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주비전 / 육모전 / 육의전
오래전에 KBS에서 ‘육모전’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육주비전(六注比廛)에 대한 연속극이었다. 그런데 이를 시청한 많은 사람들이 육모전이라는 제목에 대해 의아해 하는 이가 많았다. 육의전이라는 말은 들어 봤으나 육모전이라는 것은 생전 처음 듣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그 말이 육의전을 잘못 쓴, 틀린 말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왜 이런 논란이 빚어진 것일까?
육모전이란 말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육주비전은 조선 시대에, 전매 특권과 국역(國役) 부담의 의무를 진 서울의 여섯 시전(市廛) 즉 선전(縇廛), 면포전(綿布廛), 면주전(綿紬廛), 지전(紙廛), 저포전(紵布廛),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을 이른다. 다른 말로 육부전(六部廛)ㆍ육분전(六分廛)ㆍ육의전(六矣廛)ㆍ육장전(六長廛)ㆍ육조비전(六調備廛)ㆍ육주부전(六主夫廛)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시전은 태종 때 고려 개경에 있던 시전을 그대로 본떠, 한성 종로를 중심으로 중앙 간선 도로 좌우에 공랑점포(公廊店鋪)를 지어 관설상점가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점포를 대여, 상업에 종사하게 하고 그들로부터 점포세, 상세(商稅)를 받은 데서 비롯하였다.
이들 중 경제적, 사회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6종류의 전을 추려서 육주비전이라 하였다. 이들에게 사상인(私商人), 즉 난전(亂廛)을 단속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하고, 그 대신 궁중이나 관청의 수요품, 특히 중국으로 보내는 진헌품(進獻品) 조달도 부담시켰다.
그럼 먼저 육주비전(六注比廛)의 주비(注比)란 말부터 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주비’는 ‘떼, 무리, 부류[部]’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 옛말이다. 그러니 注比는 고유어 ‘주비’를 소리대로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균여가 지은 향가 보현십원가 중 칭찬여래가의 첫머리에 ‘오늘 주비들의’와 참회업장가의 ‘오늘 주비 頓部 懺悔’에 보인다. 이들은 다 ‘부(部)’를 우리말로 나타낸 것이다. 후대의 <월인천강지곡>에도 다음과 같은 예가 보인다.
八部는 여듧 주비니
道士의 주비를 道家ㅣ라 하나니라
須陀洹은 聖人주비예 드다혼 뜨디라
이와 같이 ‘주비’란 우리말을 한자로 바꾸어 나타낸 것이 注比다. 그러니 육주비전은 여섯 부 곧 여섯 종류의 전(점포)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육주비전을 왜 육의전(六矣廛)이라 했을까? 이는 육의전(六矣廛)의 矣 자가 이두(吏讀)에서 ‘주비’라고 읽혔기 때문이다. ‘주비’는 원래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稅吏)’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주비’란 말이 뒷날 관물을 거두어들이고 배포하는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데도 쓰였다. 이는 세리와 관물 취급자의 임무가 유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관물 취급자 역시 이두문에서 矣 자를 써 나타냈다. 이두편람(吏讀便覽)이란 책에 그렇게 씌어 있다.
矣 주비 ○官物斂散時統首 謂之矣 [矣는 주비란 뜻인데 관물을 수렴하고 배포할 때 총괄하는 우두머리를 가리켜 矣(주비)라 한다.]
그러니 注比는 곧 矣로 둘 다 ‘주비’다. 그러므로 六注比廛이라 적든 六矣廛이라 적든 똑같이 ‘육주비전’이란 말이 된다.
그러면 ‘주비’ 즉 세리와 관물 취급을 총괄하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데 왜 하필이면 딴 글자 다 제쳐두고 ‘矣’ 자를 썼을까? 이것은 이들 주비가 품목을 기재하면서 그 앞에 ‘厶’ 자로 표시한 데서 기인한다. 이것은 오늘날 무엇을 표시할 때 그 앞에 체크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厶’ 자가 ‘矣’ 자의 머리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런 표시를 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矣’ 자를 끌어와 ‘주비’라 읽은 것이다. 즉 품목을 ‘厶’ 자로 표시하는 사람을 ‘矣’ 자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육의전은 또 어떻게 육모전이 되었을까?
그것은 ‘厶’ 자의 속음(俗音)에 기인한다. 이 ‘厶’ 자를 세간에서 흔히 ‘마늘 모’라 한다. 한자 자전의 부수를 찾을 때도 이 ‘厶’ 자 부수를 가리킬 때 ‘마늘 모’라고 지칭한다. ‘去’ 자나 ‘參’ 자를 자전에서 찾을 때, 이 ‘마늘 모(厶)’ 부수에서 찾는다고 말한다. 이 글자의 부수 이름을 ‘마늘 모’로 부르게 된 것은 그 모양이 마늘쪽을 닮았고, 또 ‘厶’ 자가 ‘某(모)’와 같은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六矣廛’의 ‘矣’ 자를 ‘모(厶)’로 바꾸어 읽어 육의전을 ‘육모전(六厶廛)’이라 하게 된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조 선생님 고맙습니다.
장 선생님!
해박하신 지식의보고창고 되시는, 장 박사님의 오늘의 주제: 육주비전 ( 여섯 부ㅡ여러종류의 점포) 라는 뜻의 공부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장 박사님! 감사 합니다.
이 선생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