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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241110낮 (시편116:12)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련의 서기장이었던(수상) <흐루시초프>가 미국을 1959년과 1960년 두 번 방문했는데...이때 미국을 다녀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은 ‘아니오’ 라고 말할 때에도 감사를 넣어 ‘No, Thank You’ 라고 합니다.
독일의 <본 훼퍼 목사님>이 고마움을 통해, 감사를 통해 인생은 부해진다고 했듯이 건강한 인생, 아름다운 인생, 성숙한 인생, 행복한 인생은 감사에서 나옵니다.
감사와 불평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하면 할수록 더욱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만과 불평의 일들이 쌓여 가지만, 감사를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들과 축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욕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에 대해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이라고 <우찌무라 간조>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감사의 그릇이 클수록 은혜가 크게 임하고 또 우리가 감사하는 그릇이 많을수록 은혜도 많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인데.... 이번 추수감사 주일을 앞두고 감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은혜 받으시고 금년 추수감사주일도 여러분 삶에 가장 풍성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본문 12절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본문이 있는 시편 116편은 누가 지은 시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시요, 감사시(113-118편)입니다.
이 시편이 유명한 다윗의 시가 아니어도, 우리가 누가 지은 시인지는 모르는 무명의 시인이지만,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분명한 이유를 매우 소상하게 1-11절까지 열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음의 수렁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사슬과 음부의 고통이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3절) 이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했더니(4-5절) 하나님은 이 호소를 들으시고, 자신이 처한 환란에서 건져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자신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이 거짓말이 되어 버리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12-19절까지 그는 환란 중에서 서원하며 기도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갚겠다고 결의하며 찬양합니다. 만민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사망의 사슬과 죽음의 수렁에서 건지신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환란을 통해 선한 싸움을 마친 성도의 죽음이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15절)
그러면서 오늘 본문 12절에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라고 말합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잘 알려진 찬송가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은 목사가 되기 이전에 노예선 선장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을 붙잡아 팔아먹고 살인 강간을 일삼았던 극악무도한 죄인이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예수 믿어 죄 사함을 받은 후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찬송시를 고백한 것입니다. 노예를 잡아 팔아먹은 극악무도한 짓이 은혜가 아니라 그런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믿어 죄 사함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노예가 되어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또 모함을 당해 감옥에까지 갇혔습니다. 그가 후에 풀려나와 자유를 얻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모두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 것은 은혜였지만 그가 당한 악 자체는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정작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형들이 그를 해치려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을 막아주셨다면 은혜이지만, 노예로 팔린 것은 은혜라 고백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악을 하나님께서 결국 선으로 바꾸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당하는 일들 모두를 선이라 할 수 없고 은혜라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것은 명백한 악입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죄와 세상의 모든 악과 사람들의 악의, 재난, 고통 등 모든 어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것에 함몰되어 파멸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것을 마침내 선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혹시 그것을 막아주셨다면 은혜일 것입니다. 그러나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죽일 죄인인데도 죄 사함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사함 받고 사도의 사명까지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그는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이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부산대학병원 응급실 게시판에 게재된 <항상 감사하기>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10대의 자녀가 반항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과 재산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나서 치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끼인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될 잔디, 닦아야 될 유리,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 하나가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찬송이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다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피곤하고 뻐근해 진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는 것이고, 이 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겠지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는....작곡가 김석균씨가 작곡한 것인데... 이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이 있답니다. 어느 뇌성마비 장애인 자매에게서 감동적인 편지를 받고서 작곡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 편지 내용이 이렇습니다.
<가난한 한 집사님이 이사를 했다. 셋방살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녀석이 둘이나 있었다. 어찌나 장난이 심한 녀석이든지 신발을 사주면 한 달을 채 신지 못했다. 신발이 그러는데 옷이야 뭐 말할 게 있겠는가? 아무리 빨아대도 도무지 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사한 다음 날 큰 마음먹고 중고 세탁기 한 대를 샀다.
세탁기를 가지고 대문을 들어서다가 그 집 주인 부인을 만났다. 집주인이 묻는다. “웬 세탁기입니까?” “네, 중고 세탁기 한 대 샀습니다. 애들이 워낙 번잡스러워서 당할 수 있어야죠?. 아니 글쎄,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신발이 한 달을 못 가요 글쎄”
그 순간 집주인 부인이 갑자기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당황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때 그 집 남편이 나오면서 “아닙니다. 부인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6살 난 아이가 있는데 지금껏 걷지도 못해요. 이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 걷게 해보는 게 저희들 소원입니다” 그 가난한 집사님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한 다음 방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들의 신발을 빨리 닳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을 불평한 저를 용서 하옵소서”
인도의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수를 마치고 감사 예배를 드릴 때 한 여인이 많은 양의 곡식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평소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던 그 여인이 많은 예물을 바친데 대하여, 목사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성도님, 특별히 감사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여인은 목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사실은 제가 열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그 애에게 병이 났을 때 저는 ‘이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사는 기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이제 회복이 되었나 보군요?” 여인은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일 년 가량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목사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무효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여인은 겸손하며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제야말로 주님께 예물을 드릴 때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셨고, 지금은 그 품에 안고 계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행하시는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어떤 환경도, 나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 고난도, 보기에도 싫고 부담스러운 사람도, 감사로 받으면 달라집니다. 감사의 문을 통할 때 부정적인 것들이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고, 최악의 상황도 최선의 기회로 바뀌며, 주신 것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꼭 필요한 것이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 속에서 그래도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힘들었던 시절을 꼽습니다. 인생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은 내가 싫어하고, 피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난의 시간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가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시간들입니다. 지나고 보면 고난은 감사입니다. 실패도 감사입니다. 치욕스러운 순간도 감사입니다. 감사로 받으면 인생에 버릴 것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처럼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모든 것 뿐 아니라 그것이 고난이든, 고칠 수 없는 질병이든, 지옥 같은 환경이든, 감당할 수 없는 상처이든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음악 잔잔히....<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시절부터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고 사는 삶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노을이 지는 것,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모든 계절의 모든 순간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복음 전할 수 있는 축복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2.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신 것도 은혜입니다.
평생 동안 교회와 사회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죽어서 천국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못 들어가게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니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아!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잠간만 기다리십시요. 이곳을 통과하려면 약간의 간단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복잡한 것은 아니고 당신 지구에서 살아 온 과정에서 1,000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1,000점이라고요? 네! 난 자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점수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들을 말해 보십시요"
"전 선교기관에서 30년간이나 일하며 많은 선교사들을 세계 각국에 파송하였습니다.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 선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선교헌금도 많이 했습니다."
"아! 정말 잘 하셨군요. 좋습니다. 1점입니다." "1점이요? 그것밖에 안 됩니까? 이상하군요. 그럼 또 말하지요.
난 40년간 가정이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잘 길러서 목사, 교수, 의사, 판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게 하였지요" "정말 당신은 소문대로 훌륭한 사람이군요. 좋아요. 2점을 가산합니다." "2점이요? 정말 점수가 짜군요?"
그는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000점이 쉬울 줄 알았는데 너무나 먼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바심이 난 그는 계속 말을 이어 갔습니다.
"저는 60년 동안에 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새벽기도, 전도, 성경공부 등 교회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참여하였습니다." "좋아요. 1점 가산합니다."
"이제 겨우 4점이군요. 난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지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요. 난 천국에 들어갈 만한 인격이 안 되는가 봅니다. 제발 죄인을 용서하여 주세요. 예수님 좀 만나게 해주세요. 나를 구원시키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말합니다.
"자! 이제 당신은 1,000점을 얻었습니다. 이젠 들어가도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많이 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나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 앞에 천국문은 활짝 열릴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3. 자족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딤전 6:6절입니다.
<6)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 하나일 뿐이어도 그것마저 기꺼이 줄 수 있는 것이 자족입니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마치고 퇴장을 하던 다섯 남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마이크 스탠드에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관객들은 끝까지 몸 개그로 웃기려 한다고 즐거워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의 집중력 부족을 질타했습니다. “도대체 너 왜 그러냐? 혼자만 그렇게 튀고 싶냐?” 그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갑자기 조명이 꺼지니까 앞이 안 보여서…” 시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단순히 안경 도수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밤에 운전을 하거나 걷는 게 힘들어 졌을 때도 그저 ‘야맹증’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을 마친 후 늘 넘어지기만 하던 그가 중대 발표가 있다며 대기실에서 멤버들을 모았다. “미안해~ 사실 나 정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홍록기, 김경식, 이웅호, 표인봉과 더불어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활약했던 개그맨 이동우 씨는 결혼을 하고 100일쯤 지난 뒤 ‘망막 색소 변성증’ 이라는 불치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망막 색소 변성증은 시세포가 점점 퇴화하는 희귀병으로 유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외에는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병입니다.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 멤버들은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미안함과 불치병에 걸린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방송 진행자로도 우리들에게 친숙한 그는 5% 남짓 남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으로 기적과 같은 삶을 일구어 가고 있습니다.
TV 방송을 통해 이동우 씨의 사연을 들은 천안에 사는 40대 남성이 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설렘과 희망에 기뻐하며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기증자를 만난 그는 돌연 눈을 기증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아니 왜 기증받기를 거부하신 거죠?” 그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눈을 기증하겠다는 그 남자는 ‘근육병’ 환자였습니다. 사지를 못 움직이는 그는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오직 성한 곳 이라고는 눈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동우 씨는 안구를 기증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 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99개를 가진 사람이 100개를 채우기 위해 1개를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고 드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상입니다. 행복은 생각하기에 따라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보다 내가 가진 것에 더 감사하며 산다면 어느새 행복은 우리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라고 했습니다. 자족할 때 하나님의 섭리가 보입니다.
아무리 큰 불행을 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자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합시다. 부유하더라도 죄짓지 말고 겸손하고, 가난하더라도 비굴하지 말고 곧고 바르게 자족하며 삽시다.
남편을 잃고 홀로 어렵게 살아가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 여성이 지하철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한 쪽 발목에 의족을 차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의족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쪽 바짓단을 걷어 올린 채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구걸을 했습니다. 그 때 이 여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이 남자가 왜 구걸하며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아느냐?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한 쪽 발목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구걸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란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도 내게 받은 것들이 그토록 많건만 남편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니냐?"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떤 것을 택하느냐는 자신의 몫입니다. 없는 것 생각하며 원망 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돌아보면 무심코 지나쳤지만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루를 다시 주시는 것, 아름다운 자연을 펼쳐 주시는 것, 이웃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것에 대해 뜨겁게 감사해 봅시다. 또한, 성령 하나님이 믿어지게 하셔서 사랑과 용서라는 어려운 세계를 가까이에서 손잡아 보게 하시는 것, 영원한 생명이라는 추상적 세계가 매우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눈물겹게 감사해 봅시다. 그러면 마음속에 꽉 막혀 있던 감사의 샘이 터져서 이웃에게 생생한 평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의 샘물은 얼굴에 그윽한 평화의 미소가 번질 것이며 사랑의 간결한 말을 통해 살림살이가 진실 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감사의 파도에 출렁이는 은혜의 바다가 될 것입니다.
4. 감사도 때 맞춰 잘 해야 합니다.
엡5:4절입니다.
<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어떤 성도가 큰 병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을 고치려고 돈도 많이 들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입원한 뒤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퇴원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집에 가기 전에 먼저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살 결단을 하고 가야겠다.”
그런데 가족들이 말렸습니다.
“주일 날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 되지 뭐 그렇게 유난을 떠세요.”
그래서 그는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며칠 지난 후 주일이 되어 교회에 나와 보니 퇴원할 때의 그 감사와 결단이 어디로 갔는지 흐지부지 되어 있었습니다.
감사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 결심했으면 지금 하십시오. “처음 생각은 하나님 생각, 다음 생각은 내 생각, 나중 생각은 마귀 생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감사도 때가 있는 법입니다
다음은 감사에 대한 명언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 (죤밀러)-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모든 죄인들은 감사할 이유를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빌립 E.하워드)
<그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귀를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다>( 스피로스 J.히아테스 )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 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 토마스 아 켐피스 )
다음 주 감사절기에 감사하는 것도 때를 잘 맞추는 것입니다. 감사절은 특별히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감사할까?를 생각해서 드리면 더욱 은혜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번 추수감사절기에도 기대가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2024년도 추수감사절은 어떤 믿음의 고백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감사할까?
1년 365일인데 하루 천원감사 ...365,000
자기 나이만큼 감사...
한 달 월급 만 큼 감사...
1년 12달... 한 달 십만원 감사... (저는 지금 이렇게 하고 있지만, 하루 만원감사 해서 365만원 추수감사 드리는 것이 소원입니다. 은퇴 전까지는 꼭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감사보다는 조금 더 성의를 보이는 분들도 있고...
절기 때 드리는 헌금은 정해놓고 드리는 분들도 있고...
찬양으로 율동으로 강단장식으로...
다만, 그냥 생각 없이 드리지 마시고..나름대로 원칙과 믿음의 고백과 의미를 부여 하여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나님 앞에 어린 자녀들처럼 기뻐 뛰놀며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