요.
거기 가면 인간 세상에 있는 욕망이 그대로 갖추어 있어요.
이성의 욕망, 명예의 욕망, 권력의 욕망, 오욕이 다 갖추어 있어요.
그래서 그걸 욕계라고 합니다.
색계는 물질적인 육체는 있지만 욕망은 끊어졌어요.
그래서 색계라 그래요.
무색계는 육체도 없이 정신력으로만 살아가는 세계가 무색계야.
색계만 가더라도 선정력에 의해서 가지. 복 지어 가지고는 안돼.
복을 지어서 가는 데는 욕계 육천인데 욕계 육천도 여러분이 한 번 가면 얼마나 많이
복을 수용하느냐 하면 인간 세상하고 가장 가까운 하늘세계가 사왕천이야.
사왕천은 왜 사왕천이냐 하면 동서남불 네 나라로 통일이 되어 있어.
동서남북 네 나라 중 동방에 있는 나라는 지국천왕이 다스리고 남방에 있는 나라는
증장천왕이 다스리고 서방에는 광묵천왕이 다스리고 북방에는 비사문천왕이 다스려요.
네 임금님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해서 사왕천이라고 해요.
사왕천에만 가더라도 거기에 하루는 여기 50일입니다.
거기에 1년은 여기에 50년이요.
거기에는 수명을 얼마나 오래 사느냐 500세를 살아요.
500세를 살면 인간숫자로는 25,000년이야.
그 세계는 가면 과학문명이 얼마나 발달되었느냐 하면 사람이 어머니 자궁에서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세상 여섯 살만큼 크게 태어나요.
다 크면 키가 얼마냐 하면 반리야.
반리가 얼마냐 하면 이백 미터 돼요.
이백 미터 되는 체구가 입는 옷이 금 닷돈 무게만큼 안 나가면 얼마나 비단이 얇고
보드랍겠어요.
그런 세상을 25,000년을 살아요.
그 다음 올라가면 도리천이야.
도리천에 가면 동서남북으로 사방으로 각각 여덟 나라가 있어.
4×8=32고 중간에 제석궁이 있어요.
그래서 일명 33천이다 그래요.
거기 가면 하루가 여기는 100일이야.
거기 1년은 여기 100년이야.
그런 수명을 1,000세를 살아요.
거기 1,000세가 여기 십 만 년이야.
체구는 다 크면 높이가 1리야. 400미터야.
옷 무게는 아주 얇은 고름 여섯 개 무게밖에 안돼.
다른 것은 다 좋은데 키가 너무 커서 어떻게 할까?
그게 또 걱정이 되지요.
개미가 우리 인간 쳐다보는 것 하고 똑같다.^^
조그만 개미가 인간을 쳐다보면 저렇게 커서 어떻게 돌아다니나 싶겠지.
그런데 우리는 하나도 불편한 것 없잖아요.
거기에는 넓은 세상에서 큰 사람만 모여가지고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조금도 불편을 안 느껴요.
그 위에 올라가면 야마천...
그 다음 네 번째 하늘나라가 도솔천...
도솔천은 내원궁과 외원궁으로 되어 있어요.
외원궁은 중생계고 내원궁은 보살계인데 보살들만 모여 살아요.
그러다가 인간 세상에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차례로 오고 있어요.
석가모니부처님은 호명보살로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인간 세상에 오셨고 다음번에
오실 미륵부처님은 도솔천 내원궁에 미륵보살로 계세요.
거기 얼마나 계시다 오시는가 하면 3,000년 계시다 와요.
인간 세상 숫자로는 56억7천만년 지나가지고 부처님 열반한 후에 인간세상에 오신다.
다섯 번째 하늘나라는 화락천이야.
마지막 욕계육천 중 제일 위에 있는 나라는 타화자재천이야.
거기는 전부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데 임금이름이 ‘파순’이야.
거기 간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그 나라에 태어났느냐 하면 10선을 닦아야 돼.
여러분은 신.구.의 삼업으로부터 열 가지 죄를 저지르고 사는데 10악을 능히 참으면
자동적으로 10선업이 되어가지고 10선업을 널리 닦으면 내생에 타화자재천에 태어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보면 돼요.
전부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냐 하면 복 지은 사람들만 가서 살아가지고 복이 충만하기
때문에 전부 복 수용만 하고 사는데 복 수용을 하려니까 인력이 필요해요.
복 안 지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종으로 부려먹어야 되는데 도저히 복을 안 지은 사람이
거기에 올 수가 없으니까 마왕 파순이의 부탁을 받고 인간세상에 종 모집하러 온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예수그리스도야.
예수는 와가지고 복 지어라는 말은 하나도 안합니다.
자기 믿고 구원받아서 천당 가서 하느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양과 같이 순한
종이 될 수 있도록 원을 세우라고 가르쳐요.
원에는 반드시 성취가 있는 거요.
그 사람들은 일생동안 교회 다니면서 복 안 지어요.
서푼어치도 복을 안 지어요.
교회에 갖다 주는 그것은 마구니 양성소기 때문에 복이 될 수가 없어요.
왜 마구니 양성소냐 하면 그 사람들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마귀들만 들어 앉아 있어요.
아버지도 안 믿으면 마귀, 어머니도 안 믿으면 마귀, 할머니도 안 믿으면 마귀, 할아버지도
안 믿으면 마귀라.
거기는 전부 마귀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마귀라 자청하는 소리기 때문에 마귀가 가는
곳이 지옥이지 어디겠어.
기껏 해 봐도 구원받아 천당 가도 종밖에 안돼.
종이 되더라도 뭐가 되느냐 하면 인연 있는 사람 종 될 거니까 여러분 주위에 교인이 많으면
내생에 내 종이 많구나 하고는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하나도 안 괴롭잖아요.
우리 불교에서는 그렇게 살기 좋은 천상세계도 육도문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복 지어 놓으면 타락이 되니까 천상락을 즐겨하지 말고 금생에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났을 적에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어서 생사윤회를 해탈해가지고 영원히 내 영혼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것이 불교야. 부처님께서 이것을 가르쳐주러 인간 세상에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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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이 있으면 내 종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 오신 날이 언제냐?
갑인년 사월 초여드렛날....그래서 사월 초여드렛날을 부처님오신날이다.
인간 세상 살적에는 오늘 우리 인생은 누가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지어 와가지고 내가 받는 내 인생이란 것을 앎으로서 항상 감사한 생활을
하면서 만족한 인생을 살면서 행복을 누리라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서 마음 닦아 성불해가지고 생명의 본질은 생도 없고 사도
없고 옴도 없고 감도 없고 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항상 여여한 것이 생명의 본질이야.
이런 이치를 바로 보고 바로 알아가지고 생사윤회를 해탈하자는 것이 불교인데 그
렇게 될 때까지는 우리가 육도윤회를 못 면하니까 금생에 다 마쳐야 되지만 금생에
내 일을 다 못 마치면 내생에 반드시 존재하니까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괴로움과
고 받을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갈래에 태어나가지고 한량없는 복 수용할
수 있는 착한 일 하려고 노력하면서 죄 안 짓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라 말이요.
그러면서 마음 닦아 성불하자는 이것이 불교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려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러한 진리를 우리는 배워서
아니까 원망 없는 감사하고 만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있기 때문에 그런 진리를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일러주러 오신 분이 우리부처님이야.
그 어른이 오신 것을 깊이 환영하기 위해서 환영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 부처님오신
날에 등을 켜는 거야.
환영의 등불, 축하의 등불, 봉축의 등불 그 다음에 우리도 깨달음의 부처님같이 똑같다.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가 열려야 된다.
지혜의 밝은 빛으로 나를 비춰보는데 지혜의 빛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 걸림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불을 밝히는 거야.
절에는 불 쓰로(켜러)가는 거야.
여러분! 절에 가는데 뭐 하러 가요. 불 쓰로 간다. 그러지요.
올 때마다 불을 켜야 돼요.
초 한 곽이라도 사 올려야 되고...
말은 불 켜러 간다고 하면서 불을 켜지 않으면 거짓말 아니야.
옛날 우리 어렸을 적에만 하더라도 절에 불 쓰로 간다. 이러거든...
무슨 불을 켜러 가나? 촛불을 켜러 가는데 촛불은 왜 켜느냐?
어둠을 밝히는 것이 불이야.
천년동안 캄캄한 어두운 방 암실에도 한 등불만 밝히면 일시에 환하게 밝아져요.
불은 한 방안에 일천등불이 광명이 각각 걸림이 없어요.
불은 하나를 안 켜고 쌍으로 켜잖아요.
내 뒤에 저기 불이 쌍으로 켜져 있지요.
여러분들이 저 두 등에서 나오는 빛을 따로 골라낼 자신이 있거든 한 번 손들어 봐요.
없지요.
빛은 하나이잖아.
이 등불에서 나오는 빛이나 저 등불에서 나오는 빛이나 밝힐 때는 따로 밝히지만 빛은 하나야.
하나이지만 백촉 하나를 밝히면 백촉만큼 밖에 안 밝아.
백촉을 두 개 밝히면 이백촉만큼 밝아.
세 개를 밝히면 삼백촉, 네 개를 밝히면 사백촉... 그것이 불이잖아.
참 재미있잖아요.
백촉짜리 네 개를 밝히면 이 법당 안이 사백촉 만큼 밝지만 빛은 하나야. 서로 걸림이 없어요.
네 빛 따로 없고 내 빛 따로 없고 네 광명 따로 없고 내 광명 따로 없다.
등점이이나 광종일이다 그랬거든....
등에 심지는 각각 다르지만 그 심지에서 불이 붙어서 나오는 광명은 하나다.
등점원, 등에 심지의 불은 다 다르지만 광종일이야. 광명은 하나다.
그래서 많이 밝히면 많이 밝히는 만큼 밝아지는 거야.
깨달은 도인이 하나 나오면 한 사람 나온 만큼 세상이 정화되고 밝아지고 두 분 나오면
두 분 나온 만큼 밝아지고 세 분 나오면 세 분 나온 만큼 세상이 밝아져요.
그것을 가르치는 거야.
지혜의 등불을 밝혀가지고 우리도 지혜를 밝혀서 내 자성을 바로 비추어 봐가지고 부처님의
깨달음에 하나가 되자.
깨달음은 하나지 둘이 아니야.
부처님이 깨달은 그 자리나 역대 조사스님들이 깨달았던 그 자리나 앞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될 그 자리 깨달음은 하나지 둘이 아니고 깨달아보면 그때에 비로소
‘아하! 내가 본래 부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는 몰랐는데 깨달아 보니까 내가 깨달으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깨달음을 구한 것도 아니고 이룬 것도 아니고 본래 있는 그 자리를 바로 알고 바로 본 거다.
우리의 본래 모습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래 모습만 본래 부처가 아니고 우리의 본성,
나의 본래 모습 내 주인공도 우리는 잊어버리고 놓아 버리고 망각하고 알려고 생각도
안하고 찾지도 안하고 구하지도 안하기 때문에 없는 줄 알고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번뇌이고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망상인데 번뇌, 망상을 내 생각으로 알고
그 번뇌의 앞잡이가 되어 생활하다 보니까 번뇌의 구름이 자성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할 뿐이야.
태양은 항상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습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열과 빛을 우주도 비추지만 지구를 향해서 비춰주고 있어요.
빛은 똑같이 있는데 밤과 낮은 왜 생기느냐?
지구가 둥근데 둥근 지구가 태양의 공, 자전에 의해서 함께 돌면서스스로 돌아요.
빛이 바로 비춰 올 때는 낮이라 하고 돌아가면서 반대편에 빛이 비칠 때는 태양 단면에
가려져 빛이 안 보일 때는 밤이라 그래요.
우리가 얼마나 우둔하냐 하면 지구에 옹기종기 200여 국가가 모여 살면서 지구 전체도
보지 못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지구 단면을 보고 밤이다, 낮이다 그래요.
다 보고 말한다면 낮 속에도 밤이 있고 밤 속에도 낮이 있어요.
우리가 밤일 때는 반대편 서양에는 낮이고 우리가 낮일 때는 반대편은 밤이에요.
낮을 가지고 낮이라 해도 반쪼가리 밤을 가지고 밤이라 해도 반쪼가리 밤 속에 반대편에는
낮이 있고 낮 속에 반대편에는 밤이 있잖아요.
우리가 빛이 바로 비추어 올 때 태양은 그대로 있는데 못 볼 때가 있지요.
어떨 때...비가 오기나 구름이 끼면 못 보지요.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해요.
‘오늘 빛 안 났다. 햇빛이 없다.“
햇빛이 없는 것이 아니고 구름에 가려서 안 보일 뿐이라.
요즘은 우리가 보온 잘 되는 옷이 있으니까 아무리 겨울에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살지요.
옛날에 우리 어릴 때 6.25사변 바로 직후에는 물질이 엄청 귀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입다가 버리는 헌옷 구호물자도 서로 받아 입으려고 야단이고 그랬어요.
그 때는 내복이 없었어요.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고 바람 막는다고 하는 것이 한복은 소매가 넓으니까
토시 같은 것을 만들어 꼈어요.
그래도 안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오지.
겨울에 밖에 나가려고 하면 춥다.
햇빛이 나와야 나락을 널어 말라가지고 장에 가서 팔아서 돈을 장만하는데 나가려고 하니까
너무 춥거든...
나가 있는 사람한테 햇빛이 났나? 안 났나? 물어요.
“오늘 빛 안 났어요.‘
얼마나 우둔한 소리야.
빛이 안 나고 없는 것이 아니고 빛은 그대로 있는데 구름에 가려져 안 보일 뿐이야.
가려져 있는 구름만 걷히면 밝은 햇빛을 맑게 볼 수 있잖아요.
그와 같이 우리의 번뇌의 구름도 벗겨지면 나의 본래의 모습도 바로 볼 수 있어.
불교의 수행은 자기와 자기 자신이 싸우는 작업이야. 번뇌와 자신이 싸우는 작업...
번뇌를 쳐부수고 가라앉히고 하는 것이 수행이야.
쳐부수려면 무기가 필요하잖아. 그것이 무엇이냐?
염불하는 사람에게는 불보살님의 존호, 주력하는 사람에게는 다라니, 간경하는 사람에게는
경전,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화두...
이것이 뭐하는 무기냐? 파번뇌적 하는...
번뇌를 가라앉히고 번뇌를 잠재우고 번뇌를 쳐부수는 무기야.
그것을 쳐부수는 작업이 수행이야.
번뇌의 구름이 벗겨지면 나의 본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견성이야.
볼 견見자, 성품性자
견성하면 봤으니까 알 것이고 아니까 제도되고 제도되는 것이 성불이야.
견성하고 성불하지. 성불하고 견성하는 법은 없어.
‘견성성불’이라고 하지 ‘성불견성’이라는 소리는 없거든.
이러한 이치를 바로 일러주고 바로 가르쳐주러 오신 분이 부처님이야.
부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먼저 도를 깨닫는 방법을 보여주었어요.
출가도 하셨고 수행도 하셨고 마구니 항복받는 것도 보여주셨고 깨달음도 보여주셨어요.
그것은 무엇이냐?
개시開示야.
도를 깨달아 열어 보이신 분이야.
깨닫는 방법을 보여 주신 거야.
부처님이 보여 주신 대로만 하면 돼요.
부처님이 29세에 출가를 해서 6년 고행을 한 후에 35살에도 이렇다 할 깨달음을 보이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육체의 고행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산을 해서 유미공양을 받아 잡수신 다음에 기력을 차리고 깨끗하게 목욕하셔
가지고 언덕위로 올라오니까 초동들이 풀을 베니까 초동들에게 길상초라는 풀을 빌려
가지고 금강보좌에 깔고 삼칠일을 기한을 잡고 칠일, 칠일 이칠일이 지나가도 깨달음의
징조가 보이지 않으니까 마지막 칠일동안을 철야용맹정진 끝에 최후의 일하에 팔만사천
마구니를 항복받고 부처님이 되셨어요.
여기서 문제가 뭐냐?
석가모니부처님이 팔만사천 마구니를 항복받을 때는 아직 부처님이 아니예요.
우리 같이 똑같은 중생이야.
그런데 어떻게 팔만사천의 마구니를 다 물리치고 쳐부수었을까?
그것은 외적인 상대의 적이 아니고 내적인 번뇌의 적이야.
하루저녁에 팔만사천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모든 생각들이 더 일어날수도 있었어.
일어나는 생각을 다 쳐부수고 갈아 앉히고 잠재우고 나니까 대명천지 밝은 날과 같이 나의
본래 모습을 나의 환한 밝아진 지혜로 바로 비추어 내 성품을 바로 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걸 보여 주었어. 그것이 개시야.
그런 다음에 팔만사천 법을 설해가지고 우리들도 깨달아서 당신과 같이
부처가 되도록 깨달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거야.
그것이 개시오입開示悟入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 어른을 우리가 너무나 위대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존경하고 받들고
그 어른의 가르침을 믿고 행해가지고 그 어른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 불교공부야.
부처님이 캄캄한 암흑 세상에 광명과 같이 이 세상에 와가지고 천년동안 어두웠던 방에
한 등불과 같이 나타나가지고 우리의 지혜를 밝혀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어.
그 분 오신날을 깊이 환영하고 봉축하고 축하하고 그런 의미와 함께 지혜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 등 밝히는 거지요.
등 밝히는 것도 엄청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일 년에 한 번 있는 거니까 등 하나에 백만원쯤은 내야 안 되겠나...최소한 그래도 엄청 싸지요.
내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인지를 알게 가르쳐주러 오신 분이 오신 날,
1년에 한 번 있는 부처님오신날 봉축의 등불을 십 만원 주고 밝혀야 되겠어.
백 만원해도 싸지요. 기독교 십일조에 비하면...^^
교회오라고 할 때는 자꾸 죄인이라고 공갈을 쳐서 지옥 간다고 악담을 해요.
자꾸 죄인이라고 지옥 간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쇠뇌가 되어 참말로 죄인이 되어
지옥가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말을 바꿔요.
“믿어라”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천당 간다.“
악인이 믿는다고 구원받아 천당 가고 선인이 믿지 않는다고 저주받아 지옥간다면 분명히
진리의 모순입니다.
우리 불교는 선인은 선과하고 악인은 악과하니까 악과를 받을 죄를 짓지말고 선보를 받을
착한 일을 하고 살아라. 그러면서 마음 닦아 성불하자는것이 불교다.
불교인은 상대의 구원이라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도 우리 대신에 우리 영혼을 구제하거나 우리 영혼을 제도해 줄수는 없어요.
제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보여 주었고 일러 주었지.
그것을 봤고 배웠고 했으면 내 것으로 만들어서 실천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나지.
나 아닌 어느 누구도 내 대신에 내 자성을 증득하고 깨달아 줄 수 없고 오직 나 일인만이
나의 본성을 바로 봐서 바로 깨달아서 견성하도록 하는 거야.
그렇게 보면 내가 엄청 위대하잖아.
내 영혼의 구세주도 나요, 내 영혼을 제도하는 자도 나요,
내 영혼을 깨닫게 하는 자도 나잖아.
이런 위대한 나를 과소평가 해가지고 어느 절대자는 신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인줄 알고
끌려 다니는 어리석은 못난 인생을 사는 것이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엄청 위대하고 거룩한
것을 바로 알아가지고 참 내 영혼을구제할 수 있는 구세주가 나라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이 불교야.
엄청 위대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와가지고 절에 왜 왔느냐?
내 영혼을 구제하고 내 영혼을 제도하기 위해서 왔어요.
여기 와서 나 아니고 내 영혼을 구제하고 제도할 수 없다는데 절에 뭐 하러오느냐?
제도하는 방법 배우고 제도하는 방법 공부하러 왔어요.
공부를 해서 실천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서 생사윤회를 해탈해가지고 내 영혼을 영원히
제도하려고 왔어요.
이런 도량이 많이 생겨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배워가지고 자기 영혼을 구제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배운 것을 일러주고 그르쳐주고 그런 거라.
스님이 한사람씩 데리고 오라고 하니까 신도를 돈으로 데리고 온 줄 알아.
그분들을 구제하고 제도하면서 도량을 확장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해주기
위한 목적이야.
여러분들이 절에 가서 등을 많이 켠다고 등갑을 갖다 준다고 스님이 먹고 가겠어,
짊어지고 가겠어, 싸가지고 가겠어.
마누라가 있어, 자식이 있어^^
삼천리강산에 내 몸 하나인데...
결국 아무리 갖다 줘도 절에 놔두고 가는 거야.
이 도량만 확장만 되고 커지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가지고
자기 영혼을 구제하고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나는 우리 무일(당) 우학스님을 왜 좋아하느냐 하면 ...^^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잖아요.
보통 스님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중상모략 하느라고 좋다, 안 좋다, 잘 한다, 못한다
하지만 누구도 못하는 일을 하잖아. 스님이라고 다 할 수 있어.
못합니다.
나는 못합니다.^^
법문하라고 하면 잘 해도 이런 일은 못해요.
그래서 이런 스님들을 만났을 적에 우리 불교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돼.
서울에 가면 능인선원이라고 있어요.
거기보다 여기를 좋아하는 것은 거기는 아직 종단에 등록을 못했어요.
자기네 법인체를 만들어 있어.
여기는 등록사찰 아닙니까?
현재 총무원 직할 사찰로 등록이 다 되어 있어요.
키우기는 회주스님이 키우더라도 소유주는 대한불교조계종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고 있지만 소유주는 여기 스님 아무도 아니고 회주스님도 아니고 그저
소임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소유주는 대한불교조계종이지.
그러니까 거룩하고 장하잖아요.
그런 큰일을 하는데 여러분들이 한 등, 한 등 밝혀주는 것도 불사에 동참을 하는 겁니다.
등 한등을 밝혀줌으로서 들어오는 수입금은 불사에 다 쓰여지지 스님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
회주스님이 쓴 책 가운데 ‘저거는 맨날 고기묵고’ 이러지만 당신은 고기 반찬에 밥 먹지만
우리는 나물반찬에 밥 먹는데 입어봐야 여러분들 옷은
고급 옷이지만 우리는 아무리 입어 봐도 가사 외에는 실크 없다.^^
우리 불자들이 하나 고쳐야 할 것이 있어요.
1년에 한 번 있는 부처님오신날 등 밝히는데도 등 하나에 등이 무거워서 그 많은 사람
이름을 어찌 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등불 켤 때는 한데 다하지요.
복을 달라고 할 때는 따로 다 달라고 해요^^ ‘각 각 등 보체’
등을 켤 때는 (마리기리 사바하)^^ 한데 다 엎쳐서 달고...
복을 받을 때는 (각 각 등 보체)^^
1년에 한 번 있는 사월초팔일에라도 불자로서 각각 등을 한 등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신심이
있어야 돼요.
산중에서 살아보고 도시에서도 살아보고 하니까 등 하나에 이름이 전부 달려있는 걸
보니까 등 하나에 이름이 전부 다 달려 있는가 하면 축원이 시집간 딸네 식구, 장가간
아들식구, 큰아들, 작은아들...등 하나에 이름이 20개, 30개 달려 있거든...^^
부처님 보고 복은 각각 따로따로 주세요.^^
시주를 할 적에는 (모들디기로)^^한데 모아서...
복을 받을 때에는 (따로따로)^^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나날이 하고 다달이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1년에 딱 한 번이야.
우리가 불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1년에 딱 한번 등을 밝히는데 가족 등을 따로따로 밝힐
줄도 몰라요.
그러니까 불교가 발전이 없어요.
교회는 영혼 구제 한다고 데리고 가면 십일조를 내야 돼요.
십일조를 안내면 하늘나라에 가도 양식을 저축을 안 해놓으면 먹을 것이 없다 그래요.
먹을 것이 없는 하늘나라에 붜하러 가. 가지말지...^^
십일조면 1년에 연봉이 1억이면 천만원을 갖다 내야 되는데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계산해
봐도 백만원 내기 어렵지요. 특별한 불사하는 것 외에는...
그 사람은 십일조 내고 우리는 백일조라도 냈으면 불교가 엄청 발전할텐데..
대한민국 기독교가 기독교인에게 사기 치는 겁니다.
세계교회가 십일조 없습니다.
신, 구약 66권 어느 구절에도 십일조를 내야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잘산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어요.
경경이 전부 66권이에요.
구약성서 39권과 신약성서 27권
전주 66권 어느 구절에도 십일조 내라는 것은 없어요.
그것은 인간이 만들었어.
십자군전쟁 남북 종교전쟁 때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만든 제도. 십자군전쟁이 끝나면서
세계교회가 특별현금은 있어도 십일조제도는 없는데 폐지된 제도를 도입해 와서
기독교가 기독교인에게 사기치는 것이 십일조야.
1년에 거두어들이는 십일조가 대한민국 국가예산보다 많아요.
여러분, 이런 내용을 관음사에 법문해주러 왔다고 관음사를 위해서 하는 법문도 아니고
전 불자들이 알아야 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기독교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거든요.
나는 요새 어디를 가면 기독교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타종교라 안하려고 했는데 자기들이 자꾸 해요.
인터넷에 지금은 내리고 없어요.
나도 핸드폰에 넣어 가지고 있었는데 뭐라고 했느냐 하면...
기독교방송에서 장경동목사가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이지만 석가아저씨는 인간의 자식이다.
이래요.
‘석가아저씨‘ 라는 대목이 10분 설교하는데 10번 정도 나옵니다.
스님들은 스님이라고 하더라고...
목회자 목사님하고 스님들하고 다른 방법은 뭐가 다르냐?
스님은 아직 도를 모르기 때문에 도를 구하는 구도자고 자기들은 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도를 전해주는 전도자라고 이러거든...
‘전도’라는 말자체가 불교용어입니다.
초기경전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는 데서
‘전도‘라는 말이 처음 나와요.
전도의 길을 떠나데 한 사람도 가지 말고 두 사람도 가지 말고 세 사람이 한조가 되어서
전도의 길을 떠나라.
그래서 전도는 어떻게 해야 된다.
그때 전도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을 합니다.
중국의 한문으로 번역할 때 우리나라로 전해왔어요.
하느님의 말씀 성경, 성경이란 용어도 우리 불교용어입니다.
성경은 바이블이에요. 바이블...
바이블에 있는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안 나는 거라.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불교에서 사용하는 ‘전도’라는 용어를 가지고 가서 사용하면
된다고 살짝 가져가서 바이블에다 접붙여서 맞지도 않는
소리인줄도 모르고 그래요.
‘전도’라는 말은 기독교에 절대로 안 맞는 소리입니다.
기독교는 ‘교’에 끝나지 ‘기독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독교라면 전교사가 되어야 되지 왜 전도사가 되느냐 말이야.
유교는 유도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의 양식이 되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말씀을
공자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믿으라고 했지 닦아가라는 소리는 안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 길을 가야만 된다는
소리도 안하고 닦아가라 소리도 안하고 믿어서 구원받아라
했지 도를 닦아가라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나는 진리요, 길이요.’ 그런 말은 했어도 예수 스스로 진리도 아니고 길도 아니에요.
길은 가는 길이지...
그래서 ‘도’가 아니고 ‘교’이기 때문에 전도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
도를 알기 때문에 도를 전해주기 때문에 전도사고 스님들은 도를 모르기
때문에 도를 구하기 때문에 구도자라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것을 다른 사람 보라고 핸드폰에 가지고 다녔는데 요사이는 차단을 시켜
서 나오지 않더라고요.
스님들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제 가르쳐는 줘야 된다.
여러분이 불교는 뭐고 기독교는 뭔지 알아야지 그리 안갈 것 아니요.
우리 불교에서는 나 외에 어느 상대자 절대자의 구원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 일인만이 내 영혼을 맑히고 내 영혼을 구제하고 내 영혼을 제도할 수 있는
내 영혼의 구세주도 나요, 제도자도 나요, 내 영혼을 맑힐 수 있는 능력도 나밖에
없다는 거요.
우리는 내 영혼을 맑히고 내 영혼의 본질을 바로 알아가지고 내 영혼을 영원히 구제하자는
것이 불교입니다.
기독교가 타력신앙 구원의 종교라면 불교는 자력신앙 자각의 종교야.
기독교 타력은 절대자 신의 힘에 의한 구원의 종교라면
불교는 내 힘으로 실천 수행을 해가지고 내 스스로 자성을 증득하고 깨닫는 종교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내가 위대하고 내가 위대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종교이기
때문에 불교가 위대한 거요.
기독교는...타력신앙...구원의 종교 불교는... 자력신앙... 자각의 종교 |
따라 해보세요.
이것이 불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해요.
이런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주고 가르쳐주고 보여주러 오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그 분 오신 날이 사월초팔일입니다.
원래 우리는 석존절, 석씨문중에서 가장 위대한 높은 어른이 탄생하신 날..
성현이 탄생하신 날, 성탄절...이것도 도둑맞았거든...
석존절, 성탄절 이렇게 부르고...
그 다음은 사월초여드렛날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사월초팔일, 그 다음은 더 줄여서 초팔일
이렇게 불렀어요.
성탄절이라고 하는 용어는 도둑맞았어요.
크리스마스라는 고유명사가 있는데 왜 남의 용어를 가져가서 사용하는지^^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왜 우리의 용어를 가져가서 성탄절이야.
그것은 우리의 용어입니다.
기독교 이 땅에 들어오고 탄생하기 이전부터 있던 용어입니다.
석존절, 성탄절, 사월초팔일, 초팔일...이렇게 부르던 것을 8.15해방이 되고 정부수립을
하면서 자유당정권이 우리나라 국가 공휴일을 제정할 적에 이승만대통령이 장로입니다.
미국에 가서 교육을 받고 장로이기 때문에 미국식으로 기독교식으로 공휴일을
제정하다 보니까 몇 십 년도 안된 기독교의 교주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은 성탄절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제정하고 1,600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불교의 교주가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 날은 공휴일로 제정이 안 되었어요.
이승만이가 비구대처 싸움을 붙여놓고 불교재산을 전부 토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다
빼앗아 갔어요.
그 소용돌이 속에 기독교 교주의 탄생일은 국가공휴일로 제정하고 부처님오신 날은
공휴일로 제정을 안했어요.
정화가 어느 정도 이루고 난 다음에 조계종을 대표로 해서 정부소송을 해서 대법원에
승소를 해서 판결을 받고 공휴일로 제정이 되면서 명칭을 무엇으로 해야 되겠는가?
성탄절은 기독교에서 도둑질해 가버렸고 석존절,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이니까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 ‘부처님오신날’로 제정이 되었습니다.
금년에는 불기2556년 이지요.
그럼 부처님 탄생하신지가 2,556년입니까?
이 세상 모든 기원은 탄생기원을 전부 사용합니다.
탄생됨으로서 부터 기원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불기는 불멸기원입니다.
부처님 탄생기원을 하려면 불기에서 79를 항상 더해야 됩니다.
부처님이 80에 열반에 드셨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그 해를 기점으로 해서 불기가 1년,
2년으로 나가요.
불기는 ‘불탄기원’이 아닌 ‘불멸기원’이라는 것을 우리 불자들은 상식적으로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불기를 확정할 적에 인도사람들은 기록을 잘 안 해요.
가장 오래된 인도의 기록은 부처님 열반 후에 사, 오백년 경에 탄생을 해가지고 인도 전
대륙을 통일시킨 아쇼카왕이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부처님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팔만사천 석주를 쌓았어요.
아쇼카왕을 한문으로 번역을 해서 ‘아육왕’아라고 하는데 ‘아육왕주’라고 그럽니다.
기둥 주柱자를 사용해서...
팔만사천개를 세웠는데 지금은 무슬림들에 의해서 파괴가 되고 200여개가 남아 있는데
그것이 인도의 상징으로 되어 있어요.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부처님의 탄생지면 탄생지에 불멸 몇 년에 다녀가면서
기념으로 이 석주를 세운다. 아쇼카왕 몇 년...
그것하고 맞추어서 부처님 열반하신 년도가 나온 거예요.
나라마다 다 틀렸는데 우리는 북전불기라고 해서 3,000년이 넘는 불기를 사용했었어요.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해서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뒤죽박죽이 되면 안 되니까
세계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아쇼카왕석주의 기록에 의해서
가장 가까운 년도에 기록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아쇼카왕 석주에 기록이
된 ‘불멸기원’이다 해서 그것을 불기’로 사용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불기는 ‘불멸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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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계셔야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금년부터는 大관음사 한국불교대학에 나오는 불자들만이 아니고 전 불자들이 불교가
발전을 하려면 또 하나 이야기를 하자면...대한불교 전체 중에 대표종단이 어디입니까?
조계종이 대표종단이지요.
금년도에 내가 바빠서 안 봤고 작년도에 우리 종단 1년 예산이 200억입니다.
지금까지 죽 나오면서 1년 예산이 조계종이 제일 많았는데 작년에는 2등했어요.
천태종이 300억이고 우리 조계종이 200억입니다.
2위도 단독2위가 아니고 태고종과 조계종이 공동 2위 1년 예산이 200억이고 천태종이
300억입니다.
뚝섬 봉은사, 단일사찰 1년 예산이 120억, 종단 1년 예산이 200억 봉은사가 그냥 주지 단독으로
운영하는 것 보다는 조계종 직영사찰이 되면 거기를 보태면 320억하면 1등 안되겠어.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하려고 했는데 주지스님 개인욕심 때문에 그 스님은 사실은
운동가입니다.
부처님의 시주돈이 운동자금으로 쓰면 안 됩니다.
종교와 정치는 함께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개인사찰이 발전을 해야 종단이 발전을 하는데 개인사찰이 발전을 하면 종단운영은
뭐로 하느냐 하면 말사에서 내는 분당금 가지고 해요.
그러니까 분당금을 자꾸 많이 안내려고 해요. 말사 주지스님들이...
관음사 같은 곳은 스님이 노력해서 일으킨 사찰이고 본래 종단 절이 아닌 것을 종단에
넣은 절이지만 종단에 본래 있던 공착 주지스님들이 1년수입의 십분의 일씩만 종단에
받쳐도 우리 종단이 발전을 할 텐데 그것도 잘 안되고 사찰경제가 좀 더 나아지면 종단에
분당금을 더 올려도 안 내려고 안 할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를 위한다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한 등, 한 등을
켜는 것이 종단을 위하고 불교 전체를 위하는 일이 되는 거지요.
여러분이 등을 켜고 내는 시줏돈이 큰 불사에 쓰이고 학교, 기숙사가 있는 인류 중,
고등학교만 만들어 놓으면 학생들은 오게 되어 있어요.
작년,제 작년에 학교 두 개를 인수했는데 한 군데는 본사차원에서 영천 은해사에서
여고 하나 인수했고 개별적으로 우리 우학스님을 존경하고 종단스님으로서 감사를
드리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병원도 인수하고 학교도 인수를 하고 여러분이
한 푼, 한 푼 내는 시주돈이 불사에 쓰여진다는 것을 알면 여러분들이 시주를 하고
등을 켜도 반갑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켜야 합니다.
등을 켜는 것도 금방 고치는 것이 안 되면 한 등, 한 등이 안 되면 내외간에 한 등,
자식 한 등을 켜고 나중에는 따로따로 갈라서 켜도록 하고 1인1등으로 부처님오신 것을
봉축할 수 있는 그런 마음자세를 대한민국 불자들이 다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소원성취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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