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세력을 얻으려면 계급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부르주아 계급, 귀족 계급과 같은 계급 말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가난은 있어도 계급은 없고, 흑인·히스패닉을 둘러싼 인종갈등은 있어도 계급 갈등은 없는 나라로 인식돼 왔다. 학계에서 아무리 미국 계급 문제를 다뤄도 일반인들에게 미국은 계급 없는(classless) 사회였다. 계급은 없고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만 있는 나라였다.
원제가 ‘백인 쓰레기(White Trash)’인 [알려지지 않은 미국 400년 계급사]는 이러한 주류의 인식이 다 거짓말·신화라고 폭로한다. 미국의 계급사를 역사 단계별로 논증하고 있다. 식민지 개척시대부터 독립혁명 시대, 남북전쟁, 국가재건시대, 대공황, 경제 부흥기, 20~21세기 초강대국 시대까지 미국은 ‘백인 카스트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사회라는 것이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은 미국 건국 신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소수였다. 영국 식민주의자들에게 아메리카는 게으르고 더럽고 멍청한 사람들, 부랑자·고아·범죄자와 같은 ‘인간쓰레기’를 처리할 하치장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구상한 신생국 미국 또한 신(神) 아래 모두가 계급 없이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신분과 특권에 기초한 사회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의 위인들마저 차별을 숨기고 또 차별에 필요한 편견을 제도화하는 데 공범 노릇을 했다.
레드넥(Redneck), 폐기물 인간(Waste People), 힐빌리(Hillbilly), 클레이 이터(clay eater), 트레일러 쓰레기, 백인 깜둥이, 습지 인간, 느림보 등으로 불린 ‘백인 잉여 인간들’의 수난은 계속됐다. 그들은 흑인 노예보다 처지가 더 나빴던 사람들이다. 19세기말부터는 이들은 강제 불임수술 대상자였다. 1931년까지 27개 주에서 실제로 단종법이 제정됐다. 그들의 가난과 고통은 사회적·국가적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의 나태함과 혈통의 열등함을 탓해야 했다.