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장 훌륭했던 열 사람의 제자 중에서도 제일 큰 제자로 알려졌던 제자의 이름은 ‘마하카샤파’였는데, 그가 부처님께 귀의할 때 부처님은 그의 성품이 훌륭하다는 것을 아시어, 카샤파 앞에 크다는 뜻인 마하를 붙여 마하카샤파라는 법명을 정해주셨습니다.
그런 카샤파는 권력과 재력 등 지성과 덕성을 두루 갖춘 귀족의 아들로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는 그가 가진 권력이라든가 재산과 명예 그리고 그 어떤 사랑이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버릴 수밖에 없는 헛것인 것을 알게 된 후, 그런 죽음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출가(出家), 즉 부모 친척들 등등을 떠나 수행자가 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늙은 부모가 안간힘을 다하여 그의 출가를 반대하였기에, 카샤파는 자기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출가할 것을 결심하였으나, 그의 부모는 한층 더하여 하루빨리 자식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면서 결혼할 것을 애걸하다시피 하였으므로, 그는 더더욱 난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부모의 간곡한 애원을 뿌리치지 못한 카샤파는, 자기의 부모가 내세웠던 아내 될 사람을 만나보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뜻밖에도 그녀 역시 귀족의 신분으로서 지성과 덕성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으나, 죽음 앞에서는 세상사 그 모두가 다 덧없다는 걸 알고 있어 결혼할 것을 원하지 않았었기에, 카샤파와 그녀는 각각의 부모가 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진 밖으론 부부처럼 생활하면서, 부부 아닌 부부로 살 것을 약속한 다음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중 양쪽 부모들이 차례로 이 세상을 떠나자, 카샤파와 그녀는 상속받은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난하고 병들어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카샤파는 그녀를 홀로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났는데, 카샤파가 홀로 떠난 이유는 아내 아닌 아내와 함께 스승을 찾다 보면 많은 위험이 따를 것이므로, 좋은 스승을 만난 후에 그녀 역시 수행하게 하고자 한 까닭이었습니다.
그 후 카샤파는 인도 내의 거의 모든 스승을 다 찾아다녔으나, 그가 원하던 스승을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기에, 결국 지치고 굶주린 채 딱히 정한 목적도 없이 길을 걷다가 마치 카샤파를 기다리고 계셨듯이, 산기슭의 작은 나무 그늘에 앉아계신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후, 부처님이야말로 삶의 실상을 깨달으신 분이라고 여겨 부처님께 절을 하며 제자 되기를 원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카샤파의 귀의를 허락하시면서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뜻인 마하를 붙여 마하카샤파란 법명(法名)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께서는 마하카샤파와 함께 벨루와나 정사, 즉 죽림정사(竹林精舍)로 가시다가 길옆 나무 그늘에 앉으시어 잠시 쉬고자 하셨는데, 그때 마하카샤파가 출가할 때부터 입고 있던 그의 좋은 옷을 벗어 부처님께 깔고 앉으실 것을 간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마하카샤파여, 그대는 무엇을 입으려고 그대의 옷을 벗어 바닥에 깔고 앉으라는 건가?”
그에 마하카샤파는 그 대신 부처님께서 입으셨던 분소의(糞掃衣)인 낡은 옷을 벗어주실 것을 간청하였고, 부처님께서는 그의 뜻을 허락하신 다음 마을을 지나며 다른 분소의를 구해 갈아입으신 후 입고 있으셨던 분소의를 벗어 마하카샤파에 입게 하셨는데, 그때부터 마하카샤파는 평생 그 분소의 한 벌만을 버려진 옷의 헝겊을 잘라 덧붙여 기워 입으며 수행하였습니다.
그런 분소의란 더 입을 수 없어서 버린 낡고 더러운 옷이라든가, 시체가 썩은 후 남겨져 있던 옷들을 주워 모아 그중 성한 헝겊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기워 만든 옷으로서 가사(袈裟)라고도 하며, 그런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가사를 내려 입는 것은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도 으뜸가는 제자인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역시 후의 마하카샤파는 수행자들의 중심으로서 모범을 보이다가, 부처님께서 열반(涅槃), 즉 몸과 마음을 버리신 후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교단의 중심인물로서 많은 제자를 이끌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할 때의 수행자들을 주도하는 제1의 제자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대승 경전에는, 분소의는 마하카샤파가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에 나타나실 미륵부처님께 전해지게 된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암송하게 한 첫 번째 결집(結集)을 끝낸 마하카샤파가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 성 주변의 큰 산기슭으로 들어서자, 산은 두 쪽으로 갈라졌고, 마하카샤파가 그 속으로 들어간 후 산은 다시 하나로 합쳐졌으며, 그런 마하카샤파는 수많은 세월을 그 산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륵부처님이 나타나시면 산속에서 나와 그가 보관하고 있던 분소의를 미륵부처님께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의, 산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든가, 마하카샤파가 두 쪽이 난 산속으로 들어가 장차 미륵부처님이 나타나실 때 다시 산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나온 마하카샤파가 보관하고 있던 분소의를 미륵부처님께 전달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대승 불교도들의 허무맹랑한 잡설일 뿐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분소의가 상징하는 또 다른 뜻은, 수행자는 수저도 없는 밥그릇 한 개와 옷 한 벌만으로 평생을 보내면서 침대에 누워 자거나 의자 등에 앉아서 쉬지 않고 들이나 산의 나무나 바위 그늘을 이용해야 하며, 번뇌(煩惱), 즉 잡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상대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가까이하지 않는 생활을 의미하여, 그를 두타행(頭陀行)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마하카샤파를 교단 안팎의 두타제일(頭陀第一)로 인정하셨으며, 그런 마하카샤파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런 두타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고향에서 카샤파가 좋은 스승을 만나 그녀를 불러줄 것을 기다리고 있던 마하카샤파의 부인 아닌 부인은, 카샤파가 부처님께 귀의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후 부처님을 뒤따르던 마하카샤파가 가는 곳마다 뒤따르면서, 부처님과 마하카샤파 등등의 수행승들이 아침 탁발을 나올 때마다, 그녀가 그때그때 품팔이하여 받은 품삯으로 장만했던 음식 등을, 탁발하던 부처님과 마하카샤파 등등의 수행자들에게 올리며 가르침을 청하는 재가신도(在家信徒)로서의 삶을 살았는데, 그 이유는 그때까지도 인도 내의 그 어떤 신앙단체나 사회단체에서도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었고, 부처님 역시 여성들을 수행승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던 까닭이었는데, 그 후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이모이자 의붓어머니였던 마하프라자파티 왕비 등등의 여성들을 수행승으로 맞아들이실 때, 그녀 역시 부처님의 수행승이 되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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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맑고 건강하소서... () ...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